Vitalij Kuprij “VK3”

메탈 키보드의 테크닉 히어로들을 얘기한다면 그 중 어느 한 부분은 아마도 Vitalij Kuprij의 자리일 것이지만 이 분이 그럼 테크닉에 걸맞을 정도로 걸출한 커리어를 남겼느냐 하면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유야 당연히 클래식 하다 갑자기 메탈 외길인생으로 접어든 뮤지션의 팔자…이겠지만, 그런 거 말고 다른 부분을 찾는다면 아무래도 이 분의 본진은 누가 뭐래도 Artension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라고 흔히들 소개됐지만 그렇다고 Dream Theater 팬들이 좋아하기에는 너무 네오클래시컬 기운이 강했고 앨범 전반을 감싸는 특유의 구리구리함(이걸 구수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까지 있으니 진입장벽은 많이 높은 편이었다. 애초에 Dream Theater와 비교할 레벨의 밴드는 사실 아니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Vitalij Kuprij 커리어의 어떤 정점이라면 나는 이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네오클래시컬의 기준에서야 “High Definition”이 백미이겠지만)Artension의 그 구리구리함이 빠지고 테크닉의 향연을 선보이는 솔로작이기도 하고, 이 분 커리어를 클래식과 떼어 둘 순 없겠지만 정말 클래식 만세에 가까웠던 앞서의 솔로작들에 비교해서는 조금 더 다양한 면모와 세련된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Tony Macalpine의 참여 탓인지 재즈퓨전의 기운도 좀 더 강해졌지만 곡마다 톤을 바꿔가면서 클래시컬한 멜로디를 짚어가는 키보드가 앨범의 중심에 있는 건 분명하다. Yngwie처럼 괜히 보컬 욕심 내지 않고 인스트루멘탈로 앨범을 채우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든다. 하긴 이런 테크닉을 마음껏 과시하려면 보컬은 불필요해 보인다. John West의 무게감을 생각하면 ‘Reflections’ 같은 곡이 Artension의 이름으로 나오긴 어려웠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암만 메탈이 어렵다 하지만 Shrapnel이 어쨌든 shredder들의 의미있는 신작들을 계속 내놓았고 지구레코드는 훗날의 똥망을 아는지 모르는지 꾸준하게 라이센스를 계속해 주었고 돈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없지만 열심히 그런 앨범들을 모으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Vitalij Kuprij가 떠났다고 하니 사실 추억이 많은 뮤지션은 아니지만 뭔가 어떤 시절이 정말로 끝난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Shrapnel, 1999]

Friisk “…un torügg bleev blot Sand”

동프리슬란트의 이야기를 블랙메탈로 풀어낸 보기 드문 밴드였던 Friesenblut을 굴리던 멤버들이 와신상담 끝에 다시 손잡고 만든 밴드! 라는 게 대충 레이블측의 설명이긴 한데 일단 Friesenblut를 못 들어봤고 동프리슬란트가 뭐가 특이한 동네인지 도통 모르는 이에게 저런 설명은 사실 하나마나한 얘기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Friisk를 검색해 보면 북프리슬란트를 얘기하는 단어로 보이는데 소개에는 왜 동프리슬란트 얘기만 나오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 레이블이나 나나 둘 중의 하나는 꽤 심각한 헛다리를 짚고 있는 셈인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밴드 본인들이 애초에 잘못 알고 있었다고 하면 꽤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각설하고.

음악은 기대 이상으로 준수하다. 스타일은 사실 독일풍의 ‘Atmospheric’ 블랙메탈에서 그리 벗어나지는 않는데, 꽤 귀에 잘 들어오는 멜로디로 극적인 맛을 낼 줄 안다는 게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일 것이다. 두터운 트레몰로와 블래스트비트로 곡을 이끌어가다가 어쿠스틱과 미드템포를 이용해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말이 미드템포지 이 앨범이 사실 꾸준히 밀어붙이는 편에 가까운 음악임을 생각하면 그만큼 멋진 리프를 보여주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어떤 부분은 거의 Lunar Aurora 수준). 그런 면에서 앨범의 백미는 미드템포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잠깐의 휴지기를 갖고 터뜨리는 전개를 보여주는 ‘Fiebertraum’일 것이다. 블랙메탈의 좋았던 시절 무척 흔했던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그런 만큼 두드러지는 사례를 보기도 쉽지 않은데, 적어도 이들은 꽤 훌륭한 경우에 속한다. 멋진 펜드로잉을 보여주는 커버도 꽤나 마음에 든다.

[Vendetta, 2021]

Dolores O’Riordan “Are You Listening?”

Cranberries의 바로 그 분의 2007년 솔로작. 시절이 시절인지라 이 분은 물론 Cranberries의 좋았던 시간은 이미 지나간 지도 좀 된 시점이었고, 그러니 이 앨범을 많은 이들이 기대에 부풀어 기다렸다고 하기엔 좀 애매하겠다. 그런 면에서는 Richard Ashcroft의 솔로 앨범과도 비슷하다 할지도? 그러니 이 앨범도 나오자마자 라이센스로 등장하던 그 시절도(물론 가장 좋았던 시절과는 한참 거리가 멀지만) 생각하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처음부터 이런 얘기로 시작하니 나이먹은 티가 너무 나므로 각설하고.

Cranberries 이후 시간은 꽤 지나 나온 앨범이지만 음악은 Cranberries 시절의 스타일과 크게 차이는 없다. 애초에 Cranberries의 송라이터면서 밴드의 색채(와 각종 사건사고)를 대표했던 분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한데, 그걸 본인도 알고 있어서 일부러 의도했음인지 앨범은 Cranberries의 앨범보다는 좀 더 다양한 모습들을 담고 있다. 싱글 커트한 ‘Ordinary Day’는 안전하게 Cranberries 스타일이지만, 살짝 트립합 느낌을 담은 ‘Human Spirit’이나 Evanescence를 살짝 따라한 듯한 ‘In the Garden’이나 ‘Black Widow’ 등은 Cranberries의 전형과는 조금 달라 보인다. 물론 그래봐야 Dolores의 보컬이 영락없는 Cranberries의 b-side 같은 인상을 덧칠하긴 하지만, 이 분이 그리 노래 못하는 분도 아니고 결국은 타고난 목소리 때문인 것을 뭐라고 하긴 좀 그렇지 않은가.

‘Loser’의 철 지난 발랄함은 차라리 없었으면 나았겠다 싶긴 하지만 썩 괜찮게 들었다.

[Sequel, 2007]

Bulldozer “Alive…. in Poland”

Bulldozer는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는 꽤 많은 라이브앨범을 남긴 밴드인데, 그래도 ‘Dance Got Sick!’으로 스스로 관뚜껑에 못질하기 전 내놓은 라이브앨범은 이 앨범이 유일하니 밴드의 한창 시절을 담고 있는 라이브앨범은 이것 뿐이라고 해도 대충 맞을 것이다. Roadrunner에서 쫓겨났다지만 어쨌든 아직은 이탈리아 메탈의 명가 Discomagic에서 앨범을 내고 있었으니 퇴물 취급받는 신세도 아니기도 했다. 하기야 암만 이 장르가 강력한 체력…을 요구한들 30줄도 되지 않은 멤버들을 두고 퇴물이라고 하기는 좀 많이 그렇겠다. 각설하고.

밴드의 1집부터 4집까지의 주요 넘버들을 대충 망라하고 있는(빠진 것도 많다는 뜻이다) 이 라이브앨범은 3집부터는 흑마술 컨셉 좀 빼고 확실히 좀 유쾌해진 밴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포르노 스타 Ilona Staller에 대한 팬심을 과시하는 ‘Ilona the Very Best’ 다음에 나오는 ‘Impotence’, 스포츠토토를 하며 세리에 A를 살펴보던(돈은 물론 못 땄음)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The Derby’로 꾸리는 전반부는 왔다갔다 하는 믹싱 상태와 어우러져 꽤 정신없는 공연장의 분위기를 재현한다. 청중들의 반응도 꽤나 좋기 때문에 분위기만큼은 확실하다.

밴드 초반의 적당히 펑크적이고 흑마술 컨셉으로 나가던 모습이 잘 담겨 있지는 않은지라 Bulldozer를 모르는 이가 듣기에는 애매해 보이지만, Bulldozer를 이미 접해 봤다면 즐길거리는 충분하다. 전체적으로 원곡보다 좀 더 빠르게 연주되고 있는 만큼 스래쉬메탈 라이브의 박진감을 느끼기에도 더 좋을지도.

[Metalmaster, 1990]

Asia “Fantasia – Live in Tokyo”

80년대 초반 프로그 씬이 더없이 지리멸렬해지고 씬의 거물들이 결성했던 팝스 지향형 밴드들을 되게 좋아하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단연 엄지손가락의 자리에는 역시 Asia가 있을지어다. 일단 브리티쉬 프로그 근본 중의 근본에 가까운 멤버들이 모여 만든 밴드인지라 개개인의 기량도 그렇고, 걸출한 프로그 밴드들 출신답지 않게 약간의 프로그 레떼르가 녹아 있긴 하다만 비슷한 다른 밴드들보다도 더욱 명료한 구성의 팝을 연주한지라 본진의 팬들에겐 욕을 먹었을지언정 나 같은 귀 짧은 이들을 사로잡기에는 더할나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25년만의 Asia의 원년멤버들이 다시 모여 가진 라이브를 담은 이 앨범은 그 자체로 눈길을 모으고, 이 멤버들이 라이브에서 내놓은 셋리스트는 Asia의 주요 넘버들만이 아니라 멤버들이 거쳐 온 브리티쉬 프로그레시브의 핵심 밴드들의 명곡들을 아우르고 있다. ‘Roundabout’이나 ‘In the Court of Crimson King’, ‘Fanfare for the Common Man’ 같은 곡이 셋리스트에 자연스레 끼어들 수 있다는 게 이 슈퍼 밴드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강점일 것이다. Geoff Downes 덕에 ‘Video Killed the Radio Star’까지 끼어드는 셋리스트는 이걸 현장에서 봤다면 되게 뜻깊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아무래도 힘이 빠져도 많이 빠진 John Wetton의 목소리와 밴드의 확실히 예전같지 않은 에너지는 이 앨범을 ‘nostalgia trip’ 이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하고,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되는 ‘Don’t Cry’ 등 “Alpha”의 수록곡들은 이 힘 빠진 공룡의 처진 어깨를 더욱 부각시키는 듯하여 많이 아쉽다. 그나마 John Wetton과 Carl Palmer가 Chris Squire와 Bill Bruford의 한창시절을 따라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한 ‘Roundabout’에서 어느 정도의 힘을 느낄 수 있지만, Asia 앨범 얘기를 하면서 이 앨범의 장점을 ‘Roundabout’이라고 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나.

본전 생각까진 아니지만 아쉬움을 지울 순 없을 라이브 앨범이다.

[Eagle,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