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omic Rooster “Made in England”

흔히 프로그레시브 록 얘기할 때 나오는 이름이긴 하다만 이 밴드의 단연 최고작 하나를 꼽는다면 내 생각에는 밴드가 별로 프로그레시브하지 않기 시작했던 이 앨범이다. 일단 청바지 기지를 끊어 만든 저 호기 넘치는(넘치다못해 미쳤다 싶은) 커버와 빛나는 밴드의 공격성은 이 시절 영국에서 활동한 수많은 인걸들 가운데에서도 더욱 빛나는 사례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인터넷상의 ‘블루 아이드 소울 스타일이 묻어나는’ 식의 소개문구만 보고 프로그는 커녕 대체 이게 뭐냐! 하고 이 앨범을 넘겨 버리는 건 무척 곤란하다.

말이야 이렇게 하지만 밴드의 그 공격성 가운데 소울의 기운이 강하게 묻어나는 건 분명하다(그러니까 저 소개문구가 사실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애초 Chris Farlowe의 보컬 자체가 소울풀한 것도 있겠지만 잊을만 하면 들려주는 펑키한 전개와 그루브, 전작에 비해 확연히 줄어든 오케스트레이션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브라스 섹션은 밴드가 이 앨범에 와서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접어들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Vincent Crane의 Keith Emerson 따라잡기가 돋보이는 ‘Breathless’나 ‘Time Take My Life’ 같은 곡의 프로그함도 있긴 하지만 결국 이 앨범의 핵심은 Atomic Rooster 식의 적당히 소울풀한 브리티쉬 하드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하긴 그러니까 앨범명부터가 “Made in England”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이 앨범만큼은 해서 Dawn 퍼스트 프레싱으로 한 장 구해보고 싶은데… 상태 그럭저럭인 물건이 5천유로를 찍어주는지라 오늘도 입맛 한번 다시고 넘어간다. 하지만 갖고 싶다.

[Dawn, 1972]

Pa Vesh En “Maniac Manifest”

Iron Bonehead에 대한 인상은 처음에는 무슨 파워메탈 레이블인 줄 알았지만(얘네 카탈로그 2번이 Twisted Tower Dire의 데모였음) 초창기는 뭔가 애매하게 이것저것 두루 내놓는 양상을 보이다가 언제부턴가 포스트-블랙 그런 거 안 키우는(사실 잘라 말하긴 좀 애매하긴 함) 본격 블랙메탈 레이블로 거듭난 곳.. 이라는 정도인데, 또 언제부턴가 이 레이블만큼 퀄리티 컨트롤 되는 블랙메탈 레이블도 별로 없어 보일 정도로 일정 수준 이상의 카탈로그를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끝없는 삽질을 계속하고 있는 NWN!과 비교되는 면도 있어 더욱 그래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 벨라루스 밴드는 데뷔부터 지금까지 Iron Bonehead에서만 앨범을 내놓고 있는 나름 레이블의 야심작…인 셈인데, 본격 블랙메탈 레이블이기는 하지만 은근 따져 보면 전형적인 스타일은 생각보다 별로 안 나오는 이 레이블에서 비교적 전형적인 스타일에 가까운 블랙메탈을 연주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굳이 풀어 본다면 신서사이저로 적당히 분위기를 잡아주지만 결국 로블랙 스타일의 음악이고, Silencer를 연상케 하는 보컬에도 불구하고 DSBM풍 전개와는 또 거리가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다. 그나마 밴드의 발매작들 중에서는 가장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는(그리고 실험적인) 한 장을 고른다면 이 3집이라고 생각하는데, 보면 90년대 블랙메탈을 수놓은 다양한 스타일들을 은근 고루 담아내고 있는지라 꽤 즐겁게 들을 수 있다. ‘Conquerentes de Iniqua Nece Confessionem’이나 ‘Spellbound by the Witchmoon’ 같은 곡은 다른 밴드들에게서 쉬이 찾아볼 수 있을 모습이 아닐 것이다. Black Cillice 같은 밴드들을 좀 더 뒤틀어 내놓았다고 해도 좋을지도.

[Iron Bonehead, 2021]

Wolfsheim “Casting Shadows”

Depeche Mode 이후의 신스팝 밴드들이 대개 그랬듯 Depeche Mode 아류라는 식의 딱지를 떼어낼 순 없었지만 그렇게만 얘기하기에는 좀 많이 억울했을 독일 신스팝 듀오의 마지막 앨범. Depeche Mode도 “Some Great Reward”부터는 마냥 댄서블한 신스팝 밴드로 부르기엔 많이 어려워진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Wolfsheim의 음악은 처음부터 이미 그보다 더 어두운 스타일이었다. 딱히 팝적이지 않은 적도 없었지만 내놓는 앨범의 어느 정도는 항상 다크웨이브에 흡사할 정도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Casting Shadows”도 다르지 않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전작에 비해서 은근히 다채로워졌다는 점인데, 은근히 트랜스도 섞여들어가고(‘Care For You’), 락스타를 꿈꾸던 Depeche Mode를 의식한 듯한 모습도 있으며(‘I Won’t Believe’) 원래 잘 하던 것도 잊지 않고 보여준다(‘Kein Rück’). 하지만 아무래도 이 듀오의 팬베이스의 절반은 Peter Heppner의 음울한 목소리일 것이고, 다양하다지만 결국 앨범을 관통하는 멜랑콜리함은 일관된만큼 막상 앨범을 다 듣고 나서 그런 차이점이 얼마나 다가올지는 의문이다. 가끔은 Human League의 업데이트된 버전 같았던 “Spectators”에 비해 이 앨범이 좀 더 심심하게 느껴지는 건 그런 때문일지도? 하지만 21세기에 여전히 신스 팝(과 Strange Ways의 발매작들)을 듣는 이들이라면 그게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Depeche Mode는 2001년 “Exciter”를 내놓고 바야흐로 커리어의 바닥을 찍고 있던 시절이었다. 적어도 이 앨범이 나오던 시점에서는 Wolfsheim이 Depeche Mode보다 세련된 사운드를 구사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라면 뭐 당신 말씀이 맞겠죠.

[Strange Ways, 2003]

Heavy Load “Riders of the Ancient Storm”

스웨덴 헤비메탈의 전설이며 훗날의 Candlemass나 Hammerfall같은 밴드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던 밴드…라지만 난 국내에서 이 밴드가 참 좋더라 하는 사람을 실제로 만나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 주변에서 그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둘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바야흐로 NWOBHM의 흐름이 힘을 얻어가던 시절 이 스웨덴 밴드가 주목받기에는 내노라 하는 밴드가 시장에 너무 많았기 때문에 유럽권도 아니고 국내에서 이 밴드를 주목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라는 시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냥 이 블로그 주인장이 인간관계가 겁나게 좁아서라는 시각이었다. 후자에 대해 딱히 반박하긴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둘 중에 정답을 고른다면 전자일 것이다.

어쨌든 올드스쿨 헤비메탈 클래식으로 손꼽기 충분한 “Stronger than Evil” 이후 40년만에 나온 이 복귀작은 그래도 밴드의 한창 시절의 에너지를 잃지 않고 잘 보여주는 편이다. 레이블도 No Remorse이고 밴드도 최신의 경향 같은 데는 별로 관심없을 밴드인만큼 스타일도 80년대 초반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화끈함을 잊지 않은 ‘전형적인’ 류의 헤비메탈이지만, ‘We Rock the World’의 살짝 블루지한 기운을 끼얹은 Black Sabbath풍의 리프나, Deep Purple 스타일로 Amon Amarth풍의 테마를 풀어내는 듯한 ‘Walhalla Warriors’의 스타일, Tony Iommi와 Ritchie Blackmore의 그림자 역력한 솔로잉 등은 이 밴드가 관심 있는 분야는 40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말하자면 흘러간 메탈 밴드의 40년만의 복귀작으로는 더할나위없는 앨범일 것이다. 하긴 Heavy Load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일단 여전히 귀에 잘 박히는 밴드 특유의 코러스만으로도 이 앨범을 좋아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늙기 전에 몇 장 더 냈으면 좋겠다.

[No Remorse, 2023]

Sophie Lloyd “Imposter Syndrome”

Sophie Lloyd는 요새 여기 저기서 ‘성별을 떠나 가장 주목할 만한 신예 록/메탈 기타리스트’ 식으로 주목받는 여성 연주자다. 유튜브 구독자만 백만명이 넘고 최고조회수는 5백만도 훌쩍 넘어간다니(반면 이 블로그가 하루에 몇 명 들어오더라)는다니 그냥 인플루언서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앨범을 정말 내놓고 있으니 이 시대에 젊고 나름의 실력을 갖춘 뮤지션이 시장에 진입하는 또다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저 Autumn Records라는 곳도 인터넷에 의하면 Sophie Lloyd의 앨범 말고는 낸 게 없으니 그냥 자주제작일 것이고, 인플루언서가 아니라 ‘유튜브 잘하고 음악과 유튜브 중 뭐가 본업이 헷갈릴 정도지만 어쨌든 음악에는 진심인 뮤지션’ 정도로 얘기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음악은 기대보다 더욱 괜찮다. 이 분이 노래실력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 노래는 전부 다 게스트를 초빙하고 본인은 연주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돋보이고(그런 면에서 Yngwie Malmsteen과 Paul Gilbert는 가끔은 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 뮤지션이 블루스부터 헤비메탈까지 꽤 다양한 음악을 들어 왔음을 보여주는 부분도 다양하다. ‘Do or Die’의 기대 이상으로 메탈릭한 리프에 살짝 놀라고, 테크니컬하지만 또 과하지는 않게 넣어주는 솔로잉도 돋보인다. Trivium의 Matt Heafy가 마이크를 잡은 ‘Fall of Man’에서는 청자의 취향이야 어쨌건 스래쉬풍 묻은 리프와 출중한 보컬도 기대보다 귀에 잘 들어온다. 곡들이 전반적으로 클라이막스가 약해 보일 정도로 단조로운 면이 있다는 게 문제긴 한데, 뭐 젊으니까 다음 앨범을 기대하도록 하는 힘은 충분해 보인다.

다만… 자주제작이라 그런가 피지컬을 꽤나 비싸게 판다. 본인 생각이야 모르지만 이 분 정도면 부족하진 않을텐데 CD를 13파운드에 팔아먹으니 사는 입장에서는 본전 생각이 조금 드는데, 중고시장에서 앨범이 은근히 가격이 빨리 뛰는 편인만큼 큰 맘 먹고 한번 구해봐도 좋을지도.

[Autumn,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