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Force “The Final Sign”

한창 시절 Queensrÿche와 Crimson Glory를 적당히 짬뽕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이 밴드는 1990년과 1991년에 두 장의 데모만을 내놓고 망해버렸다고 한다. 우리의 Divebomb은 이런 밴드를 어찌 알고 저 데모 두 장에 라이브 음원을 보너스로 더해 한 장의 컴필레이션으로 내놓았으니 이 한 장으로 이 밴드의 컬렉션은 굳이 오리지널을 모으려고 하지 않는 한 완성될 것이다. 모으는 입장에서야 좋다지만 밴드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인 셈이다.

아무래도 Queensrÿche를 떠올릴 지점은 Geoff Tate가 생각날 수밖에 없는 Lonnie Fletcher의 보컬이겠지만(동급이라는 얘기는 아님) 음악은 사실 프로그레시브 메탈 또는 USPM의 전형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고, 특히 1991년 데모의 ‘So Far Away’ 같은 발라드를 보면 메탈이라고 하기도 좀 뭣할 ‘클래식’ 하드록의 면모도 있다. 그래도 앨범의 주류는 Shrapnel의 한창 시절을 연상케 하는 살짝 먹먹한 음질과 적당히 테크니컬한 솔로가 어우러지지만 “Rage for Order” 같은 앨범에 비해서는 역동적인 맛은 좀 떨어지는 류의 스타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A Time of Change’ 같은 곡은 Queensrÿche의 미발표곡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정도의 기량을 보여주기도 하고… 사실 90년 데모의 수록곡은 Queensrÿche나 Crimson Glory의 팬이라면 적어도 납득할 수준은 된다. 개인적으로 Divebomb bootcamp 시리즈 중에서는 제일 마음에 든다.

[Divebomb, 2014]

Saturnus “Paradise Belongs to You”

Saturnus의 대망의 데뷔작. 둠이 뭔지 잘 알지도 못했던 시절(뭐 지금이라고 잘 안다는 얘기는 아님) 멜랑콜리한 둠 메탈을 원한다면 이 앨범을! 식의 광고문구에 혹해서 구하게 됐던 이 앨범이 담고 있는 음악은 내가 알고 있던 둠 메탈의 모습 – 퓨너럴 둠 – 과는 이걸 둠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무척 달랐다. 예테보리의 그 밴드들을 멜로딕 데스라고 부르고 있던 시절이었으니 이 음악을 멜로딕 데스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 용어를 꼭 거기에만 쓰지 않는다면 여유 있는 템포만 빼고 생각한다면야 이 음악을 ‘멜로딕 데스’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뭔가 싶기도 하다. 하긴 둠 메탈이라고 적당한 박력이 있으면 안된다는 법이야 없으니 그래도 멜로딕 둠 정도로 부르는 게 더 맞아 보이긴 한다. 각설하고.

앨범의 핵심은 역시 Kim Larsen이 이끄는 기타 멜로디와 여기에 어우러지는 키보드가 만들어내는 멜랑콜리한 분위기일 것이고, 꽤나 자주 등장하는 새소리와 어두운 듯 마냥 차갑지는 않은 분위기는 바로 저 커버와 무척이나 어울린다. Chris Reifert 수준으로 묵직한 Thomas Jensen의 보컬이 이 음악이 둠 메탈임을 상기시켜 주지만, ‘Christ Goodbye’ 같은 곡에서 드러나듯 멋진 클린 보컬을 보여주는 분인지라, 사실 마냥 둠 메탈이라고만 하기는 좀 그렇고 어느 정도는 네오포크의 경향(‘죽음’이라는 주제에 탐미적으로 천착하는 모습이 역력한 가사도 그렇고)을 담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Kim Larsen부터가 이후 Of the Wand & The Moon으로 활동하게 되니 당연한 얘기일지도? 그런 면에서 둠 메탈 중에서 어떤 ‘분위기’를 이만큼 짙게 머금었던 앨범과 밴드는 별로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긴 그러니까 둠 메탈 클래식이라고 불리고 있겠지.

[Euphonious, 1997]

Xoth “Exogalactic”

요새 테크니컬하다는 평을 듣는 밴드들이 대개 그렇듯이 어느 하나로 딱 집기 어려운 이거저것 뒤섞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시애틀 출신 밴드의 근작. 프로그레시브 스래쉬라는 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결국은 Voivod나 Coroner를 참고한 흔적이 많으면서 은근히 블랙메탈 스타일이 많이 묻어나는 보컬을 보유한 테크니컬 데스… 정도로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특별하다고 할 건 없는 스타일이고, 위의 두어 줄 정도에 나온 것 말고도 중간중간 등장하는 네오클래시컬 어프로치나 통상의 테크니컬 데스보다 훨씬 뚜렷한 멜로디(그러니 Arsis나 Exmortus 같은 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Reptilian Bloodsport’ 같은 곡에서 묻어나는 Black Dahlia Murder풍의 면모는 소위 ‘모던한’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마냥 달가운 모습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 밴드의 특징이라면 은근히 파워메탈의 전형에 가까운 전개들을 보여준다는 것인데, 특히나 보컬만 빼면 곡 전체가 그렇게 나아가는 ‘Saga of the Blade’나 ‘Reflective Nemesis’의 Dragonforce 뺨칠 도입부는… 니네가 이러고도 데스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듣다 좀 질리는 감은 사실 없지 않지만)나쁘지 않게 들린다. 가끔은 Blind Guardian 같다는 생각도 들곤 한다.

멜로딕 스피드메탈을 즐겨 들으면서 래스핑 보컬에 마냥 거부감이 있는 이가 아니라면 이만한 입문작도 보기 드물어 보인다.

[Dawnbreed, 2023]

Iona “Journey Into the Morn”

프로그 포크 내지는 네오프로그로 보통 분류되곤 하는 밴드이지만 그런 레떼르를 염두에 두고 이 음악을 듣는다면 아무래도 볼멘소리(역시 네오는 이래서 안된다는 류의)를 뱉을 사람도 있어 보인다. 밴드 본인들도 사실 프로그보다는 ‘켈틱 포크’라는 부분에 방점을 두는 것처럼 보이듯이, 본격적인 프로그라기보다는 Clannad 류의 스타일에 Mike Oldfield풍 신서사이저와 그래도 포크라고 하기에 민망하지 않게 이런저런 다양한 전통 악기들을 더한 모습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도 일단 Joanne Hogg의 보컬이 수려한데다 멜로디도 귀에 박히게 잘 뽑아내는 편이니 웬만한 청자들에게 들을만하다는 평을 얻어내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그래도 밴드의 앨범들 중 이 앨범이 가장 잘 알려진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Robert Fripp이 게스트로 참여해 특유의 기타와 프리퍼트로닉스 연주를 담아냈다는 점일 텐데, 사실 Fripp이 참여한 곡들보다는 David Gilmour스러운 기타가 돋보이는 ‘Encircling’이나, 켈틱으로 모자라 본격 찬양 CCM을 들려주는 ‘Wisdom’이나 ‘Everything Changes’가 밴드의 스타일을 대변하는 곡일 것이다. 멜로트론을 위시한 다양한 악기들을 발견하고 프로그라고 얘기하고 싶은 이들이 많겠지만 결국 그런 편성이 만들어내는 것은 프로그레시브보다는 오히려 뉴에이지식 분위기에 가깝다. 그러니까 좀 에너제틱한 스타일을 원한 이들이라면 별로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후의 Brave 같은 밴드들을 좋게 들은 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런 스타일의 원류를 이쪽에서 찾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뭐, 이런저런 얘기들을 떠나서 그냥 이지리스닝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런 것까지 돈주고 샀냐는 식의 공격만 피해 간다면 온 가족이 같이 듣기에도 충분해 보인다.

[Alliance Music, 1995]

Michael Monroe “Not Fakin’ It”

소위 헤어메탈이라 불리는 밴드나 뮤지션들 가운데 Motley Crue 정도를 제외하면 내놓은 어느 것 하나 기복 없이 나쁜 게 없었던 경우는 역시 Michael Monroe와 Hanoi Rocks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들의 공작 가운데는 Jerusalem Slim이라는 지뢰…가 있긴 하다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Hanoi Rocks의 좋았던 시절에 비해서 그렇다는 뜻이고, 본인이야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하겠다만 Jerusalem Slim의 아쉬움 상당 부분은 테크닉이야 더할나위 없지만 잘 어울리냐 하면 좀 애매했던 Steve Stevens의 기타에 있다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그 Michael Monroe와 Hanoi Rocks의 앨범들 중 개인적으로 한 장을 꼽으라면 단연 이 앨범이다. 일단 Michael Monroe에게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가져다 준 앨범이기도 하고(여기에서 나의 대중적인 취향을 엿볼 수 있으렷다), 원래 Michael Monroe가 그랬듯이 메탈이라기보다는 ‘클래식한’ 부류의 하드록에 좀 더 가까울 음악이지만 앨범이 보여주는 에너지만큼은 웬만한 헤어메탈 밴드들이 따라올 수 없다. 훗날 Guns N’ Roses가 커버하는 ‘Dead, Jail or Rock ‘N’ Roll’, 이제는 장르의 클래식이 된 ‘While You Were Looking at Me’, Hanoi Rocks식 파워 발라드의 모범사례를 보여주는 ‘Man with No Eyes’ 같은 곡들은 장르의 팬이라면 거부할 요량이 없다. Michael Monroe가 지저분해 보여서 싫다고 하는 이들을 제외한다면야 말이다.

[Polygram,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