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e of Nemesis “Terra Incognita”

최근에 뜻밖의 목돈이 나갈 일이 있었으므로 한동안은 흘러간(그리고 평소에 거의 찾아듣지 않은) 앨범들을 굳이 돌려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이걸 기회로 삼아 소비생활을 다시 다잡는 계기가 된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아마도 늘 그랬듯이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다. 각설하고.

이 헝가리 프로그메탈 밴드는 내 기억에는 바야흐로 2002년 월드컵 홍보가 한창 귀를 찌르던 그 시절에도 은근 앨범들이 중고시장에 자주 보이는 편이었는데, 정작 내 주변에서 이 밴드의 앨범들을 들어봤다는 이들은 대개 데뷔작인 “Nemesis”의 커버를 보고 아마 그냥저냥한 둠-데스이겠거니 집어들었다가 실망한 사례였으므로 이 밴드의 음악을 실제로 접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굳이 이 앨범이었던 이유는 딱히 알려질 이유는 없어보였던 이 사그라져 가는 밴드의 앨범을 Magna Carta에서 영어로 재녹음해서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혹자야 Magellan과 Robert Berry의 노후보장용 레이블이라고도 하지만 2007년만 해도 Magna Carta는 활발하지는 않더라도 어쨌든 아직은 준작들을 내놓고 있던 곳이었다.

그렇게 들은 앨범은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다. 물론 James Labrie 스타일의 보컬을 내세우면서 의외스러운 부분은 하나도 없는 Dream Theater류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음악이지만, Dream Theater의 수준에는 ‘살짝’ 미치지 못하는 테크닉을 송라이팅으로 극복하려 하는 모습도 역력한지라 응원하는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고 해야 하나? 덕분에 프로그레시브 ‘메탈’에서 피아노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좋은 예시를 보여주는 ‘The Land of Light’나 이 장르의 준수한 인스트루멘탈의 전형에 가까워 보이는 ‘The Inferno’, 이 밴드의 메인은 건반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Bleeding Moon’ 같은 곡을 듣자면 이 밴드가 조금만 더 오래 활동했다면(그래서 Explores Club 라인업 말석에라도 이름을 올렸다면) 받는 대접은 지금과는 좀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도 든다. 물론 죽은 자식 X알 만지는 얘기일 뿐이다.

2002년의 오리지널과 2007년 영어 재녹음반은… 가사만이 아니라 연주도 사실 조금 다른데, 들어간 돈이 있어서인지 나로서는 2007년 쪽이 더 나아 보인다. 뭐 그 부분은 개인취향의 영역에 가까워 보이니 넘어간다.

[Magna Carta, 2007]

Catacomb “In the Maze of Kadath”

이 케케묵은 프랑스 데스메탈 밴드에 대하여 알려진 내용은 별로 없다. 사실 이 데모는 이름만큼은 꽤 예전부터 알 만한 이들 사이에는 알음알음 돌던 이름이기는 했지만 그 시절 쏟아져 나온 데스메탈 밴드들이 많이들 그랬듯이 무리없이 묻혀버린 사례들 중 하나처럼 여겨졌다. 그러니까 이 7인치가 어쩌다가 내 손에 들어왔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확실해 보이는 건 나온지 30년이 되었어도 오리지널이 별로 비싸지질 않는 걸 보면 그만큼 많이 찍었…을 리는 없고 별로 인기는 없었을 것이라는 점과, 그래도 Dark Symphonies에서 재발매를 했던 걸 보면 주목할 사람들은 꽤 주목했을 물건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접한 이 음악은 나름 독특하다. 1993년이니 데스메탈의 다양한 스타일들은 대개 나왔을 시절이지만 이 앨범은 둠적이면서도 꽤 ‘지저분한’ 류의 분위기가 주가 되고, 그러면서도 키보드를 통한 프로그레시브한(물론 화려한 테크닉보다는 ‘eerie’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진력한다) 전개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쉬이 다른 밴드와 비교하기 어려운 편이다. 그나마 비교한다면 Timeghoul에서 ‘우주적인’ 분위기를 걷어낸 류의 음악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때로는 스피드메탈에 가까운 전개도 등장하고, 때로는 Bolt Thrower 스타일로 몰아붙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70년대 프로그 밴드 마냥 클래시컬한 구석도 있는 이 음악을 잘라 설명하기는 역시 어렵다. 러브크래프트 소설 얘기로 일관하는 가사들도 이 앨범의 독특한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다.

그래도 가장 눈에 띄는 곡은 역시 ‘Nemesis’라고 생각한다. 초창기 Paradise Lost풍의 둠을 무려 ‘그루비하게’ 풀어내는 모습은 이 밴드가 꽤 재미있는 구석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말하자면 그 시절 쏟아져 나왔지만 무리없이 묻혀버린 사례와 같이 취급되기에는 확실히 좀 억울할 만한 수준을 보여준다. 꽤 재미있게 들었다.

[Drowned Prod., 1993]

Depeche Mode “Ultra”

“Ultra”를 Depeche Mode 최고의 걸작이라고 한다면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않냐 하는 이들도 꽤 많겠지만, “Ultra”가 밴드의 가장 어두우면서 걸출한 앨범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지 않을까? 나처럼 Depeche Mode의 한창 시절 한 푼이 아쉬웠던 학생이었다면 아마도 “Songs of Faith & Devotion”이나 이 앨범으로 Depeche Mode를 처음 접한 사례가 많을 것이고(다른 이유는 없고 라이센스니까), 그런지 냄새와 약 냄새가 묘하게 공존하던(덕분에 묘하게 퇴폐적이었던) 전자에 비해서는 좀 더 어둡고 잘 다듬어진 팝에 가까웠던 “Ultra”가 그 중에서는 좀 더 내게 맞는 편이었다. 본격 록 밴드의 탈을 쓴 Depeche Mode의 모습이 사실 그리 맘에 들지 않던 것도 있었다. 다른 밴드들 많은데 굳이 Depeche Mode가 직접 기타를 잡을 필요가 없지 않나 하는 식이다.

그런 면에서 앨범의 락스타의 휘광은 사라졌지만 그나마 록적인 기운이 조금은 살아있는 ‘Barrel of a Gun’이나 ‘Useless’ 같은 곡보다는 밴드의 어두운 면모가 돋보이는 ‘Freestate’나 ‘Sister of Night’, ‘The Bottom Line’ 같은 곡들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분위기를 고딕적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Depeche Mode가 나름의 방식으로 ‘영적인 분위기’를 풀어낸 팝송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긴 한창 시절 그 누구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개차반 라이프스타일을 과시하던 Dave Gahan이 ‘회개하던’ 시절 음악이니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 앨범을 듣고 나름 위로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불 꺼 놓고 듣고 싶다.

[Mute, 1997]

Vinnie Vincent Invasion “All Systems Go”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선택을 위하여 나름대로 검증된 이름을 밴드명에 박아넣으면 또 그렇다고 이름만 보고 예상 이상의 결과물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진다는 류의 이유로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내 얘기인데, 덕분에 Vinnie Vincent Invasion은 나름대로 팝 메탈 류를 찾아 듣는다고 자처하던 시절에도 손에 들어오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Kiss의 Vinnie Vincent가 Slaughter의 Mark Slaughter와 Dana Strum, Lita Ford 밴드의 드러머였던 Bobby Rock을 끌어들여 만든 밴드였으니 안 그래도 이 밴드의 음악은 들어보기 전에도 예상되는 바가 있었다. 그나마 Vinnie Vincent가 Kiss와 그리 기분 좋지 않게 결별한 시점이었다. 니들이 얼마나 잘 사나 보자 식으로 멋들어진 뭔가를 내놓지 않을까 하는 게 나름의 기대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앨범에 장르의 전형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할 수는 없다. Vinnie Vincent와 멤버들의 이름답게 음악은 1988년의 ‘글램 메탈’의 전형에 가까운데, 어떻게 봐도 테크니컬하다고 하긴 좀 그랬던 Kiss에 비해서는 좀 더 테크니컬한 스타일이다. 그래도 출신이 출신인지라 “Creatures of the Night”나 “Lick It Up”을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Nitro의 “O.F.R”에서 막 나가는 테크닉을 많이 덜어낸 스타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시절이 시절이었으니 어찌 보면 Kiss 스타일을 80년대 후반 헤비메탈의 모습에 맞게 변모시킨 사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cstasy’ 같은 곡을 듣자면 사실 헤비메탈 어쩌고 하는 자체가 좀 그렇긴 하겠지만 어쨌든 에너제틱한 앨범임은 분명하다.

[Chrysalis, 1988]

Godless North “Dark Rites of Mystic Order”

한 때 꽤 주목받던 블랙메탈 밴드였다고 하면 좀 과하려나? 사실 이 밴드를 굴리는 Othalaz의 커리어에서 가장 돋보이는 시절은 Osculum Infame의 새 보컬리스트로 발표되던 그 순간! 이 아니었나 싶은데… 발표만 저렇게 나고 참여한 앨범이 하나도 없었으니 하긴 정말 무의미한 한 줄이긴 하다. 그냥 이 장르에 생각보다 참 많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해먹으면서 밴드도 여러 개 굴리는(그리고 적어도 숱하게 많은 골방 블랙메탈 밴드들과는 비교를 거부하는) 능력자 중 하나라는 정도로 해두자.

스플릿 같은 걸 빼고 두 장의 풀렝쓰 앨범을 냈지만 이 밴드의 가장 잘 알려진 앨범은 아무래도 이 1998년 데모인데, 애초에 전형적인 스타일을 짜임새 있게 연주하는 모습으로 일관했던 밴드의 데모인만큼 스타일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차이가 있다면 그래도 기대보다 괜찮은 음질을 선보였던 풀렝쓰에 비해서 트레블을 잘못 건드린 듯한 깡통 드럼 소리가 돋보이는 음질인데, 블랙메탈 데모에서 이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과욕일 것이다. 날카롭지만 두터운 연주로 몰아붙이는 기타가 돋보이는 ‘Wolf’s Kin’나 ‘Everlasting Winter Winds’ 같은 곡들을 듣자면 잘 다듬어진 스튜디오였다면 좀 어색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1998년, Godless North는 웬만한 밴드보다 더욱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원형에 가까운 음악을 연주한 셈이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은 꽤 즐겁게 듣지 않을 수 없다.

오리지널은 단 한 번도 본 적도 없지만 생각보다 자주 재발매된 만큼 구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은 편. Nebular Carcoma의 12인치 재발매반이 가장 흔하고 보너스트랙까지 있으므로 웬만하면 그쪽을 권한다.

[Self-financed,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