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둠-데스 하다가 스타일 바꿔서 명맥 잇고 있는 밴드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Anathema는 그 ‘개인적 경향’의 몇 안 되는 예외라고 할 수 있다. 하긴 “The Silent Enigma” 이후부터는 데스 물은 사실 많이 빠진 밴드이기도 했고, 스타일이야 바뀌었지만 담아내는 정서나 분위기만큼은 “Alternative 4” 이후가 그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고 하기는 좀 어렵지 싶다. 말하자면 원래부터 Anathema는 강력한 리프보다는 분위기의 전개에 훨씬 강점이 있는 밴드였다…는 게 사견이다. 그런 면모를 가장 잘 보여준 건 “Falling Deeper”였다고 생각한다. 초창기 밴드의 둠-데스를 요새의 스타일로 바꿔놨건만 이질감이 전혀 없는데, 단순히 곡이 좋아서라고만 한다면 설명되지 않을 부분이 많을 것이다.
이 라이브도 마찬가지인데, 초창기 곡들은 아니지만 원곡의 연주를 매우 많은 부분 어쿠스틱으로 대체하면서 키보드도 조금은 무대의 뒤편에서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로 밀어낸 편곡을 보여주는데, 그 키보드의 빈자리는 신중하게 편곡된 피아노와 첼로, 바이올린 연주가 채운다. 그렇게 조금은 더 여유있어진 사운드를 ‘울림 있는’ 보컬로 중심을 잡아 나가는 방식으로 연주하고, 다시 라이브의 공간감을 더한 밴드의 곡들은 부르는 사람만큼이나 청자의 가슴에 울림을 남긴다. 잠깐이지만 Anathema가 Marillion과 함께 공연하는 것도 되게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케스트레이션이 돋보이는 ‘A Natural Disaster’나, 조금은 느리지만 긴 울림을 담아내는 ‘Untouchable’을 추천해 본다. 사실 떨어지는 곡은 하나도 없지만 매일 아모르파티(그 댄스곡 맞음)만 듣고 있는 지인마저 되게 좋다고 했던 곡을 골랐다.
[Kscope,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