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ayer “Seasons in the Abyss”

앞서 “Slaughter in the Vatican”에서도 얘기하긴 했지만 1990년의 Exhorder는 Slayer보다 더 강력한 데가 있는 밴드였다… 라고 하면 그건 좀 과하지 않냐고 하는 이가 있을지언정 이건 충분히 근거가 있는 얘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강력한 근거는 Slayer의 이 1990년작 “Seasons in the Abyss”일 텐데, Slayer의 클래식 시절을 어디까지 잡느냐 한다면 이 앨범까지 넣을 것이냐 말 것이냐가 고민거리일 정도로 밴드의 좋았던 시절을 보여주는 앨범임에는 의문이 없겠지만 이 앨범이 80년대 초중반 Slayer라는 밴드의 기세등등한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지에는 의문이 없지 않을 것이다. 물론 밴드가 느릿해진 건 “South of Heaven”이 먼저였지만 어쨌든 무거운 분위기를 잃지 않았던(녹음 덕분에 그 무게감을 갉아먹은 기타 톤이 아쉽지만) “South of Heaven”과 이 앨범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래도 Rick Rubin이 스스로의 과오를 되돌아봤는지 전작보다는 좋아진 레코딩과 어쨌든 앨범 초반을 힘차게 여는 ‘War Ensemble’이 있고, 좋게 얘기하면 네 장의 앨범으로 머리가 굵어질 대로 굵어졌고 예전처럼 빠르게 휘몰아치기에는 너무 체급이 커져버렸다고 생각했을 법한 이 밴드가 나름대로 스래쉬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완급조절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앨범이랄 수 있을 것이다. 나쁘게 얘기하면 앞서 밴드가 내놓았던 클래식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순한맛처럼 보이는 데가 있다는 건데, 그 아쉬움을 메우는 건 이 앨범을 끝으로 “God Hates Us All”로 돌아오기까지 자리를 비우는 Dave Lombardo의 드럼이다. 어쩌면 “Divine Intervention”과 이 앨범의 차이는 바로 이 드럼에서 시작되는 특유의 분위기의 유무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많이들 좋아하는 ‘Dead Skin Mask’도 내 귀에 안 꽂히는 걸 보면 사실 이 앨범 자체가 나와 잘 맞지 않는다랄 수도 있겠고, Slayer라는 이름만 지우고 본다면 충분히 좋은 소리를 들었을 법한 앨범이기도 하다. 애초에 그 이름을 지우고 보는 게 말이 안 되는 게 문제지.

[Def American Recordings, 1990]

Exhorder “Slaughter in the Vatican”

Exhorder가 결성된 것은 1985년이었으니 동시대의 날리던 스래쉬 밴드들을 의식했겠거니 하는 게 맞겠지만 밴드가 앨범을 내놓은 것은 1990년이 되어서야였다. Pantera의 “Cowboys from Hell”이 나온 것도 1990년이었고, 이 앨범보다 겨우 3-4개월 전에 발매되었다. Pantera의 저 앨범이 스래쉬메탈이라는 음악을 새롭게(사견으로는 괴이하게) 정의하는 수많은 목소리들을 불러오는 동시에 ‘전형적인’ 스래쉬 밴드들의 몰락을 예기하는 신호탄이었다고 친다면 스래쉬 밴드가 그래도 차트에서 주목받을 실낱같은 가능성이 남아 있었던 시절의 끝물이었던 셈이고 실제로도 꽤 좋은 평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이 앨범이 “Cowboys from Hell”의 유사사례로 언급되곤 하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꽤 기이해 보인다.

사실 Exhorder의 음악에서 일면 그루브함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분명하고, Vinnie LaBella와 Jay Ceravolo의 기타에서 일견 Dimebag Darrell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으며, Kyle Thomas의 보컬을 Phillip Anselmo와 비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테니 이들을 Pantera와 비교하는 걸 틀렸다라기엔 좀 그렇긴 하다.. 다만 그루브가 훨씬 강조된 Pantera와 달리 Exhorder의 음악은 스래쉬메탈의 컨벤션에 훨씬 기울어진 모습을 보여주며, Scott Burns의 손이 닿은 만큼 헤비함에 있어서도 당대의 데스래쉬 밴드들에 근접한다. 말하자면 이 글에서조차 계속 Pantera와 Exhorder를 비교하고 있지만 Exhorder를 Pantera와 비교해서만 얘기하는 것은 밴드에게 꽤 억울할 거라는 얘기다.

그러니까 얘기를 좀 바꿔 보면 그루브함이 살아 있기는 하지만 Exhorder의 노선은 스래쉬메탈과 데스메탈의 경계선상에서 나름의 생존방향을 모색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당대에 Roadrunner에서 나온 수많은 장르의 명작들의 일석을 차지할 만하다. 사견이지만 1990년의 Slayer는 ‘Legions of Death’ 같은 곡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Roadrunner, 1990]

Thy Catafalque “XII: A gyönyörű álmok ezután jönnek”

이 밴드가 얼마나 떴는지는 정확히 모르기는 한데… 한때 CDR로 100장만 앨범을 찍어내던 밴드의 현재로서는 대단한 성공이라는 점에는 나도 그렇고 딱히 이견들이 없을 것이다. 혼자고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는 스튜디오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이 밴드는 이제는 수많은 세션과 게스트들을 동반해서 라이브로도 청중들을 만나는 입장이 되었고, 그저 외진 곳의 라이브클럽이 아니라 Hellfest 같은 큰 무대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린다. 아방가르드 메탈 얘기 듣는 밴드이지만 난해한 면모보다는 다양한 장르의 특징들을 부드럽게 엮어내는 모습이 더욱 돋보이는 밴드인 덕도 있을 것이고, 개성이 분명하지만 그만큼 귀에 잘 들어오는 멜로디까지 엮어내는 송라이팅 덕도 있을 것이다. 일단 이만큼 일렉트로닉을 많이 섞으면서 쓸데없이 뿅뿅댄다는 류의 볼멘소리를 듣지 않는 블랙메탈(이제는 블랙메탈이라기엔 많이 어려워졌지만) 밴드는 전례없는 것까진 아니지만 무척 드물다.

“XII: A gyönyörű álmok ezután jönnek”도 그런 경향이 이어지는 앨범이다. “Alföld”에서도 그렇지만 밴드는 이전보다 좀 더 프로그레시브 메탈에 가까운 연주를 보여주는데, ‘Vakond’ 처럼 뽕끼 넘치는 일렉트로닉을 들려주는 곡도 있지만 ‘Vasgyár’처럼 소시적의 블랙메탈 밴드의 면모를 보여주는 곡도 있고, ‘Vakond’처럼 어쿠스틱한 포크 연주가 던전 신쓰로 이어지면서 나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곡도 있다. 근래에 이만큼 진폭 넓은 연주를 보여주는 블랙메탈(또는 한때 블랙메탈을 연주한) 밴드의 앨범이라면 Dødheimsgard의 “Black Medium Current” 정도가 있겠지만 빈말로라도 귀에 잘 들어온다고는 전혀 말할 수 없을 후자에 비하면 이쪽이 좀 더 장르의 초심자에게는 적합할 것이다. ‘A gyönyörü álmok ezután jönnek’만큼 극적이면서 귀에 잘 들어오는 곡이 Dødheimsgard의 커리어를 통틀어 있었나 하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 보인다. Thy Catafalque가 더 낫다기보다는 그만큼 덜 괴팍하다는 게 맞을 것이다.

밴드의 모든 앨범이 그렇지만 사실 가장 신기한 점은 이런 음악을(코러스나 포크 바이브를 위해 만돌린이나 기타 스트링 등 다양한 게스트들을 불러 만드는 부분을 빼고는) 혼자서 다 만들고 연주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멋진 앨범이다.

[Season of Mist, 2024]

Greedies, The “A Merry Jingle”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한번쯤 듣곤 한다…라고 하면 뻥이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곡들을 말한다면 말석까지는 아니고 그래도 재미있는 사례였다고 소개될 정도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The Greedies의 유일작 싱글. 물론 밴드는 이 한 곡만을 단발성으로 내놓고 사라져 버렸으며 아닌게아니라 Phil Lynott과 Scott Gorham을 필두로 한 Thin Lizzy 멤버들이 Sex Pistols의 Steve Jones와 Paul Cook을 합류시켜 만든 밴드였으니 이 밴드에 장기적인 전망 같은 걸 기대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저 둘이 Sex Pistols의 멤버들 중에서는 좀 멀쩡한 축이었나.. 싶기도 하지만 역사는 이 두 분이라고 그리 멀쩡한 인생을 살지는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각설하고.

어쨌든 크리스마스에 내놓은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와 “Jingle Bells”의 로큰롤 매시업 송인만큼 짧은 시간 흥겹게 듣기는 충분하다. 그래도 Thin Lizzy와 Sex Pistols의 만남이라고 A사이드(‘A Merry Jingle’)는 Scott Gorham의 기타를 중심으로 좀 더 Thin Lizzy풍으로 연주한다면 B사이드(‘A Merry Jangle’)는 Sex Pistols식 펑크풍으로 괴팍하게 편곡되어 있는데, 칼박 연주말고는 딱히 경쟁력이 없어 보이는 Sex Pistols의 두 분이 Scott Gorham의 기타를 누르기는 어려웠는지 그래도 펑크보다는 하드록에 가까운 사운드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애초에 이 7인치 싱글을 구하는 이는 B사이드보다는 A사이드에 끌렸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1년에 한 번 정도 흥겹게 듣기에는 넘치는 즐거운 싱글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Thin Lizzy의 팬이 아니라면 평소에 찾아들을 것까지는 없어 보이기도 하다. 딱히 Thin Lizzy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이걸 굳이 구해 틀고 있는 걸 보면 맞는 얘긴가 싶지만 인생이 뭐 그렇다.

[Vertigo, 1979]

Vondur “No Compromise!”

Draugveil이나 Këkht Aräkh, Sacred Son 같은 블랙메탈의 심각함을 비웃는 듯한 코메디 프로젝트들이 있지만 누가 뭐래도 블랙메탈 역사의 넘버원 개그밴드를 뽑는다면 단연 Vondur가 아닐까? 90년대 중반 블랙메탈의 세계를 호령…했다고 하기는 좀 그럴지 몰라도 어쨌든 의미 충만한 행보들을 보여준 멤버들이 보여주는 엘비스 프레슬리 블랙메탈 커버는 그 시절 It과 Necropolis Records의 이름을 믿고 지갑을 열었던 이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갈겼음은 분명해 보인다. Abruptum에서 지옥이 별거 있냐 이런 게 지옥이지 하는 듯한 음악을 들려주던 멤버들이 이렇게 개그감 충만했는지는 다들 예상하기 어려웠다.

진지하다 못해 근엄함이 미덕처럼 보였던 그 시절 블랙메탈 씬에서 이런 분위기의 밴드가 오래가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Vondur 또한 저 엘비스 프레슬리 커버를 담은 “The Galactic Rock’n’Roll Empire”를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지라 전작 컬렉션을 하자면 구할 거 몇 개 안 되는 밴드이긴 한데, 유일하게 안 보이는 게 있다면 1994년의 “Uppruni vonsku” 데모이다. 그러니까 밴드의 데모부터 정규작까지 전부를 담은 이 앨범은 커버에서도 엿보이듯 밴드의 저 악명 높은 개그를 그리 잘 대변하지는 못하지만, 바로 “Uppruni vonsku”를 담고 있는 유일한 공식 앨범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제는 셀링 포인트는 딱 저거 하나뿐이라는 점이다. 나처럼 “Striðsyfirlýsing”“The Galactic Rock’n’Roll Empire”를 이미 가지고 있는 이라면 앨범 수록곡 중 90% 이상을 이미 가지고 있는 셈이고, 대체 개그감은 어따 팔아먹었는지 수록곡 소개만을 건조하게 기록하고 있는 부클렛도 꽤나 실망스럽다. 물론 “Uppruni vonsku”가 있긴 하지만… 사실 빠르게 휘몰아치는 것도 아니고 Bathory풍이 역력한 미드템포의 블랙메탈은 이미 1994년에도 그렇게까지 특별하지는 않았다. Isengard의 “Vinterskugge”가 나온 게 1994년이었다.

그런지라 어떻게든 이 밴드를 되살려 보려던 레이블의 노고가 무색하게 아쉬움만 남는 컴필레이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한 장이면 밴드의 모든 음원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Striðsyfirlýsing”의 다스 베이더를 보지 못한다면 밴드의 개그감을 따라잡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결국은 사람은 유머감각이 중요하다… 라는 교훈을 오늘도 얻는다. 결론이 이게 맞나 싶지만 인생이 뭐 그런거다.

[Osmose,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