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tgun Messiah “Shotgun Messiah”

장르의 힘이 슬슬 빠져가고 있던 1989년에 등장한 게 생각하면 아쉬운 스웨디시 글램메탈 밴드. 한창 때는 헐리우드 헤어메탈에 대한 스웨덴의 대답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동향의 밴드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미국 스타일에 근접한 사례이기도 했으며, 특히나 암만 헤어메탈 소리를 들어도 좀 심각한 면모를 시도한 사례들도 등장했던 시절에 웬만한 미국 밴드들보다도 장르 본연의 파티음악 스타일에 충실했던 이 밴드의 앨범들 가운에서도 가장 장르 본연의 매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면 이 데뷔작일 것이다.

당장 Mötley Crüe를 연상케 하는 ‘Bop City’부터가 밴드의 색깔을 그대로 보여주는데(이 앨범은 원래 ‘Welcome to Bop City’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그렇지만 아류작에 머물지 않고 밴드는 ‘Shout it Out’에 와서 흔해빠진 Mötley Crüe의 유사 밴드를 넘어서고, ‘The Explorer’나 ‘Dirt Talk’(L.A. Guns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에서는 테크니컬한 연주와 함께 이 밴드가 ‘헤어메탈’ 이상의 모습도 보여줄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며, ‘Nervous’ 같은 곡의 ‘건강한’ 코러스와 키보드 연주는 이들이 80년대 헤어메탈의 전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놀자판 연주에 최적화된 보컬인 Zinny J. San의 목소리에서 엿보이듯 이 앨범에서 어떤 헤비 사운드 같은 걸 기대할 순 없겠지만 애초에 Shotgun Messiah를 알고 찾아듣는 이라면 굳이 이 앨범에서 그런 걸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밴드의 수명은 그 시절 비슷한 입장의 많은 밴드들이 그랬듯이 길지 않았고, 밴드는 나름의 시도들을 하다 못해 “Violent New Breed”에서 웬 인더스트리얼을 시도했다 화려하게 산화해 버렸으며, 밴드의 핵심이었던 베이스의 Tim Skold는 그게 되게 아쉬웠었는지 이후 솔로작은 물론 KMFDM이나 Marilyn Manson에서 못다한 인더스트리얼 쑈를 계속하고 있다. 그 음악도 팬이 있겠지만 이제 그만하고 이 밴드나 재결성했으면 좋겠다.

[Relativity, 1989]

Wallachia “From Behind the Light”

이 노르웨이 심포닉블랙 밴드는 1999년에 이 한 장을 내고 망해버렸다가 2009년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 소리없이 앨범을 서너 장 더 발표했는데, metal-archives의 내용에 의하면 지금은 또 소리없이 망한 거로 예상된다. 말하자면 음악의 만듦새를 떠나서 딱히 주목받을 일은 없었던 밴드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래도 Velvet Music에서 나왔던 이 앨범만은 주변의 꽤 여러 사람들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면 그럴 법도 한 것이 1999년이면 Hammerheat Prod.도 살아 있었고 노르웨이 블랙메탈이 끝나지 않은 전성기를 이어나가고 있었으며, 그 와중에 프랑스 레이블에서 루마니아 기믹(그런데 정작 드라큐라와는 별 상관이 없었던)으로 앨범 내는 노르웨이 밴드는 자체로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음악은 그리 특이할 건 없다. 멜로디 분명하고 조금은 가볍지만 풍성하게 리프를 뒷받침하는 키보드가 돋보이는 미드템포의 블랙메탈이 주가 되는데, 녹음 탓인 면도 있지만 두드러지는 키보드 덕에 의외로 생각나는 밴드는 Summoning이지만, 중간중간 배어나는 포크 바이브에서는 Thy Serpent 생각도 난다. 하지만 전형적인 블랙메탈보다는 낮게 그르렁거리는 그로울링이 주가 되는 보컬과, 때로는 직선적이다 못해 펑크풍으로 밀어붙이는 리프(거의 Ramones 수준)를 보면 Thy Serpent만큼 긴 곡을 자연스럽게 밀고 나갈 능력이 이 밴드의 강점은 아니었겠구나 싶다.

그래도 어쿠스틱한 도입부로 시작해 이내 꽤 준수한 심포닉을 보여주는 ‘Fullmåne over Fagaras’ 같은 곡을 보면 나름의 역량은 충분했던 밴드임은 분명하다. 훗날 “Shunya”에서 본격적으로 보여주는 오케스트레이션의 맹아는 이미 처음부터 살아 있었던 셈이다. 별로 빛볼 일 없었고 이후에도 크게 달라질 건 없었지만 꽤 인상적인 시작이었다.

[Velvet Music, 1999]

Brighter Death Now “Necrose Evangelicum”

Brighter Death Now의 1995년작. 사실 이 프로젝트의 초기작은 뭐 하나 빠질 거 없이 장르의 클래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그 클래식들 중 아마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이 앨범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유야 딱히 대단할 건 없지만 어차피 이 음악을 찾아들을 이는 아마도 십중팔구는 블랙메탈을 즐겨듣다가 이쪽으로 흘러들어온 사람일 것이니 Mortiis가 참여했다는 점만으로도 관심을 끌기는 충분해 보인다. 지금이야 전자음악하는 마귀할멈 이미지가 강해졌지만 1995년만 해도 Emperor의 오리지널 베이스라는 소개가 주는 무게감은 상당했다. 각설하고.

음악은 Brighter Death Now가 커리어 내내 보여준 death industrial 스타일에 비해서는 좀 더 공간감이 강하면서 노이지한 편이고, 달리 말하면 Brighter Death Now의 앨범들 중에서는 ‘다크 앰비언트’에 익숙해져 있는 블랙메탈 팬들이 비교적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법한 앨범일 것이다. 특히나 ‘Soul in Flames’는 좀 더 공격적이기는 하지만 후대의 다크 앰비언트 밴드들을 연상케 하는 데가 있다. “Great Death” 3연작의 강력한 파워 일렉트로닉스 이후에 나온 앨범임을 생각하면 나름 상당한 변신이었던 셈이고, ‘Rain, Red Rain’의 일렉트로닉스에서 이전의 공격성을 찾아볼 수 있긴 하지만 기존과는 사운드의 방향성 자체를 달리 가져간 앨범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호오는 꽤나 갈릴 음악이겠지만 장르의 현재가 꽤나 큰 빚을 지고 있는 앨범이고, 이 앨범이 없었다면 death industrial이라는 음악은 지금 같지 않았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더 재미없는 장르가 돼버렸을 거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칙칙한 음악 엔간히 들었다’고 자처하는 이들에게 일청을 권한다.

[Cold Meat Industry, 1995]

Coven “Witchcraft Destroys Minds & Reaps Sou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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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n은 흔히 Black Sabbath와 함께 언급되곤 하는 밴드들 중 하나인데, 보통 같이 얘기가 나오는 Black Widow나 Black Sabbath가 어쨌든 하드록/헤비메탈 밴드였다면(사실 하드록이라기보다는 그냥 헤비 프로그라고 하는 게 나을지도) 다루는 소재가 비슷해 보였을 뿐 그와는 좀 궤가 다른 밴드였다. 하드록의 기운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그건 1969년이라는 시절의 탓일 것이고, 저 하드록/헤비메탈에 비해서 굳이 비교하면 Jefferson Airplane과 닮은 구석이 있는 사이키델릭 밴드를 Black Sabbath의 팬들이 찾아듣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어쨌든 이 밴드의 ‘사탄’ 컨셉트는 진심이었는지는 차치하고 꽤 앞선 선택이었다. Black Sabbath의 데뷔작이 녹음되고 있던 1969년 Coven은 이미 이 데뷔작을 내놓았고, Ozzy와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밴드의 베이시스트의 이름은 Oz Osbourne이었으며, 앨범의 첫 곡은 하필 ‘Black Sabbath’였다. 당연히 밴드를 둘러싼 트리비아들은 끊이질 않았고, Anton LaVey도 Coven이 Church of Satan의 인하우스 밴드마냥 활동했었다고 (정작 밴드 본인들은 원하지 않았을 것 같은)지원사격을 날렸다. Black Sabbath 본인들은 물론 Coven과 Oz Osbroune, 이들의 ‘Black Sabbath’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말해 왔지만 이 쯤 되면 우연이라고 치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Lester Bangs는 Black Sabbath를 두고 ‘Coven에 대한 잉글랜드의 대답’이라 했다더라.

하지만 Mercury에서 앨범이 나왔을 뿐(사실 정말 신기한 건 여기서 이 앨범이 나왔다는 사실일지 모른다) Coven의 데뷔작은 굳이 잉글랜드에서 대답을 보내기에는 너무 망했고, 다시 들어 보아도 적당히 스푸키한 분위기와 때로는 재즈적인 어프로치도 보여주는 준수한 기타, 가끔은 Grace Slick을 생각나게 하는 여성보컬 정도를 제외하면 이 음악에서 얼마나 특별한 구석을 찾아낼 수 있을까 싶다. ‘Portrait’나 ‘White Witch of Rose Hall’ 같은 곡은 그래도 솔깃할 정도의 사이키함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솔직히 이 정도라면 굳이 헤비메탈의 역사를 공부하려는 이가 아닌 이상 굳이 찾아들을 필요는 없을지도.

[Mercury, 1969]

20세기 헤비메탈 명반 가이드북

제목은 20세기 헤비메탈 명반 가이드북인데, 이런 류의 ‘가이드북’이 나오는 것도 처음은 아니지만 이런 책을 볼 때마다 과연 이 책이 누구를 가이드하기 위한 가이드북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앞선다. 결국 ‘헤비메탈’과 ‘가이드북’의 결합인데, 가이드북의 측면에서 본다면 비평의 위기라는 게 케케묵은 얘기가 된지도 한참 지난 현재 많은 이들은 이미 넷상의 정보의 바다에서 필요한 정보들을 입수하고 있으니 가이드북이라는 게 필요한지가 의문이고, 헤비메탈이 트렌드에서 벗어난지 수십년은 족히 돼 보이는 현재까지 헤비메탈을 듣는 이라면 굳이 누군가의 가이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자신의 취향을 굳히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은 이런 가이드북이 효용을 발휘할 수 있을 독자층은 헤비메탈에 관심을 갖고 꽤 들었으되 자신이 주로 찾아듣는 스타일이 아니더라도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열린 귀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별로 없을 거 같다는 뜻이다.

그럼 이 책은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갔을까? 사실 그걸 해결하려는 의도에서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이 책이 다루는 ‘헤비메탈’은 전형적인 헤비메탈과는 약간은 거리가 있어 보인다. ’20세기 헤비메탈’이니 결국은 90년대를 포함할 수밖에 없고, 뉴 메탈이나 그루브메탈을 위시한 메탈보다는 코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해 보이는 많은 스타일들을 ‘메탈’이라 부르기 싫어하거나 불편해하는 많은 이들을 고려한 결과인지 국내외의 비평가들이 ‘헤비니스’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한국대중음악상에도 이를 관철한 현재에 나온 책이어서인지, 제목은 헤비메탈이지만 내용은 사실 20세기 헤비니스 명반 가이드북이라 하는 게 엄밀한 의미에서는 정확할 것이다. 결국 ‘전형적인’ 헤비메탈만을 헤비메탈이라 부르고자 하는 철혈의 메탈헤드들은 이 책에 별로 공감할 거 같지 않아 보인다.

그런 면에서 최고작보다는 조금은 밀리는 앨범 위주로 선정했다는 기획의도는 꼬장꼬장한 메탈헤드들의 볼멘소리를 방어하기 위한 안전장치면서 나름의 재미를 찾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었을까? 장르의 경계를 넓게 가져가면서 섣불리 장르의 절대명반 따위를 정했다가는 대체 무슨 생각이냐는 십자포화(를 받아봐야 날릴 사람이 별로 없을테니 아프지는 않겠다만)를 받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고, 그런 절대명반 위주의 리스트는 이미 정보의 바다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 잘 안 팔릴 것 같은(그리고 잘 팔릴 리 없어 보이는) 책에서 정도 이상의 정성이 느껴지는 건 그런 세심함의 발로일 것이다. 그런 세심함 덕에 나처럼 어설픈 딜레탕트라면 기대보다 얻어갈 부분이 많아 보인다. 재밌게 읽었다는 뜻이다.

[조일동/최우람/이경준/김성대 저, 빈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