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dies, The “A Merry Jingle”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한번쯤 듣곤 한다…라고 하면 뻥이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곡들을 말한다면 말석까지는 아니고 그래도 재미있는 사례였다고 소개될 정도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The Greedies의 유일작 싱글. 물론 밴드는 이 한 곡만을 단발성으로 내놓고 사라져 버렸으며 아닌게아니라 Phil Lynott과 Scott Gorham을 필두로 한 Thin Lizzy 멤버들이 Sex Pistols의 Steve Jones와 Paul Cook을 합류시켜 만든 밴드였으니 이 밴드에 장기적인 전망 같은 걸 기대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저 둘이 Sex Pistols의 멤버들 중에서는 좀 멀쩡한 축이었나.. 싶기도 하지만 역사는 이 두 분이라고 그리 멀쩡한 인생을 살지는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각설하고.

어쨌든 크리스마스에 내놓은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와 “Jingle Bells”의 로큰롤 매시업 송인만큼 짧은 시간 흥겹게 듣기는 충분하다. 그래도 Thin Lizzy와 Sex Pistols의 만남이라고 A사이드(‘A Merry Jingle’)는 Scott Gorham의 기타를 중심으로 좀 더 Thin Lizzy풍으로 연주한다면 B사이드(‘A Merry Jangle’)는 Sex Pistols식 펑크풍으로 괴팍하게 편곡되어 있는데, 칼박 연주말고는 딱히 경쟁력이 없어 보이는 Sex Pistols의 두 분이 Scott Gorham의 기타를 누르기는 어려웠는지 그래도 펑크보다는 하드록에 가까운 사운드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애초에 이 7인치 싱글을 구하는 이는 B사이드보다는 A사이드에 끌렸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1년에 한 번 정도 흥겹게 듣기에는 넘치는 즐거운 싱글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Thin Lizzy의 팬이 아니라면 평소에 찾아들을 것까지는 없어 보이기도 하다. 딱히 Thin Lizzy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이걸 굳이 구해 틀고 있는 걸 보면 맞는 얘긴가 싶지만 인생이 뭐 그렇다.

[Vertigo, 1979]

Vondur “No Compromise!”

Draugveil이나 Këkht Aräkh, Sacred Son 같은 블랙메탈의 심각함을 비웃는 듯한 코메디 프로젝트들이 있지만 누가 뭐래도 블랙메탈 역사의 넘버원 개그밴드를 뽑는다면 단연 Vondur가 아닐까? 90년대 중반 블랙메탈의 세계를 호령…했다고 하기는 좀 그럴지 몰라도 어쨌든 의미 충만한 행보들을 보여준 멤버들이 보여주는 엘비스 프레슬리 블랙메탈 커버는 그 시절 It과 Necropolis Records의 이름을 믿고 지갑을 열었던 이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갈겼음은 분명해 보인다. Abruptum에서 지옥이 별거 있냐 이런 게 지옥이지 하는 듯한 음악을 들려주던 멤버들이 이렇게 개그감 충만했는지는 다들 예상하기 어려웠다.

진지하다 못해 근엄함이 미덕처럼 보였던 그 시절 블랙메탈 씬에서 이런 분위기의 밴드가 오래가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Vondur 또한 저 엘비스 프레슬리 커버를 담은 “The Galactic Rock’n’Roll Empire”를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지라 전작 컬렉션을 하자면 구할 거 몇 개 안 되는 밴드이긴 한데, 유일하게 안 보이는 게 있다면 1994년의 “Uppruni vonsku” 데모이다. 그러니까 밴드의 데모부터 정규작까지 전부를 담은 이 앨범은 커버에서도 엿보이듯 밴드의 저 악명 높은 개그를 그리 잘 대변하지는 못하지만, 바로 “Uppruni vonsku”를 담고 있는 유일한 공식 앨범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제는 셀링 포인트는 딱 저거 하나뿐이라는 점이다. 나처럼 “Striðsyfirlýsing”“The Galactic Rock’n’Roll Empire”를 이미 가지고 있는 이라면 앨범 수록곡 중 90% 이상을 이미 가지고 있는 셈이고, 대체 개그감은 어따 팔아먹었는지 수록곡 소개만을 건조하게 기록하고 있는 부클렛도 꽤나 실망스럽다. 물론 “Uppruni vonsku”가 있긴 하지만… 사실 빠르게 휘몰아치는 것도 아니고 Bathory풍이 역력한 미드템포의 블랙메탈은 이미 1994년에도 그렇게까지 특별하지는 않았다. Isengard의 “Vinterskugge”가 나온 게 1994년이었다.

그런지라 어떻게든 이 밴드를 되살려 보려던 레이블의 노고가 무색하게 아쉬움만 남는 컴필레이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한 장이면 밴드의 모든 음원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Striðsyfirlýsing”의 다스 베이더를 보지 못한다면 밴드의 개그감을 따라잡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결국은 사람은 유머감각이 중요하다… 라는 교훈을 오늘도 얻는다. 결론이 이게 맞나 싶지만 인생이 뭐 그런거다.

[Osmose, 2011]

Draugveil “Cruel World of Dreams and Fears”

금년도 슬슬 2025년 올해의 앨범 같은 걸 많이들 뽑을 시절이 되었는데, 생각하니 금년에는 신보보다는 흘러간 앨범들을 더 찾아들었던 듯하여 2025년에는 뭐가 좋았더라? 하는 질문에 바로 떠오르는 게 생각보다 별로 없다. 그래도 확실하다 할 수 있는 건 이 정확한 정체 모를 밴드의 앨범을 올해의 앨범으로 뽑기는 어려울 거라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5년 블랙메탈 업계의 최고 화제를 꼽는다면 이 앨범을 빼놓고 넘어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바야흐로 AI의 시대, 커버의 저 쓸데없을 정도로 화사한 자태가 밈이 된 거는 물론이고 AI로 커버를 만들었네 어쨌네 하는 이슈몰이까지 성공했으니 이 앨범을 굳이 돈주고 사지 않았더라도 대체 이 웃기는 물건은 뭐냐 했을 이들은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사실 이런 식의 기믹은 이미 Këkht Aräkh가 “Pale Swordsman”으로 로맨틱 블랙메탈이라는 웃기는 화두를 던지면서 써먹은 모습이긴 하고, Këkht Aräkh나 이 밴드나 기본적으로는 ‘로맨틱’ 같은 레떼르가 붙어서 그렇지 꽤 로우파이한 블랙메탈(에 약간의 DSBM 테이스트가 묻은 스타일)의 전형을 따라가는 편이며, 얼척없는 커버를 보여주는 블랙메탈 밴드가 이전에 없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커버를 필두로 해서 잔뜩 어그로가 끌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건 블랙메탈이 아니라며 화낼 필요까진 없어 보인다. 잘 만들었다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그렇다고 수준미달이라 할 정도도 아니고, ‘Vortex’ 처럼 기대 이상의 극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곡도 있다. 그러니까 ‘filler’ 트랙이 좀 끼어 있지만 그래도 신경쓴 티는 분명한 블랙메탈 골방 프로젝트 중 중간 이상은 가는 사례… 정도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CD를 돈주고 살 만하냐 하는 건 좀 다른 얘기긴 한데, 음악만 생각하면 고개가 갸웃거려지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앨범이라 하기는 충분할 것이다. Phantom Lure에서 열심히 판매하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한 번 알아봐도 좋을지도.

[Self-financed, 2025]

비개념원리

비평가와는 거리가 먼 무지성 딜레탕트의 눈으로 보더라도 비평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비평의 위기 담론과 함께 매우 흔해빠진 얘기가 돼버린 것도 오래 된만큼 이제는 이런 현상을 두어 들뢰즈다 가타리다 하는 이름들을 빌려 시대착오적 주체성이니 이론으로 환원 불가능한 비평의 과잉이니 하는 얘기는 불필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어질 얘기는 아마도, 그렇게 비평이 위기라면 이 시대에 비평가들이 해야 할 ‘비평’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음악에 대한 비평/평론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아무래도 어느 음악가의 창작물에 대한 소개나 평가가 일반적인 답일 것이라 예상되고, 비평/평론이 음악가의 작품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나름의 의미를 담지하기를 원하는 입장이라면 비평/평론의 역할이 창작물에 대한 소개나 평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싶다. 대개 넷상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국내의 ‘음악평론가/비평가의 역할’에 대한 얘기들도 비슷한 선상에 있었던 것 같다.

저자는 분석철학을 준거로 사용하면서 음악비평은 음악적 경험, 즉 하나의 음악을 듣고 그 음악에서 포착한 비개념적인 것들을 개념화하는 과정을 정교하고 엄밀하게 수행하는 것이라고 나름의 답을 머릿말에서 제시하면서, 그러한 입장에서 직접 정리한 개념화의 흔적들을 책으로 묶어서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앞서 생각한 음악에 대한 비평/평론의 의미에 대한 입장들에 비추어 본다면 아마도 저자는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어느 창작물로부터 포착한 흔적들을 분석철학을 준거로 개념화한다면 그 결과물은 저자의 철학적 사유의 결과물일 테니 최초에 개념화의 대상이 된 ‘음악적 창작’의 결과물과는 이미 개념적으로 동일시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이 책은 결국 저자 나름의 음악비평/평론의 독자적 의미 찾기의 성과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이 딜레탕트는 어쨌든 의문이 남는다. 어느 창작물에 대한 비평이 나름의 사유를 거쳐 독자적인 의미를 확보하였고, 음악을 사유를 통해 개념화하였더라도 독자가 개념을 통해 당초 비평의 대상이 된 음악을 재현할 수는 없어 보이는데, 그렇다면 이걸 ‘음악 비평’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음악을 둘러싼 이런저런 배경이나 애초에 개념화의 대상조차 되기 어려울 저자의 의도 같은 불확실한 그림자들을 걷어내고 오직 ‘음악’ 그 자체만을 논고의 대상으로 하면 그게 ‘음악 비평’인 것인가? 이를 ‘음악 비평’이라 부른다면 그런 글들을 철학적 논고이되 그저 소재가 음악인 경우가 아니라 구별되는 ‘음악 비평’으로 만들어 주는 요소는 무엇인가? 이 책에서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고, 머릿말을 보자면 애초에 무학의 딜레탕트를 깨우치는 데 저자의 의도가 있어 보이지도 않으니 굳이 여기서 답을 탐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여기서 정리하기엔 의문이 아직 끝나지 않는다. ‘음악’ 자체만을 대상으로 해서 진행한 개념화가 ‘음악’과 분리된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면서 오히려 당초의 ‘음악’의 모습을 왜곡하는 결과가 되지는 않을까? 이를테면 노이즈 음악을 종래 음악이론에서 음악보다는 음향의 영역에 가깝게 받아들여지던 요소들을 음악의 영역에 편입시키는(또는 음악과 음향의 불명확한 경계 자체를 무너뜨리는) 기획의 결과물로 생각한다면, “노이즈는 ‘비음악적 소리’로 구성된 음악이다”라는 명제에서, 노이즈를 구성하는 소리를 ‘비음악적 소리’로 전제하는 위 정의의 모순을 지적하며 ‘고정 불가능성’이라는 개념에서 노이즈를 다시 파악하여야 한다는 논증은 애초에 번지수를 잘못 찾은 전제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이런 식의 개념화는 어찌 생각하면 소위 전문가의 영역에 대한 대중의 도전이 심화되는 시절에 비평가 스스로의 전문가로서의 자리매김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 아닐까?

그래서 책 뒤편에 적혀 있는 ‘저의 음악비평은 결국 또 미끄러지고 실패할 것입니다’라는 멘트는 마지막까지 기표와 기의를 놓지 못하는 집요함을 표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자의 진솔한 한 마디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직은 이 비평 작업이(재미와는 별개로) 무학의 딜레탕트에게는 그리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저자의 앞으로의 미끄러짐에 소리없는 응원을 보내본다. 재미있었다는 뜻이다.

[전대한 저, 워크룸프레스]

Joyless “Without Support”

“Wisdom & Arrogance”에 대해서는 여러 상반된 평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 앨범을 잘 만들었다고 보는 이들조차도 이 앨범이 블랙메탈 레이블에서 나올 만한 물건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의견이 갈리는 편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활동을 접었다는 얘기는 없었지만 밴드는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다른 밴드와의 스플릿 앨범을 통해 한두 곡을 발표하는 외에 가시적 활동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찌 생각하면 Ván Records가 이 밴드를 잡은 게 꽤 용감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텐데, 레이블 스스로도 블랙메탈 말고 다른 것도 자주 손 대는 곳인만큼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그러니까 10년을 훌쩍 넘겨서야 나온 이 3집이 자주제작도 아니고 어엿한 레이블이 있음에도 “Without Support”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건 좀 얄궂어 보이지만 이 괴이한 밴드가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면 오죽했으면 이러겠나 싶기도 하다. 각설하고.

음악은 “Wisdom & Arrogance”의 노선에 있지만 전작에 비해서는 좀 더 풍성해진 구석이 있다. 버즈소 기타가 등장하는 ‘The Adorn Japetus’가 있긴 하지만 블랙메탈과 비교할 만한 모습은 아니고, 사이키 살짝 묻은 로큰롤을 보여주는 ‘Have a Nice Fight’나 ‘Puberty and Dreams’, 음울한 무드의 하드록에 가까운 ‘Shadow Spree’, ‘Better’ 등은 따지고 보면 전작에서 조금씩은 발견할 수 있었던 단초들을 좀 더 두텁고 다채로워진 연주로 재현한다. ‘De Profundis Domine’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애시드 포크의 모습은 “Wisdom & Arrogance”에서 딱히 봤던 기억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는 Joyless 특유의 스타일을 좀 더 완성도 높게 풀어낸 앨범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어찌 생각하면 데뷔작에서 보여준 개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점점 평이한 DSBM에 가까워진 Lifelover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을 때의 모습을 이 앨범을 통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Shining이나 Bethlehem 등 장르의 ‘네임드’들도 살짝 발을 걸쳤으나 본격적으로 내딛지 못한 길을 본격적으로 나아간 장르의 문제사례… 이자 감히 선구자라고 해도 그리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밴드의 사진들에서 엿보이는 노르웨이의 콥스페인트 불한당들과는 백만년만큼은 거리가 있어 보이는 멤버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생각하면 음악과 사생활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모범사례랄 수도 있어 보인다. 갑자기 좀 부럽다.

[Ván,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