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in June “Take Care and Control”

11월이라고 하면 Death in June의 ‘The November Men’을 생각하는 미친놈은 별로 없겠지만 어쨌든 11월도 됐겠다 간만에 들어보는 Death in June의 1997년작. 이후의 법정분쟁으로 사이가 개판이 됐지만 어쨌든 장르의 거목들이었던 Douglas P.와 Albin Julius가 사이좋게 함께한 2장의 앨범 중 하나이기도 하니 Death in June의 디스코그라피에서야 얘기가 다르지만 네오포크라는 장르에 있어서는 이 앨범이 나오던 즈음이 ‘좋았던 시절’이랄 수도 있겠다.

하지만 Albin Julius의 참여는 그만큼 Death in June의 기존 스타일(“Rose Clouds of Holocaust” 같은)에서 나름의 낭만을 좀 덜어내고 Der Blutharsch풍의 호전적인 인더스트리얼 경향을 더하는 것인지라, 이 앨범이 별로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이런 음악을 들으려면 Death in June이 아니라 Der Blutharsch를 듣는 게 더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어 보인다. ‘Frost Flowers’나 ‘The November Men’처럼 기존 스타일에 다가간 곡이 있지만 잊을만하면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내고 끝내 ‘Wolf Angel’을 통으로 노이즈로 채워버리는 모습이 그리 내키지 않았던 이는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비슷한 스타일이지만 좀 더 먹먹한 음질이 공격성을 갉아먹은 “Operation Hummingbird”보다는 이 편이 좀 더 듣기 편할 것이고, 어쨌든 ‘The November Men’은 가사가 무척이나 시궁창이고 안온함과는 담을 쌓은 분위기일지언정 11월이라는 주제에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11월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노벰버레인이 질릴 판이라 더욱 그렇다.

[New European Recordings, 1998]

Ablaze My Sorrow “If Emotions Still Burn”

이왕 들은 김에 Ablaze My Sorrow의 데뷔작도 간만에. 이 앨범에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No Fashion 초판에는 앨범 제목이 “If Emotions Still Burns”라고 돼 있었다는 점인데, 암만 영미권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문법 무시하고 앨범명 짓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했던 기억이 있다. 밴드나 레이블이나 앨범 내고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단순 실수였다고 열심히 설명하고 다녔는지 이제는 넷상의 이런저런 사이트들에서는 모두 “If Emotions Still Burn”이라는 이름으로 이 앨범을 표시하고 있는데…. 그래도 이미 이 밴드는 내게는 영어 못하는 밴드로 이미지가 박혀버렸으니 이런 걸 사후약방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앨범은 당연히 Dark Tranquillity/In Flames 풍의 리프가 돋보이는 멜로딕데스다. 1996년에 나온 이런 스타일의 멜로딕데스에서 개성을 논하는 건 곤란하겠지만 굳이 밴드의 색깔을 말한다면 전형적인 예테보리 스타일보다는 좀 더 달달하면서서도 은근히 블랙메탈의 기운이 묻어 있는 편이고, 그런 면에서 조금만 덜 달달했다면 A Canorous Quintet이나 Eucharist 같은 밴드와도 비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데스메탈 팬들에게 이 밴드의 리프는 너무 달달한 감이 없지 않았을 것이고, 나름 새로운 시도였을 ‘No More Lies’ 같은 곡도 삐딱한 이에게는 그저 둠-데스를 따라하다 너무 달달해져 버린 곡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어 보인다. 돋보일 건 없지만, 그런 면에서는 아예 운이 좀 따라줘서 메이저의 손길을 받았다면 셀아웃 밴드로 거듭났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의미없는 예상일 뿐이다.

[No Fashion, 1996]

Ablaze My Sorrow “The Plague”

스웨디시 멜로딕 데스의 전성기에 등장한 많은 밴드들 중 하나였으나 별로 빛 못 보고 사라진 줄 알았지만 사실은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보기 드문 사례들 중 하나인 Ablaze My Sorrow의 2집. 이 시절 No Fashion에서 나온 수많은 멜로딕데스 밴드들이 그랬듯이 Dark Tranquillity/In Flames 스타일의 리프가 중심이 되는 류의 밴드인데, 일반적인 경우들보다는 리프가 좀 더 달달하고 보컬의 기량이 그래도 받쳐주는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보컬마저 Tomas Lindberg 스타일에 가깝고 실험적인 시도는 정말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 좋게 얘기하자면 ‘간결한’ – 전개는 이 밴드를 굳이 되돌아볼 이유를 찾기 힘들게 한다.

그래도 언제는 내가 새로운 것만 찾아다닌 것도 아니고 좀 강한 음악 오래 좋아했다고 자처하는 이라면 이런 멜로딕 데스를 나름 심취했던 시절이 짧게라도 있지 않을까? 게다가 그저 장르의 넘쳐나는 클론이라기엔 이제 밴드는 이 2집에서 영민한 블래스트비트의 활용이나 간혹 등장하는 클린 보컬 등으로 조금이나마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미 1998년이니 그 정도가 신선한 시도 소리를 들을 수는 없는 시절이긴 했지만 밴드는 2류 멜로딕데스 밴드 소리를 탈피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기 시작하고, ‘I Will be Your God’ 같은 곡에서는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 한 곡이 밴드의 팔자를 바꾸기는 많이 부족했고,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 No Fashion 카탈로그의 상당부분을 소화하던 Necrolord의 명품 커버는 온데간데없고 웬 브루스 윌리스 닮은 아재가 불타고 있는 멋대가리 없는 커버는 밴드의 2류 입지를 더욱 확고해 보이게 한다. 그래도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걸 보면 이런 게 바로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No Fashion, 1998]

Kaeck “Gruwelijk onthaal”

역사를 타고 올라가면 1991년부터 시작됐다니 장르의 길지만은 않은 역사를 생각하면 꽤 유서깊은 곳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Folter Records를 블랙메탈의 신뢰할 수 있는 명가마냥 기억하는 이는 아마 별로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Castrum이나 Svartsyn, Skyforger처럼 지금도 기억하는 이름들을 내놓기는 했지만 달리 얘기하면 레이블이 보여준 고점조차 A급으로 쳐주기는 끝내 모자랐던 곳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라고 했듯이 딱히 빛본 적은 없었지만 지금껏 꾸준히 나름의 수준을 유지하며 살아남았으니, 누구나 Season of Mist나 Spinefarm이 될 수는 없음을 고려하면 사실은 이런 곳이 블랙메탈 레이블들이 본받아야 할 ‘현실적인’ 모범일 수도 있어 보인다. 각설하고.

Kaeck도 그렇게 Folter에서 데뷔해서 지금까지 이 앨범을 포함하면 세 장의 앨범을 내놓은 네덜란드 밴드인데, Svartsyn이 그랬던 것처럼 “Pure Holocaust” 시절 Immortal풍의 리프에 건반을 동반하여 차가운 분위기를 구현하는 류의 블랙메탈을 연주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 시절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전형에 가까운데(그러고보니 저 썸네일 사진에서 하고 있는 자세도 뭔가 Mayhem스럽긴 하다), 공격적인 리프에 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화려하지도 앞으로 나서지도 않는 건반이 사운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가하면 때로는 Bolt Thrower를 연상케 할 정도로 묵직한 리프(특히 ‘Door gespleten Tongen’)를 앞세운 공격성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는 그 시절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중간 정도에 있는 스타일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하긴 Folter가 이런 류의 스타일을 많이 내놓기는 했었다.

익숙하지만 이런 스타일을 이제 이만큼 잘 소화하는 밴드도 확실히 드물어 보인다. ‘De ijzeren hand van het benedenwaartse’를 들었을 때는 이게 올해 최고의 블랙메탈 신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보컬이 좀 깨는 감이 없지 않지만 멋진 앨범이다.

[Folter, 2025]

Marc and the Mambas “Three Black Nights Of Little Black Bites”

Marc and the Mambas는 나로서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Marc Almond가 Soft Cell 말고 굴리던 사이드 프로젝트였다니 80년대 초반 뉴웨이브의 굵직…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 언저리에 있는 이름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Soft Cell과 Mark Almond는 1983년경부터 Psychic TV를 위시한 ‘아방가르드’한 무리들과 본격적으로 어울리기 시작했고, Marc and the Mambas는 그렇게 기존의 뉴웨이브보다는 아방가르드의 무리에 끼어들어갔다는 게 위키피디아가 대략적으로 제공하는 설명이다. 하지만 Marc Almond과 Soft Cell에 대해서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들은 Psychic TV와 비슷한 길을 걷기에는 이미 너무 떠버린 이름이었고, 덕분인지 Marc and the Mambas는 Soft Cell에 비교하면 폭망이랄 수밖에 없는 차트 성적과 함께 공연조차 몇 번 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이 앨범은 밴드가 1983년 4월 26일~28일 3일 동안 가졌던 공연의 라이브앨범인데, 애초에 활동하면서 라이브를 이 4월의 3일 말고는 두 번밖에 하지 않았던 밴드인만큼 호사가들에게 계속 회자되었고, Peter Christerpherson(Coil의 그 분 맞음)이 녹화한 VHS로 이어져 내려오던 그 공연을 우리의 Marc Almond가 자기 레이블에서 발매하면서 비로소 빛을 보았고, 이번에 Cold Spring이 큰 맘 먹고 다시 이걸 재발매했다…는 게 Cold Spring의 소개글인데, 읽고 보니 그러니까 이거 부틀렉이나 매한가지라는 것처럼 보이므로 이름값에도 불구하고 우려는 어쩔 수 없다.

다행히도 그런 우려에 비해서는 음악은 무척 멀쩡한데, Soft Cell과는 많이 다르지만 Marc Almond의 이후 스타일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짐작케 하는 음악들이 대거 담겨 있다. 아방가르드 얘기를 할 것까진 없어 보이고(물론 ‘Your Aura’의 후반부처럼 괴팍한 부분이 없지는 않다) 피아노가 중심이 되는 포스트펑크 기운 강한 팝송에서 자학적이면서도 폭력적인 이야기를 Marc Almond의 적당히 흐느끼는 고쓰풍 보컬을 통해 그려낸다고 할까? Marc Almond가 참여한 어떤 앨범보다도 고딕적인 편이지만, Steve Sherlock의 색소폰이 불어넣는 은근한 ‘따스함’ 덕분에 마냥 어둡게 느껴지지는 않는 편이고, 그런 면에서는 이걸 이들의 개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르즈 비제의 “카르멘”의 곡을 그대로 가져온 ‘Près Des Remparts De Séville’이 왜 들어갔는지는 도통 이해가 되질 않으나 재미있는 앨범이다. 사실 ‘In My Room’ 하나만으로도 Marc Almond 내지 그 시절 뉴 웨이브의 팬이라면 만족할 수 있어 보인다. 나는 아무래도 팬이라고 하기엔 좀 아니지만 꽤 즐거웠다. Cold Spring 재발매반은 다른 커버로 나오면서 LP로만 찍었으니 유의할 것.

[Strike Force Entertainment,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