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psia “In Vivo II : Autopsia Archive Recordings 1980-1988”

Autopsia는 사실 뮤지션이라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영역을 오가는 아티스트라고 알려져 있지만 일단 나로서는 이 ‘그룹’의 음악 외 영역의 활동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고, 1980년부터 활동한 이 오랜 역사의 그룹의 대표적인 활동상은 역시나 음악이다. 이 그룹은 2016년에 Death Continues라는, Sutcliffe Jugend의 앨범을 낸다는 점 외에는 딱히 알려진 게 별로 없는 레이블에서 창작력이 넘치는지 “In Vivo”라는 이름의 아카이브성 컴필레이션을 낸 바 있고, 말하자면 이번 앨범도 그 컴필레이션의 후속작인 셈이다. 하지만 “In Vivo”가 1982년부터 1989년까지의 작품을 담고 있던 점을 생각하면 대체 왜 1980년부터 1988년까지인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게으름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수록곡들은 꽤 다양하다. “Berlin Requiem” 같은 앨범이 기본적으로 인더스트리얼에 의외일 정도로 전통적인 악기 편성을 가미한 ‘현대음악’에 가까운 음악을 담고 있었다면 이 컴필레이션은 그룹이 1980년대 데스 인더스트리얼의 맹아에 가까웠던 음악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그런 면에서 이들을 Laibach에 비교하는 것은 꽤 많은 면모들을 놓치는 셈이다) 훗날의 martial 사운드를 예기하는 ‘Kissing Jejus in the Dark”도 그렇지만, 의외의 다크 앰비언트를 보여주는 ‘Red Nights’에서 역설적으로 SPK풍의 폭력성을 선보이는 ‘Relax’로 이어지는 부분을 보자면 아날로그로 별 걸 다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레이블의 소개에 의하면 모두 컴퓨터/신서사이저 등을 쓰지 않고 테이프 머신과 링 모듈레이터만을 썼다고 한다. 이게 가능한 건가?) 솔직히 “Berlin Requiem”의 즉물성에 반했던 사람이라면 아쉬울 수 있겠지만, 그룹의 이름에 걸맞는 충분한 재미만은 확실한 앨범이다.

[Death Continues, 2020]

Enslaved “In Times”

“Monumension” 이후 꾸준히 Pink Floyd의 분위기를 휘감은 블랙메탈을 연주한 Enslaved의 “Monumension” 이후 앨범들 중 ‘굳이’ 가장 이질적인 한 장을 꼽는다면 아마도 이 앨범일 것이다. 물론 이렇게 얘기한다고 해도 밴드가 가져가는 사운드의 방향에 변화가 있던 앨범은 아니다. “Axioma Ethica Odini” 같은 앨범이 나름의 프로그레시브를 좀 더 극으로 몰아간 앨범이었다면 “In Times”는 밴드가 이 앨범까지 해 왔던 이런저런 스타일들을 (집대성까지는 아니더라도)중간점검하듯 한 번씩 훑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노르웨이 특유의 분위기를 약간은 기묘하게 뒤틀린 프로그레시브 바이브로 풀어내는데, 그런 면에서는 블랙메탈과 프로그레시브가 이만큼 비등한 모습으로 등장한 Enslaved의 앨범은 사실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앨범은 프로그레시브와 블랙메탈 모두의 매력을 다잡는 데는 사실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밴드는 내놓고 블랙메탈을 했거나, 내놓고 프로그레시브를 했던 이전작들에 비해서 어느 쪽으로든 분명 물러선 입장을 취했고, 그런 탓인지 프로그레시브한 파편들이 타이트한 리프들을 엿가락마냥 늘어뜨리는 경험을 Enslaved의 앨범에서 하게 되는 보기 드문 현상이 발생한다. ‘Nauthir Bleeding’의 플로리다풍 리프가 점점 망설이듯 늘어지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양상은 좀 당혹스럽고, 덕분에 나는 이 앨범을 Enslaved의 앨범들 중 가장 밑바닥에 놓는다.

물론 그렇더라도 수많은 B급 밴드의 자칭 필생의 역작과는 Chris Squire와 Billy Sherwood 사이의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거리가 있는 앨범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One Thousand Years of Rain’ 중반부의 멜로디는 Enslaved가 엮어낸 시간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어느 순간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Nuclear Blast, 2015]

Xentrix “Bury the Pain”

Xentrix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Metallica를 필두로 한 많은 스래쉬 밴드들이 이미 잘 닦아 놓은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는 모습이 역력했던, 돋보일 것까지는 없었던 밴드 정도가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이 밴드는 내게는 웬만한 베이에이리어 스래쉬 밴드보다 좀 더 우선순위에 있었다. 아마 “For Whose Advantage?”의 충분히 테크니컬한 구성도 그렇고, ‘Ghostbusters’ 커버가 보여주듯 은근한 팝 센스도 이유였으려나 싶다. 물론 스래쉬 밴드에게 그런 면모는 과도해선 곤란했고, 덕분에 정통 헤비메탈을 시도했으려나 싶은 “KIN”을 듣고 많은 스래쉬 팬들은 밴드의 메세지를 ‘즐쳐드셈’으로 해석해 버렸다는 게 Xentrix의 비극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23년만의 복귀작인 “Bury the Pain”은 덕분인지 “Shattered Existence”와 “For Whose Advantage?”의 중간 정도의 스타일을 견지한다. 새로운 보컬인 Jay Walsh의 목소리도 얼픿 들으면 Chris Astley와 흡사한지라 그런 스타일에 잘 어울리고, ‘Evil by Design’이나 ‘Deathless and Divine’ 같은 곡들은 90년대 초반 밴드의 클래식 넘버들에 비견하더라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렇게 클래식 시절 재현을 위해 최선을 다한 복귀작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밴드가 Testament였다는 것이다. Testament의 근래 앨범들의 ‘전성기 대비 적당히 떨어진 멜로디감각’까지 참 비슷한 것이… 이렇게 누군가의 그림자에 항상 들어가버리는 것도 밴드의 팔자려나 싶다. 하긴 1989년에 1집 나온 스래쉬 밴드인데 당연한 일이려나.

[Listenable, 2019]

Spectral Lore / Mare Cognitum “Wanderers : Astrology of the Nine”

I, Voidhanger 레이블을 먹여 살리는 Spectral Lore와 Mare Cognitum의 합작 프로젝트. 물론 일찌기 Spectral Lore가 “III”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이전에 두 밴드는 이미 함께 태양을 컨셉트로 “Sol”이란 앨범을 내놓았고, 이번에는 태양을 뺀 나머지 태양계의 행성들을 소재로 한 앨범이니 시기가 문제였지 나오는 건 예전에 정해졌을 앨범일 것이다. 개성은 강하지만 둘 다 앰비언트풍 강한 블랙메탈을 연주하는 원맨 프로젝트 밴드이고, “Sol”에서 두 밴드는 사는 동네는 많이 다를지언정 죽이 꽤 잘 맞는다는 점을 보여줬으니 레이블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홍보는 별로였을지언정 처음부터 기대를 모았던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결과는 “Sol”보다도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Gustav Holst를 운운하는 글들이 대부분이고 밴드들 본인들도 언급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행성들 각각에 대해 곡을 선사하고 있다는 점 외에 Holst의 곡과 이 앨범의 유사성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앨범이 통상 Darkspace 류의 블랙메탈 스타일을 좋아하는 이들이 원하는 면모들을 대부분 보여주면서도, 그러면서도 좀 더 정통적인 스타일의 Spectral Lore와 Blut Aus Nord의 소시적을 연상시키면서도 좀 더 모던한 Mare Cognitum이라는 개성도 잊지 않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Blut Aus Nord를 언급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좀 더 텐션을 줄이고 분위기 자체에 집중하는 편이기는 한데, 그래도 Spectral Lore 특유의 신경질적인 면모(특히 ‘Uranus’)도 있는만큼 앨범 전체의 긴장감도 명확하다.

아마도 블랙메탈에 약간은 색안경을 낀 평론가들이 작년 최고의 블랙메탈 앨범으로 꼽을 만한 앨범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통은 이런 표현은 편견 살짝 섞어서 하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그저 좋은 뜻으로 하는 얘기다.

[I, Voidhanger, 2020]

Thrash Queen “Ashes to Ashes”

“Manslayer”를 올린 김에, Thrash Queen의 이름으로 나온 두 장을 모두 다룬 국내 최초의 블로그를 노리고 이 화창한 토요일을 마무리하며 “Ashes to Ashes”를 듣는…다니 이 뭐하는 짓인가 싶다. 일단 두 장을 모두 다루는 게 국내 최초가 맞기는 한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생각해 보니 이런 거로 최초를 먹는다는 게 아마도 그리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닐테니 넘어가도록 하자.

“Manslayer”에서 무슨 성공의 단초를 맛봤는지는 모르지만 Metal Enterprises는 이번에는 Thrash Queen의 이름을 유지하면서도 기존 멤버들은 싹 갈아치우고 누군지도 모를 새로운 이들을 끌어들여 새 앨범을 내놓았다. 물론 멤버들이 바뀐 만큼 곡도 프로듀서인 Holger Schmidt가 모두 썼다. 저 Holger Schmidt의 이름이 익숙하다면 아마 Killer Fox의 “Orgasm of Death”를 들어본 이가 아닐까 싶다. 바로 저 “Orgasm of Death”의 곡들을 쓴 자가 또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이다.

결과는 굉장하다. “Manslayer”가 단순한 리프로 재미없는 곡들을 만들어낸 그저 못 만든 앨범이었다면 “Ashes to Ashes”는 Killer Fox의 저 앨범이 그랬듯 그런 송라이팅에 괴악한 센스가 결합하여 헛웃음을 자아낼 줄 아는 앨범이다(그러고 보니 이런 점도 “Orgasm of Death”와 똑같다). 특히나 바뀐 보컬은… 여성 보컬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괴상한 스크리칭 사이에 문득문득 소프라노가 튀어나오는데, 이 앨범이 과연 스래쉬이긴 하냐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대체 스래쉬메탈에 굳이 소프라노를 끼워넣는 의미가 무엇일까도 사실 궁금하다. 특히나 마지막 곡인 ‘Making Love on Electric Chair’는… 아니다. 그냥 이 앨범은 뒤로 갈수록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느껴진다는 정도만 해두련다. 그러고 보니 저 마지막 곡의 제목에서 Fucker의 동명의 앨범을 떠올리게 된다. 아주 악몽이 끝이 없구나.

[Metal Enterprises,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