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efald “Black for Death: An Icelandic Odyssey Part II”

개인적으로 Solefald의 가장 뜻밖이었던 앨범은 “Red for Fire” 와 “Black for Death” 연작이었다. 내가 아는 Solefald는 이렇게 포크 냄새를 짙게 풍길 밴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Pills…” 까지의 앨범들도 모두 음악은 틀리지만, 사실 다 모던한 스타일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하긴 이 친구들도 노르웨이 출신이니 그 동네 신화 얘기를 좀 한다고 해서 이상할 거야 전혀 없겠지만, 이미 많은 밴드들이 바이킹 얘기를 하고 있는데 굳이 이들까지 그럴 필요가 있나 하는 게 첫인상이었다. 그래서인지 “Red for Fire”는 만듦새에 비해서는 사실 맘에 들지 않았다. 조금씩 뒤틀다 보니 정작 김이 빠져 버린 Amon Amarth풍 멜로딕데스 리프 탓도 있을 것이다. 역시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는 건 좀 위험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일단 잠시 뒤로 하고.

“Black for Death”는 그보다는 훨씬 만족스러웠다. 누가 애매한 Amon Amarth풍 얘기를 했는지 그런 리프는 어느새 사라져버렸고, 그보다는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모양새에서 Bathory에 더 비슷해 보인다. 그렇지만 본격 바이킹메탈을 하기엔 지나치게 재기어릴 이 2인조는 당연하다는 듯 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Underworld’의 괴이한 색소폰이나 ‘Necrodyssey’의 평소의 Solefald의 모습을 고려하면 과할 정도로 클래시컬한 키보드는 분명 이색적이지만, 그래도 딱 곡과 겉돌지 않을 정도에 그치므로 결국 이런저런 잔재미 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Red for Fire”와의 중요한 차이점은 앨범 곳곳에 배어 있는 유머라고 생각한다. ‘Red for Fire, Black for Death’에서 ‘Deathlike Silence’를 질러대는 보컬이 오히려 좀 웃겼던 건 나만은 아닐거다. 아니겠지? 2006년에 나온 ‘바이킹’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는 사례일 것이다.

[Season of Mist, 2006]

Cryptae “Nightmare Traversal”

네덜란드 데스메탈 밴드의 작년 1집. 원래 2019년에 EP가 하나 나왔었다고는 하나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데, 꽤 여러 곳에서 이런 데스메탈은 처음 들어본다! 식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그네들의 말만큼 근본 없는 스타일은 아니다. 이런저런 웹진들이 얘기하듯 ‘기존 데스메탈의 문법과 리프들을 해체하여 자신들의 방식으로 재구성했다’고까지는 아니고, 리프에서 러브크래프트 테마를 기묘하게 풀어나가다 슬슬 Gorguts풍 테크니컬 데스 물을 먹어가고 있는 Portal(굳이 따지자면 “Vexovoid” 시절의)을 떠올리다가, 데스 인더스트리얼을 의식했을 법한 부분에서는 The Axis of Perdition도 아마 의식했을 것이다. Anaal Nathrakh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막상 딱 잘라 얘기하기는 쉽지 않은 음악이다. ‘Monastic Tomb’이나 ‘Edifice’에서는 의외로 클래식한 데스메탈의 면모도 발견할 수 있고, 인더스트리얼과 묵직한 베이스가 자아내는 음침한 분위기(내지는 Portal풍 코즈믹 호러)를 혹자는 둠이라고도 얘기할 법하다. ‘Concrete Inferno’에서는 Gorguts 물을 본격적으로 먹기 좀 이전의 Portal의 모습(아무래도 “Outre'”의 블랙메탈풍)도 엿볼 수 있다. 결국 다양한 스타일을 관통하는 건 밴드 특유의 방식으로 변주된 코스믹 호러이고, 적어도 그 분위기가 꽤 멋들어진다는 얘기만은 확실히 할 수 있을 듯하다. 일단 Portal보다는 좀 편하게 들었다.

[Sentient Ruin Laboratories, 2020]

Cryptophobism “Demo ’98”

늦게 배운 이베이질에 열중하던 시절(지금도 뭐 끊은 건 아니다만) 거래하던, 정말로 트랜실바니아에 살던 그 루마니아 셀러는 항상 신용카드가 아닌 현금만을 받곤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 동네는 너무 깡촌이라 비자랑 마스터카드가 서비스가 안돼 허허’. 하지만 짧은 인연과 식견으로 그 셀러를 거치지 않고는 동유럽의 답 없는 데모들을 구하는 건 나로선 불가능했다. 그 셀러는 야쿠부 아예그베니가 어이없게 월드컵에서의 행보를 끝장내던 그 경기 후 한두 달도 되기 전에 자기 말로는 Summoning이 레이블들에 뿌린 프로모라는 한 줄짜리 설명만을 이메일로 전하며 곡명도 커버도 아무것도 없는 알판 씨디를 60달러에 팔아먹고(참고로 씨디는 송금 후 8개월만에 도착했다) 이베이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 불가리아 밴드의 데모는 그 때 함께 커버도 없이 딸려왔으니(말하자면 사실 이것도 진품인지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뭐 개인적으로는 눈물젖은 데모 한 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98년작 데모는 그 진위를 알 수 없는 Summoning 프로모의 실망감을 날려버릴 정도로 인상적인 음악을 담고 있다. 일단 음질부터가 데모 수준이 아닌데다, 느리지만 묵직하기 그지없는 리프는 90년대 초중반 둠-데스의 전형이나 같았다. 이따금 빠르지는 않지만 분위기를 환기하기에는 충분한 솔로도 등장하는데, 사실 이런 식의 솔로잉은 Officium Triste 같은 밴드가 더 잘 하겠지만 어두운 분위기만큼은 이들이 더 나아 보인다. ‘People That No-One Will Miss’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앨범이지만 당연하게도 밴드는 더 이상 이어가지 못했다. 일단 신용카드도 안 받는 셀러이다보니 홍보할 여력도 아마 없었었나 보다.

그러다 이 이름을 다시 발견하게 된 건 한참이 지나 Rage of Achilles의 광고 플라이어에서였다. 나름 레이블의 야심작이었던 Darkflight는 블랙메탈 물을 좀 더 먹기는 했지만 둠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밴드였고, 밴드의 브레인인 Ivo Iliev는 이따금 인터뷰에서 Darkflight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Cryptophobism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고는 했다. 물론 그랬다고 이 밴드가 다시 조명받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뭐 그래도 나같은 사람이 이제 와서 블로그에 글도 남기고 있으니 아예 실패한 시도는 아니었다고 쓸데없는 위로를 전해본다. 물론 위로는 안 됐을 것이다.

[Self-financed, 1998]

Ymir “Ymir”

Baptism과 Profetus 출신의 두 멤버(라곤 하지만 사실은 둘이 형제라고)가 모인 1998년부터 이어져 온 오랜 역사의 밴드! 라고는 하나… 2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이 데뷔작을 빼면 데모 두 장을 달랑 낸지라 나로서는 처음 들어본다. 보컬과 드럼을 맡은 Lord Sargofagian이 Baptism의 이름으로 2000년대 초중반 고만고만한 EP들을 쏟아내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조금은 의외인데… 하긴 Profetus와 Baptism의 음악을 생각해 보면 둘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것도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닐 것 같다. 둘이 사실은 Oasis 뺨칠 정도로 같이는 못 사는 사이일지도 모르는 일이고. 이 90년대풍 커버를 생각해 보면 사실은 90년대 말에 나왔어야 했으나 그렇게 밀리고 밀리던 프로젝트가 이제야 빛본 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음악도 그런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블랙메탈 경력이라면 Lord Sargofagian이 한 수 위여서 그런지 Profetus보다는 Baptism에 좀 더 가까운 전형적인 90년대 말 노르웨이 스타일을 적당히 멜랑콜리한 멜로디로 풀어내던 핀란드식 블랙메탈이다. 그래도 아무래도 원래 Baptism의 음악에 좀 둠적인 구석이 있었던만큼(특히 “Grim Arts of Melancholy”) 마냥 달리는 스타일은 아니고, Kampfar식 pagan 스타일에 좀 더 겨울바람 분위기를 가미한다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Winterstorms’ 같은 곡은 Dimmu Borgir의 좀 더 포크풍 강하던 시절(아무래도 “For All Tid”)을 연상케 하는 데가 있는데, 그만큼 전형적이지만 하긴 요새는 이런 류의 전형을 제대로 풀어내는 밴드는 많이 드물어져 버렸다. 마냥 달리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Frostland Conqueror’처럼 Immortal풍 블래스트비트를 선보이는 곡도 있는만큼 휘몰아치는 맛도 놓치지 않는다. 꽤 즐겁고 반갑게 들었다.

[Werewolf, 2020]

King Diamond “Fatal Portrait”

지금은 해외음악을 취급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 지구레코드에서 나왔던 메탈 앨범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잘 뽑혀 나온 재발매반의 사례라면 이 King Diamond의 데뷔작이 아닐까 싶다. 물론 앨범 자체가 희귀한 거야 아니지만 일단 ‘The Lake’와 ‘No Present for Christmas’가 모두 실려 있는 몇 안 되는 버전이라는 점이 그렇고(이와 똑같은 수록곡으로 나온 Metal Mind반은 이제 50유로를 호가한다), 지구레코드반이 늘 그랬듯이 여타 라이센스반보다도 저렴하게 나왔고, 그러면서도 꽤 늦어진 재발매 시점 덕분인지 레이블의 고질병이었던 안타까운 부클렛 인쇄 퀄리티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No Present for Christmas’는 원래 이 앨범 수록곡은 아니지만 매년 이맘 때쯤에는 이 앨범을 한번은 돌려보게 되었다. 꼭 누가 선물 안 줘서 그랬던 건 아니다. 각설하고.

이 밴드가 늘 그랬듯이 이 데뷔작도 컨셉트 앨범이지만 아무래도 Mercyful Fate의 느낌이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앨범이어서인지 밴드의 다른 앨범들과는 조금은 이질적이다. 그렇지만 좀 더 오밀조밀한 리프의 맛이 살아있는 Mercyful Fate에 비해서 이 데뷔작은 좀 더 ‘creepy’한 톤(어쩌면 그냥 리버브를 좀 더 많이 먹인 것일지도)의 스피드메탈에 가까운 연주를 보여준다. 물론 ‘Dressed in White’의 Iron Maiden 뺨치는 트윈 기타는 이 밴드가 단순한 스피드메탈은 절대 아니었고, 보컬 이름 걸고 하기에는 멤버들의 역량이 참 뛰어났음을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Don’t Break the Oath”에 비교해서 그렇지, 사실 충분히 씨어트리컬한 앨범인 것도 맞다. 커다란 이야기를 풀어가는 컨셉트라기보다는 곡 하나하나가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류의 컨셉트의 앨범이다보니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크리스마스에는 일청을 권한다.

[Roadracer,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