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uish “Ground Absorbs”

groundabsorbs.jpg초창기 핀란드 데스메탈 밴드들 중 가장 잘 알려진 사례…라고 알려져 있는데 정작 아는 사람은 별로 못 봤으니 어떤 의미에선 이들도 ‘유명하다는 점으로 유명한’ 사례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앞서 낸 두 장의 데모가 있다고는 하나 정규작으로는 이 EP가 유일하니 하긴 더 알려지고 말고 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어쨌든 이 한 장만으로 그만큼 ‘유명해진’ 밴드인 셈이니 그런 의미에서는 충분히 검증된 앨범이라고도 할 수 있다. Obscure Plasma(Avantgarde Music의 전신)가 처음으로 계약한 밴드로도 알려져 있으니 적어도 90년대 초반 그 시절에는 데스메탈의 총아나 다름없이 보이던 밴드였을지도 모르겠다.

음악은 상당히 준수하다. 핀란드 데스메탈의 근본을 운운한다면 여러 밴드들이 나올 수 있겠지만 Demigod이나 Adramelech를 근본이라 주장할 괴팍한 취향을 전제한다면 사실 그런 스타일은 Demigod보다도 먼저 이들이 선보였다는 점을 이 EP에서 확인할 수도 있다. 물론 Demigod이나 Adramelech보다는 이들이 확실히 연주나 녹음이나 딸리긴 한다만 1991년 발매작이라니 많은 부분이 용서되기도 한다(물론 보기 나름이겠지만). 좀 더 스래쉬하고 직선적인 리프가 돋보이는 ‘Condemned to Death’가 가장 귀가 가는데, 하긴 10분도 안 되는 7인치 EP이다보니 추천곡이 딱히 의미있을까 싶다. 어쨌든 버릴 곡은 없다.

[Obscure Plasma, 1991]

Vodu “Seeds of Destruction”

vodu1988.jpgAndre Matos가 긴 커리어 동안 많은 밴드들을 거쳤지만 그 중에서 가장 이색적인 하나를 고른다면 아무래도 Vodu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고 보니 정식 멤버였던 것도 아니고 그냥 한 곡 불러준 정도에 지나지 않는지라 좀 지나친 얘기이긴 한데, 카더라에 따르면 Vodu 본인들도 무려 Andre Matos가 거쳐갔던 밴드! 식으로 홍보하고 있는지라 어쨌든 Matos 또한 밴드의 중요한 성원이었다…고 말한다면 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할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아무래도 파워메탈/프로그레시브 메탈도 아니라 스피드/스래쉬 밴드이다 보니 Matos의 이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는 이질감도 없지 않다. 그래도 밴드 입장에서는 Matos의 부고를 기화로라도 알려진다면 그 나름대로도 괜찮은 일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해 본다.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각설하고.

앨범은 생각보다는 꽤 잘 달리는 앨범이다. 사실 Viper 보컬 시절의 Matos가 노래할 정도로 멜로디도 있는 편이고 굴곡도 심한지라 ‘Look at Ourselves’나 ‘S.O.S(Slaves of System)’ 같은 곡은 조금은 테크니컬 스래쉬 스타일에 다가가기도 하는데, “The Final Conflict” 때만 해도 이 밴드가 연주를 잘 한다고 할만한 밴드는 아니었던지라 이색적이다. 그렇지만 Viper와는 달리 확실히 파워메탈의 기운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앨범이니 스래쉬를 기대한 사람들이 굳이 실망할 필요는 없을 앨범이다. “Walls of Jericho”를 적당히 멜로딕하다고 느낀 사람이라면 이 앨범의 멜로디가 과하다고 생각할 일은 아마 없을 테니 말이다. 무난하다.

[Rock Brigade, 1988]

Nightrage “Sweet Vengeance”

nightrage2003.jpg따지고 보면 In Flames, Dark Tranquillity, Arch Enemy를 뺀다면 Nightrage만큼 계속 앨범이 국내에 정식으로 들어온 멜로딕 데스 밴드도 없지 싶다. 아무래도 멤버들 이름값이 좀 있어서겠거니 생각하는데, Gus G.를 좀 ‘이도저도 아닌’ 류의 뮤지션으로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 밴드가 꾸준히 소개되어 온 것도 조금은 의외다. 그래도 Tomas Lindberg가 마이크를 잡은 처음의 두 장은 확실히 공격적이면서 인상적인 멜로디를 담은 앨범들이라고 생각하고, 개인적으로는 코어 물을 덜 먹은 이 데뷔작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The Tremor’ 같은 곡은 전형적인 멜로딕 데스 밴드이던 시절의 The Haunted를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는데, The Haunted가 At the Gates 깨지고 생긴 밴드이니만큼 그것도 Tomas Lindberg의 기여일지 모르겠다.

간만에 뜬금없이 들어보는데, 딱히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금년 부산 록 페스티벌 첫날의 헤드라이너가 무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다던 GOD로 결정되었는데, 바로 아랫줄의 같은 날 라인업에 조그맣게 ‘Nightrage’가 적혀 있었던 게 뭔가 안돼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멜로딕 데스가 몇 물 간 시점에서 그럴 법도 한가 싶지만 그래도 록 페스티벌에서 GOD에 밀릴 밴드였나 싶다. 뭐 그렇다고 Nightrage 보러 부산 갈 생각은 없는 사람이다보니 별로 할 말은 없긴 하다만 에이전시에서 한 푼이라도 더 쥐어줬으면 좋겠다. 뭐… 그렇다는 거다.

[Century Media, 2003]

Ewigkeit “Battle Furies”

battlefuries.jpgJames Fogarty를 워낙 유명한 천재 블랙메탈 뮤지션이라고 한다면 좀 거짓말 같긴 한데… In the Woods의 복귀작 “Pure”부터 등장한 새 보컬리스트라고 한다면 그나마 좀 유명해 보이려나 싶다. 그렇지만 James는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북치고 장구치고 드럼치고 기타치고 하면서… 열심히 블랙메탈을 연주해 온 뮤지션이다. In the Woods를 빼고 참여한 밴드 중 가장 유명한 밴드라면 The Meads of Asphodel이 있겠지만, 밴드를 탈퇴하면서 손수 무단으로 부틀렉을 발매하는 뻘짓으로 완전히 틀어졌으니 그리 연이 깊다고는 할 수 없겠다. 각설하고.

그래도 James Fogarty의 본진이라면 1994년부터 꾸준하게 굴려 온 솔로 프로젝트 Ewigkeit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무려 Earache에서 나온 덕에 가장 잘 알려진 “Conspiritus”의 뿅뿅 사운드 덕에 어째 내 주변에서는 일렉트로닉 밴드처럼 이미지가 퍼져 있는 듯하다. 그런 이미지를 생각하면 데뷔작의 이 ‘심포닉’ 사운드는 좀 의외일 수도 있겠다. 사실 심포닉이라기보다는 키보드를 중심으로 멜로디라인을 잡아가는 류의 90년대식 멜로딕 블랙메탈에 가까운데, 영국 출신이어서 그런지 트레몰로보다는 좀 더 정통적인 스타일의 리프를 연주한다. ‘Christendom Falls’ 같은 곡이 좋은 예시일 것인데, ‘O Elbereth’ 같은 좀 더 전형적인 형태의 블랙메탈도 있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거친 맛은 좀 없더라도 만듦새 충분한 앨범이다.

[Eldethorn, 1997]

Santa Lucia “Arktista hysteriaa”

santalucia1990.jpg사실 1990년에 저렇게 생긴 커버에서 메탈을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은근 빈티나는 디자인과 밴드 로고가 그 시절 메탈 밴드에 잘 어울린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어쨌든 저 불안해 보이는 커버와 멤버 5명 전부 여성이라는 점이 이 장르에서 셀링 포인트는 아니겠다. 이 훌륭한 파워메탈 앨범이 알려지지 않은 가장 큰 원인은 아마 그런 사정일 것이다. 그 다음가는 사정이라면 밴드 이름이 왜 하필 산타루치아냐, 왜 가사를 전부 핀란드어로 썼느냐 등 여럿이 있을 것이다. 뭐 늘어놓기 시작하면 이 앨범이 팔릴 만한 이유를 찾기 어려울 정도일 것이니 이런 얘기는 여기까지.

음악은 기본적으로 좀 빠른 부분에서는 NWOBHM 생각나는 구석이 많은 리프의 헤비메탈인데, 미드템포로 진행하는 부분에서는 (과장 좀 섞는다면)Dark Quarterer나 Adramelch 같은 밴드의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면모도 있다. 사실 청량한 느낌의 신서사이저 연주를 생각하면 분위기는 꽤 많이 틀리긴 하지만 거칠면서도 서사적인 구성을 가져가려는 모습이 역력하다는 점에서 비슷하게 보인다. ‘청량한 키보드’이다 보니 훗날의 Sonata Artica 같은 밴드들이 이런 톤을 참고했으려나 싶기도 한데, 뭐 이런 80년대풍 톤의 키보드 연주 자체가 드문 건 아니다 보니 그런 예상엔 별로 자신은 없다. 요컨대 말하자면 70년대 중후반부터 80년대 초중반까지의 메탈 스타일들이 청량한 키보드와 함께 짬뽕된 음악인데, 그게 매끄럽게 이어진다는 게 밴드의 최고 미덕이겠다. ‘Pelastus Avaruudesta’ 같은 곡이 앨범의 백미.

[Poko Rekords,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