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sortium Project “Terra Incognita(The Undiscovered World)”

Ian Parry의 Ayreon 따라잡기 프로젝트의 3집. 본업이 본업인지라 저 밴드명이 ‘공동수급체’로 읽혀 듣기 전부터 감흥을 깎아먹지만 따지고 보면 Ian Parry 본인이 Ayreon에 있으면서 보고 배운 걸 따라하는 듯 스스로 중심이 되어 이런저런 뮤지션들을 끌어들여 만든 프로젝트이니 저만큼 딱 들어맞는 밴드명도 짓기 어렵겠거니 싶다. 말하자면 주계약자관리방식 공동수급체에 유사하다고 하겠다. 음악 글에 공동수급체 얘기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것도 곤란하니 각설하고.

음악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사실 이 밴드의 전작인 “Continuum In Extremis”가 라이센스로 나와 눈물나는 판매고와 그보다는 좀 덜 민망한 수준의 평가를 받았으므로 이 앨범에 대한 기대는 크지는 않았는데, 충분히 견실한 연주들을 밋밋한 송라이팅으로 뭉개버리는 감이 없지 않았던 전작에 비해 극적인 면모가 확실히 돋보인다. 특히 ‘Spirit of Kindness’나 ‘Beyond the Gateway of Legends’ 같은 곡은 Ian Parry가 전작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장르에 대한 공부를 꽤 열심히 하고 왔다는 인상을 준다. 후자는 사실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전형보다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문법을 의식한 Elegy풍 하드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오존층 파괴 이후 망해버린 세상에 대한 컨셉트 앨범이 왜 이리 마냥 밝은가 하는 의구심이 없지 않으나 어려운 가운데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자세로 만든 음악이라고 치고 넘어간다. Ayreon을 좋게 들었다면 만족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공동수급체’ 밴드의 앨범들 중 하나만 고른다면 아무래도 본작이 가장 괜찮지 않을까 싶다. 저렴한 곳에서는 2유로에 떨이로도 팔고 있는만큼 구하기도 쉽다.

[Century Media, 2003]

Endstille “DetoNation”

새해 벽두부터 듣고 있는 음악이 Endstille라니 뭔가 문제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 살 더 먹었다고 듣는 음악이 바뀔 리야 없겠으니 그것 또한 팔자일 것이다. 그 팔자 새해에는 무탈하길 바래보면서 들어보는 Endstille의 2023년 신작.

“Kapitulation 2013″으로부터 10년만에 나온 신작이지만 커버부터 알려주듯 밴드는 여전히 전쟁 얘기 외길인생을 걷고 있다. 오히려 “Kapitulation 2013″에서 은근 섞여들어간 스래쉬나 펑크의 기운이 그리 맘에 들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좀 더 예전 스타일에 가까울 이 앨범이 더 마음에 와닿을 법하다. 그렇지만 ‘Vigilante Justice’ 같은 곡의 미드템포에 은근한 멜랑콜리를 섞어내는 모습이나 ‘Pro Patria Mori’ 같은 곡의 계속되는 템포체인지는 이 밴드가 어쨌든 “Kapitulation 2013″의 시도를 버리지는 않았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Jericho Howls’의 슈투카 소리 이후 무자비하게 달려대는 모습에서 앨범의 백미를 찾는 이에게는 그런 모습이 그리 와닿지 않을지도. 그런 건 Endstille의 앨범에서 기대할 만한 모습은 사실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기존작들보다 헤비함은 조금 덜어냈지만 더 날카롭게 벼려낸 듯한 녹음과도 그리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Frühlingserwachen”이나 “Dominanz”를 좋게 들었다면 무난하게 들을 만한 앨범이다. 물론 이게 1월 1일부터 들을 만한 앨범이냐 하면 양심상 그렇다고 말은 못하겠다. 내일 출근할 마음의 준비를 위한 앨범으로는 적당할 것이다.

[Van, 2023]

Sleeze Beez “Screwed Blued & Tattooed”

장르에 대한 호오를 떠나서 글램 메탈이 푸들 메탈이란 식으로 폄하되는 지점은 생각보다는 분명했고 장르가 나름의 생존법을 모색하며 그 ‘푸들’ 스타일을 슬슬 버리고 일반적인 메탈 밴드의 스타일에 접근했던 건 아무래도 80년대 후반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자면 Guns N’ Roses나 Skid Row 같은 밴드들일 것이고, 많은 밴드들이 나자빠지던 80년대 후반에 그래도 좀 더 늦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사례들도 이런 밴드들이었지 않았나 싶다. ‘실력없는 애들이 인기만 좇는다!’는 식의 비난에서도 아무래도 좀 더 자유로웠을 것이다.

Sleeze Beez도 말하자면 그런 사례인데(1989년 발매작이다), 암스테르담 출신 밴드라고 해서 무려 메이저 데뷔작에서 선셋 스트립의 스타일을 따르지 않을 걸 기대할 수야 없겠지만, 전형적인 LA 스타일보다는 AC/DC풍의 거친 맛이 느껴지는 리프는 이 밴드가 나름의 차별화를 위해 고심한 흔적들을 보여준다. 뛰어난 파워 발라드 ‘Stranger Than Paradise’나 ‘Heroes Die Young’, ‘House in on Fire’ 등은 유럽 밴드가 만든 가장 뛰어난 헤어메탈 곡으로 꼽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물론 그랬다고 장사가 된 건 아니었다. 밴드는 이후 두 장의 앨범을 더 발매했지만 이 앨범만큼의 성취와 성공을 맛보지는 못했다. 나름의 생존법을 찾았을지언정 1989년은 이런 밴드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의 마지막 시기였던 셈이다.

[Atlantic, 1989]

Impaled Nazarene “Suomi Finland Perkele”

“Suomi Finland Perkele”는 가장 즐겨 들었던 Impaled Nazarene의 앨범이다. 물론 이 앨범을 밴드의 최고작으로 꼽는 이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고, 대개는 이 밴드의 백미라면 데뷔작이나 “Ugra-Karma”를 뽑겠지만 나로서는 밴드를 이 앨범으로 처음 접했으니 친숙하게 느껴지는 바도 없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밴드의 가장 유명한 곡들 중 하나인 ‘Blood is Thicker than Water’가 있기도 하고.

사실 기복이 없지는 않더라도 이 똘끼 넘치는 밴드의 앨범들은 모두 시원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그 중에서 가장 ‘다채로운’ 구성을 보여주는 한 장이라면 아무래도 이 앨범일 것이다. 말이 다채로운 구성이지 그 이전의 멀쩡해 보이지만 어딘가 나사 빠진 모양새의 과격한 가사에 D-Beat의 기운을 담아낸 무지막지한 스타일의 블랙메탈에 비해서는 기운이 좀 잦아들었다고 할 이들도 많겠지만, 덕분에 훗날의 “Absence of War Does Not Mean Peace” 같은 앨범을 제외한다면 이만큼 멜로디가 살아있는 Impaled Nazarene의 앨범도 없다고 생각한다. 4분 가량밖에 안 되기는 하지만 ‘The Oath of the Goat’ 같은 곡은 이 밴드가 마음 먹으면 나름의 서사를 곡에 담아낼 능력도 충분함을 보여준다. 앨범의 딱 중간에서 갑자기 쉼표를 찍어주는 Impaled Nazarene식 둠메탈인 ‘Quasb / The Burning’ 같은 곡도 – 다른 곡들과는 확실히 이질적이지만 – 밴드의 재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어쨌든 이 앨범은 Impaled Nazarene의 앨범이다. ‘Steelvagina’나 ‘Let’s Fucking Die’ 같은 무식한 스타일도 잊지 않고 있으니 밴드의 팬이라면 피해갈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 앨범이 꽤나 감명 깊었던 어느 중딩은 그 때부터 핀란드에 우편을 보낼 일이 있으면 나라명을 굳이 Suomi Finland Perkele라고 적으며 허세를 부리다가 시간이 지나서 문득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혼자서 쪽팔려하고 있는 한 아재가 되었다. 그 아재도 쪽팔리건 말건 여전히 이 앨범을 듣고 있다.

[Osmose, 1994]

Mighty Sphincter “The New Mansion Family”

전설적인 애리조나 출신 고쓰 밴드라고 하는 듯하나 나로서는 처음 들어본다. 그나마 좀 알려진 얘기는 이 앨범은 떡하니 Alice Cooper가 프로듀스했다고 라이너노트에 쓰여 있기는 하나 사실은 Alice Cooper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더라… 레코딩과 믹싱을 맡은 Allen Moore는 찾아보니 바로 저 레이블 사장이라고 하던데, 아무래도 밴드 멤버들의 꾀죄죄한 행색과 음악에 히트와는 백만년은 떨어진 듯한 거리감을 느끼고 과감한 어그로…를 끌어본 건 아닐까 싶다. 사실 꾀죄죄한 모습만 본다면 Alice Cooper의 헝그리한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대충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들은 얘기지만 Alice Cooper가 업계의 손꼽히는 호인이라 듣기도 했으니 이 정도 어그로는 그냥 넘어가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음악은 사실 Alice Cooper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굳이 비교한다면 Bauhaus를 좀 더 뒤틀린 멜로디와 좀 더 가난한 애티튜드…로 재현한 듯한 스타일인데, Bauhaus에 비해서는 좀 더 메탈릭하고 호러풍의 이미지(뱀파이어 컨셉트랄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 웬만한 80년대 고딕/고쓰 밴드들은 브릿 팝(내지는 Johnny Marr 식 쟁글쟁글 기타의 마이너스케일 버전)에 상당히 빚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출신이 출신이라서인지 이 밴드만큼이나 그런 영향에서 벗어나 있는 사례는 드문 편이다. ‘Impetigo’ 같은 곡은 가사나 사운드나 확실히 영국 고쓰 씬에서 튀어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음악은 분명 다르지만) Marilyn Manson이 스푸키 키즈 시절에 뭘 참고해서 이런 밴드를 만들었을지를 짐작케 해 주는 앨범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앨범명의 Mansion도 사실은 Charles Manson을 의식한 말장난일지도 모르겠다. 재미있다.

[Placebo,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