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olls “D’Molls”

헤어메탈의 시대의 막판, 차트를 정복하기엔 모로 봐도 택도 없었지만 그래도 분명히 빛나는 히든 젬(이라기엔 많이 유명하긴 하지만)으로 알려진 Diamond Rexx의 S.S Priest가 기타를 잡았던 또 다른 밴드…라고 하면 아무도 관심없으려나? 하긴 따지고 보면 Diamond Rexx의 “Rated Rexx”보다 이 앨범이 먼저 나왔으니 애초에 Diamond Rexx의 후광(같은 게 있긴 있었냐는 일단 제쳐두고) 아래 있을 만한 앨범이 아니기도 하다. 특이한 점 중의 하나는 보컬인 Desi Rexx는 무려 성이 Rexx이지만 Diamond Rexx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아무도 관심없나…

암만 그래도 Diamond Rexx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의 밴드이겠지만 음악은 사실 Diamond Rexx보다는 Poison 류에 가까워 보이고, 그러면서도 사실 이 장르의 다른 부류들보다는 살짝 유럽풍의 스타일을 (좀 더 헤비하고 빈티나는 음질로)연주했다. 말하자면 그 시절 Atlantic에서 나온 앨범 치고는 꽤 헝그리한 스타일의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도 ‘All I Want’처럼 글램 색깔 짙은 곡이나, 조금은 더 단정한 70년대풍 미드템포 하드록에 가까운 ‘Hi ‘n’ Lo’ 같은 곡들은 이 밴드가 차트에서는 똥망이었지만 그렇게 묻어버리기는 많이 아까운 사례였음을 능히 보여준다. Poison 같은 밴드들보다야 좀 없어보이긴 했지만 그걸 밴드의 잘못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 않나.

[Atlantic, 1988]

Funeral Winds “Stigmata Mali”

Funeral Winds는 1992년부터 시작된 나름 블랙메탈의 오래 된 이름이고, 과장 좀 섞으면 네덜란드 블랙메탈 ‘컬트’ 소리도 듣곤 하는 밴드이지만, 이 밴드가 컬트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개성적이거나 앞서간 음악을 했던 건 아니었다. 키보드나 잦은 변박 같은 거 안 키우면서 Bathory풍과 그 시절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기운을 잘 섞어낸 음악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Bathory가 추앙받는 만큼 그건 블랙메탈에서 전혀 드문 스타일이 아니었으니 눈이 가기는 어렵지 않았으려나 짐작한다. 멤버 전원의 닉네임이 Xul로 끝난다는 게 밴드의 눈에 띄는 특징들 중 하나였겠지만 그걸 가지고 앨범을 구하기는 좀 그렇다. 그래도 30여 년을 밴드 문 닫지 않고 잘 버텨 온 덕에 나 같은 사람도 밴드의 2023년작을 구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확실히 어떻게든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일단 이들은 살아남았다.

이 2023년작은 세월은 지났지만 “Godslayer Xul” 시절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오히려 밀어붙이는 부분은 예전보다 더한 편인데, ‘The Angels of Darkness’에서는 D-Beat 뺨칠 정도의 블래스트비트를 보여주기도 한다. 사실 원래는 미드템포로 승부하는 밴드이므로 이런 모습이 오히려 이색적인 편인데, 그래도 ‘Odium Emannations’ 같은 곡은 소시적의 Beherit이나 Barathrum마냥 ‘그루브’까지도 느껴지는 구수한 미드템포 블랙메탈을 담고 있으니 옛 모습을 유지하면서 파워 업그레이드했다는 정도로 얘기해도 될 듯싶다. 하긴 Countess와 Asphyx의 나라에서 나왔으니 마냥 밀어붙이기보다는 이렇게 적당히 음습한 밴드가 나오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든다. 딱 예상만큼이지만, 기대한 만큼은 어쨌든 만족시켜 주는 앨범.

[Osmose, 2023]

Lyrinx “Nihilistic Purity”

처음 나왔을 때 Xasthur에 대한 영국의 대답 식으로 소개되곤 하던 밴드인데, 미국이나 영국이나 내게는 블랙메탈에 있어서는 어쨌든 북유럽만큼은 아닌 곳이었기 때문에 거기나 거기나… 했던 생각이 난다. 물론 Xasthur는 이후 더욱 거물이 되었고 이들은 EP와 스플릿만 몇 장 내다가 폭망했으니 Xasthur에 대한 영국의 대답은 지나고 보면 참 시답잖았다고 할 수 있겠다. 각설하고.

음악은 리버브 잔뜩 먹인 DSBM 스타일인데, Brennuvargr의 목소리가 Malefic과 많이 닮은지라 Xasthur와의 비교는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밴드의 개성이라면 이런 류의 다른 밴드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베이스가 더 강조된 둔중한 사운드를 보여준다는 점인데(그런 면에서는 Xasthur보다는 Forgotten Tomb에 가까운 편이다), 그 둔중함이 신경쓰였는지 보컬은 그 Malefic같은 목소리로 다양한 스타일로 곡을 끌고 나가는 편이다. King Diamond마냥 질렀다 읊조렸다 많이 고생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이 밴드의 경우 나름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보컬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달리 말하면 트레몰로를 위시한 거친 맛은 덜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Alcest나 Amesoeurs 등에 익숙하다면 멜로디가 아쉬울 것이고, Xasthur를 기대했다면 뭔가 노력하는데 전반적으로 애매하다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좋게 들었지만, 이 앨범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많지는 않을 것 같다. Goatwarex 레이블을 좋아하는 이가 아니라면 피해가도 좋을지도.

[Goatwarex, 2007]

Kalmankantaja “Second Death”

Kalmankantaja는 나로서는 생소한 이름인데, metal-archives에 의하면 Aki Klemm이라는 양반이 Grim666이라는 멋대가리 없는 닉네임으로(뭔가 다음 카페 시절 생각없이 지은 id 같은 느낌이 든다) 활동하는 원맨 밴드이고, 2011년부터 지금까지 20장 가까운 정규반과 그 외 많은 EP, 스플릿 등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핀란드 블랙메탈계의 워크호스 Narqath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목전까지 올라오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부지런함으로 다른 일을 했으면 뭘 했어도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가 선택한 건 블랙메탈이었으니 그만한 성공을 거두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음알못이라 여태껏 몰랐고 알 만한 사람들은 대충 다 아는 밴드기를 빌면서 넘어간다.

음악은 사실 특별할 것까지는 없는 DSBM 스타일의 블랙메탈인데, 보통의 경우보단 좀 더 둠메탈의 기운이 강한 연주를 들려준다. 굳이 비교하면 “Dance of December Souls” 시절의 Katatonia와 비슷한 느낌인데, 물론 그만한 멜로디감각까진 없지만 미드템포로 지글지글 리프만 아니라 ‘명확한’ 멜로디를 던지는 기타가 중심이 되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돋보이지는 않지만 철저하게 기타에 맞춰가는 드럼과 베이스도 그런 분위기에 기여한다. 누가 들어도 블랙메탈 스타일이지만 클린 보컬에서 래스핑까지 나름 열심히 오가는 보컬도 일반적인 DSBM과는 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래스핑만큼은 DSBM류보다 더 거친 편이지만 ‘When I Leave’나 ‘Second Death’ 같은 곡의 클린 보컬은 웬만한 블랙게이즈 뺨치는 정도인지라 전형적인 DSBM을 원하는 이에게는 조금은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목소리인지라 부클렛을 뒤져 보니 보컬이 Narqath였다. 이 분은 쉬지도 않고 여기에도 끼어들었구나 싶다가도… 뭐 유유상종이니까 열심히 사는 사람들끼리 잘 만났구나 싶기도 하다. 나도 좀 본받아야겠다.

[Misantropia, 2023]

Siege of Power “This is Tomorrow”

Metal Blade가 야심차게 내놓는 데스메탈 슈퍼밴드! 정도로 홍보되곤 하는 밴드이고 사실 멤버들의 면면을 보면 틀린 얘기는 아니다 싶지만 그래도 더 눈에 띄는 멤버는 역시 Chris Reifert이고, 그 다음으로는 Asphyx 출신의 Paul Baayens와 Bob Bagchus이다. 베이스의 Theo van Eekelen은 Grand Supreme Blood Court 출신인데, “Bow Down before the Blood Court”는 Martin van Drunen의 보컬을 앞세운 ‘Asphyx스러운’ 음악으로 주목을 받았던 앨범이었다. 말하자면 Asphyx 패밀리격 멤버들에 Autopsy의 보컬을 세워놓은 밴드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정도 되면 앨범을 듣기도 전에 짐작되고 기대되는 스타일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음악은 조금은 의외의 스타일이다. 전반적으로 둠적인 분위기는 감돌지만 ‘Force Fed Fear’의 살짝 크러스트펑크 묻은 블랙메탈의 향기가 나는 연주나, ‘Sinister Christians’처럼 블랙스래쉬(굳이 비교하자면 Toxic Holocaust 정도) 리프, ‘Deeper Wounds’의 Bathory풍 분위기, ‘The Devils Grasp’의 Motorhead풍 Death’n Roll 등 다양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블래스트비트 없는 올드스쿨 데스에서 해볼 수 있는 건 거의 다 해 보고 있는 셈인데, 그 와중에 딱히 떨어지는 곡을 꼽기도 어렵다는 게 밴드의 관록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Asphyx나 Autopsy의 그림자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앨범을 만드려는 게 밴드의 의도였다면 그런 면에서는 꽤 성공적인 앨범일 것이고, 그런 창작자의 의도를 떠나서 올드스쿨 데스가 잘 나가던 시절의 메탈을 좋아한다면 만족할 수 있는 앨범이다. 나는 무척 좋게 들었다.

[Metal Blade,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