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ituary “Dying of Everything”

Obituary가 장르의 초석을 놓은 밴드들 중 하나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Slowly We Rot”를 제외하면 밴드는 데스메탈임은 분명해 보이지만 보통 얘기하는 장르의 전형과는 그래도 조금은 거리가 있는 스타일을 연주했다. Celtic Frost의 그림자야 데뷔작 때부터 돋보였지만 밴드는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몰아붙이는 사운드보다는 (상대적인 의미로)좀 더 여유 있는 템포에 Incantation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질척한 분위기를 더한 음악을 연주했고, 그런 분위기가 정점에 이른 것이 “Cause of Death”일 것이다. 물론 앨범의 평가와는 별개로 분위기 날려먹는 데 뭐 있는 James Murphy의 솔로잉에는 호오가 갈릴 것이라 생각한다. 그 죽이는 연주에 왜 그러냐고 하는 분들께 굳이 반박할 생각은 없으니 일단 넘어가고.

당연히 밴드가 오랜 동안 활동하면서 그 빛나는 시절의 기량을 지금껏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고(일단 데스메탈 밴드라면 기량 유지 이전에 생존 자체가 문제였을 것이다) 한다면, Obituary는 비록 2집 이후 그 시절의 수준에 이른 적은 한 번도 없어 보이지만 소수의 과오 같은 앨범을 제외하면 꾸준하게 최고의 수준을 유지한 밴드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Frozen In Time” 이후의 확 가벼워지면서 Death & Roll 수준으로 흥겨워진 스타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것이다. “Dying of Everhthing”도 결국은 그런 노선의 연장에 있는 앨범이고, 그러니까 최근 10년 동안 Obituary를 듣지 않은 이라면 이 앨범을 굳이 구해 들어볼 이유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도 간만에 앨범은 “The End Complete”와 “Cause of Death” 시절의 바이브가 조금은 묻어나는 구석이 있고, ‘The Wrong Time’의 Hellhammer풍 리프나 ‘Be Warned’, ‘By The Dawn’의 Obituary식 둠 메탈을 좋은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노장으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할 정도는 되겠거니 생각한다. John Tardy의 목소리는 여전히 전혀 녹이 슬지 않았으니 그 점에서는 기대 이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도.

[Relapse, 2023]

Apocrypha “The Forgotten Scroll”

Shrapnel 앨범들 꺼내 듣는 김에 한 장 더 얘기를 풀어보자면 지구레코드를 통해 나온 Shrapnel 앨범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구하기 어려웠던 중 한 장은 Apocrypha의 “The Eyes of Time”이었고, 그래도 어떻게든 “The Eyes of Time”이 눈에 띄었던 반면 “The Forgotten Scroll”은 정말로 눈에 띄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났더라? 문득 “The Eyes of Time” 라이센스반에 실린 짤막한 해설지를 읽어 보다가 어느 문구를 발견했다. “국내 최초로 발매되는 아포크리파의 그룹역사를 알기 위해선…” 그러니까, 애초에 이 데뷔작은 라이센스로 나왔던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잠깐 지난 몇 년간의 발품이 뭔 짓이었나 돌아본 뒤 수입반으로 알아보니까 앨범은 곧 손에 들어왔다. 역시 무식하면 몸이 고생하는 법이다. 각설하고.

음악은 역시 그 시절 Shrapnel 발매작 다운 기타 비르투오소의 화려한 연주를 앞세운 스피드/스래쉬 기운 머금은 파워메탈이다. 이 밴드의 세 장의 앨범들 중에서 그래도 이 앨범이 가장 스래쉬하면서도 네오클래시컬의 맛을 놓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특히 이 앨범은 Mike Varney/Steve Fontano 듀오의 마수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적당히 텅 빈 느낌이 확실히 덜한 녹음을 자랑하므로(이렇게 리버브를 쓸 수 있는데 다른 앨범에서는 왜 그러는지 궁금할 정도로) 메리트를 더한다. “The Eyes of Time”에서는 좀 가볍게 들리던 Steve Plocica의 보컬(특히 ‘Twilight of Modern Man’)도 이 앨범에서는 확실히 Jeff Scott Soto 풍에 더 가깝게 들린다. 말하자면 레벨 차이가 없진 않지만 Yngwie Malmstten – Jeff Scott Soto가 스래쉬에 좀 더 기울어진 음악을 한다면 좀 비슷하지 않았을까 짐작하는 편이다.

물론 그래도 결국은 Shrapnel 발매작인만큼 가장 빛나는 곡은 ‘Tablet of Destiny’ 같은 화려한 인스트루멘탈이다. 그 시절 많은 연주자들이 그랬겠지만 이 밴드에서 화려하기 그지없는 솔로잉을 보여줬던 Tony Fredianelli가 Apocrypha 이후 개똥같았던 솔로작을 제외하면 메탈 뮤지션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 건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다. 다른 얘기지만 Third Eye Blind는 어떻게 이 분을 기타리스트로 영입할 생각을 했을지가 지금도 좀 궁금해진다.

[Shrapnel, 1987]

Abyssic Hate “Suicidal Emotions”

이제는 DSBM 클래식 소리까지 듣는 듯한 앨범이고, 이후의 DSBM 밴드들이 아마도 이 앨범을 많이들 의식했으리라는 얘기도 분명 맞겠지만, 생각해 보면 Abyssic Hate를 DSBM 밴드라고 생각했던 적은 내 경우에는 없었던 것 같다. 이유야 굳이 찾자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이유들 중 하나는 내 기억에 이런저런 웹진들에서 ‘depressive black metal’이란 용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Shining의 “Within Deep Dark Chambers”가 나왔을 즈음이었다는 사실(그나마도 절반은 ‘suicidal black metal’이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일 것이다. 2000년에 나오긴 했지만 사실 1997년에 나온 데모의 재녹음인 이 앨범의 곡들은 따진다면 DSBM이란 용어보다도 먼저 만들어진 셈이다. 하긴 그러니까 이 앨범이 DSBM 클래식 소리를 듣는 걸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이유는 근래의 많은 DSBM이 보여주곤 하는 ‘어둡다기보다는 징징대는’, 사실 ‘suicidal’ 하다기보다는 지나친 자기애의 뒤틀린 표현에 가까워 보이는 감상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음악이라는 점이다. 이후 DSBM 밴드들이 많이들 보여주는 반복적이고 미니멀한 리프 중심의 전개 방식을 명확히 보여준다는 점 외에 이 앨범이 DSBM이라고 불릴 이유는 사실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Betrayed’의 리프는 이 밴드가 애초에 이런 스타일의 블랙메탈을 연주하는 밴드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떠올리게 한다. 어찌 보면 훗날 post-black이라 불릴 스타일이 장르의 주류로 스며들기 전 원맨 블랙메탈 밴드가 보여줄 수 있었던 전형적인 모습의 정점을 담고 있는 앨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니까 생각보다 투박하다! 식의 평이 이제는 좀 많아 보이는 앨범이지만, 그 투박한 게 문제라기보다는 이제는 사람들이 그런 투박한 류의 블랙메탈을 별로 듣지 않고 있다는 게 더 맞는 얘기가 아닐까? 하긴 2000년에도 이 앨범을 찾아듣는 이는 별로 없긴 했겠지만 말이다.

[No Colours, 2000]

Various “U.S. Metal(Unsung Guitar Heroes)”

지구레코드 얘기가 나온 김에 간만에 Shrapnel 발매작들을 돌려보다 보니 이런 건 또 언제 샀는가 싶다(정작 이 앨범은 지구레코드에서 안 나왔음). 대충 발매년도와 카탈로그 넘버를 보니 이게 Shrapnel의 첫 앨범이로구나 생각해서 샀겠거니 싶다. 아무래도 Mike Varney의 이름을 아는 이가 업계인들을 빼면 거의 없었을 그 시절, 차곡차곡 쟁여놨던 재능들을 자신의 이름을 붙여 세상에 내놓는 첫 시도이지 않았을까? 의욕에 넘쳤을 Mike Varney는 이 앨범에서도 프로듀서를 맡았고, Steve Fontano는 없지만 이 앨범에서도 여전히 어딘가 확실히 빈 듯한 음질을 선보인다. 이후의 앨범들보다 거칠게 느껴지는 건 Steve Fontano의 빈자리 때문인지, 아니면 이 컴필레이션에 참여한 밴드들의 음악이 애초에 그래서 그랬는지 조금은 의문스럽다.

대충 찾아보면 ‘기타 인스트루멘탈 명가로서의 입지를 다진 역사적인 컴필레이션!’ 정도로 얘기되는 듯하지만, 수록곡들을 들여다보면 의외일 정도로 이후의 레이블 로스터에 등장하는 이름들을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이름이 The Rods이지만 이 분들은 이미 Arista에 있다가 Shrapnel로 날아온 분들이니만큼 다른 신인들과 같이 놀면 좀 반칙일 것이다. 일단 인스트루멘탈 앨범이 아니기도 하고… 솔로잉 부분을 제외하면 화려하다 할 정도의 연주를 들려주는 보여주는 곡도 별로 없다. 그래도 Whizkey Stik의 펑키한 리듬감이 돋보이는 ‘Outta Line’이나, 견실한 NWOBHM 리프를 보여주는 Exxe의 ‘Look into the Light’, Shredding의 측면에서는 앨범 최고의 곡일 Lyle Workman의 ‘Code 3’ 같은 곡은 좀 더 제대로 된 녹음으로 듣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굳이 몇 곡을 꼽아서 그렇지 사실 앨범에서 딱히 떨어지는 곡도 없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제 약관을 갓 넘긴 사내가 레이블 사장으로서 내놓은 첫 앨범으로서는 꽤 멋진 컴필레이션이었고, 이 앨범이 다른 재야의 기타 히어로들을 끌어오는 데 얼마나 멋진 포트폴리오가 되었을지는 Shrapnel의 역사가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Vol. I이 무명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Vol. II에서는 드디어 Exciter나 Michael Angelo Batio, Le Mans 같은 묵직한 이름들이 등장하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재발매 한번 안 됐는데 앨범 가격이 도통 안 오른다. 20유로 정도면 Near Mint 정도 판은 충분히 구해지는 수준이니 관심있는 분들은 한 번 구해보시는 것도.

[Shrapnel, 1981]

M.A.R.S. “Project : Driver”

M.A.R.S 얘기가 나왔으니 이것도 간만에. 생각해 보면 지금보다 훨씬 앨범 구하기 어려웠다고 얘기하던 예전이지만 지구레코드 덕에 Shrapnel 발매작은 의외로 구하기가 어렵지 않은 편이었고, 80년대 Shrapnel은 기타 히어로들의 걸작들도 그렇지만 USPM의 걸작… 이라기엔 2% 떨어지는 듯한 준작들을 많이 내놓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기타 인스트루멘탈과 USPM의 두 부류에 모두 끼워줄만한 앨범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 Vicious Rumours 초기작들이 좀 비슷했으려나? 아무래도 기타 히어로들의 앨범들은 만듦새의 정도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좀 더 과시적인 모양새를 취했고, 그런 모습이 USPM과 잘 어울리기는 쉽지만은 않았을지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M.A.R.S는 기타 인스트루멘탈은 아니지만 웬만한 솔로작들만큼 화려한 연주를 담고 있으면서도 USPM의 스타일을 함께 충족시킬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발매작이었다고 생각한다. Tony Macalpine의 화려한 기타가 있었고, Rob Rock의 보컬은 아마 커리어에서 이 때가 정점이지 않았을까? ‘You and I’나 ‘I Can See It In Your Eyes’ 같은 적당히 유치한 파워 발라드를 보컬만으로도 충분히 설득력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물론 ‘Nations On Fire’나 ‘Writings on the Wall’ 같은 Shrapnel풍 스피드메탈이나, 라디오 싱글 커트용으로 예상되는 ‘Fantasy’, 의외의 프로그레시브를 보여주는 ‘Nostradamus’도 인상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레이블의 많은 발매작들에서 늘 그랬듯 두터운 듯 하면서도 적당히 빈티나는 음질을 이끌어내고 있는 Mike Varney/Steve Fontano 듀오에게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이쯤 되면 사실 조금은 레이블 사장의 횡포라고 생각한다) 멋진 앨범이다.

[Shrapnel,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