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ilburner “VLBRNR”

펜실베이니아 출신 데스메탈 듀오의 6집. 6집이라고는 하지만 나로서는 앨범으로 접하는 건 처음이었고, 애초에 Transcending Obscurity가 레이블이라기보다는 웹진에 가까웠던 시절에 150장 찍어내던 식의 앨범이었으므로 아마 구하기는 요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2021년의 “Lurkers in the Capsule of Skull”은 연말의 ‘금년 최고의 앨범!’ 식의 폴에서 심심찮게 보이던 이름이었다. 이미 레이블도 이제 꽤 옹골찬 데스메탈 레이블로 자리잡은 시절이었다. 한 장쯤 도전해보기는 충분했던 셈이다.

그렇게 구한 앨범은 예상보다 훨씬 훌륭했다. 기본적으로 뒤틀린 코드를 주무기로 내세우는 blackend-death 스타일의 음악인데, 2명의 멤버들(이라지만 사실 연주는 Mephisto Deleterio가 혼자서 다 하니 솔로나 마찬가지기는 하다)이 만들어내는 사운드가 아무리 스튜디오 프로젝트더라도 이만큼 복잡하고 빈틈없기도 쉽지 않다. 그러면서도 ‘Repulsed by the Light’처럼 확실한 ‘훅’을 보여주는 곡도 있는지라 복잡할지언정 듣기 어려운 앨범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절도있는 리프들 사이에 튀어나오는 일렉트로닉을 올드스쿨의 팬이라면 좀 거슬려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부분들이 분위기를 해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None so Hideous’ 같은 곡은 그 격렬한 솔로잉을 뒤에서 받치는 것이 일렉트로닉스(그리고 양념같은 색소폰)였기 때문에 그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는 Dødheimsgard의 데스메탈 버전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인데, 그러면서도 ‘Lo! Heirs to the Serpent’의 뜬금 포크 바이브에서는 또 색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2명이서 정말 다채로운 음악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사실 데스메탈 팬보다는 Deathspell Omega의 팬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 정도 만듦새라면 웬만한 팬들은 대개 납득하지 않을까? 간혹 느껴지는 Meshuggah의 기운만 적당히 넘어갈 수 있다면 충분히 멋진 앨범이다.

[Transcending Obscurity, 2022]

Heir Apparent “Graceful Inheritance”

Nirvana를 위시한 밴드들이 너무 유명해져서 그렇지 시애틀 출신의 밴드라면 원래 Sanctuary나 Culprit, Atlantis Rising 같은 메탈 밴드들을 떠올리는 게 맞지 않느냐… 라고 생각하고, 그래도 80년대 시애틀 헤비메탈의 가장 굵직한 밴드를 꼽으라면 유력한 후보군의 하나에는 이 Heir Apparent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Crimson Glory와 Queensrÿche 등으로 흔히 대표되는 80년대 USPM의 가장 인상적인 사례에는 “Graceful Inheritance”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가장 유사한 밴드를 찾는다면 “The Warning” 시절의 Queensrÿche겠지만, Steve Harris마냥 앞으로 나서는 모습도 보여주는 Derek Peace의 베이스와, Geoff Tate보다는 NWOBHM 스타일에 다가가 있는 Paul Davidson의 보컬이 돋보이는 음악이다. 하지만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면서도(‘Running from the Thunder’의 재즈풍이라던가) 결국 전형적인 NWOBHM식 전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편인데, 그런 면에서 이 밴드를 프로그레시브하다고 하는 건 좀 지나치지 않나 생각한다. 사실 러닝타임들만 보더라도 대곡에는 그리 관심없는 이들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Awaken the Guardian”까지의 Fates Warning을 ‘프로그레시브 메탈’이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파워메탈이라서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이라면 만족할(솔직히 살짝 다운그레이드기는 하다만) 선택일 것이다. 사실 80년대 파워 메탈 밴드에게 “Awaken the Guardian” 시절의 Fates Warning과 비교해서 밀리지 않을 걸 요구한다면 그건 좀 많이 너무하지 않나.

[Black Dragon, 1986]

Darren Housholder “Symphonic Aggression”

이름 덕분에 기타리스트계의 내집마련 사나이…라고 불리곤 했었던 Darren Housholder의 세 번째 솔로작. 말이 내집마련 사나이지 짧았지만 Love/Hate의 기타맨이었으므로 마냥 듣보잡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가 참여한 앨범이 “Let’s Rumble”이었다는 점이다. 1993년에 Music for Nations에서 나오는 헤어메탈 앨범이 돈벌이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2집까지는 어쨌든 성공의 맛을 보았던 밴드가 그런 상황을 감당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와중에 밴드를 떠난 Darren은 구관이 명관이로구나 싶었는지 다시 Shrapnel의 로스터로 돌아와 세 번째 솔로작을 내놓았고, 이후로는 그의 이름을 기타히어로 컴필레이션 같은 앨범이 아니면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저런 밴드들을 들어갔으나 금방금방 잘려나가던 모습을 보고 짐작하자면 인생이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다. 비정규직의 화신이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뭐… 이런 일이 Darren Housholder에게만 있었던 일은 아닐지니 일단 넘어간다.

앨범은 제목과는 달리 그리 심포닉하지도 공격적이지도 않은 기타 인스트루멘탈이지만 들을거리는 생각보다 풍성한 편이다. 네오클래시컬 프레이즈가 중심이 되는 앨범이긴 하지만 ‘Dinner with Wolfgang II’처럼 클래시컬함을 덜어내고 스트레이트한 전개를 보여주는 곡도 있다. 기본적으로 전형적인 네오클래시컬보다는 사실 미국 헤비메탈에 좀 더 기울어진 앨범이고, Darren의 코드 전개도 바흐보다는 쇼팽을 좀 더 의식한 모습으로 보인다. 스윕피킹이 난무하다가도 갑자기 튀어나오는 그루브 메탈 리프(특히 ‘The Juice is Loose’)가 그리 어색하지 않은 건 그런 모습들이 꽤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사실 네오클래시컬이라 부르는 자체가 좀 부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그냥 잘 만든 기타 인스트루멘탈이라 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Shrapnel, 1995]

Fullmoon(POL) “United Aryan Evil”

셀러브리티 Nergal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그 행보에 있어 가장 신기한 점들 중 하나는 블랙메탈 밴드들이라면 노르웨이를 따라 이것저것 서클을 만들곤 했을 것으로 예상되던 90년대 초중반부터 동고동락했던 폴란드의 중증 정신병자들을 뒤로 하고 정상인의 행보를 걸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하긴 노르웨이의 그 분들도 젊은 날의 과오를 뒤로 하고 이젠 대부분 정상인의 행보를 걷고 있으므로 생각보단 그리 어렵지 않았을런지도? 그러면서도 2018년에 Rob Darken과 사진도 찍고 했던 걸 생각하면 블랙메탈 뮤지션들 가운데 이만큼 외줄타기에 능한 이도 없었을런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각설하고.

그 90년대 초중반 Temple of Fullmoon의 이름으로 모인 폴란드의 정신병자들 중에서도 가장 악명높은… 사례야 물론 Graveland겠지만, 가장 노골적으로 NSBM임을 드러냈던 밴드는 “United Aryan Evil”의 Fullmoon이지 않을까 싶다. Veles나 Gontyna Kry, Kataxu 같은 다른 밴드들은 어쨌든 북유럽 신화나 다른 중세풍의 상징 등을 빌려 그네들의 생각을 표현했다면 Fullmoon은 아예 커버부터 가사까지 직접적으로 불온함을 때려박았으니(첫 곡부터 ‘Aryans Ride over Falling Israel’ 이니만큼) 어쨌든 폴란드 블랙메탈의 오래 된 이름들 중 하나였던 이 밴드가 오래가지 못했던 건 세상 탓만 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문제들을 뒤로 하고 음악만 본다면 사실 수준은 상당하다. 전반적으로 90년대 중반 식의 미드템포에 리버브 잔뜩 먹인 리프로 자욱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류의 블랙메탈인데(그런 면에서는 “Panzerfaust” 시절의 Darkthrone에 가장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일견 Nocturno Culto를 연상케 하는 보컬도 분위기에 방점을 찍는다. Rob Darken이 손을 빌려준 건반도 앨범 전체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특히나 ‘The Wolfish Initiation’은 “Follow the Voices of Blood’의 전초전을 보여주는 듯 극적인 분위기를 과시한다. 명곡의 반열에 올릴만하다.

[Isengard Prod., 1995]

Behemoth “Grom”

Nergal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이 블로그에 Behemoth 앨범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으므로 간만에. 하긴 이 블로그에 없는 게 한두 개가 아니긴 한데…

이제는 데스메탈 밴드 Behemoth가 잠시 커리어 초반에 블랙메탈을 했었다고 얘기하는 게 더 맞겠지만, 처음 들었던 게 이 앨범이어서인지 내게 Behemoth의 이미지는 블랙메탈 밴드가 커리어 쌓이면서 연주력이 늘더니 갑자기 Morbid Angel풍을 늘려가면서 데스메탈 밴드로 변모한 사례에 가깝다. “Pandemonic Incantations” 까지의 밴드는 슬슬 변화의 기운을 보일지언정 어디까지나 블랙메탈 밴드였고, “Grom”이 블랙메탈 밴드로서의 Behemoth의 모습을 대표하는 앨범이라 생각한다.

사실 “Sventevith”와 스타일은 대동소이하지만 드럼머신도 쓰고 좀 더 조악했던 데뷔작보다는 좀 더 군더더기 없이 몰아치면서 변화무쌍한 전개를 보여주는 “Grom”이 좀 더 블랙메탈의 완성형에 가깝고, 그러면서도 여성보컬이나 어쿠스틱한 패시지(‘Grom’), Nergal이 클린 보컬로 불러주는 ‘노래'(‘Rising Proudly Towards the Sky’) 등, 지금의 Behemoth와는 그리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모습들도 함께 어울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는 밴드의 앨범들 가운데 가장 사운드의 외연이 넓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시절은 Arcturus와 Borknagar, Troll이 이제 막 데뷔작을 내놓기 전인 1996년 1월이었다. Inner Circle의 몇몇 미친놈들을 제외하면 Behemoth보다 앞서 이만큼 완성된 블랙메탈을 보여준 밴드는 확실히 별로 없다.

…그랬던 이 분은 어떻게 두려움 없는 블랙메탈 전사에서 셀러브리티가 되었을까? 배울 수 있다면 좀 배우고 싶기도 하다. “Confessions of a Heretic”에도 저런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하긴 그런 것도 영업비밀인가.

[Solistitium,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