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yreon “Electric Castle Live and Other Tales”

Arjen Lucassen의 프로젝트들이 다 그렇지만, Arjen의 역량 중 가장 탁월하다고 할 수 있는 인맥…이 가장 빛을 발한 프로젝트는 역시 Ayreon일 것인데(아무래도 여기가 본진이기도 하거니와), 그런지라 Ayreon의 라이브가 성사되기란 사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고, 오리지널 라인업을 끌어들인다는 건 더욱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얘기다. 그러므로 대체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앨범의 오리지널 캐스트를 거의 그대로 데려와 밴드의 출세작이었던 “Into the Electric Castle”을 재현한 이 라이브앨범은… 우리의 인맥왕과 프로모터의 역량이 빛나는 한 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Barbarian와 나레이터 역할이 Praying Mantis의 John Jaycee Cuijpers와 배우 John de Lancie로 바뀌긴 했다만, 앨범에서 큰 부분들은 어쨌든 아닐 것이다(전임자들 입장에서야 웃기지 말라고 하겠지만).

그런지라 앨범의 덕목은 결국 오리지널을 얼마나 라이브로 충실히 재현하느냐에 있을 것이고, 그런 면에서 나레이터의 변경이 조금은 어색하긴 하지만 어쨌든 오리지널보다 좀 더 묵직하고 화려하게 연주된 라이브는 이런 게 메탈 영역에서의 쇼 비즈니스의 극한에 가까우려나? 하는 생각을 들도록 한다. 물론 앨범하고 그냥 똑같이 한 번 연주하고 만다면 이 거물들을 긁어모은 수고가 아까워서였을지 앨범은 Arjen의 다른 프로젝트들(Ambeon, Guilt Machine, The Gentle Storm, Stream of Passion)의 곡들을 보너스로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가장 귀에 박히는 건 Marillion의 ‘Kayleigh’ 커버일 수밖에 없다. 참여한 멤버들 중에 Fish 본인이 계셨으니 더할나위 없는 선곡이었을 것이다. DVD에 실려 있는 주요 멤버들의 인터뷰도 꽤 재미있는만큼(특히 Damian Wilson. 이 분 은근히 개그감이 넘친다) 한번쯤 봐두어도 나쁘지 않다. 멋진 앨범이다.

[Music Theories Recordings, 2020]

Forgotten Silence “La Grande Bouffe”

Forgotten Silence의 2012년작. 사실 이 밴드에게 (그나마의)명성을 가져다 준 것은 데뷔작부터 “KabaAch”까지의 프로그레시브 데스였을 텐데, “Bya Bamahe Neem” EP의 메탈은 멀리 갖다버린 사운드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시점에서의 복귀작이니 밴드로서는 꽤나 조심스러웠을 법한 앨범이다. 그래도 밴드로서는 초창기의 스타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는지 앨범의 커버도 그렇고, 음악은 어쨌든 “Bya Bamahe Neem”보다는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전형에 다가가 있지만 밴드 초창기의 모습보다는 분명히 가벼워 보인다. 앨범 제목도 부페이겠다, 활기찬 프랑스 식당의 모습을 이들 나름의 연주로 풀어나간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도적으로 곡을 배치하고 있다. 개별 곡들에는 각기 다른 인터루드들이 뒤따르고, 어디에서 따 왔을지 모를 ‘식당 소리’ 샘플링에 뒤따르는 라운지풍 기타 연주는 확실히 밴드에게서 그간 보기 어려웠던 모습이고, 이전보다는 훨씬 밝고 소소한 부분에 신경을 쓴 듯한 모습이 역력한 편이다. ‘Les Collines de Senyaan Pt. III’ 에서는 힘있는 피아노 연주에 맞춰 등장하는 라틴 스타일의 기타 연주까지 들을 수 있다. 정작 그 앞의 곡이었던 ‘Aalborg’ 가 밴드 소시적의 프로그레시브 데스에 가까운 곡임을 생각하면 더욱 이색적이다.

그런 만큼 이 앨범은 Forgotten Silence가 내놓은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다양하고 ‘화사한’ 면모들을 담아내고 있고, 특히나 Marty의 키보드는 그 사이에서 종횡무진 움직이면서 이 다양한 면모들의 교잡을 시도한다. 앨범에서 가장 다양한 스타일이 맞물리는(그리고 가장 긴) ‘The Black Rider 4K8(Chanson Pour la Station de Service)’의 사이키델리아에 얼터너티브 메탈까지 등장하는 모양새가 대표적이지 않을까? 하긴 부페니까 그렇게 다양하게 가는 게 맞을 것이다. 재미라는 면에서는 이만한 메탈 앨범이 흔치는 않을 것이다.

[Shindy, 2012]

Primordia “The Gleaming Eye”

Primordia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애초에 Primordial을 구하려다가 한 글자를 빼먹은 덕에 알게 된 밴드이기도 하고… 그러고 보면 Thy Primordial을 구하려다가 Primordial을 알게 되었고, Primordial을 구하려다가 Primordia를 알게 되었으니 생각보다 뒷걸음질 치면서 쥐를 잡게 되는 경우들이 왕왕 있는 셈이다. 각설하고.

이 밴드를 아는 이들의 대부분은 아마 World Serpent에서 나왔던 이 컴필레이션을 통해 밴드를 접했을 것이고, 사실 이 레이블에서 나오기 이상할 것까지야 없었지만 레이블의 다른 발매작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좀 더 탐미적인 류의 신스팝에 가까워 보이고, ‘Surface Tension’ 같은 곡에서는 거의 Skinny Puppy스러운 비트까지 보여주던 이 밴드가 World Serpent에서 나올 수 있었던 건 아마도 Fire+Ice의 “Glided by the Sun” 덕분일 것이다. 단연 밴드의 최고작일 이 앨범에서 혼자서 기타와 키보드로 Ian Read의 뒤를 굳건히 뒷받침하던 모습이 레이블의 괴팍한 주인장들 눈에 띄지 않았을까? 사실 Fire+Ice를 제외하면 W.M. Owens가 네오포크에서도 그리 굵직한 흔적을 남긴 적은 없기도 하고.

말하자면 사실 네오포크의 팬보다는 일렉트로닉스 적당히 섞인 고딕 음악을 좋아할 이에게 더 어울릴 만한 앨범이고, 적당히 싼티나는 심포닉이 B급 호러물 OST에 가깝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Ikon’이나 ‘Mother Love II’의 기괴한 인더스트리얼은 World Serpent가 굳이 이 밴드를 왜 주목했는지 이유를 짐작케 한다. 비트가 비트인지라 EBM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꽤 다가갈 것이다.

[World Serpent, 1993]

Hermit “Vow of Solitude”

위스콘신 출신 원맨 블랙메탈 프로젝트? 정도라는 외에 이 밴드에 대해 알려져 있는 건 사실 없는 듯싶다. 그나마 레이블이 심심찮게 괜찮은 블랙메탈을 내놓는 곳인지라 기억에 있는 편인데, 사실 이 레이블도 간간히 앨범이 나오긴 하지만 하는 근래의 모습들을 보면 홈페이지도 없고 그냥 Discogs를 통해 음반 파는 블랙메탈 전문 판장사에 가까워 보이긴 한다. 그래도 나름 적당한 가격대의 괜찮은 앨범들을 엄선한 것처럼 보이는 판매 리스트도 나쁘지 않은 곳이다. 레이블 얘기만 너무 길어지고 있으므로 일단 여기까지.

2021년에 디지털로 나온 앨범을 CD화한 이 앨범을 굳이 짧게 요약한다면 Summoning식의 전개를 좀 더 거칠게 북유럽풍으로 풀어내는, 분위기가 돋보이는 블랙메탈이라 할 수 있으려나? 특히나 ‘Revenant of Wintertide’의 키보드는 조금만 더 브라스를 얹어냈다면 “Dol Guldur”에서 느꼈던 분위기를 떠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톨킨 세계관을 풀어내던 Summoning에 비해서는 이쪽이 확실히 더 어두운 편이다. 그런 면에서는 노르웨이 블랙메탈을 즐기는 이들에겐 Summoning보다도 이 쪽이 더 낫게 느껴지는 구석도 있을 것이다. 이 정도의 밴드가 metal-archives에도 정보가 없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멋진 앨범이다.

[Humanity’s Plague, 2022]

Encrimson’d “Agrarian Menace”

미네아폴리스 출신 블랙메탈 밴드의 유일작. 딱히 유명한 멤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레이블을 잡았던 것도 아니었으며 기껏 이 자주제작 1집만을 남기고 망해버렸으니 그런 사실들만 본다면 한번쯤 주목해볼 만한 밴드! 라고 얘기하긴 좀 조심스럽다. 그럼 스타일 자체가 좀 특별한가? 라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적당히 포크 바이브가 묻어나는 블랙메탈인데, 보통 우리가 ‘pagan’ 블랙메탈이라 부르는 유형보다는 좀 더 멜로딕한 편이다. 그러면서도 ‘Amber Shades’ 같은 곡에서는 데스메탈스러운 면도 묻어나고, 파워메탈이나 NWOBHM의 기운도 앨범 군데군데서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이런 류의 블랙메탈이 가장 많이 나오던 건 체코였는데(그래서 체코 메탈만 공구하는 이도 예전에 있었더랬다), 그런 면에서는 ‘이국적인’ 스타일의 블랙메탈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이 한 장의 앨범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가사다. 일단 앨범명에 ‘agrarian’이 들어간다는 자체에서 티가 나지만 이 앨범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농부’다. 그러니까 전쟁도 나오고 폭풍도 나오고 하지만 결국은 다사다난했던 그 중세의 시절(이런 서사를 미국 밴드가 하는 자체가 좀 의외긴 하다만) 험난한 시절을 살아가는 지친 농부의 모습… 같은 게 떠오를 이야기이다. ‘My Feast’에서 배고프다는 얘기로 곡을 끝냈다가 ‘Amber Shades’에서 아마도 다음의 수확을 위해 진행할 축제와 제물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오컬트하다고 할 수 있으려나? 본격 농사꾼 블랙메탈 앨범이라는 점만으로도 이 앨범은 기억할 가치가 있다.

[Self-financed,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