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n Parry “Shadowman”

Ian Parry의 노래 실력을 떠나서 이 분의 솔로작 중 내가 보기에 앨범 커버가 괜찮았던 건 단 한 장도 없었는데, 그 중에서도 (안 좋은 방향으로)가장 돋보이는 한 장을 고르자면 단연 이 앨범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저 드루이드 복장 뒤집어쓴 사내를 ‘섀도우맨’이라고 칭한 모양인데, 괴이한 폰트와 괴이한 색감과 괴이한 디자인이 어우러진 이 커버가 판매고에 악영향을 미친 탓인지 Ian Parry의 앨범 중에서는 비교적 눈에 덜 띄는 편(그렇다고 비싸다는 얘기는 아님)이기도 하다. 똑같은 그림을 Children of Bodom의 “Something Wild” 커버로 이미 봤기 때문에 아무 상관없는 앨범이면서도 짝퉁같이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음악은 꽤 훌륭하다. 하긴 당연한 것이 이 분의 90년대 세 장의 솔로작들에서 골라담은 컴필레이션이기 때문에… 문제는 수록곡들 중 거의 2/3가 바로 전작인 “Thru’ the Looking Glass”의 수록곡이라는 점이다. 이래서야 그 앨범을 가지고 있다면 디자인도 구리구리한 이 앨범을 굳이 구할 이유가 별로 없어진다. 그래도 이런 선곡 덕분에 프로그레시브보다는 하드록/AOR 보컬로서 두드러지는 Ian Parry의 역량을 실감하기에는 Parry가 낸 앨범들 중 가장 적절한 선택이 될지도.

[T&T, 2000]

Hellfrost and Fire “Fire, Frost and Hell”

Dave Ingram의 새로운 밴드. 물론 Bolt Thrower와 Benediction에서의 활동으로 이미 커리어 굵직한 보컬이지만, 그나마 2020년에 복귀작을 내놓은 Benediction을 제외하면 딱히 눈에 띄는 활동이 있었던 것 같지 않으니 나름 기대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솔직히 장르의 슈퍼스타 보컬리스트들을 제외하면 Dave Ingram보다 이름값 높은 보컬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 밴드의 음악은… 뭐 참여한 인물이 인물이어서인지 ‘클래식’ 스타일의 데스메탈이지만 Benediction보다는 좀 더 그루브에 치중한 스타일을 연주하고 있다. 하긴 Benediction도 “Transcend the Rubicon” 이후 정도의 차이일 뿐 그루브함을 의식한 데스메탈을 연주했던 걸 생각하면 결국 Dave Ingram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 데스메탈과 코어의 그 미묘한 경계선에 조금은 걸쳐 있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Dave Ingram의 이름을 보고 기대할 데스메탈 팬이라면 이 앨범의 음악이 마냥 반가울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Debris Wrought from Winter’ 같은 곡을 듣자면 Bolt Thrower 류에 Celtic Frost풍 분위기를 입히려다 잘 되면 이런 곡이, 안 되면 그 조금은 떨떠름한 그루브함이 드러나는 게 아닐까 하는 짐작이 든다. 적어도 다음 앨범을 기대할 수준은 넘는다고 생각한다.

[Transcending Obscurity, 2022]

Extinguished “Vomitous Manifestations”

Caligari Records는 좀 꼬질꼬질한 류의 데스/블랙메탈 데모(주로 테이프)를 주로 내놓지만 여기서 나온 앨범들에서 딱히 실망해 본 적은 없는 나름 신뢰 – 물론 그만큼 기대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 의 레이블이다. 물론 여기 나오는 앨범들을 생각하면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칼리가리 박사가 잘 연결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가려진 것 많은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연결짓기에는 이 레이블의 발매작들은 확실히 대개 직선적이고 폭력적이다.

Extinguished도 그런 레이블의 방향성을 그대로 따라가는 핀란드 데스메탈 밴드인데, 레이블의 다른 펑크풍 강한 블랙메탈/데스메탈 앨범들에 비해서는 좀 더 노이지하고 80년대 후반 스래쉬 물이 덜 빠진 시절의 데스메탈을 연상케 하는 편이다. 그래도 ‘Devoted to Hades’ 같은 곡의 슬럿지 리프는 밴드가 나름 새로운 시도를 가져가려고 한다는 점도 알려준다. 그러고 보니 이만큼 피드백을 많이 써먹는 데스메탈 데모도 보기 드문 것 같다. 도입부가 됐건 곡의 중반이 됐건 피드백을 던져두고 그 지점부터 새로운 전개를 가져가는 점이 특징적이다. ‘나름의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다 비슷하게 들리는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거칠면서도 은근히 음습한 분위기를 생각하면 Autopsy를 즐겨 들었다면 꽤 만족하지 않을까? 조악하지만 정규 앨범을 기대하게 하는 힘은 있다.

[Caligari, 2022]

Likheim “Alt Skal Svinne Hen…”

최근 흑백커버 블랙메탈의 등장이 너무 뜸한 거 아니냐는 혹자들의 괴이한 지적이 있어 간만에 그런 앨범으로.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혹자들의 절반 이상은 여기 덧글 한 번 남긴 바 없는데 뭘 신경쓰나 싶기도 하다. 알고 보면 내가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다. 각설하고.

이 생소한 이름의 노르웨이 블랙메탈 밴드에 대해 알려진 건 거의 없다. 이런저런 소개들에 의하면 말이 밴드지 Gretn이 보컬만 하면서 자기 곡들을 연주해 줄 이들을 찾아 만든 프로젝트에 가까운데, 그나마 눈에 띄는 사실은 Carpathian Forest의 가장 최근작 “Likeim”에서 기타를 쳤다는 Gamle Erik이 혼자 드럼 빼고 모든 연주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젠 Nattefrost의 원맨밴드에 가까운 Carpathian Forest인 만큼 그냥 이 동네 블랙메탈 전문 세션맨 중 하나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세션이 메인 멤버보다 하는 게 더 많아 보이는 게 뭔가 괴이하지만 이것도 넘어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은 Carpathian Forest 스타일과는 꽤 거리가 있는 90년대 중반 노르웨이 블랙메탈이다. 보컬도 스크리밍이 아니라 데스메탈식 그로울링에 가까운지라 정말 노르웨이의 ‘초창기’ 블랙메탈 스타일에 가깝다. 녹음이 생각보다 너무 잘 돼서 그 시절 앨범들 특유의 ‘안개 자욱한’ 맛은 좀 덜하지만 충분히 지글거리고, 조금은 안 어울리는 클린 보컬을 제외하면 분위기나 멜로디도 꽤 비장한 구석이 있다. 어쿠스틱 인트로로 단정하게 시작하지만 곧 앨범에서 가장 거칠게 밀어붙이는 ‘Tåkens kall’은 Immortal이 신명나게 달리는 시절을 연상하게 하는 면도 있다. 스피드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좀 처지긴 하지만 말이다.

위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행색도 영 없어 보이고 음악도 파트 각각 조목조목 보면 조금씩 다 떨어지지만 합쳐 놓으니 그래도 장르의 팬이라면 꽤 들을 만해지는, 그래서 좀 반갑기도 한 앨범이다.

[Underground Kvlt, 2022]

Kidd Blue “Big Trouble”

Kid Blue는 한창 시절의 데니스 호퍼가 개과천선 열차강도로 나오는 코메디 영화였고, Big Trouble은 소시적에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봤던 커트 러셀이 차이나타운에서 모탈컴뱃풍 잡몹들과 싸우는 장면들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말하자면 앨범과 아무 상관없는 저 두 영화 덕분에 앨범을 듣기 전에 개인적으로 받은 인상은 뭔가 ‘우당탕탕’에 가까운데, 헤어메탈 밴드로서는 나쁘지는 않은 첫인상일 것이다. 레이블도 사실 재발매작들을 제외하면 명작들을 내놓았다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적어도 멜로딕한 록/메탈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는 곳이다. 사실 몇 장 빼고는(이를테면 Neil Turbin의 솔로작) 거의 그런 스타일만 내놓는 곳이기도 하고.

앨범은 전형적인 80년대풍 헤어메탈이다. 4/4박자를 거의 벗어나지 않으면서 ‘건강한’ 스타일의 코러스를 꾸준하게 보여주고, 가사가 놀자판 분위기와는 좀 거리가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장르의 전형에 가깝다. 기타를 들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밴드는 Icon(“Night of the Crime”의)이나 Y&T이지만(특히나 ‘Restless Eyes’), 곡 자체는 Ratt나 Warrant의 앨범에 들어가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보컬이 꼭 잘 부른다고 하기는 어려웠던 Icon보다는 장르의 팬들에게는 이들이 더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나쁜 정도까진 아니지만 영세함이 묻어나는 녹음은 이 장르에는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 하긴 흑백자켓 블랙메탈 좋아하는 양반이 할 얘긴 아니긴 하지만.

[Metal Mayhem,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