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iathan(US) “Riddles, Questions, Poetry & Outrage”

Leviathan이라는 이름은 메탈 팬들에게는 꽤 익숙하다. David T. Chastain이 사장 노릇하는 Leviathan Records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겠고, 비교적 최근의 메탈 팬이라면 미국 블랙메탈 밴드를 떠올릴 수도 있겠고, 좀 삐딱한 이라면 미국이 아니라 스웨덴 블랙메탈 밴드를 떠올릴 수도 있겠고, 메탈보다는 나쁘진 않았지만 그래도 당대의 영국 밴드들의 레플리카 이상까지는 또 아니었던 미국 하드록 밴드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말하자면 이 이름으로 밴드명을 삼고 청자의 기억에 남기란 꽤 경쟁 심한 과업이라는 뜻인데, 예나 지금이나 인기는 딱히 없어 보이지만 현재까지도 – 한 번 해체하고 재결성하긴 했다만 – 나름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활동해 오고 있고 꾸준히 일정한 퀄리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그 많은 Leviathan 중에서도 단연 이들이 최고가 아닐까? 물론 저 미국 블랙메탈 밴드가 평가는 최고이겠다만 기복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인지라.

그럼 이 밴드의 고점은 어디였는가? 사실 데뷔 때부터 꾸준했고 딱히 스타일의 변화도 별로 없었던 이 콜로라도 밴드의 고점을 얘기하긴 애매하지만 그래도 밴드 역사에서 가장 메이저에 다가갔던 이 2집이 그래도 가장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Dream Theater 류가 아니라 Fates Warning의 80년대 시절 스타일이 파워메탈 물을 완전히 빼지 않는 한도에서 좀 더 복잡하고 극적인 면모를 수용한 류의 음악인데, 솔직히 John Arch나 Geoff Tate 같은 동종업계 절창들에 비해서는 개성적일지언정 확실히 매력도 파워도 떨어지는 보컬이 가장 큰 진입 장벽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소시적의 Fates Warning 마냥 터지는 맛도 없고 감상적인 발라드 같은 것도 없는 이 밴드의 기복 없는 스타일은 그런 무채색의 보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럼에도 앨범은 꽤 단단한 음악을 품고 있다. 밴드가 이후 보여주는 재즈퓨전의 색채 등은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이지만 그만큼 ‘파워메탈’로서의 면모는 명확했던 시절이었고, 그러면서도 대위법적인 리프와 트윈 기타의 하모니(에 적당히 섞어주는 어쿠스틱)를 통해 나름의 극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Census of Stars’나 ‘Madness Endeavor’ 같은 곡이 그런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데, 정말 레이블이 신경 안 써준 듯한 적당히 비어 있는 레코딩만 아니었다면 좀 더 풍성한 사운드가 되었을 것이다. 솔직히 ‘Are First Loves Forgotten?’은 내용도 좀 깨고 곡도 좀 더 간결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그게 맘대로 됐으면 이 밴드가 지금 자리에 있을 리가 있겠나. 장르의 매력만큼은 확실하게 보여주니 이로써 만족할 뿐이다.

[Century Media, 1996]

Clarent Blade “Return Into Forever”

Spectral Lore의 Ayloss는 Spectral Lore 말고도 이름 바꿔가면서 다양한 원맨 프로젝트들을 돌려가는 점으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인상적인 결과물을들 꾸준하게 내놓고 있고, 예전 같으면 그런 게 있다더라 하는 카더라만 분분했을 법한 음원들이 이제는 인터넷과 밴드캠프의 힘을 빌어 꽤 쉽게 구해 들어볼 수 있게 되었다. Spectral Lore의 팬을 자처하는 이로서 이런 사이드 프로젝트들은 Ayloss가 어떤 음악들을 들었고 좋아했으며 Spectral Lore의 음악에 어떤 모습들이 녹아들어갔을지를 짐작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가 되고, 뮤지션 본인도 나름 퀄리티에 만족했는지 거의 대부분을 CD화해서 꽤 합리적인 가격으로 팔고 있는지라 모으는 입장에서는 돈 쓰면서도 흐뭇하다. 그런 면에서 바야흐로 고환율시대.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메탈 팬이라면 Spectral Lore의 사이드 프로젝트들 컬렉션을 강력하게 권해 보는데… 하긴 일단 Spectral Lore부터 한 장 사서 들어보라고 말하는 게 먼저일 것 같기는 하다. 각설하고.

Clarent Blade는 누가 그리스 메탈 뮤지션 아니랠까봐 Manilla Road풍 에픽 메탈을 연주하는 프로젝트이다. 차이가 있다면 에픽 메탈이 대개 Manilla Road가 등장하기 이전의 헤비메탈이나 그 이전의 하드록, 개러지 록, 블루스는 물론이고 이후의 스래쉬메탈이나 USPM 등 다양한 스타일들을 빨아들이는 형태를 보여준다는 점인데, 블랙메탈 뮤지션의 프로젝트이기도 하고 시절이 2010년인 것도 그렇고 일반적인 에픽 메탈보다는 좀 더 화끈한 구석이 있다. 질주감 있지만 막상 따져보면 그리 빠르지는 않은 템포의 리프와 경쾌한 드러밍, 비중은 크지 않지만 어두운 분위기 가운데 청량하게 다가오는 신서사이저 연주 등은… 솔직히 이 정도면 보컬만 참아낼 수 있다면 멜로딕 스피드메탈 팬도 참고 들을 수 있지 않겠나 싶다.

다만… Ayloss의 클린 보컬을 아무래도 멜로딕 스피드메탈 팬이 참아줄 거 같진 않다. 사실 최고의 단점은 이 앨범을 듣고 Spectral Lore에서 왜 클린 보컬이 안 나오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거 같다는 점이 아닐까. 또 앨범이 나온다면 힘있는 파워메탈 보컬 한 분 데려다가 같이 했으면 좋겠다.

[Self-financed, 2012]

Spectral Lore “Sentinel”

바야흐로 Spectral Lore의 본격적인 출세작? 물론 절대 잘 팔릴 리 없어보이는 음악을 하고 있고 Ayloss 본인도 내가 대체 언제 출세를 했는지 반문할 법하지만 그래도 이제 나름 블랙메탈 열심히 찾아듣는다는 이들은 대충 알 만하고 이 동방의 어느 아재도 전작 컬렉션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허나 그게 쉽지 않다. 이 점을 봐서라도 Donald Trump는 저주받아야 한다고 이 아재 외쳐본다) 이쯤되면 수많은 골방 밴드들이 범람하는 21세기의 세계 블랙메탈의 무대에서 비교적 현실가능성 있으면서 본받을 만한 사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Deathspell Omega 정도로 뜨기란 아마 개인의 역량을 넘어선 문제일 것이고… 사실 Deathspell Omega도 본인들이 출세했다는 생각은 아마 안 할 것 같으므로 그렇다면 좀 더 가능성 있어보이는 Spectral Lore의 노선을 참고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얘기다. 물론 남 얘기니까 이렇게 과감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니 이 얘기는 이쯤하고.

원래 Blut aus Nord를 떠올릴 법한 구석이 있는 퍽 난해한 류의 블랙메탈 밴드는 이 앨범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우주적인’ 색채를 더하면서 어쨌든 Deathspell Omega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복잡하게 뒤틀린 리프를 앰비언트 연주와 리버브 짙게 깔린 자욱한 분위기를 엮어낸다. 사실 우주적이면서도 앰비언트풍의 사운드를 풀어내는 블랙메탈이라면 반복적인 연주를 통한 사이키한 분위기를 구현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라면(여기에는 아마 Darkspace의 죄가 크리라 본다) 그 Deathspell Omega스러운 리프와 변화가 심하지만 대체로 공격적인 리듬 패턴에 힘입은 역동적인 전개가 있다. ‘The Coming of Age’ 처럼 템포를 조절하며 나름의 그루브를 보여주는 곡도 있지만 생각보다 풍성한 심포닉과 함께 고조되는 분위기를 폭발시키는 면모가 결국 이 밴드의 최대 강점일 것이고, 따지고 보면 이 진입 장벽 높은 스타일을 굳이 찾아듣게 하는 부분이지 아닐까 싶다.

그리고 ‘Atlus (A World Within a World)’. 사실 이런 곡을 대개의 블랙메탈 팬들은 듣기 힘들어하겠지만 블랙메탈식 잼 세션에 어우러지는 우주적인 다크 앰비언트는 과장 좀 섞으면 Cold Meat Industry의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다. 리버브 잔뜩 먹은 다크 앰비언트를 들어보고 싶지만 차마 Deutsch Nepal에는 손이 가지 않는 이에게 차선책으로도 유용할 것이다. 정말 멋진 앨범이다.

[Stella Auditorium Prod., 2012]

Kult ov Azazel / Humanicide / Obitus / Thylord “Gather Against Humanity”

Christcrusher Prod.는 나름 열심히 모았던 레이블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거에 비하면 아는 게 별로 없다. 더 알아볼래도 나오는 것도 거의 없거니와 하긴 이미 망한지도 한참 지나버린 이 영국 블랙메탈 골방 레이블을 알아보려는 이는 더욱 없겠거니 싶다. 그래도 예전에 레이블 사장이던 Herr Chemosh가 어느 인터뷰에서 자기는 CD나 테이프로 정식발매했다 품절된 음원은 재발매를 할 생각이 없다고 했던지라… 굳이 이 레이블 발매작을 부득불 찾아듣겠다는 이라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이 레이블 발매작들 중에서 그래도 제일 자주 보이고 제일 저렴하며 제일 퀄리티 좋은 한 장을 고른다면 이 스플릿이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일 것이다(애초에 발매작 자체가 몇 안 되긴 하다만). 아이러니하게 카탈로그 넘버 1번 발매작인지라 이렇게 얘기하면 첫끝발이 그냥 다였던 레이블이랄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이후에 Toroidh나 Darkest Hate의 앨범을 내놓기도 했으니 그렇게 말한다면 좀 박하지 싶다. 어쨌든 이 스플릿의 4밴드 중 절반은 이 앨범 이후에도 스스로 살아남아 활동을 이어갔으니 어쨌든 이 레이블 로스터 중에서는 가장 검증된 이름들이었다고 해도 크게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그 중 고른다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위 ‘fast-black’ 스타일을 25년 전부터 연주하던, 4밴드 중 가장 웰메이드이지만 가장 평범한 Kult ov Azazel보다는 살짝 섞여들어간 인더스트리얼(달리 말하면 ‘뿅뿅거림’)이 취향을 탈지언정 좀 더 멜로딕한 면모가 돋보이는 Obitus(특히 ‘A Day of Gloom’)가 비교적 돋보이는 편이다. 사실 펑크풍이 과하다 못해 간혹 좀 허접하게 들리는 Humanicide만 뺀다면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B/C급 블랙메탈에 익숙해져 있는 이라면 전반적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나는 그런 편이다.

[Christcrusher Prod., 2001]

Ezra Brooks / Serpent Rider “Visions of Esoteric Splendor”

Serpent Rider는 그래도 이름이 익숙하지만 버번 위스키 이름을 여보라는 듯 박아넣은 Ezra Brooks의 당황스러운 네이밍 센스와 이와 상반될 정도로 멋지구리한 커버가 구매욕을 자극하는 두 밴드의 스플릿. 하지만 찾아보니 Ezra Brooks도 에픽 메탈을 열심히 찾아듣는 이라면 생소한 이름은 아니라고 하니 나름 No Remorse가 야심차게 내놓은 스플릿이라고 할 수 있겠다(그래서인지 월마트에서도 팔고 있더라. 어떻게 납품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니 익스트림메탈이 아닌 헤비메탈 쪽에서 스플릿 앨범을 구하는 것도 나로서는 되게 오랜만이다.

Ezra Brooks는 그런 레이블의 기대에 부응하듯 이름과 달리 술 냄새는 딱히 나지 않지만 꽤나 인상적인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The Helm of Sacorb’ 같은 곡명에서부터 드러나듯 Manilla Road나 Brocas Helm을 떠올릴 만한 스타일인데, Brocas Helm이 나쁘게 얘기하면 뒤죽박죽일 정도로 다양한 스타일들을 Hawkwind풍 사이키델릭 아래 헤비메탈 리프를 바탕으로 풀어낸다면 Ezra Brooks는 좀 더 현대적으로 다듬어진 듯한 인상을 준다. ‘When the Future Fails’는 과장 좀 섞으면 “Awaken the Guardian” 시절의 Fates Warning이 SF에 관심을 갖고 나름대로 풀어낸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구석도 있다. 물론 보컬은 John Arch와 판이한 스타일이지만 말이다.

Serpent Rider는 Drawn and Quartered 출신 멤버들이 주축이 된 밴드지만 데스메탈과는 분명 거리가 있고, 역시 Manilla Road를 떠올릴 수밖에 없지만 Varathron의 커버곡이 보여주듯 은근한 그리스풍이 묻어난다는 점에서는 Ezra Brooks와 확실히 차이가 있다. 그런 면에서는 SF보다는 차라리 Doomsword처럼 전사들 대검 휘두르는 류의 에픽메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메탈 스타일이라기보다는 별 기교 없이 단정하게 불러주는 여성보컬이 꽤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묵직한 연주와는 겉도는 감이 있지만 신비로운 분위기와는 오히려 어울리는 편인데, 그렇게 보면 역시 Lordian Guard 얘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물론 Lordian Guard의 처음 듣는 이라면 절대 잊지 못할 무시무시한 싼티와는 다르니 너무 걱정할 필요까진 없겠지만.

[No Remorse,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