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gative Bias, The “The Seven Seals of Saligia”

사실 블랙메탈스럽지 않은 이름이다. 알고 있는 건 이 밴드가 Golden Dawn과 스플릿 앨범을 냈었다는 것과, Dreamlord가 1집에서는 베이스와 기타로 참여했었다는 점이다. 포지션만 봐도 알겠듯이 Golden Dawn처럼 라이브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스튜디오형 오스트리아 밴드로 보인다. 밴드명이 부정 편향성이라면 아무래도 공부 좀 한 인텔리들이 하는 밴드가 아니겠나 싶지만 의대 근처에도 못 가 봤던 Carcass의 가사가 어땠었는지 생각해 보면 함부로 단정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인텔리 티 팍팍 내면서 가사 제대로 썼던 블랙메탈의 사례를 꼽는다면 단연 Solefald가 첫손가락이 아닐까 싶다. 각설하고.

밴드가 ATMF를 나와서 새로운 레이블에서 내는 첫 앨범인 이 3집도 기존 앨범들과 스타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 Dreamlord와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사실 심포닉과는 별 상관이 없는 스타일인데, 그나마 ‘Among Dark Suns Incubations’ 같은 곡의 챈트에서 심포닉의 흔적을 볼 수 있지만 Golden Dawn과 달리 클래식한 기운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The Wage of Sin is Demise’ 같은 곡을 보면 꽤나 변화무쌍한 비트를 제외하면 노르웨이의 거목들에게 빌려온(달리 말하면 무척 전형적인 류의) 리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어찌 들으면 Morbid Angel 물을 먹으면서 블랙메탈 리프를 버린 Behemoth가 블랙메탈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전개는 지금처럼 복잡하게 나아갔다면 내놓았을 법한 스타일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특별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저 스타일을 깔끔한 녹음으로 무척 완성도 놓게 내놓고 있는지라 블랙메탈 팬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듣기에는 충분하다. 기대보다도 더욱 웰메이드라서 듣고 조금 놀랐다. 요새 Vendetta Records가 무척 좋아지고 있다.

[Vendetta, 2023]

안티 딜레탕트 크로슈 씨

과연 음악평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는 나 음악 깨나 들었다고 자처하는 이들이 모여서 딱히 생산적일 것까지는 없을 모임(이라기보다는 술자리)을 가지면서 자신의 음악편력을 과시할 때 흔히 나오던 주제였다. 때로는 편력을 넘어 특정 뮤지션(이라기보다는 골방예술가인 경우도 다수이다)과의 친분을 과시하려는 모습이 역력한 이들도 만나볼 수 있다. 그럴 때 흔히 나오는 얘기는 간단하다. 음악 만들 줄도 모르는 평론가라는 사람들이 대체 뭘 알고 그리 글을 쓰는가? 이건 적당히 판단력이 흐려진 술자리에서 맞닥뜨리기엔 생각보다 다투기 쉽지 않은 주제이다. 일단 그 주제를 던져놓는 이는 뮤지션 본인 또는 그 옆에서 호가호위하려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고, 그렇지 않더라도 대개 평론가들은 예술 작품을 생산하는 입장에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드뷔시는 평론가였지만 평론보다는 작곡가로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으니 더욱 자신있게 이 주제를 던져놓을 수 있겠다. 텍스트는 물론이거니와 살아온 생애로서 특유의 냉소를 입증하는 이 작곡가이자 평론가는 아예 안티 딜레탕트 역할의 오너캐를 만들어 ‘낄 데 안 낄 데를 모르고 자기네들의 심미안을 들이미는’ 전문가들에 대해 날을 바짝 세우면서 동시대의 작곡가들과 이를 둘러싼 현상들, 그리고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중심으로 한 본인의 창작 활동에 대한 창작자로서의 입장(내지는 취향)을 꽤 직설적으로 내놓는다. 바그너의 악극들을 김 빠진 라이트모티프 정도로 요약해 버리거나, 어쨌거나 자신에게 명성을 안겨준 계기가 되었던 로마 대상의 심사위원들을 음악은 X뿔도 모르는 아카데믹한 작자들로 비난하는 패기는 숱한 인성파탄자들의 기록을 남긴 음악의 역사에서도 나름 일석을 차지할 만해 보인다.

그래도 젊은날의 과오를 고백하는 듯 바그너가 스스로의 시대에 마침표를 찍었던 인물이며, 이제 우리는 진부한 생각, 취향이나 개성은 따질 수 없다는 생각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견해는 ‘스스로의 취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의 취향이 결국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곤 함을 새삼 일깨워준다. 이 심지 굳기로는 어디 가서 밀리지 않을 작곡가의 가장 직설적인 글에서도 이런 내용이 포함된다는 게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까? 하긴 과오를 인식하고 이를 딛고 넘어감으로써 발전하는 게 인간이라면 이 괴팍한 작곡가도 그런 기질을 통해 인상주의의 성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클로드 드뷔시 저, 이세진 역, PHONO]

Savage Grace “Ride Into the Night”

Hooked on Metal Records는 80년대 헤비메탈의 hidden gem을 다시 빛보게 만들겠다는 야심찬 기획으로 시작했지만 Savage Grace의 앨범들을 재발매한 이후의 활동은 누가 봐도 많이 지지부진해 보인다. 좀 더 근본적인 얘기를 하자면 Savage Grace는 hidden gem 소리를 듣기에는 꽤 유명한 편이니 이 쯤 되면 레이블의 기획은 좀 많이 머쓱해진다. 그래도 재고가 많지는 않아도 나쁘지 않은 앨범들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팔고 있으니 쓸만한 디스트로라고 해주기는 충분하다. 레이블에다 발매작들은 좀 애매해도 가격은 싸다고 말하는 게 좋은 얘기인지는 잘 모르겠으니 그 얘기는 이쯤하고.

Savage Grace가 해체 전 마지막으로 내놓은 이 EP는 그래도 오리지널은 픽처디스크 뿐인데다 CD로는 Hooked on Metal 재발매가 유일하므로 Savage Grace의 발매작 중 hidden gem이라는 명칭에 가장 걸맞는 사례일 것이다. 사실 Savage Grace가 앞서 내놓은 앨범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아쉬운 퀄리티인 건 분명한데, 그래도 ‘The Healing Hand’의 극적인 구성(스피드메탈에선 이런 건 생각보다 흔치 않다)과 Chris Logue의 걸출한 보컬만으로도 앨범의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이 밴드가 재결성 이후 ‘이럴거면 뭐하러’ 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밴드가 마지막 기운을 짜내서 만든 앨범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CD 재발매반에는 존재도 몰랐던 1983년 데모까지 보너스로 들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장쯤 구해보는 것도.

[Flametrader, 1987]

Consortium Project “Terra Incognita(The Undiscovered World)”

Ian Parry의 Ayreon 따라잡기 프로젝트의 3집. 본업이 본업인지라 저 밴드명이 ‘공동수급체’로 읽혀 듣기 전부터 감흥을 깎아먹지만 따지고 보면 Ian Parry 본인이 Ayreon에 있으면서 보고 배운 걸 따라하는 듯 스스로 중심이 되어 이런저런 뮤지션들을 끌어들여 만든 프로젝트이니 저만큼 딱 들어맞는 밴드명도 짓기 어렵겠거니 싶다. 말하자면 주계약자관리방식 공동수급체에 유사하다고 하겠다. 음악 글에 공동수급체 얘기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것도 곤란하니 각설하고.

음악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사실 이 밴드의 전작인 “Continuum In Extremis”가 라이센스로 나와 눈물나는 판매고와 그보다는 좀 덜 민망한 수준의 평가를 받았으므로 이 앨범에 대한 기대는 크지는 않았는데, 충분히 견실한 연주들을 밋밋한 송라이팅으로 뭉개버리는 감이 없지 않았던 전작에 비해 극적인 면모가 확실히 돋보인다. 특히 ‘Spirit of Kindness’나 ‘Beyond the Gateway of Legends’ 같은 곡은 Ian Parry가 전작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장르에 대한 공부를 꽤 열심히 하고 왔다는 인상을 준다. 후자는 사실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전형보다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문법을 의식한 Elegy풍 하드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오존층 파괴 이후 망해버린 세상에 대한 컨셉트 앨범이 왜 이리 마냥 밝은가 하는 의구심이 없지 않으나 어려운 가운데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자세로 만든 음악이라고 치고 넘어간다. Ayreon을 좋게 들었다면 만족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공동수급체’ 밴드의 앨범들 중 하나만 고른다면 아무래도 본작이 가장 괜찮지 않을까 싶다. 저렴한 곳에서는 2유로에 떨이로도 팔고 있는만큼 구하기도 쉽다.

[Century Media, 2003]

Endstille “DetoNation”

새해 벽두부터 듣고 있는 음악이 Endstille라니 뭔가 문제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 살 더 먹었다고 듣는 음악이 바뀔 리야 없겠으니 그것 또한 팔자일 것이다. 그 팔자 새해에는 무탈하길 바래보면서 들어보는 Endstille의 2023년 신작.

“Kapitulation 2013″으로부터 10년만에 나온 신작이지만 커버부터 알려주듯 밴드는 여전히 전쟁 얘기 외길인생을 걷고 있다. 오히려 “Kapitulation 2013″에서 은근 섞여들어간 스래쉬나 펑크의 기운이 그리 맘에 들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좀 더 예전 스타일에 가까울 이 앨범이 더 마음에 와닿을 법하다. 그렇지만 ‘Vigilante Justice’ 같은 곡의 미드템포에 은근한 멜랑콜리를 섞어내는 모습이나 ‘Pro Patria Mori’ 같은 곡의 계속되는 템포체인지는 이 밴드가 어쨌든 “Kapitulation 2013″의 시도를 버리지는 않았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Jericho Howls’의 슈투카 소리 이후 무자비하게 달려대는 모습에서 앨범의 백미를 찾는 이에게는 그런 모습이 그리 와닿지 않을지도. 그런 건 Endstille의 앨범에서 기대할 만한 모습은 사실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기존작들보다 헤비함은 조금 덜어냈지만 더 날카롭게 벼려낸 듯한 녹음과도 그리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Frühlingserwachen”이나 “Dominanz”를 좋게 들었다면 무난하게 들을 만한 앨범이다. 물론 이게 1월 1일부터 들을 만한 앨범이냐 하면 양심상 그렇다고 말은 못하겠다. 내일 출근할 마음의 준비를 위한 앨범으로는 적당할 것이다.

[Van,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