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lamtaea “Weemoedsklanken”

네덜란드 출신 블랙메탈 밴드의 네 번째 앨범… 이라 하나 나는 처음 들어본다. 이 밴드의 특이한 점이라면 밴드 편성에 플루겔호른이 있다는 것인데, 이 밴드가 Sagenland에서 NS의 기운 농후해 보이는 음악을 연주했던 Floris Velthius가 보컬만 빼고 혼자 다 하는 밴드임을 생각하면 사실 Floris가 급구한 객원 멤버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이 밴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이 플루겔호른 연주자 Izzy 때문이었는데, 이 Izzy가 “…Memoriam Draconis”에서 아주 멋들어진 키보드 인트로를 연주했던 Izarothas라니, 멤버들의 면면을 봐서는 대체 밴드가 뭘 연주하려는 건지 짐작이 잘 안 되는 탓일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신의 이름이라는 뭐라고 읽을지 좀 애매한 밴드명도 눈에 띄는 편이다.

음악은 기본적으로 90년대 노르웨이 블랙메탈 스타일이지만 재즈나 프로그레시브 록, 또는 근래의 포스트-메탈의 스타일도 꽤나 많이 보이고, 그 스타일 사이사이를 괴팍하게 이어가는 모습은 Ved Buens Ende나 Code 같은 밴드들에 비교할 수밖에 없고, 특히나 ‘Schone Lei’ 같은 곡의 격렬한 베이스나 ‘Moegestreden’의 색소폰, 호른 연주를 듣자면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오를 이름은 Fleurety일 것이다. 그래도 King Crimson의 그림자는 꽤 걷어내고 리버브 두껍게 건 건반과 꽤 명확한 멜로디를 매끄럽게 이어 나가는 트레몰로 리프 덕분에 Ved Buens Ende보다는 훨씬 진입 장벽은 낮은 편이다. 결국 Deathspell Omega의 유산을 나름의 방식으로 꽤 재미있게 풀어낸 앨범이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일단 나는 꽤 재미있게 들었다.

[Babylon Doom Cult, 2022]

Presence “Makumba”

Presence의 데뷔작. Black Widow에서 꾸준히 앨범들이 나오는 밴드이지만 이 데뷔작은 뭐하는 곳인지 알 수 없는 레이블(자주레이블이란 말도 있더라)에서 나온 덕에 그래도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드물게 보이는 편이다. “The Sleeper Awakes” 2CD의 라이브에서 몇몇 곡들을 연주하긴 했지만 이 앨범은 재발매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 보이니 밴드의 팬이라면 구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밴드의 앨범들 중 가장 성의없어 보이는 커버의 앨범이지만 정체모를 영세 레이블에서 겨우 1집을 내놓은 밴드에게 멋진 커버까지 요구하는 건 좀 과한가 싶기도 하다. 각설하고.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전형에 다가간 앨범이고, Sofia Baccini의 연극적인(물론 그래도 이후의 앨범들보다는 좀 단조롭다) 보컬이 빛을 발하긴 하지만 Sergio Casamassima의 기타가 밴드의 역사에서 가장 후끈한 연주를 보여주는 한 장이라 할 수 있다. ‘The Bride of Sin’의 네오클래시컬 솔로잉은 이 분이 GIT 출신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그래도 결국 앨범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Makumba’나 ‘Shinin’ Uneasy’ 같은 곡의 브리티쉬 하드록풍 리프에 Enrico Iglio의 적당히 해먼드 튠 섞은 건반이 어우러지는 고색창연한 연주라고 생각한다.

사실 본격 메탈 앨범이라기엔 묵직한 맛은 조금 떨어지고(덕분에 ‘Left Hand Cross’는 못내 아쉬운 곡이 되었다) 서사라는 면에서는 이후의 앨범들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Presence의 앨범들이 때로는 너무 많은 것을 우겨넣어 과중한 느낌을 주는지라 어떤 면에서는 이만한 앨범도 없다고 할 수 있겠다. Sofia Baccini에게 Queen Diamond라는 무지막지한 별명을 안겨준 앨범이기도 하고.

[Hell 222, 1992]

Mastermind “IV – Until Eternity”

Mastermind의 4집. “Tragic Symphony”가 그래도 라이센스도 되고 해서 들을 만한 사람들은 또 은근 다 들어본 앨범이었지만 열심히 만든 기색 역력한 심포닉 록이면서도 아쉬운 점도 분명해서인지 평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가장 거슬렸던 부분이라면 아마 대부분은 Bill Berends의 좋게 얘기하면 관조적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기타에 몽땅 쏟아버렸는지 힘없는 보컬이나, 일부러 그랬겠지만 때로는 싸구려 멜로디카 수준까지 내려오는 엄청난 톤을 들려주는 미디 기타를 꼽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밴드가 “Excelsior!”부터 Jens Johansson을 키보드로 영입한 건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Stratovarius로 더없이 잘 나가던 사람을 대체 어떻게 데려왔는지가 궁금해지지만 그건 이 다음 앨범 얘기니 넘어가고.

앨범은 “Tragic Symphony”처럼 결국 ELP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심포닉 프로그이지만 ‘Inferno’처럼 재즈적인 연주를 집어넣거나, ‘Under the Wheels’처럼 Rush와 King Crimson(또는 좀 기운 빠진 Anekdoten)을 묘하게 섞은 듯한 곡들에서 전작과의 차이를 찾을 수 있다. 테크니컬하긴 하지만 여전히 기타 연주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세컨드 기타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는 미디 연주가 못내 거슬리지만, 좋게 얘기하면 그게 밴드의 개성일 것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기타리스트가 건반 파트까지 미디 기타로 때우는 앨범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그래도 ‘Under the Wheels’만큼은 밴드가 남긴 앨범들 중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고, 이 한 곡만으로도 앨범 한 장 값은 충분히 한다고 생각한다. 꼭 싸게 사서 하는 얘기는 아니다.

[Prozone, 1996]

Bulldozer “IX”

Kerrang!과 Metal Hammer 지에서 0점을 맞은 것으로 우리에게도 잘…알려져 있는 건 아니지만 이 밴드는 그런 점수에 상관없이 많은 이들에게 ‘컬트’의 지위를 인정받는 밴드이다. Venom에 대한 이탈리아의 대답이라는 얘기도 있고, Abigail 같은 밴드들은 지금도 Bulldozer의 곡들을 열심히 커버하고 있다. 그렇다곤 해도 사실 이 밴드가 처음부터 거물로서 부족함 없는 음악을 연주한 건 아니었고, 나름의 강점이 있었지만 누가 뭐래도 B급(내지는 B급과 C급 사이의 ‘쩜오’)에 가까웠을 2집까지의 음악을 뒤로 하고 제대로 스래쉬 밴드로 거듭난 건 아무래도 “IX”부터라고 생각한다.

전작까지의 확실히 펑크풍이 강했던 리프는 (약간은 빈티날 정도로 얆게 녹음되었음에도)충분히 날렵한 스래쉬 리프로 변모했고, AC Wild의 확실히 좀 더 거칠어진 보컬, 새로 들어온 Rob “Kilister” Cabrini의 더욱 빨라진 드러밍은 폄하하자면 Venom 파워 업그레이드에 불과해 보이는 면이 많았던 2집까지의 스타일을 단숨에 Slayer를 꿈꾸는 수준까지 올려놓는다. 게다가 이 밴드 최고의 강점이라면 소위 ‘잘 나가는’ 밴드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지독한 유머감각인데(Anthrax 같은 밴드들의 유머와는 궤가 다르다), ‘Ilona the Very Best’ 같은 곡의 그루브하기까지 한 탁월한 스래쉬 리프와 일견 블랙스래쉬에 가까울 격렬한 솔로잉에 실리는 정신나간 가사를 보자면 아, 이탈리아가 유럽의 중국이라 그랬었지.. 하는 혹자의 촌평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정말 유쾌한 앨범이다.

[Discomagic, 1987]

Nokturnal Mortum “Істина”

Nocturnal Mortum의 2017년작. 한 2주 전에 신작이 나왔다 하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그 앨범을 예전처럼 쉬이 구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밴드 본인들도 페이스북 계정에서 우크라이나를 위한 모금까지 하고 있는 모양이고, 하긴 새 앨범이야 어쨌건 지금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임은 누가 뭐래도 분명해 보인다. 정치적으로 불온하다는 혐의를 많이 받아 왔고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지금껏 받고 있는 밴드이지만 어쨌든 전쟁은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히 알고 있지 않나 하는 인상을 준다. 각설하고.

오랜 활동기간 동안 스타일의 부침이 아주 없지는 않았고 특히 “Nechrist”에서 살짝 많이 빡세진 감이 없지 않았지만 밴드는 데뷔 이래 꾸준하게 풍성한 키보드의 포크풍 강한 블랙메탈을 연주했는데, 이 앨범에서도 그 방향 자체는 변함없긴 하지만 이전의 어느 앨범들보다도 지역색이 짙고 상대적으로 수그러든 블랙메탈의 기운은 때로는 게임음악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듣기 편하다. “The Voice of Steel”부터 이어진 미묘한 사이키델릭도 여전히 등장하는데, 믹싱을 굳이 Greg Chandler(Esoteric의 그 분)에게 맡긴 걸 보면 밴드의 의도한 방향성일 것이다. ‘Чорний мед’의 블랙메탈이라기엔 꽤나 느긋한 그루브는 예전 같았으면 생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The Voice of Steel”을 좋아했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울 웰메이드 앨범이겠지만 밴드의 예전 모습을 기대했다면 만듦새야 어쨌건 조금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겠다. 내가 좀 그렇다.

[Oriana,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