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orphis “Elegy”

설을 맞아 간만에. 이게 1996년이었나 그 때 받았던 세뱃돈…을 들고 가서 산 앨범이었는데(자주 가는 동네 음반점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면에서는 지금보다 좋았던 시절인 셈이다) 원래 포크의 기운이 없는 밴드는 아니었지만 이 앨범에서는 데스메탈의 기운은 어디다 갖다 버리고 지역색 – 달리 말하면 ‘뽕끼’ – 강한 멜로디를 근간으로 삼은 음악을 들고 나왔다. 물론 그런 경향은 이후의 앨범들에서도 꾸준히 이어지지만, 그래도 그 ‘뽕끼’를 좀 더 우리에게 익숙할 만한 형태로 다듬어서 나온 게 이후의 앨범들이라면 “Elegy”는 밴드가 그네들의 포크 바이브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앨범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덕분에 1996년은 새해부터 액땜한다는 느낌으로 시작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앨범의 만듦새보다는 내 짧은 귀 탓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앨범은 시간이 지나자 짧은 귀마저도 충분히 끌어당길 매력을 보여준다. 데스메탈의 전형에 들어맞는 곡은 하나도 없지만 비교적 밴드의 그 이전의 모습에 가까운 ‘On Rich and Poor’의 리프도 공격성을 깎아낸 질감만을 제외하면 충분히 괜찮았고, 뽕끼 충만한 키보드가 당혹감을 불러오지만 듣다 보면 트로트의 매력을 깨우친 King Diamond스럽기도 한 ‘Cares’, Candlemass풍에 포크 바이브를 끼얹어 풀어내는 ‘Elegy,’ 이 밴드가 사실은 언제든지 프로그레시브해질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음을 은근히 암시하는 Amorphis식 스페이스록 ‘Relief’ 등은 들으면서 입으로 감탄이 나오는 곡은 어쨌든 아니었지만, 1996년의 그 기억이 사실은 내 과오였음을 인정하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확실한 인상으로 남았다.

뭐, 그리고 신선함의 견지에서라면 데스메탈의 역사에서 이만한 앨범도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긴 신선하다 못해 데스메탈의 양식을 무시한 건 아닐까 싶은 앨범이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사실은 좋은 데스메탈 앨범이라기보다는 그냥 좋은 ‘메탈’ 앨범이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Relapse, 1996]

Boyd Rice Experience, The “Hatesville!”

Boyd Rice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애초에 앰비언트로 음악을 시작해서 무려 Mute에서 (NON의 이름으로)앨범들을 냈던 뮤지션답게 네오’포크’에 가까운 음악을 만든 적은 그 (불한당들처럼 생긴)친구들과 함께 한 앨범들을 제외하면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음악 활동만큼이나 그 논쟁적인 개똥철학으로 유명한 인물답게 앰비언트류의 음악만 만든 건 아니었고, The Boyd Rice Experience는 그런 인물답게 ‘spoken word’류의 앨범을 내기 위한 프로젝트인 것 같다. 당장 앨범에 본격 뮤지션이 아닌 Adam Parfrey(Feral House 출판사 사장) 같은 인물이 끼어 있다.

바꿔 말하면 암만 좋게 봐 주려고 하더라도 사실 음악을 기대하고 들을 앨범은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들에게 깃든 증오를 까발린다는 류의 뮤지션의 의도답게 가사도 폭력성과 여성 혐오 등으로 가득하다. 그러니까 ‘Love will Change the World’ 같은 제목은 누군가에게는 보기에 불쾌할 정도로 지독한 농담일 것이다. 그런 지독한 가사 뒤에 깔리는 음악은 기본적으로 거칠지만, 때로는 유치하게까지 들리는 라운지 재즈도 등장한다. 이 기묘한 분위기를 Charles Bukowski 같은 이에 비교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Charles Bukowski의 경우 그 천박함이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깃든 모습일 수 있음을 까발리는 신랄함을 보여준다면 Boyd Rice가 그런 신랄함이 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스스로의 논쟁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사악한’ 음악은 이런 류의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들으면서 이만큼 사람 불쾌하게 만드는 앨범도 별로 없다.

[Hierarchy, 1995]

Boyd Rice & Fiends “Wolf Pact”

누가 봐도 나쁜놈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우리가 남이가?’한다면 그 패거리 전체가 불한당처럼 보일 거라는 세상의 진리를 반영한 것인지 Boyd Rice는 이 앨범에서 ‘Friends’가 아닌 ‘Fiends’를 달고 등장했다. 그런데 그렇게 같이 나온 이들이 Douglas P.와 Albin Julius이니 친구라 하건 불한당이라 하건 단어 하나로 뭉뚱그려질 수 있는 사람들인가, 일단 저 셋 중에 Boyd Rice가 중심에 올 수 있을 만한 사람인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뭐 셋 다 어쨌든 장르의 거물이긴 하고, 서로 안면 없는 사이도 아니니 가능했을 프로젝트일지도 모른다.

음악은 역시 내 음악에 양보란 없다고 고집부릴 만한 3명을 모아 놓아서인지 다양한 스타일을 모두 담고 있다. 전형적인 Death in June 스타일의 포크 ‘Watery Leviathan’으로 앨범을 시작하지만, ‘The Forgotten Father’나 ‘Rex Mundi’에서는 Der Blutharsch풍의 ‘bombastic’한 인더스트리얼을 들을 수 있고, ‘Murder Bag’의 기묘한 분위기 아래 실리는 장광설은 Boyd Rice식의 말장난 내지는 개똥철학에 가까워 보인다. ‘Fire Shall Come’에서는 Blood Axis풍의 거친 사운드도 등장한다. Boyd Rice식의 ‘지독한’ 스타일의 유머 정도를 제외하면 앨범을 관통하는 일관된 스타일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나쁘게 얘기하면 사실 좀 난삽하게 들릴지 모를 앨범이지만, 수록곡 어느 하나 허투루 넘길 만한 곡도 없는 만큼 위에 이름이 나온 뮤지션들을 좋게 들었던 사람이라면 분명 만족할 만한 앨범이다. 좋게 얘기하면 다양한 스타일을 모두 담고 있는만큼 아무리 망해도 한두 곡 정도는 분명히 건질 법한 앨범이다. Douglas P.가 참여한 앨범들 중에서는 비교적 싸게 구해지는 물건인만큼 장르의 입문자용으로도 좋을지도.

[Neroz, 2002]

Afflicted “Prodigal Sun”

Afflicted는 꽤 특이한 모습을 보여준 밴드다. 정규 앨범은 두 장만을 내고 사라진 스웨디시 데스메탈 밴드…이지만, 2집인 “Dawn of Glory”는 본격 파워메탈 앨범인 덕분에 데스메탈 밴드로서의 Afflicted는 흔히 잊혀지곤 한다. 하긴 두 장 중에 한 장이 파워메탈인데 과연 이 밴드를 데스메탈 밴드라고 부르는 게 맞나… 하는 의문도 있다. 신기할 정도로 1집과는 판이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저 2집을 듣자면 밴드가 데스메탈 밴드로서의 모습을 별로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짐작도 든다. 물론 짐작일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잊혀지기에 “Prodigal Sun”은 많이 아까운 앨범이다. Nocturnus가 “The Key”을 내놓은 때가 1990년이었으니 “Prodigal Sun”의 음악이 앞서가는 스타일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만 멜로딕하면서도 테크니컬한 리프, 때로는 거의 즉흥에 가까울 정도로 복잡하고 때로는 스페이스록스러운 부분까지 등장하는 급격한 변화가 이어지다가 어느샌가 매끄럽게 마무리짓는 구성은 그 시절 다른 밴드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특히나 ‘Astray’는 메탈에서 라이트모티프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어느 모범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Spirit Spectrum’은 그러면서도 이 밴드를 왜 스웨디시 멜로딕데스와 연결지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를 제시한다. 그 시절 Sunlight Studios에서 나온 최고의 앨범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Nuclear Blast가 ‘거기만 들어가면 다들 비슷해진다’ 식의 레이블이 아니던 시절이었다. 돈은 중요하지만 돈 없이도 나름 괜찮았던 시절이었던 셈이다.

[Nuclear Blast, 1992]

Kathe Green “Run the Length of Your Wildness”

그 시절 많이 나왔던 이게 팝이냐 포크냐 자체가 애매한 그런 류의 앨범 중 하나지만 일단 Deram에서 나온데다 음악 자체도 클래식의 반열의 말석에는 올려줄만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음악을 떠나서도 유명한 분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Deram에서 나왔던 이 앨범이 2008년에야 CD화가 된 건 좀 의아하기도 하다. 뭐 덕분에 나름 프리미엄도 붙은 앨범이기도 했고, 저 커버는 LP 버전으로 봐야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배어나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혼자서 생각해 보는데, 그렇다고 딱히 음악이 그로테스크한 스타일은 아닌만큼 역시 전혀 근거없는 상상일 뿐이다. 넘어간다.

흔히 바로크 팝이다 스윙잉 런던이다 얘기도 많은 류의 스타일이지만(커버 때문인지 선샤인 팝 얘기는 의외로 별로 없더라) 그래서 이 음악이 구체적으로 어떤 음악이라고 집어 얘기할 자신은 없다. 일단 뮤지션 본인의 이력이나 앨범이 나온 시절도 있는지라 듣다 보면 Dana Gillespie의 “Foolish Seasons”가 먼저 생각나지만, 따지고 보면 “Foolish Seasons”도 Donovan스러움이 묻어나는 오케스트레이션을 얹어낸 팝과 포크의 느슨한 경계에 놓여 있는 음악이었던만큼 이 앨범도 그 정도로 얘기하는 게 안전한 설명일 것이다. ‘Promise of Something New’ 같이 좀 더 명확하게 Donovan의 모습이 보이는 곡도 있고… 하지만 장르의 미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라면 그래도 ‘Primrose Hill’을 골라야 할 것이다. 뭐 하나 저 커버의 이미지와는 도통 어울리지 않지만 멋지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Deram, 1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