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throne “Eternal Hails……”

“Arctic Thunder”에서 그래도 좀 예전 스타일로 돌아오나 했다가 “Old Star”의 Celtic Frost풍이지만 조금은 너무 올드하지 않나 싶었던 음악은 이번 앨범에서 좀 더 나아갔다. 전작도 그리 곡들이 짧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좀 더 길어진 곡들의 전개는 Celtic Frost를 넘어서 때로는 Candlemass풍을 떠올리게 하는 데도 있다. 물론 리프는 그보다는 좀 더 흥겨운 편이고, 때로는 Iron Maiden 연주력 다운그레이드 같은 부분까지다 나온다. 말하자면 Nocturno Culto의 보컬을 빼고 생각하면 블랙메탈다운 면모는 생각보다 많지 않은 음악이다. Fenriz가 이것저것 음악 참 많이 듣는 이라는 건 이미 꽤 잘 알려진 얘긴데, “Arctic Thunder” 이전까지는 앨범마다 본인이 즐겼던 장르들 중 하나를 정해서 Darkthrone풍으로 풀어냈다면 “Old Star”부터는 다양한 스타일들을 Darkthrone의 이름으로 엮어서 풀어내기 시작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런 면모는 ‘Voyage to a North Pole Adrift’나 ‘Lost Arcane City of Uppakra’ 같은 비교적 둠적인 곡들에서 좀 더 두드러지는 편이다. 극적인 맛을 내려고 했는지 Iron Maiden식 리프는 물론, 미니무그나 멜로트론까지 등장하는 이 음악은 그리 복잡한 전개는 아니지만 꽤 다양한 면모들을 보여준다. 물론 밴드의 전형처럼 ‘Hate Cloak’처럼 비교적 타이트한 전개를 보여주는 곡도 있지만, 결국 앨범은 둠을 중심으로 스래쉬, NWOBHM 등의 스타일들을 좀 더 ‘구수한’ 형태로 풀어내고 있다. 덕분에 블랙메탈 이전에 존재했던 하드록/브리티쉬 헤비메탈 고전에 관심이 없다면 아무래도 좀 더 심심하게 들릴 법하다.

뭐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게 진정한 ‘올드스쿨’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Peaceville, 2021]

Ripping Corpse “Dreaming with the Dead”

Ripping Corpse는 1992년의 “Industry” EP를 제외하고는 정규작으로는 이 앨범만을 발표했다. 물론 클래식이라기에 부족함이 없는 앨범이지만, 아무래도 데스메탈의 ‘전형’보다는 스래쉬의 색깔이 훨씬 짙은 편이다. 꽤 유니크한 데스래쉬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쨌든 스래쉬와 데스의 경계는 꽤 모호한 편이고, Ripping Corpse는 스래쉬 리프를 스래쉬란 말을 붙이기 망설여질 정도로 극단화한 음악을 연주했으니(이 시절, 이런 표현이 어울릴 만한 다른 앨범이라면 Infernal Majesty의 “None Shall Defy” 정도일 것이다), 데스메탈이라 하기에 부족함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Erik Rutan과 Shaune Kelley의 기타는 매우 복잡하면서도 스피디하면서도 확실히 ‘불길한’ 기운의 리프들을 연주했고, Scott Ruth에 대한 평가는 갈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 앨범에서 Scott의 보컬은 John Tardy에 비견할 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앨범이 보여주는 미묘한 ‘둠적인’ 면모와(특히 ‘Dreaming with the Dead’와 ‘Rift of Hate’), 군데군데 명민하게 컨벤션을 뒤트는 구성은 이 그리 프로그레시브하지 않은 앨범의 전개를 예상하기 어렵게 한다. Erik Rutan과 Shaune Kelley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후 Morbid Angel과 Hate Eternal에서 계속해서 뛰어난 곡들을 연주했지만, 이 앨범에서의 성취의 수준에 다시 이르지는 못했다. 메탈보다는 햄버거가 떠오르는 이름 때문이었는지 거의 재발매로 연명하던 이 레이블의 가장 대표적인 밥줄이었던 앨범이기도 하다. 드립이 좀 과했나?

[Kraze, 1991]

Silence “Vision”

지구레코드에 Roadrunner라면 따지지 않고 웬만하면 사고 보던 시절을 마무리했던 앨범은 Amen의 “Amen”이었다. 사실 앨범은 그리 나쁘지 않았고(가 아니라 지나서 생각하면 꽤 괜찮았고), 비슷한 시기에 함께 라이센스됐던 Downer 같은 밴드와는 확실한 레벨 차이를 보여주었지만 아무리 거친들 한참 블랙메탈을 열심히 듣고 있던 귀에 어필하기는 어려운 음악이었다. Ross Robinson이라는 이름이 내 컬렉션에서 없어진 즈음이기도 할 것이다. 뉴 메탈을 딱히 열심히 들었던 적은 없지만 저 이후로는 궁금해서라도 사 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Amen에서 꽤 거친 톤의 기타를 연주했던 Sonny Mayo가 소시적에는 스래쉬를 연주했다는 사실은 꽤 흥미로웠는데, Anthrax마냥 그루브한 부분도 있지만 때로는 Demolition Hammer 정도로 과격해지기도 하는 스래쉬가 담긴 앨범이었던만큼 왜 망했는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두 장만 더 냈다면 좀 더 많은 이들이 Silence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Echoes of Damnation’처럼 밀어붙이는 곡도 있지만 ‘Voice of the Pariah’처럼 모슁에 어울릴 그루브를 선보이는 곡도 있고, ‘Necromantic’처럼 한창 복잡하던 시절의 Dark Angel을 의식했을까 싶은 프로그레시브 스래쉬도 있다. 시절이 스래쉬 밴드로서 빠른 등장은 아니었으니 공부는 열심히 하고 나왔던 셈이다.

네덜란드의 기복도 잘 없는 부틀렉 명가 Evil Eye에서 찍은 짝퉁이 많이 돌아다니지만 30달러 정도면 오리지널을 구할 수 있으니 기왕이면 그쪽을 권해본다.

[Self-financed, 1991]

Mgla “With Hearts Towards None”

이제는 블랙메탈계의 자타공인…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꽤 떠오른 슈퍼스타 Mgla의 앨범들 중 한 장을 고른다면 개인적으로는 이 앨범이다. 앨범 자체만 보면 사실 “Crushing the Holy Trinity”가 있겠지만 그 앨범은 애초에 Mgla의 곡을 들으려고 사는 스플릿이 아니니 넘어가자. 솔직히 그 앨범을 들으면서도 Mgla에 대해서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고, “Presence” EP는 꽤 괜찮았지만 그 즈음 듣던 Peste Noire의 데뷔작 덕에 그리 기억에는 남지 못했다. 말하자면 처음으로 Mgla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건 이 앨범이었으니, 첫끝발이 꽤나 확실했던 사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음악은 고전적인 형태의 블랙메탈을 세련되게 풀어낸 스타일인데, 진한 멜로디와 함께 템포를 뒤트는 면모나 간혹 느껴지는 펑크풍(특히 ‘IV’의 후반부), ‘III’의 (과장 좀 섞으면)이렇게 칠 수 있었나 흠칫하게 되는 Iron Maiden풍의 솔로잉을 제외하면 무척이나 전형적이다. Dissection에서 멜로딕 데스의 기운을 걷어낸 듯한 스타일의 리프는 특히 ‘VII’에서 빛을 발하는데, 질주하는 리프가 호전적인 심벌에 얹혀서 나아가다가 점차 템포 다운되면서 Kriegsmaschine 풍의 ‘카오틱’으로 변하는 모습은 M과 Darkside가 여태껏 만들어낸 곡들 중 최고의 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어둡지만 늘어지지 않는 분위기에 비해서는 꽤나 허무함을 내지르는 가사도 역설적으로 잘 어울린다. 아마 “Exercise in Futility”가 생각보다 너무 밝다고 느껴졌다면 그 이유의 상당부분은 이 앨범 때문일 것이다.

단점이라면 이 앨범을 들으면서 더 이상 Kriegsmaschine의 신보가 기다려지지 않기 시작했다는 정도? 굳이 흑백 커버의 블랙메탈 앨범을 찾아듣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즐겁게 들을 만한 앨범이다.

[Northern Heritage, 2012]

Lisa Gerrard & Pieter Bourke “Duality”

새해에는 좀 더 조용하고 차분한 시간을 보냈으면 했는지 2022년 첫 앨범이 Lisa Gerrard인데, 조용하고 차분한 시간을 위하여 꺼내는 앨범이 이런 류라면 그건 그거대로 조금 문제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분명 좋아하는 앨범인데 피곤할 때 들으면 숙면용으로도 그만인 앨범인지라 새해 소망 같은 건 전혀 모르겠고 어쨌든 1월 1일은 푹 자고 싶은 걸까 싶기도 하다. 이 횡설수설함에서도 느껴지지만 내가 생각해도 1월 1일 벽두부터 들을 만한 앨범일까 하는 생각은 든다. 각설하고.

사실 Lisa Gerrard가 Dead Can Dance를 나온 이후 정말 Dead Can Dance의 스타일을 유지한 앨범은 많지는 않은데(일단 영화음악을 하도 많이 만들다보니), 이 앨범도 사실 Dead Can Dance와는 엄연히 다르지만 그래도 원래의 스타일이 많이 남아 있었던 건 이 앨범까지였을 것이고, 이후로는 영화음악을 제외한 음악들도 확실히 예전보다는 좀 더 실험적인 방향으로 기울었다. Pieter Bourke도 Eden의 멤버였으니 그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할 결과처럼 보이는데, 일단 Sean Bowley의 Martin Gore스러운 목소리가 음악과는 좀 따로 놀았던 Eden이었던만큼 좀 독특한 고딕 이씨리얼을 들으려는 이에게는 이쪽이 좀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 이만큼 클래식 물을 의도적으로 피해가다 못해 원시적인 모습까지 비추는 스타일은 이 장르에서 분명 보기 드물다. ‘The Unfolding’이나 ‘Sacrifice’, ‘The Human Game’가 개인적인 앨범의 백미.

[4AD,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