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erald “Armed for Battle”

USPM의 hidden gem! 식으로 잘 알려진 앨범이지만(일단 레이블 이름부터 저 모양이기도 하고) 2018년 이전까지 한 번도 재발매된 적이 없었던 덕에 상태 형편없는 판이 350유로부터 거래되고 있었으므로 들어본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문제는 재발매한 레이블이 No Remorse라는 점인데, 천연덕스레 Blind Guardian 부틀렉을 찍어내던 역사가 있는 곳인지라 이 앨범이 정식 재발매인지는 약간 의문이 없지 않다. 뭐 라이너노트까지 넣어서 레이블이 팍팍 밀어주고 있으니 부틀렉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겠지 하고 넘어간다.

이 시절 USPM으로는 이색적으로 크리스천 메탈 밴드인데, ‘Winds of Doom’의 (당시로서는)꽤 어두운 분위기를 보면 이게 가사랑 어울리는 걸까 의구심이 없진 않지만 음악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때는 벌써 1987년이었으므로 Fates Warning까지 올라갈 것도 없이 Warlord나 Heir Apparent 등이 이미 이런 류의 ‘epic’한 스타일의 전형을 만들어낸 이후였고, 그렇다고 Jag Panzer류처럼 달리는 맛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었으니 앨범이 왜 묻혔을지는 쉬이 짐작은 가는 편이다. 그래도 Larry Philips의 적당히 허스키하면서 힘있는 보컬과 ‘Teenage Suicide’ 같은 곡의 극적인 구성을 보자면 앨범 한두 장 더 나와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르의 팬이라면 일청을 권해본다…만, 하긴 장르의 팬이 아니라면 관심조차 없긴 하겠구나.

[Metal Gem, 1987]

Drott “Orcus”

Ulver와 Enslaved의 멤버가 모여서 만든 프로젝트! 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지만 그 멤버가 Garm이나 Ivar Bjørnson, Grutle이 아니라 Arve Isdal과 Ivar Thormodsæter라니 조금은 김이 새지 않을 수 없고, 이 멤버들의 이력을 보매 Drott의 음악이 들어보지 않아도 블랙메탈은 아니겠다는 건 능히 짐작할 수 있다. Ivar Thormodsæter는 “The Assassination of Julius Caesar”부터 Ulver의 드럼을 맡았고, Ulver의 앨범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특징을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저 시절의 Ulver의 음악이 거의 영화음악에 가까울 정도로 회화적이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Flowers of Evil”처럼 대놓고 영화음악처럼 만든 앨범도 있고). Arve Isdal은 Enslaved가 바야흐로 블랙메탈계의 Pink Floyd를 지향하던 “Below the Lights”부터 밴드에 참여했으니 역시 블랙메탈의 전형과는 애초에 조금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다.

그렇게 나온 앨범은 블랙메탈의 색채가 없진 않지만 드론이나 포스트록에 좀 더 다가간 음악을 담고 있고, 프로그레시브한 전개가 주가 되지만 포크나 재즈의 기운도 감도는 기이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신서사이저가 구현하는 자욱한 분위기 가운데 귀를 찌르는 리프가 등장하고, 때로는 적당히 팝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면모는 (과장 좀 섞으면)”Discipline” 시절의 King Crimson 같은 구석도 있다. 그렇지만 사실 곡들 하나하나가 모두 회화적이라는 점 외에는 서로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는만큼 단정적으로 얘기하긴 어렵거니와 적절치도 않아 보인다. 다만 ‘The Marauders’의 묵직한 사이키 둠과 ‘By the Lunar Lake’의 미니멀한 포크, ‘The Strait’의 Enslaved식 스페이스록 등, 모든 곡들이 앨범을 다 듣고 나면 하나의 분위기로 이어지는 기묘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정말 멋진 음악이다.

[By Norse, 2021]

Lord Bane “Age of Elegance”

Lord Bane의 유일작. 사실 Fates Warning/Queensrÿche류의 90년대 미국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를 얘기한다면(이런 얘기를 누가 하긴 하느냐는 의문은 일단 넘어가고) 언급될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오리지널을 구하기도 사실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이상할 정도로 ‘hidden gem’ 취급을 받는 앨범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오히려 CD로 나온 오리지널보다는 Night of the Vinyl Dead에서 재발매한 LP가 좀 더 희귀반 대접을 받는데, 300장 한정으로 나온 LP를 아직도 30유로 밑으로 구할 수 있는 걸 보면 평이 좋았거나 어쨌거나 판매고는 형편없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일단 저 NOTVD에서 나온 LP가 제 값에 나오는 경우가 그리 흔한 건 아니다.

음악은 꽤 수려하다. 4인조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가 첼로에 더블베이스까지 잡아가며 꽤 풍성한 사운드를 구현하고 있는 게 특징적인데, 키보드가 꽤 화려하게 들어가긴 하지만 그럼에도 곡의 전면에 나서지는 않고 기타가 주도하는 멜로디라인 뒤에서 분위기를 잡아가는 스타일이고, 그 분위기도 통상의 USPM보다는 확실히 더 어두운 편이다. 그렇다고 “A Pleasant Shade of Grey” 같은 잿빛의 분위기는 아니고, 덕분인지 가사도 사랑 얘기 위주라는 게 이런 류의 밴드로서는 드문 모습이다. ‘Queen Anne’ 같은 곡은 이런 밴드가 Dream Theater를 참고했을 때 나올 만한 스타일을 꽤 준수하게 구현하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고음부만큼은 Midnight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 Shawn Ames의 보컬(다들 이 분이 보컬이라는데, 부클렛에는 이 분이 노래했다는 얘기는 안 쓰여 있긴 하다)도 극적인 맛을 살려내고 있다.

확실히 가벼운 녹음이 아쉬운 감은 없지 않지만 좋은 앨범이다. 하긴 레이블부터가 녹음 잘 된 앨범이 나오기는 요원해 보이기는 하다.

[Nordic Metal, 1994]

Cowboy Junkies “Ghosts”

소시적 Hunger Project라는 빈티나는 이름으로 밴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보이지만 Cowboy Junkies가 장사를 하는 데 그리 재주가 있는 이들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앨범에 와서 그런 생각을 좀 더 굳히게 되었다. 이 앨범의 최대 단점은 2018년작이었던 “All That Reckoning”을 LP로 재발매하면서 “All That Reckoning”과의 LP 2장짜리 패키지로만 판매되었다는 점인데, 30분 정도밖에 안 되는 앨범을 따로 팔고 싶지 않았는지는 모르나 이러면 나처럼 “All That Reckoning”을 이미 갖고 있는 사람은 답이 없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주변에 했더니, 그래서 너처럼 갖고 있는 사람도 한 장 더 사도록 했으니 오히려 최고의 장사치라는 얘기를 하더라. 조금 헷갈리지만 이쯤에서 넘어가고.

음악은 “All That Reckoning”의 연장선상에 있는 스타일이다. 밴드의 평소보다 좀 더 격정적이고 거친 맛이 있었던 “All That Reckoning”의 투어 중에 작업을 시작했다니 당연한가 싶기도 한데, 그러다가도 ‘Breathing’처럼 단정한 피아노에 Margo Timmins의 보컬을 얹은 발라드를 보면 밴드가 본연의 색채를 유지하고 있음도 명확하다. 그렇게 격정과 관조를 안배한 A면에 비해 B면은 솔직히 좀 평이하게 느껴지지만, 우쿨렐레와 트럼펫을 특이하지만 그리 우습지는 않게 써먹은 ‘Ornette Coleman’은 – 이 앨범에 어울리는 곡일지는 좀 애매하지만 – 그래도 귀에 박힌다.

솔직히 A면의 수려함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 앨범인데, 생각해 보면 지금껏 꾸준히 앨범을 낸다는 게 다행한 건가 싶어서 불만이라고까진 못하겠다. 그런데 저번부터 왜 이렇게 앨범 커버가 Inside Out에서 나오는 프로그 앨범처럼 나올까?

[Latent Recordings, 2020]

Hunger Project “The Same Inside / Assembly”

컨트리나 아메리카나 류의 장르에는 별 아는 바가 없지만 Cowboy Junkies는 꽤 좋아하는 편인데, 아무래도 이 밴드가 보통 얼트-컨트리 레떼르를 달고 앨범을 팔기는 하지만 정작 음악은 꽤 포크나 블루스 테이스트가 강해서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내가 딱히 블루스 취향인건 아니지만, 어쨌든 컨트리 소리를 듣는 밴드이다 보니 블루스 색채도 짙은 정도까진 아닌 이 밴드가 귀에 들어오기에는 취향상 무척 좋은 조건이었을 것이다. Margo Timmins가 90년대 여성 싱어송라이터들(Lilith Fair에 나오기 딱 좋은 그런 스타일의 뮤지션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오기 전에 일종의 롤모델을 제시하는 마냥 꽤 훌륭한 보컬이었다는 것도 그렇고.

Hunger Project는 그 Cowboy Junkies의 전신인데, Cowboy Junkies의 인터뷰에 의하면 Alan Anton과 Micheal Timmins가 소시적에 하던 형편없는 음악을 연주했던 밴드…정도로만 얘기가 나오는지라 딱히 이 7인치 싱글에 쓰여 있는 외에 추가적인 정보는 잘 모르겠다. 다만 Cowboy Junkies의 음악과는 사뭇 다른 별다른 연결점은 없어 보이는 Joy Division을 의식했을 포스트펑크를 연주하고 있으니, 이들이 어린 시절에는 뭘 듣고 자랐었고, Cowboy Junkies의 음악에서 은근히 풍기는 약 냄새와 펑크풍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지 짐작케 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곡 자체로만 보면 기타의 쟁글거림이 귀를 좀 끄는 면이 있긴 해도 이 정도라면 습작 얘기를 안 듣기는 좀 어렵잖을까 싶다. Liza Dawson-Whisker의 보컬도 노래에 안 맞는 건 아니지만 Margo Timmins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하긴 이런 경험이 있었으니 Cowboy Junkies를 만들 때는 굳이 여동생까지 데려온 거겠지.

[Latent Recordings,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