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Leprosy”

Chuck Schuldiner가 떠난지도 벌써 20년이 됐다고 추모가 그치지 않는 차에 편승하며 간만에 들어본다. 사실 레전드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데스메탈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다양한 밴드에 발을 담그진 않았지만 참여했던 밴드의 앨범들은 정말 구린 걸 찾을 수 없었던(물론 기획 자체부터 잘못됐던 Voodoocult는 빼고) 희대의 뮤지션이었지만 그래도 단 한 장을 고른다면 나로서는 아무래도 “Leprosy”다. “Human”과 둘 중에 많이 고민하겠지만 이게 ‘Pull the Plug’가 있는 앨범이니 어쩔 수 없다. 데스메탈에서 이 곡에 비견될 수 있는 ‘히트곡’을 꼽는다면 ‘Hammer Smashed Face’ 정도밖에 없지 않을까? 히트곡 운운하는 자체가 좀 웃기는 얘기일 수 있는 장르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이 앨범이 후대에 미친 영향은 워낙에 잘 알려진 나머지 이제는 굳이 첨언할 필요조차 없는 얘기가 되었는데, 그걸 넘어서 이 앨범에서 완성된 데스메탈의 컨벤션을 이 앨범만큼 잘 구현한 앨범도 이후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Pull the Plug’ 말고도 ‘Open Casket’ 같은 클래식도 있고, ‘Choke on Me’의 은근한 Candlemass스러움은 이 시절 플로리다 데스메탈이 은근히 보여주곤 했던 때로는 둠적인 분위기를 예기하기도 하며, 항상 뛰어난 연주자였던 Chuck이 보컬리스트로서 절정의 기량을 보여준 것도 이 앨범에서였다고 생각한다. ‘Leprosy’를 들으면서 커버의 저 문둥병 환자?가 정말로 튀어나와서 노래를 한다면 이렇지 않을까 생각하던 그 날의 기억이 있다. 장르의 미덕으로서 도대체 빠뜨리는 게 없는 셈이다. 대체 이 분은 이런 걸 20대 초반에 어떻게 만들고 연주한 걸까?

[Combat, 1988]

Entheos “Le Zahir”

퀘벡 블랙메탈을 얘기하면 떠오르는 레이블들이 Sepulchral Prod.나 Tour de Garde 같은 곳들이다 보니(망했지만 Autistiartili도 있었구나)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런 점을 생각하면 Entheos는 꽤 특이한 사례에 속한다. 노르웨이풍 밴드도 많고, 동네가 동네인지라 Peste Noire나 Kristallnacht 같은 밴드들을 따라갔음이 역력한 밴드들은 더욱 많아 보이지만 어쨌든 대개는 소위 ‘차가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진력하는 편이라면, Entheos는 그 흐름에서 굳이 벗어나진 않지만 독특한 방식으로 이를 따라간다. 고전적인 스타일보다는 소위 포스트-블랙에 가까운 음악을 연주하면서, 사이키델릭에 포크에 둠에 프로그레시브에 재즈에… 이르기까지 쉬이 분류할 수 없을 다양한 장르들을 섞어낸다. 그러면서도 근래의 드론이나 슬럿지 스타일은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게 2010년대 브루클린의 쿨가이들과도 확실히 다르다.

그러다 보니 앨범은 때로는 당황스럽다. ‘Cité Perdue’ 같은 곡의 블랙메탈에서 아마도 보기 어려울 통통 튀는 리듬은 곡의 흐름에서는 이상할 것까진 없어 보이지만 내가 지금 무슨 앨범을 듣는 건지 헷갈리게 하는 구석이 있고, ‘L’Orpheline’의 어쿠스틱 연주와 느릿하지만 기묘한 그루브도 장르의 컨벤션과는 분명히 거리가 있다. 보르헤스의 작품에서 컨셉트를 따 온 앨범이어서인가? 앞으로의 전개가 잘 예상이 안 된다는 점에서는 근래의 블랙메탈 앨범들 중에서는 단연 손꼽힐 사례라고 생각한다. 나쁘게 얘기하면 청자의 입장에서 앨범을 듣다가 초점을 놓치고 길을 잃기 쉬워 보인다. 이런 음악을 프로그레시브 블랙메탈이라고까지 하긴 어렵겠지만 듣기에 꽤나 집중을 요하는 점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한번쯤은 집중해 볼 만한 앨범임은 분명하다. 우리의 Pitchfork가 퀘벡 블랙메탈 따위를 리뷰하실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지만, 이 정도면 Pitchfork와 다이하드 블랙메탈 매니악의 취향의 엄청난 간극을 대략 정리할 수도 있지 않을까?(물론 사견이다) 무척 ‘쿨한’ 블랙메탈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재미있게 들었다.

[Atondo Musique, 2017]

Subway Mirror “Subway Mirror”

존재와 이름이야 꽤나 알려져 있었으나 정작 실제로 들어봤다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던 Dan Swanö(Edge of Sanity의 그 분 맞음)의 얼터너티브 프로젝트. 그러니까 몰랐던 사람이라면 이 간략한 설명만으로도 뭐가 대체 어쨌다고? 소리가 나올 정도인데, 덕분에 부클렛에는 왜 이런 프로젝트가 등장했는지에 대한 Dan Swanö의 꽤 구구절절한 변이 등장한다. 대충 요약하자면, 자기 커리어가 데스메탈 일색인 건 알지만 자기는 기본적으로 팝-록 가이고 메탈 말고도 좋아하는 음악이 많다. 하지만 나도 바보는 아니므로 성공을 위해 데스메탈에 진력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나머지 음악이 싫어진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이런 밴드가 생겨나게 됐다. 하지만 데스메탈 말고 다른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다가는 트루하지 못하다는 말을 듣는 시절이었고, 덕분에 데스메탈을 팔아먹고 있지만 사실은 얼터/펑크 가이였던 레이블 주인장들도 입 싹 닫고 있었다 뭐 이런 얘기들이다. 말하자면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 실사판을 이미 그 시절 찍고 있었던 셈이다.

음악은 꽤 괜찮다. 그런지 리프를 때로는 Smashing Pumpkins의 젊은 시절을 생각나게 할 정도의 90년대 얼터너티브풍과 함께 엮어낸 음악인데, 아무래도 경력이 경력인지라 프로그한 기타 연주도 등장하지만(이런 부분은 사실 Nightingale이나 Unicorn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하긴 기타 치는 Peter Edwinzon도 Unicorn의 그 분이다) 기본적으로 그 시절 얼터너티브가 그랬듯 조금은 그림자가 졌지만 신나는 펑크 리프와 멜로디의 음악이다. Alphaville의 ‘Forever Young’ 얼터너티브 버전 커버를 듣자면 ‘팝-록 가이’를 자처하던 Swanö가 킬킬대면서 연주하는 모습이 떠오르는데, 그 프로그 터치 덕분인지 손끝에 밴 메탈의 기운 때문인지 때로는 Collective Soul 같은 밴드가 떠오르기도 한다(특히 ‘Clouds’에서).

취향을 떠나서, 90년대 얼터너티브와 Dan Swanö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무척 재미있을 만한 앨범이다. 솔직히 듣고 좀 기가 막혔다. 좋은 뜻으로. Divebomb에서 금년 재발매…라는데, 사실 재발매라 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다. 그 전에 피지컬 자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Divebomb, 2021]

Nattvindens Gråt “Där svanar flyger”

Darkwoods My Betrothed의 사이드 프로젝트 격으로 시작된 이 밴드는 실력만큼 빛은 못 봤다 할지언정 어쨌든 그래도 꽤 괜찮았다는 정도의 평은 듣곤 하는 Darkwoods My Betrothed에 비해서도 확실히 주목받지 못했다. 사실 Darkwoods…나 이 밴드가 이렇게 주목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들 중 하나는 Tuomas Holopainen이 아닐까 싶다. 이런 비인기 프로젝트를 여러 개 함께 굴리기에는(그러고보니 Furthest Shore도 있구나) Nightwish의 핵심인 이 양반은 아무래도 너무 바쁘다. 애초에 다른 밴드들이 앨범이고 뭐고 이것저것 모두 합쳐서 여태까지 팔아먹은 판매고를 따져봐야 “Wishmaster” 한 장만 못할테니 본인도 의욕까지 부릴 필요는 없었을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그래도 “Angels Fall First”가 나오기 전 Tuomas마저도 배고팠을 시절에 나왔던 이 데모는 마냥 만듦새를 띄워줄 건 아니긴 하지만 수려한 건반과 꽤 인상적인 리프에서 미래를 기대하게 할 만한 둠 메탈을 담고 있다. 사실 헤비메탈의 기운이 강하다는 점에서는 둠보다는 그냥 다크 메탈 정도로 얘기하는 게 더 낫지 싶은데, 아무래도 이런 류의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다크 메탈은 Bethlehem 정도는 돼야 붙여주고 싶은 레떼르다. 데모치고는 꽤 괜찮은 음질 덕에 그 시절 블랙메탈 앨범들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었던 ‘자욱한 분위기’와도 거리가 있다. 특히나 앨범에서 그나마 공격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Fjälldalen’의 전형적인 헤비메탈 리프와 그럼에도 명확하게 들리는 베이스 연주는 이 밴드가 애초에 동향의 익스트림메탈 밴드들과는 출발점 자체가 좀 달랐음을 알려준다. 하긴 Tiamat이 “Wildhoney”를 낸 게 1994년이었으니 그 정도 음악을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어둡거나 공격적인 사운드를 원한 이들에겐 본전 생각나는 밴드가 되겠지만,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그림자 드리운 분위기 정도는 잡아주는, 그러면서도 친숙한 리프와 건반 멜로디로 귀를 잡아끌 줄 아는, 하나하나 따져보면 딱히 모자란 구석이 없었던 밴드의 첫 데모였다. 그리고 마지막 곡인 ‘66,5° N’는 확실히 겨울에 찬바람 맞으면서 듣기 좋은 건반 연주곡이다. 하긴 이런 감각의 건반이 있었으니 Nightwish가 롱런할 수 있는 거기도 하겠지만.

[Self-financed, 1995]

Kawir “Adrasteia”

북유럽과 폴란드, 오스트리아만큼이냐면 약간은 고개가 갸웃거려지겠지만 그리스는 90년대 초반부터 인상적인 블랙메탈 밴드들을 계속해서 보여준 곳이었고, 개성으로 따지자면 여느 나라들보다도 더욱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준 사례였다. 그래도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노르웨이의 그림자를 아예 벗어날 수 없다는 전제에서 그리스 블랙메탈이 보여준 가장 두드러진 개성은 비교적 예의 그 ‘어두운 분위기’에 천착하지 않으면서(그보다는 오컬트하고 ‘기묘한’ 분위기에 가까웠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파워메탈의 특징들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개성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Necromantia도 그렇고, “Thy Mighty Contract”의 Rotting Christ도 그랬다.

Kawir도 그런 계보에 속하는 밴드인데, 특히 멜로딕한 트레몰로 리프에 이어지는 비교적 ‘건강한’ 느낌의 코러스에서 다른 밴드들보다도 더욱 파워메탈 물을 많이 먹었음을 짐작케 한다. 덕분에 구성상 극적인 맛은 좀 덜한 편인데, 대신 리프 자체를 복잡하게 가져가거나 비슷한 멜로디의 섹션이라도 서로 다른 톤과 템포로 이어감으로써 변화를 주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는 Varathron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이런 모습을 모두 담고 있는 곡이 ‘Medea’인데, 응당 앨범을 대표할 만한 곡이지만 ‘Colchis’의 테마와도 맞물리며 인상적인 피날레를 보여주면서 앨범은 마무리되지만 밴드의 그 이후를 기대하게 하는 힘이 있다. 같은 테마라도 꾸준히 변주되는 모습 덕분에 더 그럴 것이다. 곡명에서 알 수 있지만 익히 알려진 신화를 소재로 하고 있는만큼 가사를 읽으며 듣기에도 적합한 보기 드문 블랙메탈 앨범이기도 하다.

[Iron Bonehead,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