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ds of Flesh “Trading Pieces”

Deeds of Flesh는 데스메탈을 좋아한다면 굳이 소개가 필요없는 밴드이겠지만, 동시대의 다른 최고의 밴드들에 비교한다면 뭔가 시야에서는 한 발자국 물러나 있는 느낌이 없지 않다. 아무래도 “Mark of the Legion”부터는 이전만큼은 평가가 못한 감이 있는 것도 영향이 있지 싶다. 그렇지만 밴드는 여전히 테크니컬하면서도 비교적 ‘절제된’ 스타일의 브루털데스를 연주하고 있고, 본인들이 정립했던 스타일에서 한 번도 크게 벗어난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Crown of Souls”를 예외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흥미로운 것은 밴드의 이런 ‘정립된’ 스타일은 이미 (“Gradually Melted” EP를 제외하면)첫 정규반인 “Trading Pieces”에서 이미 완성에 가까웠고, 이들의 ‘테크니컬함’은 어디까지나 브루털데스의 범위에서 표현되었지 장르의 외연을 넘어서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덕분에 엄청나게 복잡한 변화를 보여주지만 이들의 음악은 ‘기본’에 매우 충실했고, 끝까지 타이트한 구성과 에너지를 놓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Deeds of Flesh’는 가장 정통적인 방식으로 브루털데스의 궁극에 근접했던 곡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장르를 정의했던 앨범들 중 하나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Repulse, 1996]

Psycho Praxis “Echoes from the Deep”

레이블의 홍보문구에 의하면 Soft Machine, Can, Van Der Graf Generator 등의 영향을 받은 신진 프로그 밴드라는데 이 재즈물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음악에서 저 밴드들의 그림자를 어떻게 느꼈는지는 좀 의문이다. (그나마 셋 중에서는 VDGG가 비슷한 구석이 있긴 하구나) 그보다는 Uriah Heep이나 좀 더 심포닉하고 복잡하게 어레인지한 Atomic Rooster 스타일에 가까워 보인다. 플룻 연주가 꽤 자주 나오는지라 Jethro Tull을 얘기하는 이들도 많아 보이지만 그 플룻 연주를 제외하면 Jethro Tull과 비교할 만한 부분도 별로 없어 보인다. 그냥 Black Widow에서 흔히 나오는 예스러운 부류의 심포닉 프로그레시브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연주는 꽤 출중하다.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리프에 Uriah Heep 풍의 해먼드와 코러스(특히 ‘Hoodlums’), 트리키한 연주가 돋보이는 ‘PSM’과 ‘Black Crow’ 등을 듣자면 밴드의 역량 자체는 만만치 않음을 확인할 수 있고, 특히 ‘PSM’은 이 테크니컬한 연주에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얹어내는 역설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Uriah Heep의 핵심은 단연 David Byron이라고 생각하는 이에게 확실히 김 빠진 듯 들리는 보컬은(노래를 못하는 건 아니긴 한데) 제노아 출신다운 싼티나는 가사와 기묘한 시너지를 보여준다. Black Widow 소속 밴드들은 대체 어디서 이렇게 Death SS를 지나치게 많이 들은 듯한 보컬들을 계속 데려오는 건지 궁금해진다. 왜 프로그 앨범을 들었는데 Death SS 생각이 날까?

[Black Widow, 2012]

Necrophagia “Ready for Death”

국내에서는 아마도 Phillip Anselmo와 Viking Crown을 굴리던 Killjoy의 밴드로 많이 알려져 있겠지만, Necrophagia는 무려 1983년에 결성된, 감히 ‘최초’라는 표현을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데스메탈 밴드들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앨범은 1990년에 나온 밴드의 2집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1986년에 데뷔작으로 녹음되었던 앨범인 만큼 ‘진짜’ Necrophagia의 첫 앨범은 이 앨범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앨범이 오히려 “Season of the Dead”보다 스래쉬의 색채가 약하고 좀 더 이후의 데스메탈을 예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건 꽤 이색적이다. 아니, Necrophagia 이후에도 계속해서 많은 데스메탈 밴드들이 나왔지만 이들만큼 거칠고 원초적인 형태의 데스메탈을 연주했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Black Apparition’이나 ‘Blood Thirst’를 잠시 살펴보자. Slayer(를 폄하할 생각은 코딱지만큼도 없지만)의 “Reign in Blood” 같은 앨범에서도 이 정도의 광기를 찾아볼 수는 없다. 많은 괴수들이 데스메탈의 교과서들을 만들었지만, 누구도 Necrophagia를 능가하지 못했던 그 지점들을 확인할 수 있다. New Renaissance에서 나왔던 앨범들 중 가장 스래쉬 물이 덜한 앨범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New Renaissance, 1990]

Presence “Evil Rose”

Black Widow에서 앨범 나온 밴드 다운 적당히 스푸키한 맛에 클래시컬한 오르간을 곁들인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라기보단 사실 좀 더 파워 업그레이드된 프로그레시브 하드록)로 시작한 Presence는 “The Black Opera”부터는 메탈이라기엔 좀 망설여지는 사운드를 들려주기 시작했고, 드러머가 빠지고 키보디스트가 드럼까지 담당하는 보기드문 모습을 보여준 “Gold”는 덕분인지 확실히 날이 무뎌진 듯한 앨범이었다. 사실 드럼은 핑계고 송라이팅의 문제였을 것이다. Shadow Gallery처럼 드럼머신 갖고도 곡 잘 쓰는 밴드도 있었으니.

“Evil Rose”는 다시 드러머를 구해서 내놓은 앨범인데, “Gold”에서 8년이 지났지만 음악은 오히려 “Makumba”에 더 가까워졌다. “The Black Opera”처럼 내놓고 클래식을 따라가는 모습은 확실히 덜해졌고, 드러머 덕분인지 전작보다 리듬은 확실히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그렇지만 복잡해진 리듬에 비해서 곡들의 굴곡은 그리 크지 않다. 사실 분위기만 보면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단조로운 축이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변화를 주는 발라드 ‘No Reason Why’는 Black Widow에서 간혹 나오는 유치한 스타일의 곡인지라 긍정적인 인상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도 ‘Evil Rose’만큼은 밴드의 가장 훌륭한 곡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사실 이 곡만으로도 이 앨범은 들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밴드의 팬이 아니라면 돈 주고 사서 듣기엔 본전 생각이 좀 날 법한 그런 앨범.

[Black Widow, 2008]

Rain Novelty “This Star Was Born in Heaven”

아테네 출신 둠-데스 밴드의 2002년 데모. 사실 데모 치고는 꽤 멋들어진 커버이고 어쨌든 둠-데스 밴드로 소개된 밴드인만큼 바이올린을 끼고 있는 6인조 밴드에게 기대할 스타일은 My Dying Bride일 것이다. 문제는 이 데모에서 메탈릭한 부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Back to Heaven’은 적당히 퍼즈 걸린(덕분에 적당히 몽환적인) 바이올린 연주가 주도하는 발라드인데, 멜로디는 꽤 훌륭하지만 아무래도 둠-데스 밴드에게 보통 기대하는 것보다는 좀 더 ‘징징대는’ 스타일이다. ‘Auroras Fallen Star’로 가면 더욱 심각해지는데, 기타도 빼 버리고 보컬과 피아노만으로 끌고 나가다 중간에 잠깐 바이올린으로 분위기를 환기하는 이 곡에서 둔중한 둠 리프를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러니까 아쉬움이 잔뜩 남는다.

그렇지만 사실 삐에로 커버의 앨범에 그런 음악을 기대하는 자체가 좀 잘못된 게 아닐까? 사실 My Dying Bride 스타일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일렉트로닉스나 다양한 잔기술 없이 정공법으로 승부하는 이 밴드가 보여주는 멜로디나 분위기는 꽤 인상적인 편이다. Sopor Aeternus풍의 분위기도 있고, 자칫 늘어질 수 있는 부분에서 적절한 타이밍에 불현듯 존재감을 드러내는 바이올린(아무래도 Martin Powell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은 이 밴드가 꽤 될성부른 떡잎이었음을 말해 준다.

뭐 정규반 한 장 내지 못하고 사라진 밴드에게 할 말인가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좀 아깝다.

[Self-financed,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