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etitia in Holocaust “I Fall with the Saints”

이탈리아 2인조 아방가르드 블랙메탈 밴드? 사실 Deathspell Omega 이후 그런 류의 음악에 아방가르드 레떼르를 붙이는 일이 잦은 편인데, 앨범 처음부터 등장하는 힘있는 프렛리스 베이스는 이들이 그와는 궤가 좀 다른 밴드임을 알려준다. 굳이 비교하자면 Ved Buens Ende식의 구성에 King Crimson 물은 뺀 블랙메탈인데, 사실 Ved Buens Ende를 떠올리는 것도 조금은 억지에 가깝다. 비슷한 구석이 물론 있긴 하지만 Ved Buens Ende만큼 괴팍한 구성은 아니고 그보다는 훨씬 직선적이고 ‘듣기 편해진’ 스타일이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살짝 재즈 물을 머금은 솔로잉이나 트레몰로 리프에 이어지는 무조적인(가끔은 트리스탄 코드를 뒤틀기도 하는) 오블리가토도 이런 류의 음악에서는 예상 못 할 바도 아니다.

그렇지만 밴드는 좀 덜 막 나가는 대신 빈틈없는 연주로 귀를 잡아끈다. 프렛리스 베이스를 내세운 변화무쌍한 리듬 파트에 – Ved Buens Ende만큼은 아니더라도 – 꽤나 복잡한 구성의 리프들을 얹어내는데, 특히 Obtained Enslavement식의 클래시컬한 리프를 뒤튼 듯 괴팍한 질주감의 ‘Hair as the Salt of Carthago’는 분명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이 괴팍한 블랙메탈을 이끄는 파트는 분명 베이스다. 사실 베이스가 메인이 되는 블랙메탈이라는 점만으로도 밴드는 충분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밴드 나름의 다크웨이브인듯 실려 있지만 앞의 곡들과 함께 듣자니 지나치게 길어진 아우트로처럼 들리는 ‘Crypts of Rain and Confabulation’를 제외한다면 아주 재미있게 들었다. 피지컬은 테이프만 나왔지만 이 테이프가 무척 예쁘게 나왔으므로 관심있는 분은 하나 장만해도 만족하실지도.

[Brucia, 2021]

Mercyful Fate “Evil”

아마도 현재까지는 Mercyful Fate가 공식적으로 낸 마지막 싱글. 그 전에 냈던 정규반이 1999년의 “9”였던만큼 아직 활동하고 있고 이 코로나의 시절에 그래도 짧게나마 공연 일정이 잡혀 있는 밴드이긴 하지만 앞으로 유의미한 결과물을 기대하긴 좀 어렵잖을까 싶다. 그렇게 밴드가 남긴 마지막 결과물이 하필 밴드가 게임 “Guitar Hero : Metallica”에 참여함을 계기로 나온 12인치 픽처디스크라는 건 좀 얄궂다. 일단 수록곡도 “Melissa”의 첫 두 곡의 2009년 버전이기도 하고.

당연히 밴드가 원곡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거나 하진 않고(자기들 곡인데 굳이 바꿀 리가), 나이가 있는지라 King Diamond의 보컬이 들어줄만 할까가 주된 걱정거리겠지만 꽤 건재한 편이다. Hank Shermann과 Mike Denner의 트윈 기타를 ‘모던해진’ 사운드로 듣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다. 다만 아쉽다면 드럼이 밴드의 오리지널 멤버인 Kim Ruzz가 아니라는 것인데(“Melissa” 의 재현임을 생각해서), 밴드 초기에만 활동했던 이임을 고려하면 94년부터 계속 스틱을 잡아 온 Bjarne Holm 대신 Kim의 참여를 기대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굳이 들어봐야 할 것까지는 없지만 디자인도 나름 괜찮고, 밴드의 팬이라면 컬렉션을 완성할 마지막 한 장으로 구해볼만 하지 않을까? 물론 들어볼 생각으로 산다면 한번쯤은 재고를 권한다..

[Metal Blade, 2009]

Osiris “Futurity and Human Depressions”

네덜란드 프로그레시브 스래쉬 밴드의 유일작. “Images and Words”가 나온 게 1992년이니 이 때는 사실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라면 이런 스타일로 가는 게 아무래도 더 납득이 되는 방향이었을 시절일 것이고, 레이블 스스로도 키보드에 힘 준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었으니 앨범의 색깔은 불가피했을지도. 하지만 이제 와서는 프로그레시브를 듣는다고 자처하는 이들에게는 너무 무식하다고, 스래쉬를 듣는 이들에게는 너무 꼬아 놓았다고 까이는 처지인만큼(그런 의미에서 지금에 와서는 이만큼 인기없는 장르도 별로 없겠거니 싶다) 관계자 모두에게 마냥 좋은 기억으로 남지는 않은 앨범이잖을까 싶다. Nirvana도 나왔겠다 메탈 밴드가 망하기는 딱 좋아 보이는 시절이기도 했고.

그래도 음악 자체는 꽤 괜찮다. 사실 Watchtower만큼 복잡하지는 않고 그보다는 “Suiciety” 시절의 Realm에 더 가까워 보이는 앨범인데, Bram van den Oever의 보컬은 또 Alan Tecchio스타일이기 때문에 Watchtower를 그래도 인상에서 지울 수는 없다. 그렇지만 ‘Mass Termination’의 스피디한 스래쉬 연주나 ‘Inner Recession’의 Coroner풍 연주는 애초에 이 밴드가 마냥 프로그레시브에 초점을 둔 밴드는 아니었다는 나름의 근거 없는 확신을 준다. 앨범의 멜로딕한 부분에서는 과장 좀 섞으면 “Rage for Order” 시절의 Queensrÿche와도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그리 프로그레시브한 앨범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Watchtower나 Realm을 좋아했다면 아마도 만족할 법한 앨범. 확실히 19살들이 만들 만한 앨범은 아니었다.

[Shark, 1991]

Alias Eye “A Different Point of You”

초창기 브리티쉬 심포닉 프로그를 얘기할 때 한번쯤은 언급되어야 할 밴드라고 생각하고 음반 자체도 꽤 유명하지만 정작 얘기하는 사람을 본 적은 별로 없는 Beggars Opera의 빛나는 초창기를 이끌었던 보컬리스트 Martin Griffiths는 정작 밴드를 나오고 나서는 프로그와는 거리를 둔 솔로 커리어를 이어갔고, ‘Sitting on the Dock of the Bay’의 디스코 싱글은 큰 맘 먹고 모은 쌈짓돈으로 ‘브리티쉬 프로그 오리지널 싱글 레코드!’를 구했던 어느 고딩의 마음에 용용 죽겠지를 날리는 듯 생채기를 낼 정도의 곡이었다(별로였다는 의미는 아님). 그래서 레이블이 내세우는 ‘Martin Griffiths(Griffith가 아님)의 아들이 노래하고 있는 독일 밴드’라는 광고문구는 생각해 보면 좀 얄궂다. 부친이 부친인지라 노래는 잘 하는데 저게 광고가 되려나.

음악은 본격 프로그 밴드들의 이름보다는 Mind’s Eye에 Steely Dan풍 AOR을 입힌 듯한 모습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더 생각해 보면 A.C.T에서 하드록을 좀 덜어내고 퓨전을 더하면 비슷하지 않으려나? 아버지보다는 Michael Sadler 류의 네오프로그 보컬에 가까워 보이는 Philip Griffiths의 목소리도 그런 스타일에 한몫한다. 그래도 이런 류의 앨범에 한둘씩은 꼭 들어가는 적당히 과장된 심포닉의 조곡도 빠지지 않고 있으니(‘Your Other Way’와 ‘The Great Open’) 이거 너무 팝적이라는 볼멘소리는 분명 있겠지만 프로그라는 레떼르에 부족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긴 레이블을 생각하면 좀 더 난해한 스타일을 요구하는 건 무리이지 않을까.

[DVS, 2003]

Rippikoulu “Musta Seremonia”

Rippikoulu는 핀란드 최초의 데스 메탈 밴드… 정도로 알려져 있다. 사실 누가 최초였는지 정확히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웹상에서 대충 핀란드 메탈에 다루고 있는 곳들은 대개 Rippikoulu를 최초로 쳐 주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밴드는 데모 두 장 내고 스리슬쩍 망해버렸다가 2014년이 돼서야 힘겹게 EP 한 장을 낼 수 있었다(물론 이후로도 푹 쉬고 있다). 하긴 이 데모가 나왔던 1993년도 이미 데스메탈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얘기가 음악 잡지에 실리기 시작한 지 한참 된 시절이었다. 클래식과는 거리가 있는 외로운 선구자였던 셈이다.

음악은 그나마 동시대에 활동하던 유럽 데스메탈 밴드들과도 꽤 차이가 있다. Treblinka 마냥 일견 둠적이면서도 음습한 류의 데스메탈을 연주하지만, 리프에서는 펑크/그라인드의 색채도 동시에 엿보인다. 헤비하고 둔중한 곡의 전개에 비해서 날렵하게까지 느껴지는 리프는 꽤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주는데, 날렵한 리프 덕에 헤드뱅잉하기 좋을 정도의 드라이브감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느릿한 템포로 트레몰로를 긁어대는 부분에서는 영세한 로블랙 밴드들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빠르지만 단조로운 템포를 동반한 앰비언트풍 사이키델리아 – 말이 복잡하다면 그냥 적당히 최면적인 구석이 있는 블랙메탈풍 – 을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그냥 그 시절 외로운 선구자, 라고만 말하기엔 독특한 개성을 가진 밴드였던 셈이다.

1993년에 나온 데모 앨범이지만 2010년에 Svart 레코드에서 재발매되어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다만 이제 좀 비싸졌다).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도 이 데모를 구해 들을 수 있는 거겠지.

[Self-financed,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