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ented Souls “The Origins of Misery”

노르웨이 둠메탈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들 중 하나지만 멤버들은 꽤나 유명하다. 보컬의 ICS Vortex는 물론이고 기타/드럼의 Apollyon, Ved Buens Ende의 Einar Sjursø 정도면 어디 가서 올스타 밴드 식으로 홍보해도 부족하지 않을 텐데. 밴드는 정규반 한 장을 내지 못하고 근근이 연명하다가 2004년의 이 컴필레이션을 마지막으로 소식도 없다. 그나마 이 컴필레이션도 Einar의 레이블인 Duplicate에서 나왔으니, 그냥 밴드 접기 전에 만들어둔 게 아까워서 한 장으로 모아서 냈다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그래도 주변의 촌평을 들어보자면 “Soulstorm” 데모의 수록곡은 빠져 있다니 그건 밴드 본인들도 내기 좀 부끄러웠을까.

음악은 Black Sabbath풍이 꽤 강한 둠메탈이고, 특히 스토너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솔로잉과 빨라지려다가도 미드템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익숙한 전개가 가끔은 80년대 하드록의 느낌을 주기도 한다. 또 그런 곡들에서는 ICS Vortex도 평소에 보여주지 않는 샤우팅을 보여주는지라(특히나 ‘Demon Baby’) 둠메탈이라지만 시원시원한 구석이 없지는 않다. 덕분에 Black Sabbath 외에 St. Vitus를 따라하는 밴드들이 쉬이 보여주는 약 냄새는 확연히 덜한 편이고, 그런 면에서 Reverend Bizzare의 씨어트리컬한 가운데 느껴지는 묘한 기운이 힘들었던 사람은 이쪽이 더 편할 수도 있겠다. 사실 Reverend Bizzare가 그래도 한 수 위이긴 하지만, 나름의 매력은 충분한 앨범이다. Dark Tranquillity풍의 호쾌함까지 느껴지는 ‘Var’가 앨범의 백미.

[Duplicate, 2004]

Decrepit Birth “Axis Mundi”

장르의 신성! 정도로 평가되던 밴드가 Nuclear Blast의 로스터에 들어가면서 날 선 모습을 잃어버리고 일견 ‘잘 팔릴 법한’ 사운드로 변모하는(그리고 무뎌진 날 덕에 실제로는 예상보다 덜 팔리는) 모습을 보는 일은 사실 그리 드물지만은 않다. 아무리 그들만의 리그에서의 얘기라도 어쨌든 거기서는 최고 메이저급의 레이블인만큼 어떤 앨범을 내더라도 특유의 노하우가 묻어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전 소속 레이블이 Unique Leader 정도 된다면 예전에 알지 못했던 데스메탈 노하우를 운운하는 것도 곤란하다. Decrepit Birth도 동일한 류의 우려 속에 Nuclear Blast로 적을 옮겼고, “Polarity”는 나름 연착륙이기는 했지만 Unique Leader 식의 ‘브루털’이 꺾이는 시작점이었을 것이다.

“Axis Mundi”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원래 테크니컬한 밴드이긴 했지만 “Polarity”부터 밴드는 확실히 이전보다 테크니컬함을 더욱 강조했고, 멜로디라인을 좀 덜어내면서 어둡고 공격적인 리프를 전면에 내세운만큼 이 앨범의 테크니컬함은 더욱 귀에 박힌다. ‘Spirit Guide’ 정도를 제외하면 멜로딕하다고 말할 만한 곡은 별로 없어 보인다. ‘Hieroglyphic’ 같은 곡은 손장난으로 귀를 헷갈리게 하지만 막상 뜯어 보면 반복도 잦은 곡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는 “Polarity”보다 못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아쉬움도 많은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보너스로 실린 Suffocation의 ‘Infecting the Crypts’ 커버가 정말 잘 뽑힌 걸 생각하면 그냥 이런 스타일로 가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말하고 보니 그게 쉬운 건 아니지만.

[Nuclear Blast, 2017]

Absentia Lunae “Vorwärts – Impavida Avanzata”

Absentia Lunae의 3집. 이 앨범의 가장 기억에 남는 특징이라면 앨범 커버에는 앨범명이 “Vorwärts”로 쓰여 있는데 정작 앨범 백 트레이에는 “Worvarts”라고 적혀 있다는 점이다. 내가 알기론 소용돌이라는 단어인데 해외의 모 리뷰어는 저 앨범명을 ‘forward, never look back’이라는 근거 불명의 표현으로 해석하고 있다. 뭐 그래도 이 앨범의 이름을 “Worvart”라고 적어둔 사이트는 단 하나도 보지 못했으니 “Vorwärts”가 맞을 것이다.

레이블 광고문구나 앨범 커버, 아트워크들에서 풍기는 모습은 아무래도 미래파 선언을 컨셉트로 삼아 만들지 않았을까 짐작되는 블랙메탈인데, 흔히 “Wolf’s Lair Abyss” 시절 Mayhem(의 스피드 다운그레이드)과 비교되는 밴드이지만 이 앨범에서는 좀 더 복잡하면서도 Arditi류의 martial industrial을 조금은 의식하지 않았을까 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그런 개성은아무래도 ‘L’arrivée’의 적당히 싼티나면서도 분위기에 걸맞는 오케스트럴에서 두드러지는데, 그런 면에서는 이 앨범만큼은 “The Grand Declaration of War”과 비교하는 게 더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고, 둘 중 좀 더 유려하게 뽑힌 쪽이라면 아무래도 이 앨범일 것이다. ATMF에서 나온 앨범들 중 가장 즐겨 듣는 편이다.

[ATMF, 2014]

Phobia “Slaughterhouse Tapes”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역사를 들추다가 1990년경 문득 맞닥뜨리는 이 흔해빠진 이름의 밴드는 단명했지만 주변에서 꽤 자주 회자되던(그리고 놀랍게도 얘기는 하지만 들어본 이는 하나도 없었던) 밴드였다. 언제부턴가 음악이 좋은지 아닌지는 상관없이 이름값만 좋다면 일단 재발매하는 듯한 NWN!에서 나온 이 컴필레이션은 밴드가 남긴 두 장의 데모와 리허설 음원들, 미발표곡들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일단 이 한 장이면 Phobia의 앨범을 굳이 더 구할 필요는 없는 셈이니 나름 의미는 확실한 한 장이라 할 수 있다.

음악은 그 시절 이 동네 데스메탈 데모가 소수 기린아들의 예외가 있기는 했지만 많이들 그랬듯 당대의 주류 데스메탈보다는 확실히 분위기에 신경쓰면서 ‘스푸키한’ 스타일이다. Hellhammer의 느낌이 강하게 묻어나지만 은근한 키보드로 분위기를 덧칠하는데, 당연히 싼티나면서도 확연한 스푸키함과 이에 어우러지는 Paradise Lost풍 기타 리프 덕분인지 음악을 듣고 사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Treblinka다. 말하자면 Tiamat가 자신들의 스타일을 어떻게 이끌어냈을지를 짐작할 단초를 제공하는 밴드라 할 수 있겠는데, Treblinka보다는 이들이 먼저이니 이들이 영향을 줬을 수도 있겠다 싶다. 두 번째 데모의 타이틀인 ‘The Last Settlement of Ragnarok’이 아마 가장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하지만 바야흐로 노르웨이 블랙메탈이 용틀임하기 시작하던 시절, 데스메탈은 재미없다고 생각했음인지 밴드는 나름 성공적이었던 데모를 두고 활동을 그만두었고, 밴드를 이끌던 두 기타리스트와 드러머는 서로 다른 밴드로 흩어져 Phobia 시절에는 아마 생각지 않았을 음악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Enslaved와 Theater of Tragedy 얘기다.

[Nuclear War Now!, 2021]

Beherit “Bardo Exist”

누구도 블랙메탈 레전드라는 사실을 부인하진 않지만 그럼 신보를 믿고 구입할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분명 상당한 불안감을 안겨줄 법한 Beherit의 작년 신작. 사실 “Drawing Down the Moon”에서도 앰비언트의 기운은 상당했지만 그 독특한 분위기는 “The Oath of Black Blood”와는 또 다른 Beherit의 개성적인 블랙메탈을 만들어내기 충분했고, 밴드가 그런 스타일의 연장선을 유지했다면 팬들은 아마 행복했겠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DJ를 꿈꿨을지 모르는 Nuclear Holocausto Vengeance는 이후 아예 앰비언트 사운드를 밀어붙여 많은 이들이 (만듦새의 문제를 떠나서)괴작으로 기억하는 “H418ov21.C”와 “Electric Doom Synthesis”을 내놓았다. 뭐 후자는 그래도 기타가 들어가긴 했다만 Beherit의 이름으로 이런 게 나와서야 좋은 말만 해주기는 사실 어렵다.

그래도 “Engram”으로 잠시 안심했던 팬들을 놀리려는 것인지 “Bardo Exist”는 다시금 앰비언트로 돌아왔다. 그렇다곤 해도 사실 음악 자체만으로는 “H418ov21.C”와 “Electric Doom Synthesis”보다는 귀에 잘 들어온다. 일단 Tangerine Dream을 열심히 들었는지(하나 고른다면 “Zeit”) 확실히 이전의 앰비언트들보다는 좀 더 정적이고 자연스러운 전개를 보여주는 편이고(특히 ‘Extreme Thirst and Insomnia’), Mortiis 생각도 나는 ‘Coruscation’ 같은 곡은 확실히 Beherit이 만든 여느 곡보다 좀 더 명확한 멜로디를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Peilien vanki’에서 불현듯 튀어나오는 디스코를 들으면서 느껴지는 허탈감을 보니 내가 아직 Nuclear Holocausto Vengeance의 클럽 DJ 놀이를 받아들일 깜냥이 안 되는 건 분명하다. 거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Kvlt,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