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yssum “Poizon of God”

과테말라 블랙메탈 밴드의 2집. 그러니까 여기까지 보면 사실 별로 관심줄 이유가 없어 보이는 밴드인데, 이 밴드가 무려 1993년에 활동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래도 관심이 좀 더 가려나? 이런저런 데모와 라이브 앨범, 스플릿들을 제외하면 정규반은 이 앨범까지 두 장 뿐인 밴드인만큼 좋게 봐주면 앨범 한 장을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나보다 하는 기대도 가져봄직하다. 물론 이 장르에서 과작이라는 사실이 만듦새와 연결되기보다는 정말 장사 안 됐다는 얘기로 귀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정도 긍정의 자세를 갖지 않으면 이런 과테말라 밴드의 앨범을 듣기 힘들다.

음악은 90년대 후반에 흔히 들을 수 있었던 적당히 스푸키한 분위기의 키보드를 곁들인 블랙메탈이다. 그렇다고 키보드의 비중이 그리 높지는 않고, ‘A Cold Whisper Behind the Cosmos’와 ‘In Darkness We Will Forever Be…’ 정도를 빼면 Judas Iscariot 같은 밴드들과 더 비슷해 보이는데, 템포 변화가 꽤 잦은데다 중간중간 삽입한 어쿠스틱 패시지, ‘Laugh Close to Me, at Your Creation’ 같은 곡의 간주 같은 부분은 밴드가 나름 오컬트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성적이라고 말할 정도까진 아닌 만큼 장르의 팬이라면 굳이 이런 익숙한 스타일을 과테말라 밴드까지 찾아 들어야 하나? 라고 의문을 표할 이들도 흔할 것이다. 하긴 그런 이들이라면 일단 앨범 커버에서 이들은 아웃이긴 하겠지만. 금년에 The Sinister Flame에서 재발매.

[Medieval Music Prod., 2008]

Fates Warning “Long Day Good Night”

Fates Warning의 좋았던 시절은 John Arch가 마이크를 잡았을 때라고 생각하지만 Ray Alder가 들어온 이후의 음악도 호오는 갈릴지언정 만듦새만큼은 Dream Theater에 비해서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말이 프로그레시브 메탈이지 사실 많이 다른 두 밴드인만큼 굳이 비교하는 것도 좀 아니잖나 싶지만, 솔직히 “Metropolis Pt. 2: Scenes from a Memory” 이후의 Dream Theater의 앨범들은 동시대의 Fates Warning의 앨범들에 비해 분명 밀린다고 생각하고, Mike Portnoy의 빈자리를 감추기 어려웠던 Dream Theater의 2010년대보다는 Fates Warning의 2010년대가 한 두 수는 앞서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사견이다. 편들어 주는 사람이 없는 게 좀 불안하기는 하지만 넘어가고.

“Long Day Good Night”도 마찬가지다. 특이하다면 똑같은 스타일을 유지하지 않는 Fates Warning이 “Theories of Flight”와 퍽 유사하게 들리는 앨범을 또 냈다는 점인데, Fates Warning의 근래가 “Inside Out” 시절보다 더 헤비해져서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사운드의 질감만으로도 만족스럽지 않을까 싶다. 특히나 이런 방향성은 ‘The Longest Shadow of the Day’에서 두드러지는데, 그러면서도 군데군데 팝 센스를 드러내는 모습은 역시 팔릴 줄 아는 남자… 의 모습을 일견 보여주고 있다. 하긴 그런 모습도 “Theories of Flight”와 비슷하구나. 다만 “Theories of Flight”의 전반부가 분명 귀에 더 잘 박혔다는 걸 생각하면 전작보다 안 들어온다고 볼멘소리할 이들도 있을지도.

[Metal Blade, 2020]

Crystal Jacqueline “Rainflower”

Mega Dodo는 Fruits de Mer 등과 더불어 약간은 흘러간 시절의 사이키델릭 사운드에 취향을 둔 이들에게는 생각보다는 잘 알려진 레이블이다. 당연히 Crystal Jacqueline도 이런 노선에 있는 뮤지션이고, 같이 작업하고 있는 Icarus Peel(이 양반도 물론 Mega Dodo 소속의 뮤지션이다)도, 좀 더 듣기 편한 편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Syd Barrett을 연상케 하는 스타일에 60년대 웨스트코스트 특유의 ‘쿨한’ 그루브를 담아낸다. 말하자면 Syd Barrett 스타일답게 귀에 안 들어오지만 나름 멋들어진 그루브를 실어내던 Icarus Peel이 Crystal의 보컬을 빌어 좀 더 친숙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 Crystal Jacqueline의 앨범인데 왜 Icarus Peel 얘기만 하고 있는지가 나도 의문이지만 넘어가고.

곡은 전체적으로 “Sun Arise”보다는 좀 더 무거워졌다. 내놓고 플라워 무브먼트를 따라가던 전작에 비해 “Rainflower”는 Pink Floyd의 “Unmagumma”나 “More” 같은 앨범들을 좀 더 의식하는 편이다. 물론 David Gilmour풍 기타는 싹 걷어내고 Syd Barrett스러운 약 냄새와 은근한 동양풍을 더한 스타일인데, 아무래도 이 앨범의 꽃 4부작 ‘Water Hyacinth’, ‘Daisy Chain’, ‘Strange Bloom’, ‘Rainflower’이 가장 두드러진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Dress of White Lace’의 목가적이면서도 어두운(그리고 가끔은 주술적인) 분위기는 이 밴드가 사이키델릭의 많은 교과서들을 참고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쿨한 그루브 대신 포크의 바탕을 깔고 다양한 사이키델릭의 사례들을 나름 열심히 현대화하여 늘어놓는 앨범,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척 흥미롭게 들었다.

[Mega Dodo, 2015]

God’s Tower “The Eerie”

소위 pagan-doom을 얘기한다면 아마도 첫손에 꼽을지 말지를 꽤 진지하게 고민할 만한 벨라루스 둠 메탈 밴드. EP를 빼면 겨우 세 장을 발표한(그나마도 두 장은 1997년에) 밴드라지만 일단 이런 스타일로 묶을 만한 밴드들이 생각보다 별로 없기도 하고, ‘pagan’이라는 레떼르를 붙이기에는 아무래도 영미권보다는 북유럽이나 동구권이 더 나아 보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점들을 생각하면 이 스타일의 대표격으로 칭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일단 첫 데모를 “Stream from the Heavens”이 나오기도 전에 내놓은 밴드이니만큼 포크풍이 무척 짙기는 할지언정 동구권 둠 메탈의 파이오니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The Eerie”는 밴드의 가장 둠 메탈 성격이 짙은 앨범이다. 사실 이 밴드의 세 장은 모두 스타일은 대동소이하지만, 좀 더 포크적인 느낌이 강했던 “The Turns”와 때로는 마음 한켠에 메인스트림을 노리고 있는 걸까 의문스럽기도 했던 “Steel Says Last”에 비하면 리프의 둔중함이 확실히 돋보인다. ‘Till Death Do Us Part’ 같은 곡의 극적인 구성이나 가사를 본다면 바이킹 둠이라고 해도 좋을 법한데, ‘The Eerie’의 영적이라고 해도 좋을 분위기(와 아마도 Quorthon을 의식했을 Lesley Knife의 보컬)를 본다면 땀냄새 풀풀 불끈불끈보다는 바이킹이 고독하게 발할라를 맞이하는 풍경이 좀 더 어울릴 것이다. 이런 표현이 나오는 거 보니 요새 빈란드 사가를 너무 본 것 같은데 넘어가고.

Leslie Knife는 최근에 벨라루스 정치인을 온라인상에서 모욕한 일로 3년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그곳도 이래저래 어지러운 나라가 아닌가 싶다. 빠른 석방을 빈다.

[Metal Agen, 1997]

Emerson, Lake & Palmer “Tarkus”

올해가 이 앨범이 나온 지 50년이 됐다길래 간만에. 뭐 심포닉 프로그의 역사에서 반드시 기억할 밴드인 것도, 걸출한 3인조가 만나 화끈하게 활동했던 밴드인 것도 분명하지만 장르를 거의 완성형에 가깝게 정의내리면서 확실히 세련된 연주를 들려줬던 Yes에 비한다면 EL&P는 그 걸출한 3인조가 서로 내가 제일 잘나간다는 듯 경쟁적으로 밀어붙이던 사례에 가까워 보인다. Yes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클래식의 편곡과 차용에 의존하면서 좀 더 정형적인 구조의 곡을 연주하지만 멤버 개개인은 확실히 과시적인 데가 있다고 생각한다. 좋게 얘기하면 록스타의 전형이었고, 나쁘게 얘기하면 태생부터 슈퍼 밴드다운 한계가 풀풀 풍겨났던 셈이다.

밴드의 가장 화려한 연주의 앨범은 “Brain Salad Surgery”(중에서 ‘Karn Evil 9’)이었겠지만, 저 과시적인 면모와 정형적인 구조를 가장 여실히 보여준 앨범은 “Tarkus”라고 생각한다. 일단 밴드의 오리지널이 가장 많은 앨범이기도 하고(뭐 그 중 상당수는 사실 밴드의 이름값이 아깝다고 생각하지만), Keith Emerson의 건반만큼이나 다른 파트가 거칠게 존재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밴드의 가장 하드한 앨범은 이 앨범이라고 생각하고, Greg Lake의 커리어에서 보컬이 가장 훌륭했던 한 장을 꼽더라도 아마 이 앨범이 유력하겠거니 싶다. ‘Are You Ready Eddy?’는 밴드가 의외의 팝 센스(와 유머)를 가지고 있다는 흔적이기도 한데, 훗날 “Works Volume II”에서 클래식 물을 뺀 팝을 쓰는 데는 젬병이라는 걸 입증한 밴드에게는 의외의 면모라고 생각한다. 뭐 이 곡이 아니라 사실 ‘Tarkus’ 하나만으로도 기억될 가치는 충분한 앨범이긴 하지만.

[Island,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