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phonian “The Cosmic Pendulum of Time”

독일 데스메탈 밴드의 EP. 사실 2018년에 데뷔작을 냈다고 하나 찾아보니 테이프와 디지털로만 나왔다고 하니 음악의 만듦새를 떠나 알려지기는 좀 어려웠겠다. 사실 음악 스타일도 요새 인기있을 만한 부류와는 거리가 멀다. 그 시절 유럽 데스메탈의 지글지글 기타 톤으로 긁어주는 리프에 (가끔은 의욕 과다처럼 보이지만)나름 시의적절하게 치고 들어오는 트윈 하모닉 마이너 솔로잉이 주가 되는 데스메탈인데, 그래도 독일 출신이라 그런지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밴드라면 인더스트리얼 물을 먹기 전의 Morgoth다. 물론 “Cursed”의 은근한 분위기까지 따라간다는 얘기는 아니니 과한 기대는 실망을 부른다.

그래도 앨범의 최대 장점은 30분도 되지 않는 EP에서 다양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Throne of Deceit’의 정석적이다 못해 단단한 데스메탈이 있지만, ‘On Primordial Pathways’의 포크 바이브와 오르간 연주의 은근한 고색창연함, ‘Forever in Misery’의 슬램데스에 가까울 그루브를 듣고 있자면 이 테크니컬하다고까진 할 수 없는 음악이 예상보다 꽤 복잡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Deathspell Omega 이후 툭하면 10분을 훌쩍 넘어가는 대곡을 내놓는 밴드가 튀어나오는 판에 29분에 7곡짜리 EP를 내놓는 모습도 개인적으로 조금은 반갑다. 참고로 난 이 앨범을 아주 좋게 들었다.

[Iron, Blood and Death Corporation, 2021]

Destroying Angel “Conversations With Their Holy Guardian Angel”

Destroying Angel의 데뷔작…이지만, 이미 2014년께부터 북미의 싸이키 스타일의 대표적인 네오포크 밴드 정도로 이름이 오가던 밴드였던만큼 밴드를 둘러싼 기대감만큼은 확실했고, 그러면서도 은근히 펑크 바이브를 풍기는 이들의 ‘개성'(꽤 씁쓸한 유머를 섞어낸다는 점을 강조해 본다)은 기대감을 넘어 꽤 힙하다는 평을 듣는 많은 웹진들로부터 괜찮은 평가를 듣기에도 충분해 보였다. 음악이야 다르긴 하지만 Cult of Youth라는 꽤 비슷한 행보를 먼저 보여줬던 사례가 있기도 하고. 하긴 그래서 Sean Ragon이 이 앨범에 참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이 앨범이 Not Just Religious Music에서 나왔다는 건 사실 밴드에 대한 기대감과는 조금은 맞지 않았다. 아무래도 King Dude 특유의 지극히 ‘아메리칸스러운’ 음악이 Destroying Angels의 음악과는 쉬이 겹쳐 보이지 않는 탓인데, 그래서인지 “Mother is Dead” EP의 일견 사이키하면서도 영적인 스타일과는 확실히 다르다. ‘wierd folk’식으로 어둡긴 하지만 괴이하게 발랄한 분위기를 섞어내는 셈인데, 그런 면에서는 보통 얘기하는 ‘네오포크’의 팬보다는 포스트펑크 팬들이 더 즐길 만한 음악일 것이다. 어찌 들으면 Throbbing Gristle을 듣고 흑화된 Scott Walker 같기도 하고.

[Not Just Religious Music, 2016]

Il Tempio delle Clessidre “AlieNatura”

Il Tempio delle Clessidre가 마치 Museo Rosenbach가 남긴 잿더미에서 피어오른 후계자인양 소개된 덕에 셀프타이틀 데뷔작은 Black Widow 발매작이 시완레코드를 통하지 않고도 국내에까지 라이센스되는 위업을 달성했다. 뭐 그런 엄청난 데뷔작이 과연 얼마나 팔렸으려는지는 알아봐 봤자 모두가 슬퍼지는 사실일 게 분명하니 넘어가고, 문제는 Stefano ‘Lupo’ Galifi가 이 밴드에 몸담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는 점이다. 밴드가 다시금 Museo Rosenbach의 이름을 수면 위로 밀어올린 덕분인지 Galifi는 Museo Rosenbach의 재결성을 위해 밴드를 떠나버렸고, 홍철 없는 홍철팀마냥 거듭난 밴드는 새로운 보컬을 맞이하여 지지 않고 두 번째 앨범을 내놓았다…는 게 대략적인 레이블의 소개 내용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보컬인 Franscesco Ciapica는 톤은 좀 다를지언정 확연히 Galifi를 의식한 보컬 스타일을 보여주는데다, 밴드의 스타일도 데뷔작의 심포닉 프로그를 따라가고 있으니 결국 딱히 달라진 건 없다. 그래도 데뷔작의 ‘Danza Esoterica Di Datura’의 어지러울 정도의 키보드 연주가 앨범의 백미였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보다는 좀 더 밋밋해진(좋게 얘기하면 ‘분위기 위주의’) 연주가 꼭 마음에 들진 않는다. 그래도 ‘Onirica Possessione’의 은근한 스푸키함은 Museo Rosenbach의 이름값에 힘입어 의외의 고급스러움을 과시했으나 개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데뷔작과는 달리 좀 싼티나지만 슬슬 개성을 밴드가 드러내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번에는 ‘Senza Colori’ 같은 스타일로 ‘Il Cacciatore’ 같은 에픽 트랙을 하나쯤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 “Il-Lūdĕre”에는 그런 곡은 없었다.

[Black Widow, 2013]

Demigod “Day Of Darkness Festifall Live 23 – 08 – 1991 Oulu Finland”

Day of Darkness Festival 얘기가 나온 김에. 사실 저 페스티벌이 유명해진 건 1991년에 핀란드 익스트림메탈의 가장 굵직한 이름들을 한데 모아 놓은 공연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점인데, 물론 참여 밴드들 중 가장 성공한 이름은 Amorphis나 Sentenced이겠으나(Beherit이 돈을 벌진 못했을 테니까) 개중 가장 공연이 궁금했던 밴드는 Demigod이다. 이 포스트에 이름이 나오는 밴드들 중 Demigod을 빼면 전부 라이브 앨범이 있기도 하고.

“Slumber of Sullen Eyes”가 1992년에 나오기도 했고 ‘Embrace the Darkness’로 앨범이 시작하는지라 기대감을 은근히 불러오지만 ‘Blood of the Perished’가 아닌 ‘Succumb to Dark’로 이어지는 모양새가 아무래도 그리 매끄럽진 않고, ‘Embrace the Darkness’와 ‘Transmigration Beyond Eternities’를 빼면 데뷔작에 없는 곡인지라 익숙지가 않은데, 문제는 이런 곡들을 부틀렉의 끝내주는 음질로 듣다 보니 괜찮은 듯하면서도 헷갈리는 구석들이 꽤 된다. 이 페스티벌 관련 부틀렉들이 사실 부틀렉치고는 음질이 괜찮은 편이긴 한데, Demigod 특유의 ‘영적인’ 느낌을 살리기에는 좋진 않다고 생각한다. 역시나 남자 혼자서 옷입고 있는 커버는 이번에도 의문을 불러온다.

그래도 Demigod의 1집 이전 데모를 이제 와서 구하기는 어려워졌으니 팬으로서 구할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보너스로 밴드의 첫 데모로 알려져 있는 1990년 리허설도 들어 있으니 사실 보너스만으로도 돈값은 충분하다. 그런데 이 멕시코 업자는 어떻게 Demigod 데모 음원을 구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Bootleg, 2019]

Beherit / Impaled Nazarene “Day of Darkness Festifall”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블랙메탈 부틀렉 중 한 장이지 않을까? 일단 저 Day of Darkness Festival 자체가 꽤 유명하거니와 1991년의 핀란드 블랙메탈을 확인할 수 있는 앨범은 거의 없는 편이고, 두 밴드들도 핀란드 블랙메탈의 최고 거물급인만큼 이 앨범보다 더 유명한 부틀렉이라면 Emperor의 “Conquering Europe”이나 Dimmu Borgir의 “Spiritual Darkness”, Dissection의 “Night’s Blood” 정도 레벨이 아니라면 별로 없잖을까 싶다. 어떻게 이 두 밴드가 같이 엮였을까 생각도 들지만, Kimmo “Sir” Luttinen이 두 밴드에 한때 몸담았던 걸 생각하면 음악이 판이할지언정 나름 친분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 분이 Catamenia에서도 드럼을 쳤던 걸 생각하면 사실 핀란드도 익스트림메탈 씬은 결국 ‘그놈이 그놈인’ 곳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각설하고.

1991년의 공연인 만큼 대부분의 수록곡은 밴드들의 데모 및 데뷔작에 수록된 곡들이다. Impaed Nazarene은 ‘The Crucified’나 ‘Damnation’ 같이 데뷔작의 수록곡이 주류이지만, Sarcofago의 ‘The Black Vomit’을 그 시절 밴드 특유의 밀어붙이는 스타일로 스래쉬물 빼고 커버하는 모습이 가장 이색적이다. 중요한 건 Beherit의 파트인데, 이 앨범에서 Beherit이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매우 뛰어나다. 블랙메탈 부틀렉다운 형편없는 음질(이라지만 사실 블랙메탈 부틀렉치고 이 앨범의 음질은 무척 훌륭하긴 하다)로도 밴드의 빛나는 실력이 감춰지질 않는다. “Drawing Down the Moon”의 ‘Sadomatic Rites’ 는 이미 이 시절에 완성된 곡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Six Days with Sadistic Slayer’처럼 이 부틀렉 외에 다른 앨범에서 본 적이 없는 곡도 수록되어 있으니 정규작이 아닐지언정 수집가치도 충분하다.

그런데 커버의 오른쪽에 있는 저 남자 한 명. 다들 남녀를 불문하고 발가벗고 있는데 혼자 옷 입고 있는 건 뭔가 싶다. 지금껏 의문이다.

[Bootleg,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