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of Omens “Eyes of the Oracle”

Elevate에서 나온 보기 드문 이탈리아 출신이 아닌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의 데뷔작. 요새는 그 시절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hidden gem’ 식으로 얘기되는 모양이지만 원래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던 밴드였는데 이게 어딜 봐서 숨겨진 보석인지는 잘 모르겠다. 인기야 예전부터 확실히 없긴 했지만 그 이후로도 어지간했나보다라는 생각이 앞선다. 하긴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라면 무조건 찾아듣는 이가 아니라면 딱히 손에 닿을 이유가 없는 밴드이긴 하다.

1998년에 나온 미국 프로그레시브 메탈 앨범이 응당 그렇듯 Dream Theater 스타일임은 분명한데, 밴드의 특징이라면 Dream Theater만큼이나 Fates Warning의 모습(특히 “Perfect Symmetry”)이 묻어난다는 점이다. 사실 보컬은 Geoff Tate 스타일인지라 트리키하게 긁어대지 않는 부분에서는 예전 USPM의 모습도 조금은 보이는데, 일정한 템포로는 10초를 가지 않는 밴드이다보니 그리 직선적인 맛은 찾아볼 수 없다. 미드템포에서 꾸준하게 템포와 구성을 바꿔가면서 화려한 테크닉을 과시하지만, 그러면서도 적당히 차가운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일가견을 보여주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묘기대행진마냥 너무 흐름을 자주 바꾸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런데 분위기는 또 유지하는 게 재주는 재주다…라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그 화려한 테크닉에도 불구하고 망할 만한 이유는 분명히 보여주는 앨범…이긴 하다만, 또 망하기엔 아쉬운 구석이 참 많이 보여서 결국은 추천을 이끌어내는 부류의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사실 ‘Test of Wills’ 만큼은 90년대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명곡이라고 생각한다. Magellan보다도 훨씬 더.

[Elevate, 1998]

Current 93 / HÖH “Island”

어떤 의미에서는 Current 93의 가장 유명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사실 음악만 따지면 Current 93의 앨범들 중에서는 꽤 이질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Hilmar Örn Hilmarsson은 일찌기 Psychic TV의 멤버로 합류하면서 영국의 인더스트리얼 씬에 발을 들여놓았고, Psychic TV와의 작업이 끝난 이후에는 David Tibet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본격 사타닉 인더스트리얼 밴드에 가까웠을 Current 93의 이미지는 그 때 즈음부터 슬슬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Current 93보다는 Nurse with Wound 생각이 더 나던 “In Menstrual Night”의 음악은 Tibet이 그간 해오던 것과는 많이 달랐고, 아마도 새로 합류한 Hilmar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이 앨범은 Current 93이 간만에 다시 Hilmar와 작업한 앨범인데, 이제 Current 93과 대등한 콜라보를 진행하기 때문인지 스타일은 또 다르다. 아마 Current 93의 앨범들 중 이만큼 신서사이저에 의존하는 것도 없지 싶은데, 특히나 ‘The Fall of Christopher Robin’의 뉴웨이브풍 연주나… ‘Falling’의 마냥 어둡지만은 않은 신서사이저 연주 – 거의 드림팝 수준 – 는 예전의 Current 93이라면 생각키 어려운 모습이다. 오컬트하다고 하기도 좀 어렵고, ‘Anyway, People Die’에는 무려 티벳의 Chimed Rig’dzin Lama를 참여시킨 것도 보면 조금은 뉴에이지 – 라기보다는 밀교 – 풍을 생각했는지도? 이게 티베트 불교와 뭐가 관련있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Falling’의 아련한 코러스를 선사했던 그 보컬리스트는 이후 Current 93의 디스코그라피에서 이름을 다시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이후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개시하면서 굳이 Current 93을 떠올려야 할 필요도 여유도 없어 보일 정도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Bjork 얘기다.

[Durtro, 1991]

Black Mass of Absu “Demo 1995”

뉴욕 출신의 약간의 둠과 앰비언트를 곁들인(말하자면 약간 ‘ritual’한 분위기를 가미한 류의) 블랙메탈을 연주하는 밴드. 아마도 이 밴드를 우연히 넷상에서 맞닥뜨린 대부분의 이들이 그랬듯이 Absu의 앨범을 찾다가 본의아니게 마주치곤 하는 밴드인지라 음악을 들어본 이들은 별로 없을지언정 주위에 이 이름을 들어본 이들은 은근 많았다. 아마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꾸준히 있었으니 이 1995년 데모가 이후로도 계속 재발매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 나도 이 데모를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거지만… 그런데 처음 나올 때도 그랬지만 재발매때도 자주반인 거 보면, 재발매라기보단 그냥 주변인 누가 좀 찍어달라고 해서 낸 게 아닌가 싶다. 각설하고.

‘ritual’한 분위기의 블랙메탈이라고 했지만 이런 표현을 듣고 떠올릴 법한 스타일보다는 좀 더 괴팍한 신서사이저 연주와, 때로는 노이즈코어에 가깝게 들리는 리프가 등장하는 음악이고, 덕분에 중간중간 빠른 템포로 블래스트비트를 후려치는 부분이 아니라면 1995년의 블랙메탈이라 생각하긴 힘든 스타일이다. 하긴 ‘H.I.V. Infected Blood of Christ’ 같은 곡명을 보자면 밴드 본인들도 전형적인 블랙메탈보다는 Beherit식의 뒤틀린 스타일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이 앞선다. 하지만 이 데모에서 가장 돋보이는 곡이 Twisted Sister의 ‘Burn in Hell’ 커버라는 사실은 Beherit를 재현하기에는 밴드의 송라이팅이 역부족이었다는 점을 알려준다. 뭐 이런 밴드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Ride for Revenge 같은 밴드도 나오는 거라고 말한다면 부정할 것까진 아니지만, 과연 Ride for Revenge의 팬들이 이 밴드를 좋아할까? 아니라는 데 커피 한 잔 건다.

[Self-financed, 1995]

Vendetta “The 5th”

사람들이 흔히 스래쉬 리바이벌 얘기를 하면서 잊고 넘어가는 사실 중에 하나는 Vendetta가 이미 2002년에 재결성해서 2007년부터는 앨범 사이 간격이 길어서 그렇지 정규 앨범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80년대에 냈던 두 장의 앨범이 모두 걸작에 가까웠음을 생각하면 왜 이렇게 묻히는 걸까 싶을 수 있지만, 간만의 복귀작이었던 2007년작 “Hate”를 들어 보면 이 밴드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를 능히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던 이들도 결국 “Feed the Extermination”의 눈치없는 모던 스래쉬에서는 나지막하게 욕설을 뱉으며(사실 그 분노는 문자로 옮기기도 어렵다) 기다림을 아까워하기 시작했다.

“The 5th”는 그런 상황에서 나온 앨범인데, 그래도 “Feed the Extermination”보다는 분명히 “Brain Damage” 시절의 사운드를 의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출신이 출신인지라 “Brain Damage”는 물론 Destruction의 최근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고, 일정 부분에서는 Kreator의 적당히 스래쉬와 멜로딕데스 사이에 걸쳐 있던 모습을 닮아 있기도 하다. 문제는 Kreator가 멀쩡하게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Vendetta까지 이러는 모습을 반가워할 이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뭐 Kreator 따라하는 밴드가 한둘이겠냐마는, Vendetta의 앨범을 찾아듣는 이들은 그런 모습을 좋아할 리가 없을 것이다. ‘The Prophecy’ 같은 수려한 곡이 있으니 그래도 미워도 다시한번? 뭐 그건 개인의 취향에 맡겨둔다.

[Massacre, 2017]

Rage Against the Globalist Machine “Rage Against the Globalist Machine”

이 웃기는 이름의 밴드는 이름만으로는 블랙메탈에 별 관심이 없을 만한 이들로부터 RATM처럼 자본주의의 세계화 경향에 저항하는 밴드라는 오해를 살 수 있겠지만 그런 밴드가 앨범 커버에 저렇게 미국 국장을 박아놓지는 않았을 것이고, 공인된 NS 레이블인 Europa Erwache에서 앨범이 나왔으니 아마도 이 밴드의 분노는 어디 우리를 감히 쟤네들과 하나로 묶으려고 하냐?는 취지에서의 분노이거나, 아니면 소재가 소재인만큼 프리메이슨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류의 음모론에 탐닉한 자들의 분기탱천에 가까울 것이다.(뭐 얘네가 러셀의 세계정부론 같은 걸 읽어봤을 것 같지도 않고) 뭐가 됐든 가사는 굳이 읽어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NSBM으로 점철된 레이블 발매작으로는 특이하게 이 앨범은 Ministry를 분명히 의식했을 인더스트리얼 메탈을 연주하고 있다…만, 사실 ‘인더스트리얼’이란 용어는 Ministry의 그림자 덕분에 붙인 말이고, 차라리 싼티 물씬 풍기는 드럼머신에 약간의 일렉트로닉스와 디스토션 건 기타 연주를 덧붙인 스타일에 가까울 것이다. 뭐 그래도 이런 류의 레이블에서 흔히 나오는 단조롭기 그지없는 리프와 템포의 싸구려 블랙메탈들과 거의 동일한 단점을 보여주는만큼 그래도 이 밴드를 다른 밴드들과 구별짓자면 ‘인더스트리얼’이란 말은 불가결할지도. 그래도 ‘We Took the Wrong Step Years Ago’와 ‘Urban Guerilla’만큼은 준수한 리프를 들려주는만큼 나쁘지 않게 들을 수 있다. Hawkwind의 커버곡이니 그럴 수밖에.

…그러고 보니 무슨 NS 밴드가 Ministry 스타일을 따라가면서 Hawkwind의 커버곡을 연주하고 있다. 어쩌면 이들의 분노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모를 수도 있겠거니 싶다. 생각이 없어도 이건 좀 너무하잖나. 피해 갈 것.

[Europa Erwache,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