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lywood Burns “Invaders”

Hollywood Burns라는 이름에서 80년대 헐리우드의 화끈함을 재현하려는 신스웨이브 프로젝트의 야망을 엿보았다면 헛짚어도 단단히 헛짚었음이 분명할 이 프랑스 프로젝트는 구성 자체에서 특이할 건 사실 별로 없지만 신스웨이브로서는 좀 신기할 정도로 인더스트리얼의 색채를 걷어내고 오케스트레이션을 전면…까지는 좀 부족하지만 사운드의 핵심에 포함시킨 보기 드문 스타일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헐리우드의 잡식성을 재현하려는 것인지 앨범은 상당히 다양한 소재들을 다뤄낸다. Carpenters Brut 식의 60년대 호러영화 OST를 의식했겠거니 싶은 ‘Scherzo No. 5 Death Minor’와 뜬금없는 UFO 이야기의 ‘Black Saucer’가 한 앨범에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이 앨범에서 밴드의 일관된 컨셉트나 흐름을 읽어낼 수는 없는데, 이 장르의 많은 거물들이 다양한 스타일보다는 나름의 개성으로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라는 점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뉴로맨서풍 하드 SF 테마가 많이 등장하면서 땀내와는 거리가 멀지만 어쨌든 거친 사내들의 세계를 재현하려는 듯한 거친 신서사이저 연주와 효과음으로 승부하곤 하는 상당수의 밴드들과는 달리, 적당히 ‘스푸키’하면서 때로는 정말 헐리우드 영화음악(레이블 광고문구처럼 때로는 거의 Bernard Herrmann 수준)을 연상케 하는 오케스트레이션이 좀 호오가 갈릴 멜로디지만 전체적으로는 꽤 매끈한 ‘팝송’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돋보인다. 그러다가 좀 너무 나간 ‘Came to Annihilate’ 같은 곡도 있긴 하지만 재미있게 들었다. 사실 이 정도 되면 게임 OST로 써도 괜찮잖을까 싶다.

[Blood Music, 2018]

Culver / Seppuku “Dedicated to Soledad Miranda”

유럽 Exploitation물의 나름 잘 알려진 변태 감독 Jesus Franco의 페르소나였던 Soledad Miranda에게 바치는 두 노이즈-파워 일렉트로닉스 프로젝트의 스플릿. 특이한 건 저 앨범명은 앨범 어디를 봐도 쓰여 있지 않고 레이블 웹사이트에만 나와 있었다는 점인데, 뭐 커버가 저 정도 되고 보면(“Eugenie de Sade”의 한 장면) 이 정도 앨범명이야 그냥 생략해도 무리는 없겠거니 싶다. 각설하고.

Culver는 레이블의 말로는 영국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실험적인’ 뮤지션인 Lee Stokoe의 프로젝트인데, 이 앨범만 들어서는 그리 나쁘지는 않으나 과소평가 운운할 정도로 잘 하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31분짜리 노이즈-드론 트랙인 ‘Traces of the Woman by the Lake’만을 싣고 있는데, Sutcliff Jugend를 좀 더 늘어뜨리고 덜 세련되게 만든 스타일에 노이즈를 더 끼얹으면 비슷하려나 싶다. 그래도 명징한(음질이 좋다는 의미는 아님) 베이스라인을 발판으로 인상적인 드론 사운드를 선보이는만큼 듣기 녹녹치는 않지만 괴이한 분위기만큼은 분명하다.

글래스고 출신 프로젝트라는 Seppuku는, 역시 레이블의 말로는 파괴적인 퍼포먼스가 돋보이는 이들인데, 사실 레이블 사장인 Alastair Mabon의 프로젝트이므로 광고문구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밴드가 수록한 2곡이 스타일이 판이하다는 점인데, ‘Inga’가 과격한 부류의 슬럿지 둠에 인더스트리얼을 얹어냈다면 ‘Emanuelle’은 좀 더 노이즈/인더스트리얼에 치우친 편이다. 그래도 ‘Inga’ 하나만으로도 Culver보다는 Seppuku가 좀 더 귀에 쉽게 다가오니 레이블 사장은 Culver 같은 이들을 계약할 것이 아니라 자기 음악이나 열심히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뭐 사실 도긴개긴이긴 하지만.

[At War with False Noise, 2009]

Eyes of Noctum “Inceptum”

Nicolas Cage의 그 아들이 하던 심포닉 블랙메탈 밴드의 유일작. 일단 부친이 워낙 유명인이므로 정말 웬만큼 성공해서는 ‘그 Nicolas Cage의 아들이 하는 메탈 밴드’ 소리를 벗어나기는 어려운 형편이었고, 언제부턴가 과연 시나리오를 보기는 하고 출연작을 고르는 걸까 의심스러운 선택을 보여주는 부친의 필모그래피였지만 블랙메탈을 연주해서야 어쨌든 헐리웃 스타를 넘어서기는 만무했다. 뭐 Nicolas Cage 본인도 블랙메탈 팬이라고 알려져 있는만큼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지도 모르겠다. 2009년에 심포닉블랙이라니(Abigail Williams 스타일도 아니고) 트렌드에 관심이 없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음악은 사실 꽤 들을만한 편이다. 기본적으로 Old Man’s Child가 리프에서 스래쉬함을 덜어내고 코어를 좀 많이 들었는지 틈만 나면 중간중간 브레이크다운을 집어넣으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스타일인데, 일단 Weston Cage(물론 이 밴드에서는 Arcane이란 가명을 사용한다)가 꽤 괜찮은 보컬리스트이기 때문에 귀에 시원시원하게 들어오는 면이 있다. ‘Declaration of War’ 같은 곡의 심포닉은 “Puritanical Euphoric Misanthropia” 이후의 Dimmu Borgir를 연상케 하는 면이 있는데, 물론 그보다는 훨씬 가난한 사운드이지만 없는 돈을 탈탈 털어 이만큼 풍요로운 건반을 가져가는 심포닉 밴드가 요새는 그리 흔치 않다. 잘 부르다가도 자꾸 Dani Filth를 따라하는 고음이 좀 거슬리는 걸 제외하면 즐겁게 들은 앨범.

[Morbid Rose, 2009]

Ten “Stormwarning”

“Stormwarning”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Ten의 앨범이다. 사실 가장 유명한 앨범은 누가 뭐래도 “The Name of the Rose”겠고, 그 다음으로 쳐주곤 하는 앨범을 고르더라도 아마 “Spellbound”나 “The Twilight Chronicles” 정도일 테니 이런 얘기를 했다가는 음알못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뭐 딱히 틀린 얘기는 아니긴 한데). 하지만 원래 Ten이란 밴드를 다이나믹한 맛으로 듣지 않았고, Ten의 최대 장점이라면 때론 역동적이기도 하더라도 결국은 미드템포(와 Gary Hughes의 고음은 내다버린 중후한 목소리)로 풀어내는 ‘은은한’ 분위기가 아닐까 싶은데, 그런 기준에서라면 다이나믹에는 별 관심이 없는 이 앨범이 첫손가락이다! 라는 게 사견이다. 물론 동의하는 이는 아직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으므로 굳이 반박까지 해주실 필요까진 없다.

아무래도 이런 분위기는 Dennis Ward가 만들어낸, 좋게 얘기하면 전체적으로 따뜻한 분위기지만 나쁘게 얘기하면 앨범 전체에 먹먹한 필터링을 씌운 듯한 프로듀싱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Love Song’ 같은 곡의 은은한 분위기를 날 세운 기타 톤으로는 만들기 어려웠을테니 업템포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 앨범의 녹음으로는 적잖이 불가피하지 않았을까. 전작들만큼 역동적이지는 않더라도, 나름 업템포로 청량한 리프와 멜로디를 선사하는 ‘The Hourglass and the Landslide’ 같은 곡도 있으니 흥겨움도 분명하다. 하긴 Ten은 항상 명작을 냈다고는 못할지라도, 한 번도 구린 곡을 내놓았던 기억이 없다.

…예전에 저 ‘Love Song’을 언젠가 생길지도 모를 애인에게 세레나데로 불러주겠다고 연습하던 어느 미친자가 있었는데, 새해를 맞아 솔로탈출했나 확인해 봐야겠다.

[Frontiers, 2011]

Circle Jerks “Wild in the Streets”

Circle Jerks의 2집. 사실 펑크를 굳이 찾아듣지 않은지 좀 됐고 어디 가서 펑크를 좋아한다고 얘기할 만큼 아는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 묵직한 이름들은 그 무식한 메탈헤드라도 만족시킬 정도는 충분히 된다는 점을 오랜 커리어를 통해 입증했으니 기회를 주기엔 충분하다. 메탈은 아니라지만 어쨌든 캘리포니아 하드코어 펑크를 상징하는 밴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Group Sex” 같은 앨범은 충분히 에너제틱했으므로 파워라는 면에서도 매력은 분명하다. 한 때 그 Chris Poland(Megadeth의 그 분 맞음)가 이 밴드의 투어 멤버로 뛰기도 했으므로 메탈헤드의 입장에서도 이야깃거리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말 나온 김에 이 분은 왜 펑크 밴드에서 베이스로 세션을 뛰셨는지 의문이지만 찾아보긴 귀찮으므로 넘어가고.

아무래도 “Group Sex”보다는 조금은 떨어진다는 평가가 일반적일 텐데, “Group Sex”보다 길어진 곡들이 늘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소리까지 있는 모양이지만 25분짜리 앨범을 너무 길다고 얘기하는 건 솔직히 너무한다 싶다. 아무래도 ‘하드코어’라는 말이 붙어 있긴 하지만 후대의 팝 펑크와도 무관하지 않은, 마냥 강하지만은 않은 음악이라서 그렇지 않을까(그런 미국 펑크를 찾는다면 차라리 Siege를 권해본다). 말하자면 적당히 흥겨운 멜로디와 절도있는 에너지가 돋보이는 하드코어 앨범이고, ‘Wild in the Streets’의 코러스는… 이 시절 펑크 밴드들이 만든 것들 중에서도 가장 귀에 잘 박히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러닝타임이 25분이다 보니 러닝머신 뛰면서 듣기에도 좋다. 너무 짧은가? 저질체력으로서는 더 길면 곤란하다.

[Faulty Products,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