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exist “Like the Fearless Hunter”

Nonexist란 이름을 들어본 거도 되게 오랜만인 것 같은데 어느새 Johan Lilva도 나갔으니 밴드는 이제 정말 Johan Reinholdz의 솔로 프로젝트가 되었다. Andromeda가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않은 지 꽤 오래돼버린 현재, 이제는 Johan은 본격 멜로딕데스 뮤지션이라 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커리어가 되었고, 금년에는 급기야 Dark Tranquillity의 기타리스트가 되었으니 뭐 이런 프로젝트를 계속 굴리는 게 이상할 것까진 없겠다. 멜로딕데스 계의 마당발이 되었는지 나가버린 멤버들 대신 데려오는 게스트들의 면모도 화려하다. Mikael Stanne까지 데려오는 걸 보니 Dark Tranquillity에 충성을 다하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각설하고.

음악은 기대 이상으로 마음에 든다. ‘Strictly Sadistic Intent’는 Johan이 멜로딕데스 필드에서 아마도 최고의 테크니션일 거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솔로잉이 돋보이고, (다양한 스타일로 용쓰기는 했지만)직접 보컬을 하는 과욕만 아니었다면 요 근래 들은 멜로딕데스 중에서는 가장 인상적이었을 만한 곡이다. Fear Factory 스타일의 ‘Together We Shall Burn’의 절도있는 리프도 귀에 꽤 잘 들어오고, ‘Emerging from a World Below’는 심심한 리프의 평범한 미드템포 멜로딕데스를 탁월한 솔로잉으로 일신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혹시 Dark Tranquillity 가입을 위한 쇼케이스삼아 만든 앨범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공들인 거 같다는 뜻이다.

[Mighty Music, 2020]

Dunwich “Tale-tied Heart”

모스크바 출신 3인조 둠메탈 밴드… 정도가 보통 하는 얘기이긴 한데, 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둠메탈이긴 하지만 사실 많은 스타일들이 뒤섞여 있는 음악이다. 블랙메탈적인 부분도 있고, 고쓰 물 진하게 머금은 다크웨이브 정도의 사운드도 있고, 당연한 것처럼 때로는 포스트펑크(라기보다는 Joy Division)도 등장하고, 이런저런 장르를 태연자약하게 뒤섞으려다보니 자연스레 복잡해진 구성에서 프로그레시브를 연상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Margarita Dunwich의 보컬을 Cadaveria와 비교하는 이들도 있는 듯한데, 아무래도 음악 스타일이 스타일이다보니 그보다는 Madder Mortem 같은 밴드와 비교하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만, ‘Through the Dense Woods’에서 늑대 소리가 들려오고 거미줄 사이사이에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음침한 숲을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생각은 또 바뀐다. 벌써 이 밴드를 어떻게 설명할지에 제대로 실패하고 있는 글쓴이의 모습이 드러난다.

확실한 건 밴드가 이 모든 스타일들을 앨범에서 일관된 분위기로 제대로 녹여내고 있다는 점이다. ‘Through the Dense Wood’의 때로는 신경질적이기까지 한 블랙메탈이 ‘Solitude’의 멜랑콜리로 이어지고, 앨범에 감도는 묘한 사이키델리아는 아트록 밴드의 면모를 완전히 떨쳐내기 이전의 Deep Purple의 모습까지 생각나는 ‘Mouth of Darkness’의 고색창연한 오르간 연주와 맞물려 꽤 인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그러고 보면 ‘Tale-Tied Heart’라는 앨범명 자체가 Edgar Allan Poe를 이용한 말장난 아닌가? 던위치 호러와 고자질하는 심장을 알고 있는 메탈 팬이라면 이 앨범을 싫어할 리 없을 것이다. 일단 내가 아주 좋게 들었다.

[Caligari, 2020]

Darkwood “Flammende Welt”

“Heimat & Jugend”가 밴드의 커리어를 통틀어도 황당할 정도로 인더스트리얼에 치우친 앨범이었다면 네오포크의 전형에 가장 가까우면서 Darkwood의 이름을 널리 알린 앨범은 아무래도 “Flammende Welt”이지 않나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일렉트로닉이 없지는 않고, 사실 “The Final Hour” 라이브에서의 Forseti스러운 모습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이 정도의 일렉트로닉스에도 볼멘소리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이건 꽤 불공평한 얘기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이라도 Death in June이 꾸준하게 포크 뒤에 깔아주던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에 불만을 얘기한 적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종일관한 스타일이 어떤 뮤지션에게는 오랜 세월이 가져다 준 뚝심이지만, Yngwie Malmsteen에게는 발전 없는 아집처럼 얘기되는 것과도 비슷할지 모르겠다. 네오포크 얘기하면서 왜 Yngwie가 튀어나오는지 나도 잘 모르겠으니 일단 넘어가고.

“Take Care & Control”의 의기양양함을 연상케 하는 웅장한 ‘For Europe’으로 시작하는 앨범이지만 음악은 전체적으로 꽤 정적인 편이다. Nadja S. Mort의 첼로가 생각보다 중심에서 곡들을 이끌어 가는데, 그러다가도 ‘Storm of the Gods’ 같은 곡에서는 Hendryk의 기타만으로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 데가 있는 거 보면 포크의 전형이긴 하지만 꽤 martial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다. Churchill의 목소리를 샘플링으로 써먹는 ‘Conquer We Shall’이 인더스트리얼 없이도 2차대전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우연이 아닌 셈이다.

그리고 이 밴드의 최고의 강점은 이렇게 유럽풍 강한 네오포크 밴드들이 흔히 보여주는, 흘러간 유럽의 영광을 세우려고 악전고투하는 모습이 결국은 그네들이 유럽의 현재를 표현하는 ‘잿더미’를 막지는 못한다는 일종의 역설을 매우 명확하게 보여주곤 한다는 점이다. 독일 밴드가 Churchil 목소리를 써먹는 것도 그렇고, ‘For Europe’으로 시작하는 앨범이 ‘In Ruinen’으로 끝나는 건 그러고 보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망해버린 1930년대 독일의 보수주의를 이제 와서 멋들어지게 음악으로 표현하는 사내라고 해도 그럴 법하리라 생각한다.

[Heidenvolk, 2001]

Irreversible Mechanism “Immersion”

“Infinite Fields”는 좀 산만하게 들린다는 게 많은 이들의 평인 듯하나 사견으로는 산만하기보다는 그만큼 많은 아이디어를 우겨넣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고 하는 게 더 알맞을, 데뷔작으로는 기대 이상으로 잘 나온 앨범이었다. Fallujah 스타일의 리프에 이 장르 특유의 적당한 싼티가 묻어나는 톤의 오케스트레이션도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말하자면 데뷔작스럽게 아쉬움이 없진 않으나 기대감만큼은 충만한 테크니컬 데스 유망주였던 셈이다. 벨라루스 테크니컬 데스라니 더 눈에 띄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미국 데스도 장사가 안 되는데 벨라루스 데스가 장사가 되나?

“Immersion”은 좀 더 나아갔다. 전작과의 두드러진 차이점이라면 전작의 묘하게 싼티나는 심포닉이 신스웨이브에 가까울 신서사이저 연주로 대체됐다는 점이고, 덕분에 일부 곡에서는 Aborym이 “Fire Walk with Us!” 시절 보여준 뿅뿅이 사운드를 좀 더 웅장하게 만든 스타일도 발견할 수 있다. 간혹 신서사이저에 리버브를 머금은 솔로잉을 얹어내는 모습에서는 Riverside(폴란드 그 분들 맞음)의 덜 메탈스러웠던 시절 – 하긴 Riverside가 1집 빼고 메탈스러운 적이 있었나 – 면모를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그렇게 등장한 앨범은 테크니컬 데스 앨범으로는 보기 드물게 ‘ethereal’한 면모가 돋보이는 음악이 되었다. 덕분에 클래식한 맛은 없지만 즐길거리들은 확실하다. ‘Simulacra’ 같은 곡을 데스메탈 사이에 어울리게 끼워넣을 수 있는 밴드는 별로 없을 거다.

[Blood Music, 2018]

Abruptum “De Profundis Mors Vas Consumet”

괴이쩍은 작명 센스를 보여준 많은 블랙메탈 뮤지션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발군의 작명 센스를 보여준 이라면 It만한 사람도 없지 않았나 싶다. 때로는 어떻게 읽는지도 의심스러울 스펠링의 이름이나, 솔로몬의 72악마 말석 어딘가에나 박혀 있을 법한 이름을 가져다 쓰는 이도 넘쳐나는 블랙메탈에서 이 정도면 거의 의도된 몰개성에 가까울 이름이다. 하긴 본인도 어떠한 퍼스낼리티나 범주화를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이름이라고 하니 이해되는 선택이지만, 솔직한 생각으론 블랙메탈 쪽에서 활동하면서 It이라는 가명을 이용하는 것은 몰개성의 탈을 뒤집어쓴 개성에 가까울 것이다. 뮤지션 이름이 무명씨라고 한다면 그게 더 기억에 남겠거니 싶다.

이 블랙메탈의 90년대 초창기부터 활동한 뮤지션의 가장 잘 알려진 밴드일 Abruptum은… 일단 카테고리는 메탈로 해놓긴 했다만 음악만 봐서는 사실 메탈 밴드라고 하긴 좀 어렵다. 꽤 먹먹한 톤의 느릿느릿한 리프에 조금은 싼티나는 호러풍 키보드를 깔아두는 심플한 연주는 메탈보다는 그냥 기타를 조금 이용한 다크웨이브/앰비언트에 가까워 보인다. 이 심플한 연주에 어느 밴드도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의 아우라(라긴 좀 뭣하고 분위기)를 부여하는 것은 It의 그 미친 듯한 보컬이다. All(이것도 멤버 이름이다. 이 밴드는 애들 작명이 왜 다 이 모양이냐)의 보컬이 좀 더 익숙한 데스메탈 보컬에 가깝다면, It의 보컬은 고문의 간접체험 기제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밴드의 정규작은 걸핏하면 곡당 1시간이 넘어가는 괴팍한 러닝타임을 보여주므로, 그래도 짤막한 러닝타임을 보여주는 이 EP를 권하는 편이다. 아마도 밴드의 가장 잘 알려진 곡일 ‘De Profundis Mors Vas Cousumet’이 있는 것도 그렇고.

[Blooddawn,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