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yrian “Eternitas”

Everon으로 그래도 (한 줌의)네오프로그 팬들에게는 조금 이름이 알려진 Oliver Philipps는 커리어가 멜로딕/프로그로 점철되어 있을 것 같은 인상과는 달리 간혹 블랙/데스메탈 밴드에도 연주를 빌려주곤 했다. 뭐 결과물이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Oliver 본인도 프로그레시브 외의 음악에 아예 담을 쌓은 것은 아니었으니 가능했을 일이라 짐작한다. 앨범이 몇 장 안 나와서 그렇지 Oliver는 1995년부터 고딕메탈 밴드 Danse Macabre의 멤버로 활동했고, 장사가 안 됐는지 2004년부터 밴드는 Satyrian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이어 갔다. 하긴 저런 이름으로는 아무래도 생상스의 교향시를 검색순위에서 이길 수가 없다.

그렇게 나온 앨범은 사실 나쁘지는 않다. 어쨌든 고딕메탈인데 레이블이 Lion Music인 게 이색적이지만, ‘The Bridge of Death’ 같은 곡은 고딕메탈이 아니라 Ayreon 생각까지 날 지경이니 이상할 일까지는 아니다. Oliver는 여전히 깔끔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선보이고 있고, Tristania를 많이 참고했을 스타일은 어쨌든 멜로디만 잘 뽑아낸다면 무난하게 듣기는 문제없을 것이다. 이미 이런 스타일이 너무 흔해져버린 2006년이었지만 보컬이 4명이나 되는 밴드는 흔치 않았을테니 그걸 나름의 개성이라 할 수 있을지도. 사실 Lion Music에서 가끔이라도 그로울링이 나오는 앨범이 나왔다는 자체가 신기할 일이기도 하고.

[Lion Music, 2006]

Brats “1980”

코펜하겐 출신 펑크 밴드의 유일작. 앨범명이 말해주듯 1980년작이지만 밴드가 결성된 것은 1977년이었고, Sex Pistols의 데뷔작이 나온 것도 1977년이었으니 펑크 열풍이 도버 해협을 넘어 본토에 상륙하면서 나온 수많은 후속 밴드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만, 정작 펑크 열풍이 사그라든 1980년에야 나온 앨범이어서인지 음악은 그 1977년의 펑크와는 많이 달랐다. 아마도 Judas Priest의 리프를 많이 참고하지 않았을까 싶은 리프는 분명 흥겨운 펑크였지만, 보통의 펑크 밴드들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하드한 편이었다. 말하자면 펑크가 메탈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운드를 보여준 밴드였던 셈인데, 그런 면에서는 Sex Pistols보다는 Stiv Bators 같은 이와 비교하는 게 더 나을 듯싶다. 물론 그냥 사견이다.

그래도 어쨌든 이 밴드가 ‘펑크’ 밴드로 분류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파워 팝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건강한’ 코러스이지 싶다. Franz de Zaster의 보컬도 허세를 그득히 담은 그 시절 펑크에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었고, 하드하긴 했지만 NWOBHM보다는 차라리 Ted Nugent에 비슷해 보였던 ‘Strangehold’ 같은 곡의 그루브도 충분히 흥겨웠다. 그렇다고 팝 센스 그득한 괜찮은 펑크 밴드라고 하기에는 ‘Fuel’ 같은 스트레이트한 트랙이나 꽤 복잡한 구성의 트윈 기타가 귀에 박히는 ‘Tame Me(Insomniac)’ 같은 곡이 귀에 어지간히 걸린다. 웬만한 메탈 밴드들보다 기타를 훨씬 잘 친다.

그래서인지 펑크 밴드 Brats의 시간은 길지 않았고, 멤버들간 부침이 있던 끝에 밴드를 이끌던 Hank는 기존의 멤버들과 헤어지고 새로운 보컬리스트 King과, 길지 않았지만 활동을 같이 했던 Michael을 끌어들여 새로이 활동을 이어 나갔다. 물론 음악은 Brats 시절보다 더욱 메탈스러웠고, 이름도 이제는 더 이상 Brats일 필요가 없었다. Mercyful Fate의 시작이었다.

[CBS, 1980]

Vondur “Striðsyfirlýsing”

블랙메탈을 빙자한 개그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블랙메탈의 나름 짧지 않은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개그를 시도한 밴드들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Vondur가 첫손에 꼽히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얘기하면 뭔가 거창한 음악이 담겨 있었을 것 같지만 사실 이 데뷔작(이자 창작곡으로는 사실상의 유일작)의 음악은 솔직히 들어줄 구석을 도대체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 It과 All이라는 90년대 블랙메탈의 네임드들과 얼척없긴 하지만 뭔가 있을 것 같은 저 다스 베이더 커버를 믿은 얼치기 메탈헤드가 씨디를 돌리면서 마주했을 당혹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아마도 Necropolis 레이블에 대한 개인적인(그리고 부정적인) 편견이 시작된 지점이었으리라 짐작하고 있다.

굳이 스타일을 말한다면 서너개 남짓한 코드들을 이용한(그리고 분명 트레블을 잘못 건드린 거로 예상되는) 심플한 트레몰로 리프와 함께 트리벌하다기보다는 단순한 리듬 파트에 싼티로는 당대의 동향 밴드들을 능가하는 신서사이저를 곁들인 블랙메탈인데, 특히 매우 뜬금없는 타이밍에 튀어나오는 FX 효과음이 (다른 의미에서)일품이다. 좀 과음한 King Diamond를 따라하는 듯한 클린보컬과 좀 읽어보면 조크들로 점철되어 있는 라이너노트, 스웨덴 밴드지만 사실은 스웨덴 말도 아니라고 알려져 있는 곡명들 등 뭐 하나 비범하지 않은 구석이 없다.

물론 씨디값을 날렸다고 생각하고 있는 동방의 메탈헤드에게 이런 식의 유머가 먹혔을 가능성은 낮았고, 그래서 이 앨범을 듣고 유쾌했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그런 기억은 없다. 그렇지만 쓸데없을 정도로 무게잡고 블랙메탈의 이름으로 세상을 정복하려는 듯 날뛰던 천둥벌거숭이들이 아직 넘쳐나던 1996년에 이런 음악을 했으니 아마도 씬의 역사에 이 정도의 어그로는 그 이후로도 예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No Compromise!” 컴필레이션에도 통째로 수록되어 있긴 하지만 이 앨범은 바로 저 다스 베이더 버전을 사야만 한다. 대체 이 앨범에서 저 개그를 빼면 뭐가 남는단 말인가?

[Necropolis, 1996]

Witch Taint “Sons of Midwestern Darkness”

블랙메탈을 아는 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지독한 농담을 남긴 Witch Taint의 데뷔작. 설마 저 이름으로 밴드를 정말로 만들겠냐 하는 게 대부분의 생각이었다면 우리의 Dave Hill은 그네들의 상상을 넘어서는 개그맨이었음이 밝혀진 셈이다. 일단 Immortal을 뒤틀고 있는 앨범명은 물론이고, 밴드의 멍청한 이미지를 최대한 살려내고 있는 커버도 그런 짐작에 충분히 부응한다. 다만 앨범을 돌려보기 전에 부클렛을 들춰보면 이 희대의 코미디 앨범에 Chris Reifert나 Malphas 같은 진짜 ‘네임드’들이 참여하고 있는 게 눈에 걸린다. 이거 코미디 아니었나?

그렇게 만들어진 앨범은 분명 코미디는 맞긴 하지만 담겨 있는 음악의 수준이 우스운 건 아니다. 오히려 블랙메탈은 물론 헤비메탈, 펑크(아무래도 Misfits풍), 바이킹메탈 등 다양한 장르들의 스타일을 기묘하게 뒤틀어 코미디로 만드는 모양새는 이 밴드가 얼마나 장르의 클리셰들을 잘 알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뭐 그리고 그 모든 걸 떠나서… 곡 자체가 매우 ‘웃긴다’. ‘Ready 4 Lvv’ 같은 곡의 소울풀한(그리고 능글맞기 그지없는) ‘파워 발라드’ 섹션을 듣다가 나오는 다음 곡에서 등장하는 너 블랙메탈할 준비됐냐? 가사를 마주하면 이거 녹음하느라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주도 그럴듯하지만 엄청 웃겼을 것 같다. 하긴 애초에 앨범에 안 웃긴 곡이 하나도 없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우리의 Lance와 함께하고 있는 멤버의 이름은 ‘Matthias Backwards’인데…. Matthias를 거꾸로 하면 Saihttam, Planet Satan Revolution의 주인장 이름이다. 설마 그 본인인가?

[Tee Pee Records, 2020]

Panzerfaust “The Suns of Perdition – Chapter II : Render unto Eden”

그러고 보면 Panzerfaust라는 이름도 많은 밴드들이 쓸 법한 이름인데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이 밴드와 Blutreinheit에서 컴필레이션 한 장이 나왔던 향상심 없어뵈는 음악의 프랑스 블랙메탈 밴드가 유이하다…만, 이 캐나다 밴드는 그 프랑스 밴드와 비교를 거부하는 수준이니만큼 Panzerfaust는 그냥 캐나다 블랙메탈 밴드라고 기억하는 게 더 편리하겠다. 이름답게 2차 대전을 주 소재로 써먹는 블랙메탈 밴드인데, 아무래도 Marduk과는 시절을 달리하는 밴드인지라 그렇게 달리는 스타일을 Deathspell Omega풍으로 뒤트는 구석이 있고, 미드템포로 분위기 잡는 부분은 사실 캐나다보다는 폴란드 블랙메탈(굳이 하나를 짚는다면 Mgla)에서 흔히 찾아볼 만한 모습이 있다. 당장 첫 곡인 ‘Promethean Fire’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걸리더니 부클렛에 Marsha Arkhipova(Arkona)의 이름이 있더라.

그래도 앨범의 스타일을 대변하는 곡은 역시 ‘The Snare of the Fowler’이다. 달리 말하면 가장 Mgla 생각이 많이 나는 곡인데, 리프보다는 적당한 멜로디와 간혹 등장하는 그루브, 느슨할 때쯤 등장하는 블래스트비트 등 곡을 이어 나가는 방식에서 그렇다. 보컬도 전형적인 블랙메탈 보컬보다는 가끔은 슬럿지에 어울릴 법한 목소리도 등장하는지라 저 ‘그루브’가 그리 어색하지 않다. 사실 이런 류의 블랙메탈에서 그루브 얘기가 나오는 건 그만큼 질주감을 갉아먹었다는 얘기와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이 밴드는 블랙메탈 밴드가 보기 드물게 그루브를 ‘바람직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테크닉도 Eisenwald에서 앨범 내는 밴드들 가운데서는 단연 첫손가락이 아닐까 싶다. 하긴 여기 Ildjarn 앨범도 나오는 곳이니 여기서 테크닉 1등먹는 게 그리 칭찬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Eisenwald,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