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야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으나 Kenneth Anger의 “Lucifer Rising”은 그 음악으로도 꽤 유명한 작품이었다. 물론 그건 음악 자체보다는 제작을 둘러싼 이야기들 때문일 것이다. 당장 이 글부터 영화 OST 얘기를 하면서 영화는 못 봤다고 얘기를 시작하고 있는 마당이니… 당초 Bobby Beausolieli가 음악을 맡기로 되어 있던 이 영화는 어찌된 사정인지 Bobby가 아닌 Jimmy Page의 음악 제작 얘기가 오갔고, 잘 알려진 것처럼 Jimmy Page의 작업이 어그러진 뒤에 다시 Bobby가 음악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양반이 1급살인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게 1970년이었으니 콩밥 먹으면서 음악 만드는 것도 결국 원조는 Varg Vikernes가 아니라 따로 있었던 셈이다. 본인들이야 이런 거 원조 먹어서 좋을 게 뭐 있냐고 할 것 같기는 하다만.
Charles Manson 만나면서 사람이 이상해져서 그렇지 원래 멀쩡하게 음악하던 사람인만큼 앨범은 기대 이상의 음악을 들려준다. Arthur Lee와 음악하던 시절도 있음을 입증하듯 기본적으로 블루지하면서도 사이키한 기타 연주를 들려주는데, 그래도 이 앨범이 프로그레시브 관련 아카이브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은 Ash Ra Tempel 풍의 키보드이다(특히 Part 1과 2). ‘Part 4’는 더 나아가서 Faust 생각까지 날 정도인데, 사실 그렇게 스페이스하지는 않고 약 냄새가 뒤로 갈수록 점점 심해진다는 정도로 말하는 게 더 맞을지도. 그래도 블루지한 연주 덕분에 가끔은 Pink Floyd가 Klaus Schulze를 영입해서 음악을 만들었다면 좀 비슷했으려나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범죄자인 거야 매한가지지만 Charles Manson 같은 인물과 어울리기에는 참 아까웠던 사람이었던 셈이다. 영화야 구하기 어려운 모양이지만 OST는 숱하게 재발매된 고로 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Lethal, 1980]
웨일스 출신 블랙메탈을 아는 게 있느냐 물으면 사실 대개는 고개를 갸웃거릴 거로 예상함이 정상이라면 Revenant Marquis의 근래는 정말 기대 이상의 관심을 끌고 있는 셈이다. 물론 밴드의 출신지가 아닌 음악이 가져온 결과다. 보통 로블랙으로 소개되는 밴드이지만 의도적으로 조금씩 어긋난 코드의 코드들이나 베이스 드럼 위에 태연자약하게 얹히는 8비트 리듬의 심벌은 블랙메탈의 컨벤션에서 생각하면 당황스럽다. ‘Grave Lit Transmogrification’의 리프고 뭐고 다 들어내고 멜로디라인만 살려두고 페이드 아웃되는 모습은 잠깐이지만 내가 뭔가 잘못 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떠올려 준다. 물론 기대대로 달려주는 ‘Ysgol’의 도입부에서 다시 정신이 돌아오지만 말이다.
이 밴드에 대한 기억이 두 가지인데, 첫번째는 Metal Blade 레이블만 보고 샀던 “A Boy Named Goo”의 (나쁘지는 않았지만)충격적인 음악을 접하면서 그간 욕구불만을 감내해 가며 모았던 쌈짓돈이 날아가는 듯한 허탈감을 맛보았던 하루이고, 두번째는 지금도 왜 아버지와 같이 남자 둘이서 보러 갔는지 모를 “시티 오브 엔젤”에서 딱 하나 기억나는 노래 ‘Iris’가 이 밴드의 곡이라는 걸 알았을 때의 생경함(달리 표현하면 “얘네가 어떻게?” 정도의 느낌일 것이다)이다. 전형적인 무뚝뚝 경상도 싸나이셨던 우리 아버지가 딱히 멜로물에 관심도 없는 아들놈을 데리고 보러 간 영화가 왜 저거였는지는(영화가 별로 재미없었기 때문에 더욱 큰 문제다) 지금도 짐작이 되지 않는다. 좀 더 나이 먹으면 알게 되려나 모르겠다.
하필 이름이 저러셔서 얘기해 봐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얘기만 줄창 나오지만(그 유명 감독은 성에 s를 1개만 쓰신다) 이 스코틀랜드 뮤지션이 다른 팀들 놔두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응원할지는 잘 모르겠다. 커리어를 따지자면 무려 Psychic TV의 원년 멤버이므로 나름 굵직한 인물인 셈인데, Eis & Licht에서 솔로 앨범을 낸다는 게 쉬이 그려지는 모습은 아니다. 인더스트리얼 아니면 포스트펑크를 기대할 만한 이름이 나긋나긋 네오포크를 주로 내는 미국 레이블에서 앨범이 나온다고 한다면 청자로서는 어떤 음악을 기대해야 할지 좀 헷갈린다. 검색해 봐야 음악 얘기보다 축구 얘기가 훨씬 많이 나오므로 참을성 없는 청자라면 정보 얻기도 쉽지 않다.
유명 멤버들이 모여서 만든 슈퍼밴드! 식으로 광고되는 밴드가 유명세에 반비례하는 판매고를 보여주는 모습이야 꽤 쉬이 볼 수 있는 편인데, 주변에서 바라보매 자아 강한 멤버들이 서로 융화되지 못했다, 앨범 한 장에 너무 많은 걸 넣으려고 했다 식의 사후약방문식 처방이 흔히 이어지지만, 사실 원인은 슈퍼밴드라는 말을 너무 쉽게 써주는 데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편이다. 좁은 씬에서 맞닥뜨리는 멤버들이 결국 그놈이 그놈이다보니 씬 내의 이합집산마냥 튀어나오는 밴드들을 모두 슈퍼밴드라고 해주는 건 좀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인맥왕 한 명이 더없이 검증된 멤버들을 끌어모아 클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퀄리티를 보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Ayreon이 슈퍼밴드의 모범사례 아닐까 싶다. 각설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