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stre “Lustre”

lustre1996.jpg이 밴드의 인지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은 Lustre라는 이름을 보고 밴드를 떠올린다면 이 밴드가 아니라 보통 스웨덴 블랙메탈 밴드 Lustre를 떠올리곤 한다는 점이다. 뭐 세평이 좋긴 하다지만 ‘앰비언트 블랙’을 연주하는 밴드에게 파워 팝 밴드가 인지도에서 밀린다니 어지간히 망하긴 했나보다. 하긴 시간도 많이 지났고, 1996년은 이미 얼터너티브가 확실히 힘이 빠지긴 했던 시절이었다. 아무래도 Teenage Fanclub이나 Husker Du 같은 거물들과 비교되기에는 좀 많이 밀리는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이거 한 장 내고 망하기는 아까운 밴드였다고 생각하는데 하긴 그 시절 한 장 내고 망한 밴드가 이들만은 아니렷다.

망했다고는 하지만 이 앨범은 내가 들어본 그 시절의 얼터너티브, 또는 파워 팝 앨범들 중에서는 손꼽힐 정도로 인상적인 ‘훅’을 보여준 앨범이었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귀에 잘 박히는 리프도 그렇고, 앨범의 수록곡들도 나름대로 꽤 다양한 스타일들을 보여준다. 그래도 아직은 장르에 돈맛을 기대할 만했던 시절이었는지 A&M에서 나온 앨범인지라 음질도 나쁘지 않다. Robert Christgau가 C-를 준 게 한이 됐는지 검색하면 나오는 얘기의 절반은 저 C- 점수 얘기이지만… 뭐, 나라면 B+은 주지 않았을까 싶다. ‘Kalifornia’도 그렇고, 재발매반 B-Side로 들어간 ‘Great’도 충분히 흥겹다. 중고음반값 3달러로 맛보기에는 훌륭한 음악이다.

[A&M, 1996]

Darkwood “Heimat & Jugend”

darkwood-2nd.jpg이 앨범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내 정규 고교 교육과정에서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마지못해)선택하고 이 앨범 제목을 ‘소년이여 하이마트에 가라’로 해석하면서 현재까지 택배업 외길인생을 걷고 있는 지인이고, 두 번째는 뜬금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에 당혹스러워하던 내 모습이다. Darkwood를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꽤 멋들어진 포크 송으로 가득했던 데뷔작 이후의 이 앨범은 포크는커녕 앰비언트/인더스트리얼 트랙으로만 이루어졌으니 부정기적인 수입의 사내로서는 본전 생각이 나기 마련이었다. 그러고 보면 ‘apocalyptic soundscape’를 의도했다는 밴드의 의도는 어떤 면에서는 목표를 초과달성한 셈이다. 적어도 (나를 포함한)어떤 청자들은 충분히 apocalyptic해진 기분을 맛봤을 것이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하지만 앨범은 사실 충분히 훌륭했다. 좀 더 호전적인 태도로 가다듬은 Allerseelen을 연상할 법한 ‘Nachtgawitter’가 백미이겠지만, 포크만 빼고는 꽤 다양한 스타일을 모두 담아내고 있는 앨범이니 개인들의 선호는 다양하겠거니 싶다. 말이 앰비언트지 사실 Cyclic Law 류의 앰비언트보다는 훨씬 오케스트럴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듣기에는 좀 더 편한 편이고, 인더스트리얼 트랙 사이사이에 이런 ‘화려한’ 앰비언트를 끼워넣은 만큼 앨범 전체로도 꽤 수월하게 귓가를 흘러가는 편이다. 결국은 포크라고 생각하지만 않으면 충분히 멋진 앨범인데, 하긴 말하면서도 Darkwood를 네오’포크’가 아닌 다른 스타일로 생각하는 게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Darkwood의 앨범들 가운데에서도 이후로는 이만큼 전자음 섞인 앨범을 찾아보기 어려운지도.

[Heidenvolk, 2002]

Rosetta Stone “Foundation Stones”

foundationstones.jpg사실 Rosetta Stone이 딱히 주목해야 할 정도로 훌륭한 음악을 했느냐 묻는다면 자신있게 네라고 하기는 조금 망설여지는 밴드이긴 하다. 게다가 The Sisters of Mercy도 안 팔리는 마당에 Rosetta Stone의 초기작 컴필레이션이 장사가 될 리는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꾸준하게 중고매장에서만 얼굴을 디미는 앨범이었는데, 암만 아류일지언정 1984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던 오랜 구력의 밴드임을 생각하면 조금은 운수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때이지만 Daniel Lazarus가 프로듀스를 눈독들일 정도로 가능성을 인정받기도 했던 이들이다. 바꿔 말하면 나름 메인스트림에서도 인정받을 만한 구석이 있었다는 건데, 확실히 이 앨범의 ‘초기작’들을 들어 보더라도 어떤 부분이 ‘먹힌다’ 고 생각되었을지 짐작되는 부분이 있다.

물론 솔직히 얘기해서 The Sisters of Mercy의 영향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표절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다(예를 들면 ‘Heartland’를 너무 갖다 썼다 싶은 ‘Cimmerian’). 이 밴드의 개성 중의 하나는 Madame Razor라는 이름의 ‘드럼머신’인데, 당연히 드럼머신을 안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그것도 마이너스다. 하지만 사실 적당히 ‘댄서블’ 하면서도 쟁글거리는 리프와 멜로디가 귀에 생각보다 잘 박히는 것도 분명하다. 솔직히 80년대 후반부터의 영국 고쓰 씬이 만들어낼 수 있었던 ‘팝송’의 준수한 예들이라고 생각한다. ‘Heartland’를 몰랐다면 ‘Cimmerian’도 사실 꽤 명곡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가성비만큼은 확실한 앨범인데, 또 절묘하게 밴드의 가장 잘 알려진 곡들은 잘 피해가고 있어서 정규작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도 그만큼 가치가 있을지도.

[Cleopatra, 1993]

SPK “Zamia Lehmanni – Songs Of Byzantine Flowers”

spk-zamia.jpg사실 초창기 인더스트리얼 밴드들 대부분의 이미지는 나사 좀 많이 빠진(아니면 너무 많이 박힌) 전위예술가에 가까울 법한데, SPK는 그 중에서도 좀 더 과격해 보이는 이미지를 가진 밴드였다(고 생각한다). 워낙 유명해진 화염방사기 쑈라든가 네크로필리아라든가… 아무래도 음악만 따지고 본다면 그래도 확실히 ‘사람다웠던’ Cabaret Voltaire나 Throbbing Gristle에 비해 더 거칠었던 사실도 중요했을 것이다. 그래도 잘 알려져 있듯이 이 무지막지한 밴드도 시간이 지나면서 마냥 과격할 수는 없었고, 곧 밴드는 사실상 Graeme Revell의 솔로 프로젝트로 재편되면서 신스 팝 물을 먹은 다크 앰비언트 밴드가 되어 갔다.

보통 이게 SPK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글들의 내용인데, 그래도 SPK 음악의 정점이라면 이런 ‘솔로 프로젝트’로서의 첫 번째 앨범이었던 본작이 아니려나 싶다. 인더스트리얼이 90년대의 다크웨이브/앰비언트로 이행되는 방식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하고, 많은 후대들이 저지르는 것처럼 자칫 징징대는 분위기로 나아가지 않고 적당히 클래시컬하면서도 적당히 ‘주술적인’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간혹은 Jon Hassell마냥 좀 뒤틀어서 편곡된 Dead Can Dance 같다는 느낌도 주는데, ‘Romanz In Moll(Romance In A Minor Key)’ 같은 곡의 과격함이 적당히 청자들의 주의도 환기해 준다. 원래 꽤 애 먹어가며 구했던 앨범인데, 이번에 Cold Spring에서 17년만에 재발매가 됐으므로 없으신 분들은 이 기회에 한 장 꽂아 두심도 좋겠다. 그냥 미친놈 밴드가 아니다.

[Side Effects, 1986]

X-Piral “Poison Eyes”

poisoneyes.jpg그리스 파워메탈에 대한 개인적인 선입견이라면 꽤 높은 확률로 보통 장르에서 떠올리곤 하는 힘있고 쭉쭉 뻗어나가는 스타일의 보컬과 수려한 멜로디는 커녕, 조금은 나사 빠진 듯한 보컬리스트와 좋게 봐줘도 쉽게 들어오지는 않을 멜로디를 이런저런 구성으로 극복해 보려는 밴드들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상태가 안 좋았던 것은 아닌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스타일을 탁월하게 소화해냈던 소수의 밴드들은 더 이상 파워메탈이라기보다는 Manilla Road풍의 에픽메탈 밴드가 되어 버렸다. 이를테면 Wotan이나 Airged L’amh라든가… 그런 면에서 Gus G.나 Sacral Rage 같은 밴드들은 진짜 별종에 가까운 셈이다.

X-Piral도 그런 면에서는 충분히 별종인데, Sacral Rage 등과의 차이가 있다면 꽤 분전 중인 기타 연주를 제외한다면 딱히 들어줄만한 부분이 별로 없다는 점일 것이다. 꼭 그리스여서 그런 건 아니지만 돈 없는 밴드들의 데뷔작들이 자주들 그렇듯이 공허한 음질이 돋보이는데, 블랙메탈도 아니고 이 장르와는 그런 음질이 장점이 됐던 사례를 본 기억이 없다. 기타보다는 한 걸음 물러서 있지만 붕붕대는 톤(과장 섞으면 Shadow Gallery 1집의 가장 안 좋은 부분만을 모아놓은 듯한)의 키보드도 못내 거북하다. ‘Plains of Perfection’ 같은 곡의 Judas Priest풍 리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점도 어찌 생각하면 키보드가 그만큼 받쳐주지 못했다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Far Horizons’ 같은 곡을 듣노라면 마냥 곡을 못 쓰는 이들도 아닌 듯한데 인생은 이들에게도 그리 녹록지 않았다. 하긴 그러니까 그 이후 소식을 전혀 못 들어봤겠지.

[Burning Star,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