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enemy “Violent Harm”

archenemy2008.jpg당연히 Amott 형제(뭐 지금은 한 분은 나갔지만)의 그 밴드가 훨씬 유명하지만 어쨌든 이들도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 시절 데스메탈의 한 맹아가 되었다…는 정도로 Hells Headbangers에서는 설명하고 있다만, 그렇다고 이 이름을 들어본 적은 딱히 없었으니 2008년 이 컴필레이션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빛볼 일은 딱히 없었던 모양이다. 그나마 우리에게는 Annathema라는 (어떻게 보면 좀 웃기는)이름으로 활동하는 세르비아 밴드의 뜬금 박스셋을 발매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는 않고, 흘러간 밴드들의 재발매에 주력하는 중국 레이블 AreaDeath Prod.의 재발매 덕분에 이후 구하기는 좀 더 편해졌다. 뭐 그렇다고 2008년 오리지널이 구하기 어려워졌다거나 이 물건을 구함에 마음이 설렌다거나 하는 건 딱히 없다는 게 밴드의 입지를 뭔가 보여주는 듯하다.

그런 낮은 기대치에 비해서는 음악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데스메탈의 맹아가 됐다고까지 띄워줄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고 초창기 Slayer와 Death, Possessed 정도를 적당히 믹스한 스타일인데, ‘Violent Abuse’ 같은 곡은 사실 하드코어 펑크에 가까운 사운드도 엿보이는만큼 80년대 중반 거친 맛이 돋보이는 마이너 스래쉬하고 하는 게 내 생각엔 더 정확하고, 그런 면에서는 D.R.I와 비슷한 데가 있는 밴드라고 할 수 있겠다. A사이드나 B사이드나 한 곡을 제외하고는 수록곡은 같지만, 좀 더 정리된 맛이 있고 보컬도 들어간 A사이드가 듣기 훨씬 편한 편이다. 아니, ‘Violent Abuse’가 특히 맘에 든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이 앨범을 B사이드까지 찾아 들을 필요는 아마 없을지도.

[Hells Headbangers, 2008]

Death in June “Essence!”

deathinjune_essence.jpg뭔가 꾸준하게 나온 것 같은 느낌이 있지만 이 앨범 전에 Death in June이 컴필레이션이나 라이브가 아닌 ‘제대로’ 신작을 발표한 것은 2010년의 “Peaceful Snow”가 마지막이었으니 꽤나 오랫만에 나온 앨범이었다. 하긴 이 밴드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많았던 걸 생각하면 과작의 활동이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그런 와중에 갑자기 2018년에 신작이 툭 튀어나왔으니 의외인 감도 없지 않다.

경험상 이렇게 거물 밴드가 오랜 텀을 두고 툭 내놓은 앨범은 보통 기존의 모습을 결산하는 형태를 많이 보여주는데, 이 앨범도 예외는 아니다. 어찌 들으면 조금 더 어두워진 모습의 “The Rule of Third”처럼 느껴지지만 ‘The Humble Brag’의 묘한 발랄함은 “Nada!” 시절의 그것에 가깝다. 하긴 ‘God A Pale Curse’부터 “I’ve forgotten all that I done, I remember all that I did”라고 노래하고 있으니 분명 의도된 경향일 것이다. 그 경향을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좀 더 풍성하고 두터운 사운드로 연주하고 있는 앨범이라고 하면 아마 꽤 정확한 설명일 거라고 본다. ‘What Will Become of Us?’에서 밴드의 잘 나가던 시절의 모습을 떠올린 건 나만은 아닐 것이고, 별로 기대들 하지 않았던 모습일 것이다. 생각보다 훨씬 잘 살고 있었나 보다.

[NER, 2018]

Anialator “Anialator”

anilator1988.jpgAnnihilator를 우리말로 소리 나는 대로 적은 뒤에 영어로 다시 옮겨적은 듯한 괴이한 이름의 밴드지만 텍사스 출신이니 저 단어를 몰라서 이렇게 이름을 짓지는 않았겠거나 싶…긴 하다만 음악을 듣다 보면 어쩌면 저 단어를 정말 몰라서 저렇게 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5인조 스래쉬 밴드의 데뷔작. Wild Rags에서 이 데뷔작을 포함한 두 장의 EP만을 내고 망해버린 밴드인데, Wild Rags에서 나온 많은 앨범들이 그랬듯이 푹 파묻혀 있다가 최근에야 Xtreem Music에서 컴필레이션 형태로 재발매가 되었다. 뭐 딱히 많은 이들이 기다렸던 앨범 같진 않지만 말이다.

뭐 그래서 멋모르고 LP로 구했던 앨범을 간만에 들어본다만 그렇다고 뾰족한 구석이 보이는 건 아니다. Slayer와 Destruction, Anthrax의 좋았던 시절을 적당히 짬뽕해서 연주하는 모습을 역력히 보여주는데, 그러다가 ‘Mission of Death’의 뭔가 Yngwie를 따라가는 솔로잉은 이 친구들이 장르에 대한 이해가 꽤 부족함을 엿보게 한다. Yngwie를 따라간다고 해서 테크닉이 절륜한 것도 또 아니기 때문에 그런 방향으로도 듣는 재미가 있다고 하긴 좀 어렵겠다. 이미 우리는 Coroner나 Voivod 같은 더 좋은 예를 알고 있기도 하다. 그 시절 묻혀가던 많은 스래쉬 앨범들 중 한 장.

[Wild Rags, 1988]

My Insanity “Solar Child”

solarchild.jpgMy Insanity는 90년대 말엽부터의 흔해빠진 고딕 메탈 밴드들 가운데 비교적 개성 있는 스타일을 들려준 밴드였다. 물론 장르의 좁아터진 팬덤이 그래도 생명력이 남아 있던 시절 이런 개성이 장사에 딱히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이런 현상은 다음 해에 Theater of Tragedy가 “Assembly”로 더욱 극적으로 재현한다. 폭망했다는 뜻이다)그래도 Xy가 발굴한 밴드답게 Samael스러운 공간감 넘치는 앰비언스는 다른 동류의 밴드들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모습이었고, Waldemar Sorychta가 이 돈 없는 밴드에게 훌륭한 음질을 선물해 줬기에 비록 망했을지언정 밴드 본인들 돈은 좀 덜 나가서 다행이지 않을까…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물론 밴드 본인들은 이 뭔 무시무시한 소리냐 할지 모르겠다.

“Solar Child”는 이들의 앨범들 중 Samael의 기운이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앨범이다. 이미 “Eternal”로 워밍업을 해서인지 My Insanity도 데뷔작보다 확실히 일렉트로닉스의 이용이 많아졌고, 그런 의미에서는 “Eternal” 스타일에서 힘을 많이 빼고 멜로디를 좀 더 고쓰풍으로 바꾼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원래 멜로디라인을 만드는 데 솜씨를 보여준 밴드였던만큼 이 앨범에서도 귀를 잡아채는 멜로디를 발견할 수 있는데, ‘Dead Season’이나 ‘Twin’ 같은 수려한 곡을 만들 수 있는 밴드를 폭망시키다니 역시 일렉트로닉스는 메탈 밴드가 함부로 써먹을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개인취향도 반영된 얘기다. 참고로 난 이 앨범을 아주 좋게 들었다.

[Season of Mist, 2001]

Ossuary Insane “Demonize the Flesh”

demonizethefleshOsculum Infame을 꽤 인상적으로 들은지라(지금 생각해도 얘네만큼 키보드를 잘 쓴 블랙메탈 밴드는 별로 없었음) 앨범을 모으던 차에 어딘가의 카탈로그에서 흘깃 보고 착각해서 구해버린 앨범이 Ossuary Insane의 데뷔작 “Demonize the Flesh”였다. 사실 Osculum Infame은 많은 블랙메탈 밴드들과는 달리 밴드 로고를 알아먹지도 못하게 만든 밴드가 아닌 만큼 한 번만 앨범 커버를 확인해 봤다면 헷갈릴 리 없었겠지만… 그 앨범을 구할 당시 나는 그 정도로 성의있는 사람이 아니었다(지금도 뭐 그리 달라진 것 같지는 않음).

그렇게 구한 앨범치고는 음악은 나쁘지 않았다. 블랙메탈은 아니고… Immolation과 Deicide 생각이 많이 나는 전형적인 류의 데스메탈인데, 물론 그네들에 비한다면 모든 면에서 다운그레이드지만 꽤 귀에 잘 박히는 리프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3인조임을 감안하면 확실히 연주하느라 용 좀 썼겠다 싶은 곡들을 보여주었다. 특히 ‘Fallen to the Pits’ 같은 곡은 Death가 프로그레시브 물을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하기 전의 모습을 꽤 잘 따라가고 있는데, 덕분인지 이 앨범도 ‘hidden gem’이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꽤 되는 편이다. 뭐 재작년께 재발매가 됐으므로 숨겨졌다고 하기는 뭣하지만 재발매됐다고 해도 알아주는 이들은 별로 없으니 그렇게 치면 아직은 유효한 미사여구일지도.

[Galdre,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