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field “Welcome to my DNA”

blackfield2011.jpg사실 마당발처럼 알려진 것에 비해서는 보통 생각하는 것만큼 Steven Wilson이 멤버로 참여해서 연주한 밴드가 그리 많지는 않은데 그나마도 Porcupine Tree나 Storm Corrosion같이 잘 알려진 예들을 제외하면 남는 건 이 Blackfield 정도다. 그나마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편이었던 1, 2집에 비해 이 “Welcome to my DNA”부터는 멤버라기보다는 게스트에 가까운 수준으로 물러서는데,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겠지만 Porcupine Tree와 큰 차이는 없었던 1, 2집의 음악을 생각하면 이미 솔로 앨범들을 열심히 내고 있던 상황에서 굳이 Blackfield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Aviv Geffen은 입장이 좀 다를 것이다. Steven에게는 멀티일지 몰라도 Aviv에게는 여기가 본진이다.

그렇게 Aviv Geffen의 입김이 좀 더 들어가기 시작한 앨범, 정도로 이 앨범을 얘기할 수 있을진대, ‘Zigota’ 같은 명백한 프로그레시브 트랙이 있긴 하지만 앨범은 본격적인 프로그레시브보다는 좀 더 심플한 구조의 ‘팝’ 에 가깝다. Beatles풍 팝에 Pink Floyd 식의 공간감을 더하면서 기타를 Steven Wilson이 연주하는 스타일이라고만 한다면 반박할 얘기가 많겠지만 밴드는 4분을 넘어가지 않는 곡들에서 기대보다는 훨씬 정직한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Go to Hell’ 같은 곡은 아무리 그래도 Porcupine Tree를 기억하고 있는 팬들에 대한 고려가 좀 너무 없지 않았나 생각도 드는데, Aviv의 이후 일취월장하는(뭐 이것도 사견이지만) 송라이팅을 생각하면 일종의 훈련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있다. 물론 알 수 없는 얘기고, 확실한 건 청자의 아쉬움 뿐이다.

[Kscope, 2011]

Checker Patrol “Demo 86”

chekerpatrol.jpgChecker Patrol은 사실 음악 얘기는 별로 할 게 없는 밴드이다. Assassin이 Euronymous와 Necrobutcher를 끌어들여 만든 사이드 프로젝트… 정도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1986년이면 Assassin이나 Mayhem 둘 다 데모만 내면서 배고픈 시간을 감내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Pure Fucking Armageddon” 데모를 내고 큰맘먹고 독일 투어를 돌던 Mayhem은 우연히 Assasin을 만났고, 아마 열심히 술 먹다가 의기투합한 어느 밤의 결과가 이 데모일 것이다. Slayer zine의 Metallion을 좋아한다는 게 두 밴드의 의기투합 포인트였는지 이 7곡의 데모는 Metallion에게 헌정되었고(받고 좋아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데모 이름이 “Metallion in the Dark”…라는 게 알려진 이야기지만, 테입에는 그냥 “Demo 86″이라고만 적혀 있으므로 얼마나 믿을만한 얘긴지는 잘 모르겠다. 각설하고.

음악은 D.R.I나 S.O.D 류의 스래쉬메탈에 펑크 색깔을 더 강하게 하고 어느 정도의 ‘독일풍'(굳이 고른다면 Sodom)을 집어넣으면 이렇지 않겠나 싶은데, 1집 이전의 초창기 Mayhem의 눈물나는 연주력을 생각해 보면 펑크 색깔은 의도일 수도 있겠으나 불가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보니 사실 Assassin과도, Mayhem과도 비슷하지 않은 음악이 되어 버렸는데, 아무래도 Euronymous 생전의 Mayhem에게도 이렇게 ‘마냥 어둡지는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료에 가까울 데모일 것이다. 바꿔 말하면 비싼 값 주고 굳이 구해들을 필요는 정말 없다는 뜻이다. 일단 구했는데 이제 와서 현자타임 온 건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든 곤란하다.

[Self-financed, 1986]

Pulchra Morte “Divina Autem et Aniles”

pulchramorte2019.jpgPulchra Morte는 들어보기 전에는 음악을 사실 예상하기 어려운 밴드다. 라틴어로 ‘beautiful death’와 비슷한 뜻이라는 밴드명과 틈만나면 차세대 둠 기대주! 식으로 밀어붙이는 광고문구를 봐서는 적당히 무게감 있는 둠-데스를 연상케 하지만, 멤버들의 면면을 잠시 살펴본다면 블랙스래쉬나 타이트한 류의 데스메탈을 연주하는 게 더 어울려 보인다. 이런 류의 헷갈리는 첫인상을 줬던 밴드라면 Abyssic 정도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Abyssic은 어쨌든 Funeral이나 Sirenia를 거쳐 온 멤버도 안고 있던 밴드였으니만큼 Pulchra Motre에 비해서는 그런 괴리는 좀 덜한 편이었을 것이다. 레이블 홍보 담당자도 고민 많았겠다 싶은… 그런 밴드인데, 생각해 보니 이 정도 밴드를 과연 Brutality의 앨범만을 주구장창 내고 있는 레이블에서 홍보 생각을 하기는 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헷갈리는 사실들에 비추어 보면 밴드의 음악은 꽤 정직한 편이다. Paradise Lost(아니면 좀 그루브를 걷어낸 Candlemass)스타일에 플로리다 데스메탈을 적당히 섞어내는 편인데, ‘Ignis Et Tempstas’ 같은 곡에서 들려오는 첼로가 조금은 사람 헷갈리게 하지만 결국은 적당한 템포로 밀어붙이는 리프가 앨범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IX’ 같은 곡에서는 우리가 긴 곡 만들 능력은 좀 부족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긴 하지만(뭐 그래봐야 6분도 안 되는 곡이기는 하다) 어쨌든 적당한 범위에서 꽤 다재다능한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Bolt Thrower의 묵직함까지도 생각나는 ‘Soulstench’가 아무래도 앨범의 백미…인 걸 보니 아무래도 둠이라고 하기는 영 뭔가 걸린다. 뭐 그런 헷갈림이 밴드의 진짜 개성일는지도.

[Ceremonial, 2019]

Peter Cetera “One More Story”

onemorestory.jpgPeter Cetera를 엄청 좋아한다고 하면 그건 솔직히 거짓말이고 딱히 Chicago를 열심히 찾아듣지는 않은지라 사실 관심 범위에서 꽤 벗어나 있던 뮤지션이었는데, 뭐 잘 알려진 많은 히트곡들이 있다 보니 늦게나마 자연스레 접하게 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애정도로 따진다면 좀 뜨뜻미지근한 뮤지션인 셈인데, 그렇더라도 Peter의 솔로 1, 2집은 80년대 미국 메인스트림의 좋았던 시절을 짚어낸 앨범이라고는 생각한다. 거기다 80년대 후반 얼터너티브가 만개하기 전 끝물을 잡아낸 이 앨범까지가 Cetera의 좋았던 시절이 아닌가 한다. “World Falling Down”이 확실히 예전만 못해 보이는 앨범이었던 것도 그렇고.

‘Glory of Love’로 빵 터진 이후여서인지 ‘Like a Prayer’를 매만진 Mike Omartian을 불러온 것도 그렇고, David Gilmour나 Madonna를 끌어온 게스트진도 화려하지만, 일단 후대의 입장에서 듣건대 유명 미드에 삽입됐던 곡들이 많은지라 처음 드는 생각은 친숙함이다. 가끔은 Def Leppard 생각까지 날 정도로 후끈한 면이 있는 전작이었다면 이 앨범은 (물론 신나는 구석도 있지만)어쨌든 모범적인 AOR인지라 더 그럴 것이다…라는 게 내 생각. 베이워치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One Good Woman’을 확실히 기억할 것이라는 점도 친숙함의 한 요인이다. 아마 지난주에 돈 찾으러 갔던 은행(저번에 ‘The Miracle Man’ 틀던 거기다. “Just Say Ozzy” 포스트 참조)에서 웬종일 그 곡을 틀고 있던 아저씨도 소시적에 베이워치 보면서 설렜을 것이다. 그 정도의 추억 덩어리가 돼 버린 앨범이라는 점만으로도 아마 가치는 충분할지도.

[Warner, 1988]

Terrorgoat “Nuclear Goatnoise Attack”

nucleargoatnoise아마도 내가 소장한 앨범들 가운데 희귀도만 따진다면 가장 희귀한 축에 속하지 않을까 싶은(허나 수요는 거의 없다시피한 것으로 보이므로 큰 의미는 없음)밴드의 네 번째 데모로 예상되는 앨범. 예상한다고 써두는 이유는 이 앨범에 대한 거의 없는 인터넷상의 언급마다 하는 얘기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2003-2004년경에 거의 매년 10장 이상을 내는 비상식적인 행보를 보여준 밴드인지라 뭐가 먼저 나오고 나중에 나왔는지 밴드 본인들도 잘 모를 것 같긴 하다. 하긴 그쯤 되니까 대체 어떻게 알고 올렸나 싶은 괴이한 밴드들도 올라오는 metal-archives에 이 밴드는 없겠지. 해서 이 밴드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는 건 핀란드 출신이라는 점 말고는 특별한 게 별로 없다.

음악은 커버가 말해주듯이 ‘구리구리한’ 류의 블랙메탈이지만, 이 밴드의 특징을 굳이 찾는다면 보컬인 Lord Weird(이름은 또 왜 이렇게 지었냐)의 목소리가 가명과는 달리 꽤 괜찮다는 것과, 드럼 루핑 소리가 좀 거슬리지만 어쨌든 안정적인 리듬 파트 위에 로블랙 연주와 인더스트리얼 연주(와 약간의 일렉트로닉스)를 얹어낸다는 점이다. 2003년에 냈던 데모들에 비해서는 이 데모가 좀 더 인더스트리얼의 면모가 강한 편이다. 과장 좀 섞으면 MZ. 412 같은 프로젝트 생각이 날 정도인데, 물론 수준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므로 기대는 많이 버려둘 필요가 있다. 그래도 가장 속시원하게 달려주는 스타일인 ‘Hail the Goat!’가 기억에 남는 편이다. 그렇지만 이 정도 곡을 듣자고 굳이 40장 한정 테이프를 구할 사람은 아마 별로 없겠거니 싶다. 하긴 밴드도 그걸 아니까 40장만 찍은 거려나?

[Self-financed,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