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thema “A Sort of Homecoming”

asortofhomecoming.jpg사실 둠-데스 하다가 스타일 바꿔서 명맥 잇고 있는 밴드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Anathema는 그 ‘개인적 경향’의 몇 안 되는 예외라고 할 수 있다. 하긴 “The Silent Enigma” 이후부터는 데스 물은 사실 많이 빠진 밴드이기도 했고, 스타일이야 바뀌었지만 담아내는 정서나 분위기만큼은 “Alternative 4” 이후가 그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고 하기는 좀 어렵지 싶다. 말하자면 원래부터 Anathema는 강력한 리프보다는 분위기의 전개에 훨씬 강점이 있는 밴드였다…는 게 사견이다. 그런 면모를 가장 잘 보여준 건 “Falling Deeper”였다고 생각한다. 초창기 밴드의 둠-데스를 요새의 스타일로 바꿔놨건만 이질감이 전혀 없는데, 단순히 곡이 좋아서라고만 한다면 설명되지 않을 부분이 많을 것이다.

이 라이브도 마찬가지인데, 초창기 곡들은 아니지만 원곡의 연주를 매우 많은 부분 어쿠스틱으로 대체하면서 키보드도 조금은 무대의 뒤편에서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로 밀어낸 편곡을 보여주는데, 그 키보드의 빈자리는 신중하게 편곡된 피아노와 첼로, 바이올린 연주가 채운다. 그렇게 조금은 더 여유있어진 사운드를 ‘울림 있는’ 보컬로 중심을 잡아 나가는 방식으로 연주하고, 다시 라이브의 공간감을 더한 밴드의 곡들은 부르는 사람만큼이나 청자의 가슴에 울림을 남긴다. 잠깐이지만 Anathema가 Marillion과 함께 공연하는 것도 되게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케스트레이션이 돋보이는 ‘A Natural Disaster’나, 조금은 느리지만 긴 울림을 담아내는 ‘Untouchable’을 추천해 본다. 사실 떨어지는 곡은 하나도 없지만 매일 아모르파티(그 댄스곡 맞음)만 듣고 있는 지인마저 되게 좋다고 했던 곡을 골랐다.

[Kscope, 2015]

Bootlegs “W.C. Monster”

wcmonster.jpg아이슬란드 ‘garage thrasher’라는 식으로 소개되곤 하는 밴드인데 하긴 밴드명을 부틀렉으로 짓는 양반들이 차고 신세를 벗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그렇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정보는 이 데뷔작이 생각보다 꽤 성공적이었음을 확인시켜 주고, 덕분에 밴드는 넓은 바다를 건너 덴마크에서도 반응을 얻어냈다고 한다. 하긴 그 시절 스래쉬 밴드를 한국에서 알고 찾아다니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싶으면서도, 이 앨범이 300장 한정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니 위의 정보가 인터넷 쓰레기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스친다. 밴드명이 가져다 주는 선입견이려니 하자.

“W.C. Monster”는 꽤 괜찮은 스래쉬메탈 앨범이다. 미국풍의 스피드메탈 물이 덜 빠진 시절의 스래쉬메탈을 재현하는 앨범인데, 이 시절 스래쉬의 주류에서 비껴난 지역 밴드들이 많이들 그렇지만 앨범에서는 많은 밴드들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D.R.I.나 Suicidal Tendencies지만, 때때로 리프를 복잡하게 꼬는 모습에서는 “Killing Technology” 시절 Voivod의 모습도 떠오른다. ‘þú’ 같은 곡의 어두운 톤의 스래쉬 리프는 보너스에 가깝다. 돋보이는 곡이 있다기보다는 어느 하나 빠지는 곡 없다는 게 앨범의 최고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80년대 후반을 살아가는 스래쉬 밴드에게 그런 장점만으로는 살아남기에 충분치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들은 Minotauro 정도의 레이블에서 재발매도 해 주고 했으니 짤막하게 활동하고 망한 밴드가 이 정도면 나쁘잖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물론 본인들 생각은 다르겠지.

[Smekkleysa, 1989]

Cockney Rejects “Quiet Storm”

quietstorm.jpgCockney Rejects를 되게 좋아한다고 자처하긴 하는데 그렇다곤 해도 밴드에 대한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고, 그 첫인상의 대상은 이 앨범이었다. 창의력 진짜 없어 보이는 커버 디자인(BC Rich 기타가 웬말이냐)에 레이블명도 헤비메탈이고, 무엇보다 일단 밴드명이 ‘The Rejects’라고 적혀 있으니 Cockney Rejects의 앨범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사실 이 밴드가 펑크에서 멀어진 건 적어도 전작인 “The Wild Ones”부터였지만, 그 앨범은 일단 Cockney Rejects라고 써 놓은지라 이렇게까지 헷갈리지는 않았다. 밴드가 공식적으로 밴드명을 바꿨던 것도 아니었으니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딱히 알아보지는 않은 입장에서)도통 알 수가 없다. 좋은 생각은 아니었을 거라고 본다.

사실 그런 인상을 걷어내고 본다면 마냥 못 들어줄 앨범은 아니다. 펑크가 아니라서 그렇지 앨범은 컨트리(‘Fourth Summer’), 블루스(‘Jog On’), 나름 ‘깔끔한’ 발라드(‘Quite Storm’) 등 많은 스타일을 담아내는데, 특히나 ‘Fourth Summer’는 Hawkwind풍의 ‘weird folk’를 따라하는 건가 하는 느낌도 있다. 문제는 앨범을 뒤덮고 있는 애매한 팝 메탈(이라기보다는 하드록)의 기운인데, “The Wild Ones”야 AC/DC 스타일이었으니 이해가 간다 해도 연주 몇 년 쉰 듯한 Deep Purple이 이러려나 짐작케 하는 ‘It Ain’t Nothin”을 앨범의 오프너로 세운다니 ‘Oi! Oi! Oi!’를 부른 밴드가 보여줄 만한 모습도 아니다. 밴드도 스스로 생각해도 안되겠다 싶었는지 다음 앨범인 “Lethal”에서는 좀 더 메탈에 기운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는데, 생각을 했으면 거기에서 다시 펑크로 가야지 왜 메탈로 가냐 하는 게 대부분의 생각일 것이다. 정말 왜 그랬을까?

[Heavy Metal, 1984]

Aragon “Don’t Bring the Rain”

aragondebut.jpgSI Music의 발매작을 열심히 모으던 시기가 있었는데 퀄리티와 관련해서 좋은 소리 못 듣던 레이블이었던만큼(뭐 그런 평가가 이해 안 되는 건 아님) 굳이 왜 그랬을까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Aragon 같은 밴드는 확실히 즐겨 들었던 기억이 있다. 따지고 보면 골때리는 구석 많은 앨범인데, 일단 데뷔 EP인데 어쩌다 보니 CD로 재발매되면서 곡이 배로 뻥튀기돼서 정규반처럼 돼버린 점도 그렇고, 덕분에 (12인치)LP와 CD가 검열 등과 상관없이 수록곡이 ‘그냥’ 많이 다르다는 것도 그렇고, 드럼은 물론 베이스까지 모두 머신으로 때우고 있다는 것도 그렇다. 그러면서도 라인업에는 베이스와 드럼을 번듯하게 포함시켜 놓고 있는만큼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본전 생각날 구석이 참 많다.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좋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Les Dougan의 보컬은 확실히 호소력이 있다는 건 이 앨범부터도 명확했고, ‘Company of Wolves’나 ‘Solstice’ 같은 곡들은 구성이나 멜로디나 Marillion의 초기를 생각나게 하는 구석이 확실히 있다. 물론 솔직히 Marillion보다는 좀 더 거칠고(무려 metal-archives에 있는 앨범임), 좀 많이 다운그레이드지만 그래도 이런 음악이 있었기 때문에 Arena 같은 밴드도 튀어나올 수 있었던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말하고 보니 맘에 드는 곡은 전부 원래 12인치에 없었던 곡들이다. 덕분에 이 밴드를 말아먹은 건 작곡이나 연주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은 밴드 본인들의 선곡 센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한다. 그런만큼 B-Sides가 되게 궁금한 밴드이기도 하다. 물론 안 나올거다.

[Self-financed, 1988]

Spiritual Front “Amour Braque”

amourbraque.jpgSpiritual Front는 네오포크로 분류되는 경우도 많기는 한데 그보다는 밴드의 말마따나 ‘suicide pop’ 정도로 얘기해 주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일단 다른 밴드들에 비해서는 인더스트리얼식 똘끼가 별로 없어 보이는 부분도 있고, 꽤 리드미컬한 기타 연주가 어쨌든 이 장르의 주류에 비해서는 일반적인 ‘팝송’에 가까워 보이는 구석이 있다. 기타가 메인이 된다는 점을 뺀다면 그런 면에서는 Sieben과도 비슷한 편인데, Matt Howden도 앨범에 참여하고 있는만큼 나만의 판단은 아닐거라 짐작하고 있다. 기껏 Matt을 참여시켜 놓고 바이올린이 아닌 코러스만 넣게 하고 있는 게 뭐하는 짓인가 싶지만 자세한 뒷사정이야 알 수 없으니 넘어가고.

앨범은 커버가 그렇듯이 남녀간의 사랑이나 육체적 관계에 대한 이야기, 라는 게 밴드의 설명인데, 그런 얘기보다는 Ennio Morricone 생각이 많이 나는 고딕 록 정도로 얘기하는 게 이해하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pitchfork식) 아트 록과 뉴 웨이브, 탱고 등 다양한 스타일을 섞어낸 음악인데, 보통의 네오포크보다는 Sisters of Mercy같은 밴드 생각이 더 많이 난다. 그래서인지 이 앨범을 얼터너티브 록이라고 하는 이들도 많은 듯한데, 레이블이 레이블인만큼 불가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원래부터 네오포크식 러브송을 부르던 밴드인 만큼 납득 못 할 선택은 아니다. 무려 뮤직비디오까지 찍은 ‘Disaffection’이 앨범의 백미.

[Prophecy,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