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vers Zero “Clivages”

clivages.jpg개인적인 Univers Zero의 최애작은 “Heresie”지만(이유야 물론 어두운 음악이니까 그렇다. 같은 이유에서 “Heresie”와 약간의 격차를 두고 “1313”을, 다시 엄청난 격차를 두고 “Implosion”을 둔다) 경험상 내 주변의 이 밴드를 좋아한다고 하는 대부분의 이들은 “UZED”에 좀 더 기울어지는 편이었다. “UZED”의 방향이 밴드의(또는 Daniel Denis의) 진정한 의도였는지는 모르지만 이후의 앨범들은 정도는 틀릴지언정 결국은 “UZED”에 실렸던 ‘록’ 음악의 연장선이었다고 생각한다. 뭐 다시 양보해서 그것까진 아니라고 하더라도 Roger Trigaux가 있던 시절의 뒤틀린 챔버 뮤직은 어쨌든 이후의 앨범들에서 찾아볼 만한 모습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 면에서 “Clivages”는 간만에 밴드 초창기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앨범이었다고 생각한다. ‘Warrior’와 ‘Earth Scream’, ‘Straight Edge’의 적당히 저단가의 뒤틀린 심포닉, 특히 ‘Warrior’의 고조되는 드럼은 밴드의 돈은 없지만 좋았던 시절을 분명히 짚어내고 있다. 그에 비한다면 ‘Soubresauts’의 ‘단정한’ 심포닉은 팝처럼 느껴질 정도인데, 그런 면에서는 밴드가 오랜 동안 보여주어 온 모습들을 대체로 아우르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Denis만큼이나 Andy Kirk가 높은 비중으로 참여한 앨범인데, 하긴 그 시절을 명확히 기억하는 주요 멤버가 하나 또 추가됐으니 예전 느낌이 더 강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는 밴드의 회춘작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Cuneiform, 2010]

Nirvana 2002 “Recordings 89-91”

nirvana2002-recordings89-91.jpg이 웃기는 이름의 스웨덴 밴드는 언제부턴가 앨범 한 장 낸 적 없는 스웨덴 데스메탈 밴드들 중 가장 훌륭한 밴드!라는 식으로 얘기되곤 한다. 아마도 Daniel Ekeroth가 쓴 “Swedish Death Metal”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그 책이 나오고 이때다 싶었는지 1년 정도 지나서 Relapse는 이름만이 나돌던 이 밴드의 데모들을 차곡차곡 모아 컴필레이션을 발표했다. 하긴 밴드 이름이 좀 당혹스러워서 그렇지 Nihilist와 Carnage 같은 밴드와 함께 스웨덴 데스메탈의 어느 시절을 대표할 만했던 밴드였으니 음악을 떠나서 셀링 포인트만큼은 확실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Relapse만큼 ‘오소독스’ 이미지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그만큼의 판매고를 가져가는 레이블이 있나 싶다.

데모와 리허설 등 모음집이라도 Sunlight Studio 녹음 버전과 골방레코딩이 공존하는만큼 수록곡들은 꽤 들쭉날쭉한 편이지만, 이 밴드가 저 정도의 위명을 괜히 받아낸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ntombed의 “Crawl” EP에서 마이크를 잡았던 Orvar Säfström의 보컬은 Entombed에서보다 더 카랑카랑한 편이고(젊어서 그럴지도), 이후의 밴드들과 달리 다른 장르의 색채가 섞여 들어가지 않은, 우리가 보통 기억하고 있는 ‘스웨디시 데스메탈’의 전형 같은 연주를 확인할 수 있다. Entombed와 Dismember 같은 밴드들의 모습이 어디서부터 흘러나왔는지에 대한 한 정답인 셈이다. 위 책이 만방에 알려준 데스메탈 클래식 ‘Mourning’을 오리지널 데모 말고 들어볼 수 있는 유일한 앨범이니 사실 많은 설명은 필요없다. 문제는 바로 이들의 작명 센스였던 것이다. 밴드명이 겹치면 겹쳤지 2002는 무슨 센스로 덧붙인 걸까?

[Relapse, 2009]

Mascharat “Mascharat”

maschrat2017.jpg무슨 블랙메탈 밴드 이름이 마스카라냐 하는 게 첫인상이었지만 잠깐 정신차리고 보니 스펠링이 좀 다르다. 밴드의 설명에 의하면 ‘mascharat’는 이탈리아어로 ‘mask’라는 뜻이고, 가면을 쓰고 하는 베네치아 지방의 전통 축제에서 영감을 받아 밴드명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N모 포털 이탈리아어 사전 검색결과는 ‘maschera’가 가면을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뭐 이탈리아 밴드가 밴드명 지으면서 저 정도 단어를 몰라서 잘못 썼을 것 같지는 않으므로 일단 맞다고 해주기로 한다.

음악은 꽤 코드를 복잡하게 가져가는 면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심플한 전개의 멜로딕 블랙메탈이다. 뭔가 David Vincent를 생각나게 하는 데가 있는 보컬이지만 연주는 그보다는 90년대 중반 좀 따뜻한 유럽 지역에서 나오던 블랙메탈에 가깝다. 아무래도 이탈리아 밴드이니만큼 남자 보컬 붙은 Opera XI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질주감 강한 부류의 블랙메탈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그렇게 와닿지 않을지도. 하지만 ‘Médecin de peste’ 같은 곡의 탄탄한 구성을 보면 화끈한 맛이 부족하다고 외면해 버리기는 좀 아깝다. 생각해 보면 이탈리아 블랙메탈 밴드가 딱히 잘 달렸던 적도 별로 없었으니 말이다. 꽤 재미있게 들었다.

[Séance, 2017]

Lux Terminus “The Courage to be”

luxterminus2018.jpg근래 주목받는 메탈 키보디스트라면 아무래도 Vikram Shankar가 첫손까지는 몰라도 꽤 높은 순위에 있다고 보는데, 그렇다고 해도 이 양반이 보여준 건 Redemption의 근작을 제외한다면 사실 그리 많지는 않다. 물론 1995년생에게 많은 걸 요구하는 건 신입사원 뽑으면서 경력 보는 거나 마찬가지겠지만 Redemption이란 밴드가 원래 꽤 엘리트급인 경력직이 가는 밴드이다보니 기대치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Long Night’s Journey Into Day”는 사실 키보드가 기억에 남는 앨범은 아니었다. 일단 Ray Alder의 자리에 Tom Englund가 들어온데다 Nick Van Dyk도 여전히 키보드를 연주하고 있는만큼 많은 이들이 거기까지는 귀가 닿을 여유가 없었을지도.

그런 의미에서 Vikram이 자신의 기량으로 진검승부하고 있는 앨범은 Redemption의 앨범보다는 이 Lux Terminus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기타 없는 트리오다 보니 키보드가 귀에 박히는 자리에 있는데다(그렇다고 앨범에 기타가 없다는 얘기는 아님) 다양한 요소들을 매끄럽게 담아내고 있는 연주가 별로 흠잡을 곳이 없다. 듣다 보면 Journey도, Miles Davis도, Allan Holdsworth도 들리는 이 스타일을 얘기하기가 사실 쉽지 않은데, 개인적으로는 기타를 없애고 키보드와 일렉트로닉스의 비중을 늘린 Liquid Tension Experiment가 이럴지도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보다는 Lux Terminus가 훨씬 팝적이면서도 회화적인 음악이다. ‘The Courage To Be’가 21분동안 늘어놓는 서사는 과장 좀 섞어서 작년의 기억해야 할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게스트로 참여한 Anneke Van Giersbergen의 수려한 보컬은 덤이다.

[Self-financed, 2018]

Various “Yesterday and Today : A 50th Anniversary Tribute to Yes”

yesterdayandtoday2018.jpg앨범 이름을 저렇게 지은 뜻이야 대충 짐작되긴 하면서도 저 앨범명으로 검색하면 열에 아홉은 Beatles가 나올진대 레이블의 무성의함이 느껴지는 듯하나 Cherry Red가 그리 ‘듣보잡’ 레이블도 아니고 내가 모르는 이런저런 사정을 짐작해 보며 넘어가기로… 하면서도 또 보이는 Robert Berry와 Billy Sherwood의 이름에 나지막히 어머 제기랄을 외쳐보기로 한다. 대체 이 둘은 왜 Yes의 트리뷰트 앨범이라면 항상 끼어 있는지 오늘도 궁금해진다. 곡 하나 들어보지 않고 시작부터 선입견이 계속 쌓인다. 감상에 부정적인 요인임은 분명하다.

물론 그래도 앨범에 빛나는 부분은 있다. Curved Air가 커버하는 ‘Soon’의 목가적이면서도 은근히 기괴한 분위기와 Trevor Rabin의 연주를 Steve Hackett으로 업그레이드시킨 ‘Cinema’가 그렇고, John Davidson의 목소리를 더한 어쿠스틱 메들리는 Yes의 라이브를 직접 보지 못하는 입장에서 꽤나 흥미롭다. 요새 Yes가 공연을 한다면 아마 이런 식으로 하려나 짐작할 만한 부분이 있다. 일단 원곡들이 수려하니만큼 앨범에 딱히 빠지는 구석은 없어 보인다. 구색을 흠을 잡는다면 “Fragile”부터 “Relayer”까지 앨범에서 2곡밖에 실리지 않았다는 거겠지만 10분을 기본으로 넘겨주는 곡들을 부담없이 싣기도 어렵긴 했을 것이다. 저 2인조가 없었다면 개인적으로는 더 만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무난한 앨범이다.

[Cherry Red,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