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goat “The Light-Devouring Darkness”

archgoat2009.jpg사실 Lord Angelslayer의 가장 유명한 밴드는 Thy Serpent이겠지만 따지고 보면 Archgoat가 결성된 것이 1989년이니 어쨌든 본령은 여기에 있었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아니, “Death” EP를 낸 것이 2000년이고 “Whore of Bethlehem”이 나온 게 2006년이니 사실 Archgoat를 잠깐 쉬었던 몇 년 동안 Thy Serpent를 해서 번 돈으로 다시 Archgoat를 이어 나갔다고 하는 게 더 그럴듯할 것이다. 물론 돈 벌려고 Thy Serpent를 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얘기긴 하지만, 그만큼 Archgoat의 음악은 Thy Serpent와는 많이 달랐다. 하긴 Beherit과 Blasphemy, Bahimiron을 얘기하는 광고문구에서 심포닉을 떠올린다면 블랙메탈 냉담자겠지.

Beherit 이름이 나온 김에 하는 얘기지만 Archgoat와 Beherit는 모두 1989년에 결성된 밴드였고, 스타일도 Archgoat에서 좀 더 데스메탈의 모습이 짙다는 정도를 빼면 유사한 편이었다. 차이라면 어쨌든 Beherit는 데모들을 컴필레이션으로 모을 수 있었고(“The Oath of Black Blood”) 90년대 초반에 번듯한 정규반(“Drawing Down the Moon”을 낼 수 있었다는 정도 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적당히 두들기면서도 중저음의 보컬(굳이 짚자면 이게 2006년작과의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과 어울리는 음습함을 과시하는 모습은 시절이 2000년대일 뿐 좋았던 시절의 Beherit과 Blasphemy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 이후 세대로 이 정도의 성취를 보여준 유사한 스타일의 밴드라면 Black Witchery 정도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Fornicated Messiah’를 가장 좋아하지만, 수록곡들 어느 하나 뺄 수 없도록 고르게 돋보이는 점도 인상적이다. 내한공연 보고 왔다고 과하게 뽕맞은 건 아니니(안 맞았다는 얘기는 아님) 신뢰해도 좋다.

[Blasphemous Underground, 2009]

Queen “Sheer Heart Attack”

queen1974.jpg딱히 Queen 팬이라고 얘기하고 다닌 적도 없는데 하도 보헤미안 랩소디 봤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서 생각난 김에 간만에 들어본 앨범. 냉정히 얘기해서 Queen의 앨범 가운데 자주 회자되는 편에 속하는 앨범은 아니지 싶지만 Queen의 앨범들 중 최애작이라면 나로서는 이 앨범이다. 만듦새의 수준을 떠나서 “A Night at the Opera”부터의 음악은 확실히 ‘브리티쉬’ 록 밴드에게 보통 기대하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Queen을 높이 평가하는 이들은 바로 그 점 때문에 Queen이 대단한 밴드였다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메탈바보에 가까운 취향에 그런 얘기는 타당한지 여부를 떠나서 깊이 받아들여지는 내용은 아니다. 말하자면 “Sheer Heart Attack”은 Queen이 마지막으로 그나마 ‘브리티쉬’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던 앨범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가장 단적인 예야 Queen보다도 Metallica 때문에 더욱 유명할 ‘Stone Cold Crazy’가 있겠고, 오버더빙된 코러스만 뺀다면 Brian May 특유의 로큰롤 리프가 돋보이는 ‘Now I’m Here’도 있고, 오프닝으로 더할나위없는 ‘Brighton Rock’도 있다. ‘Seaside Rendezvous’도 Queen 스타일의 랙타임이니 오페라나 아레나의 화려함보다는 길거리의 흥겨움에 가깝다. 뭐 기본적으로 보컬과 받쳐주는 코러스가 워낙에 화려한 밴드인데다 ‘오페라틱’한 개성이 본격적으로 머리를 내미는 것도 이 앨범부터다보니 그렇다고 이 앨범이 내가 생각한 ‘브리티쉬’에 가까웠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러니까 곡 하나하나는 기억이 분명컨대 앨범을 통으로 들었던 기억은 꽤 아련해져 버린 모양이다. 그래서 보헤미안 랩소디 안 봤다. 물론 내가 그렇다는 거다.

[EMI, 1974]

Eucharist “A Velvet Creation”

velvetcreation.jpg솔직히 멜로딕 데스를 얘기할 때 Eucharist는 At the Gates나 Dark Tranquillity, In Flames만큼이나 먼저 언급돼야 할 스웨디시 밴드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만큼 잘한다는 얘기는 사실 아니고 “A Velvet Creation”을 1993년에 냈으니 이 정도면 At the Gates만큼이나 조류를 앞서나간 사례라고 할 수 있을텐데, 따지고 보면 앞에서 얘기한 밴드들보다도 먼저 결성되었으니 이들로서는 원조를 따지자면 자기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이거 원조 먹는다고 살림살이에 도움되진 않을 테니 밴드들 본인에게도 그리 의미있는 얘기는 아닐 거다. 각설하고.

뭐 그렇다곤 하더라도 사실 예테보리 멜로딕 데스와는 좀 거리가 있는 사운드이다. 예테보리 밴드들이 Iron Maiden 파워 업그레이드 스타일의 멜로딕 데스를 연주한 반면, 이들은 그만큼 파워메탈 물을 많이 먹은 경우는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는 Eucharist가 데스메탈의 전형에는 더 가까웠다고 할 수 있는데, 앨범 제목에도 벨벳 들어가겠다 싶었는지 은근히 묻어나는 둠-데스 느낌이 묘하게 멜로딕 데스와 맞아나간다. ‘The Religion of Blood-Red Velvet’ 같은 곡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걸 뭔가 구리구리하면서도 달달하니 어색하다고 느낄 사람들도 적지 않을 듯하다. 그래도 ‘Into the Cosmic Sphere’ 같은 곡에서 들려오는 잘 나가던 시절의 Paradise Lost를 연상케 하는 리프는 이 밴드가 꽤 저력 있는 팀이었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그러니까 그 저력을 꾸준히 저축해서 터뜨린다면 상당한 앨범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활동한다는 팀이 어째 20년동안 신보 얘기가 없다. 살아있긴 한가.

[Wrong Again, 1993]

Trepaneringsritualen / Distel “A Knife in Sound”

aknifeinsound.jpg포맷을 불문하고 요 근래 구한 앨범들 가운데 가장 신기하게 생긴 앨범이다. 두 밴드의 Coil 커버곡을 담은 이 EP는 원래 디지털로만 발표되었으나 레이블측에서 12인치 EP로 이렇게 제작하게 되었다…고 알고 있다. 동그랗지 않고 다른 모양으로 만든 LP야 그 전에도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아예 LP 중간에 구멍이 뚫린 형태는 나로서는 처음 보는 것 같다(왼쪽 커버그림이 사실은 커버가 아니라 LP의 모양이다). 그러니까 가장 자리 부분에만 음원이 들어가는 식인데, 어차피 2곡밖에 실려 있지 않으니 이렇게 모양새에 신경쓰는 게 좋은 선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Ant-Zen에서 나오는 음악들을 굳이 찾아듣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나 싶기도 하고.

Trepaneringsritualen이 Brighter Death Now 스타일의 데스 인더스트리얼이라면 Distel은 그보다는 웨이브 성향이 좀 더 짙은 소위 ‘angstpop’ 스타일의 음악을 한다. 덕분에 Trepaneringsritualen보다는 Distel이 좀 더 댄서블하면서 듣기 편한 구석이 있는 편인데, 원곡이 Coil이다 보니 아무래도 원곡에 좀 더 가깝게 접근하는 쪽도 후자다. 그렇지만 ‘A Cold Cell’이 Coil의 곡들 중에서도 어두운 편이었던 걸로 기억되니만큼 Trepaneringsritualen의 커버도 원곡에 충분히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음악은 나쁘지 않았지만 이거 이렇게 생겨서야 턴테이블에 실제로 돌릴 일이 얼마나 되겠냐 싶긴 하지만, 다운로드 코드도 같이 넣어주는만큼 컬렉션용이라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은근히 둘이 같이 하는 앨범이 많은데 좀 더 구해 봐야겠다.

[Ant-Zen, 2018]

Faithful Breath “Skol”

faithfulbreath1985.jpgFaithful Breath의 이 앨범은 광고문구 탓인지 ‘최초의 바이킹메탈!’ 식으로 얘기되는 앨범들 중 하나인데, 어떤 기준에서 보더라도 그건 좀 지나친 얘기가 아닌가 싶다. 보통 바이킹메탈이라 불리는 후대의 음악들과 딱히 유사한 것도 아니고, 커버에 음주모드 바이킹 사진이 있으니 바이킹/해적이라는 주제에서 비슷하다! 고 한다면 이미 1984년에 Running Wild가 “Gates to Purgatory”를 낸데다, 당장 Faithful Breath 본인들의 전작인 “Gold ‘N’ Glory”도 커버에 바이킹 갤리선이 그려져 있으니 별로 할 말이 없어진다. 결국은 최초의 바이킹메탈이다 어떻다 하는 얘기는 앨범 한 장 더 팔아먹기 위한 레이블의 눈물나는 노력의 산물이 아니겠나 짐작하고 있다. 어쨌든 얘깃거리만큼은 확실히 됐으니까.

이 앨범도 “Balls to the Wall”의 좀 빈티나는 버전에 가까웠던 “Gold ‘N’ Glory”와 스타일은 그리 틀리지 않다. 특히나 ‘Rock Rebels’ 같이 라이브 싱얼롱 넘버를 의도한 듯한 곡은 약간은 좀 더 미국 스타일의 리프를 연주하는 Accept를 연상케 하는데, 활동한 시절이 시절인만큼 누가 누구를 베끼고 한 건 아닐 것이다. ‘Backstreet Heroes’ 같은 Judas Priest풍 스피드메탈은 이 프로그레시브 출신 메탈 밴드가 생각보다 앞서간 사운드를 연주했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그냥 바이킹 얘기는 적당히 까먹고, 보통 얘기하는 Teutonic Metal의 부류에 속하던 거물은 아니고 노련미 넘치던 밴드, 정도로 얘기하면 꽤 정확할 거라 생각한다. 무난하다.

[Ambush,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