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ilon “Leviathan”

evilon2018.jpg욥기에 나오던 그 Leviathan을 이렇게 없어보이게 표현한 커버도 드물 거라 생각하는데, 하긴 하느님이 이사야서에서 레비아탄을 죽여 고기를 나누셨으니 강력했을지언정 결국은 일용할 양식에 불과한 존재일지니 이렇게 표현했을지도 모른다고 쓰면 아마도 그건 헛소리일 것이다. 앨범 커버에서 아무런 켈틱의 기운을 찾아볼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Cruachan(이건 사실 좀 과장이긴 하다)나 Cnoc an Tursa 같은 밴드를 일견 연상할 수 있는 ‘켈틱 포크’ 스타일의 데스메탈인데, 포크의 분위기가 그리 짙은 편은 아니다. 포크라기보다는 좀 에스닉한 멜로디라인을 가진 멜로딕데스라고 해도 괜찮을 법한데, 데뷔 EP인 “Shores of Evilon”이 Amon Amarth에 좀 더 예테보리 물을 끼얹은 듯한 멜로딕데스 앨범이었음을 생각하면 일관성 있는 행보인 셈이다.

그래도 앨범의 개성이 가장 살아나는 부분은 포크의 색채가 묻어나는 부분이다. 클린 보컬과 그로울링을 병치시키면서 켈틱 멜로디를 풀어내는 ‘The Sacred’의 쓸데없을 정도의 흥겨움은 보통의 예테보리 스타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Skyclad 정도의 ‘경박함’까지는 아니고, ‘When the Leaves are Falling’ 같은 곡에서는 결국은 블랙메탈을 의식했을 황량한 분위기를 재현하기도 하니 마냥 흥겨움을 경계할 필요까지는 없겠다. 오히려 나처럼 멜로딕데스를 좋아한 시절이 살짝 지나간 경우에는 이런 앨범이 더 귀에 들어올 수도 있을지도. 참고로 난 이 앨범을 아주 좋게 들었다.

[WormHoleDeath, 2018]

Biscaya “On 45”

biscaya-on45.jpgBiscaya는 은근 메탈 팬들에게 이름이 알려져 있는 밴드이기도 하고, 가장 잘 알려진 데뷔작 커버부터가 이렇게 생긴 앨범이 메탈이 아니면 뭐겠냐 싶은 디자인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이 밴드의 곡들 중 헤비메탈이라 할 만한 곡은 많지 않다. 물론 밴드 자신의 기량이 받쳐주는데다 데뷔작부터 ‘Howl in the Sky’ 같은 걸출…하다고도 할 수 있는 헤비메탈 트랙을 담고 있는 만큼 관심가질 가치는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Silver Mountain 앨범 마냥 본격 헤비메탈 앨범을 기대하고 앨범을 구했다간 꽤 허탈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저런 다양한 스타일을 무난하게 소화해 냈던 스웨디시 하드록 밴드, 정도로 생각하는 게 안전할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메탈 트랙이 있었던 “Biscaya” 이후 밴드는 “On 45” EP를 발표했는데, 여전히 괜찮은 기량이었지만 데뷔작의 경험 후 밴드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이번에는 메탈을 배제한 앨범을 만들어냈다. 굳이 비교한다면 데뷔작의 ‘Fools’ 같은 세미 프로그 넘버들 4곡으로 EP를 채워 두었는데, 그래도 데뷔작의 백미가 ‘Howl in the Sky’였던 걸 생각하면 그게 그렇게 괜찮은 시도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클래시컬한 모양새가 때로는 Gentle Giant같은 밴드를 연상케도 하지만 ‘Space Bop’ 정도를 제외하면 조금은 하드록과 프로그레시브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느낌이다. 굳이 구할 필요는 없겠지만, “Biscaya” 일본 리이슈반에 통째로 수록되어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그쪽을 알아보는 게 더 좋을지도.

[RCA, 1984]

Spear of Longinus “The Yoga of National Socialism”

tyonsDer Blutharsch 얘기를 하니 생각난 얘기인데, Der Blutharsch가 나치 혐의 받는 네오포크 밴드에서 사이키델릭 로큰롤 밴드로 전향한 케이스라면, 나치 혐의 받는 블랙메탈 밴드가 로큰롤 물을 먹은 경우는 이 Spear of Longinus를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Der Blutharsch는 어쨌든 나치 ‘혐의’를 받을 뿐이었지만 Spear of Longinus는 자칭 타칭 공인 네오나치라는 점과, Spear of Longinus는 로큰롤 물을 먹었을 뿐 어쨌든 처음부터 일관하여 블랙메탈을 연주해 온 밴드라는 정도 차이는 있겠다(라고 쓰고 보니 그럼 둘이 비슷한 게 뭐가 있냐 싶기도 하다). 그런 밴드에게 로큰롤의 평가를 뒤집어씌운 앨범이 바로 이 2002년작.

사실 “Nazi Occult Metal”과 “Domni Satnasi”에서의 밴드의 모습은 클래식 블랙스래쉬에 가까웠던 반면, 멤버들 스스로 이 앨범은 Absurd를 들으면서 만들었다고 하고 있으니 그런 사운드의 차이는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그래도 Absurd와 연주력에 있어서 박병호와 이천웅 간의 갭 정도의 수준차는 보여주는 밴드인만큼 흥겨움만큼은 충분하다(‘Volcanic Winter’가 좋은 예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RAC와 NSBM의 연결점으로서 가장 훌륭한 예는 본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반쯤 고장난 시스템으로 녹음한 듯한 음질과 밴드의 앨범 음질만큼 상태 안 좋은 정신상태를 고려하면 추천하긴 좀 애매하지만, 그걸 신경쓰지 않는다면야 꽤 괜찮은 선택일 것이다.

[Vinland Winds, 2002]

Der Blutharsch And The Infinite Church Of The Leading Hand “Sucht & Ordnung”

derblutharsch2016Der Blutharsch는 잘 알려져 있듯이 “The Philosopher’s Stone”을 마지막으로 기존의 네오포크를 더 이상 연주하지 않고 있다. 하긴 밴드는 그 전부터 보통의 네오포크보다는 더 로큰롤에 근접한 사운드를 연주하고 있었긴 했지만, 저 앨범부터는 ‘martial’ 느낌을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문제렷다. 그게 벌써 10년도 지난 일이니 요새는 포스트-네오포크 소리까지 나오는 모양이지만, 안 그래도 분류 어지러운 네오포크에 새로운 레떼르를 붙이는 게 그리 환영받을 일은 아닐 거라 예상된다. 그러니 이 앨범이 좋은 소리 못 듣는 것도 이해는 간다. Der Blutharsch의 앨범에 포스트-네오포크 같은 광고문구를 붙여놓고 있으니 이 레이블이 돈 못 버는 이유는 팔고 있는 음악을 떠나서 그네들의 능력부족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각설하고.

그래도 앨범은 Albin Julius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레퍼런스를 접해 왔고 매끈하게 소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굳이 장르를 분류한다면 사이키델릭 록이라 해야겠지만 크라우트록 식의 사이키에 가까운데다, 때로는 Black Sabbath풍의 묵직함과 Hawkwind의 펑크적인 질주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밴드의 이전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은 아마도 2번 트랙의 고쓰풍 여성 보컬일진대, 역시 게르만 액센트 강한 영어 발음이 크라우트록 생각을 지울 수 없도록 한다. 그러니 결국 네오포크가 아니라 사이키델릭 프로그 앨범인 셈인데, 하긴 레이블 샵에서 Donovan까지 팔고 있는 거 보니 파는 입장에서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그런 의미에서 사이키델릭 밴드 Der Blutharsch의 시작을 알리는 꽤 준수한 앨범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쓰고 보니 앨범에 밴드명은 Der Blutharsch And The Infinite Church Of The Leading Hand라고 박아두고 있지만 결국 쓰는 건 앞부분 뿐이다. 음악도 똑같은데 이름은 왜 따로 굴리는 걸까.

[WKN, 2016]

Sol “Let There Be a Massacre”

sol2007.jpg이 뭔가 나사 빠진 듯한 커버의 앨범은 커버의 인상과는 달리 꽤 클래식한 구조의 둠 메탈을 담고 있다. 사실 덴마크 둠 밴드라고 하면 Saturnus가 먼저 떠오르는 사람인데다 커버가 저 모양이다 보니 이런 음악은 좀 뜻밖인데, 게다가 Saturnus처럼 짙은 인상의 멜로디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반복적인 리프를 주무기로 삼는 스타일의 둠인지라 듣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보컬의 소리지르는 모양새는 블랙메탈의 그것에 더 가깝지만 묵직하게 깔아주는 리프는 때로는 슬럿지 생각도 난다. 때로는 밀리터리 팝에 가까울 정도의 둔탁한 비트를 들려주는 드럼과 샘플링이 묵직한 분위기 위에 블랙메탈의 어둡고 날카로운 기운을 얹는다. 참 건조하게 들리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 앨범의 진면목은 마지막 곡인 ‘Apocalypse’에 있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잘 만든 곡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둠 메탈에 밴조와 클라리넷, 아코디언이 때로는 헛웃음이 나면서도 이렇게까지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건 아주 새로운 경험이다. 클래식한 둠메탈 스타일이라면 ‘Era of Decadence'(다른 곡들과도 수준이 틀린데, 자기들도 알았는지 이 곡만 다른 곡들과 음질이 틀리다)를, 재미에 중점을 둔다면 ‘Apocalypse’를 일청을 권해본다. 쓰고 보니 그래도 이 장르의 앨범 치고는 드물게도 다양한 재미를 얻을 수 있는 앨범인 셈이다. 지금껏 근면하게 활동하고 있는 덴마크 원맨 밴드의 데뷔작.

[Ván,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