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tect “The Analysis of Noise Trading”

architect2005.jpgArchitect의 입지는 Daniel Meyer의 다양한(하지만 보통은 포스트-인더스트리얼 정도로 다 묶이는) 프로젝트들 가운데 좀 덜 유명한 하나… 정도인 듯하다. 사실 어쨌든 그의 가장 유명한 프로젝트는 (Covenant를 제외한다면)Haujobb이고, Architect의 음악이 Haujobb과 많이 다른 스타일이냐면 그건 또 아닌지라 그런 입지에 앞으로도 개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기는 하는데, 그래도 사실 Daniel의 다양한 음악편력을 한번에 보여주는 프로젝트는 따지고 보면 또 Architect만한 것도 없다는 게 사견. 하긴 신스 팝에서 인더스트리얼까지를 아우르는 뮤지션은 생각해 보면 별로 없기도 하다.

그 Architect의 앨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앨범이라고 한다면 이 3집인데,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인더스트리얼 딱지를 붙이고 나오는 앨범들 중 이 앨범만큼 Skinny Puppy의 사운드를 제대로 재현하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해체한 것도 아니고 지금 투어 돌고 있는 양반들의 사운드를 ‘재현’한다고 표현하는 것도 웃기지만, 적당히 고쓰풍이면서 적당히 댄서블하던 Skinny Puppy의 초기 스타일은 물론 근래의 스타일까지 한 장에 담아내는데야 적어도 이 앨범에 한해서는 솜씨 탁월한 따라쟁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덕분에 앨범 수록곡들의 양상도 참 다양한 편인지라 댄스 플로어 비트에 딱히 거부감이 없다면 기대보다 즐겁게 들을 수 있다. 주취 분위기를 재현했는지 앨범에서 드물게 앰비언트를 시도하고 있는 ‘St. Vodka(Mother Russia)’ 정도를 제외한다면 충분히 비트와 글리치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는 창작자의 악취미가 얼마간 묻어나는 댄스 플로어 뮤직이라고 하는 게 좋을지도.

[Hymen, 2005]

Dahmer “The Studio Sessions – Discography”

dahmer2003.jpgDahmer는 캐나다 그라인드코어의 거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을 리가 없고, 솔직히 Macabre의 “Dahmer” 덕분에 그래도 Jeffrey Dahmer의 이름이 익숙한지라 눈에 들어왔던 밴드이다. 앨범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들의 사실상의 베스트 앨범인데, 사실 이들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이 앨범으로 밴드를 처음 접하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닐 듯싶다. 음질도 꽤나 조악하거니와 앨범의 한 80%는 데모나 스플릿에 수록된 곡들이고(정규반이 음질이 좋다는 의미는 아님), 일부 곡들은 아예 손상된 마스터테입에서 얻은 음원이다보니 웬만큼 나쁜 음질에 익숙한 이라도 무리없이 듣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곡들은 사실 꽤나 훌륭하다. 1995년부터 활동하던 밴드인 만큼 아무래도 Earache 스타일의 크러스트를 의식한 류의 그라인드코어에 파워 바이올런스를 더한 느낌인데, 리프가 은근 캐나다 스래쉬메탈이 주로 쓰는 류의 모양새와 닮은 부분이 있고, 덕분인지 동시대의 다른 그라인드코어보다도 좀 더 에너제틱하다는 인상을 준다. “Dahmerized”에서도 제일 좋아했던 ‘Douglas Daniel Clark’ (베이스가 살아 있는 그라인드코어는 접하기 쉽지 않다)같은 곡을 좀 더 추천해 본다. 다만 밴드명이 저렇다고 특별한 컨셉트를 기대해서는 좀 아쉬울 수 있을지도. 처음에 Macabre 얘기로 시작했던만큼 노파심에 하는 얘기다.

[Grind It!, 2003]

Casket Robbery “Evolution of Evil”

casketrobbery2016.jpg위스콘신 출신 데스메탈 밴드의 2016년 데뷔작. 이 밴드의 주목할 만한 점이라면 보기 드물게도 연쇄살인범을 컨셉트로 하여 앨범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컨셉트라면 이미 Macabre라는 훌륭한 레퍼런스가 존재하고 있는지라 그 자체로 신기해할 만한 건 아니지만, Macabre가 그런 컨셉트를 조금은 잔혹한 유머와 버무려 버리는 밴드인 반면 이들의 음악에선 그런 유머감각은 찾아볼 수 없다. 하긴 그 정도 유머감각이라면 뭘 하더라도 지금보다는 더 잘 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Macabre만큼 연극적인 전개를 가지고 나간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사실 사운드는 Macabre보다는 좀 더 스래쉬한 색채를 띤 Misery Index 정도에 가깝지 않을까 싶은데, 전형적인 데스메탈도 있지만 역시나 좀 코어스러울 정도로 그루브를 강조한 부분도 있고, 장난기 빠진 분위기를 고려했음인지 연쇄살인마들의 육성 녹음을 이용한 샘플링도 등장하는 등 앨범의 색채는 매우 다채로운 편이다. 주인공 하나를 들어 만든 앨범이 아니라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앨범인만큼 그게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지도. 데스메탈에서의 여성보컬의 독특한 쓰임새를 보여주는 ‘Curse of the Night Stalker'(솔직히 좀 King Diamond 생각도 난다)가 기억에 특히 남는다.

[Mortal Music, 2016]

Greg Lake “Greg Lake”

greglake1981.jpeg가장 뛰어난 프로그레시브 뮤지션들도 어쨌든 80년대에는 먹고 살아야 한다고 기존의 스타일을 버리고 아재들의 길티 플레저가 되어 버린 음악을 연주하곤 했다. Greg Lake도 마찬가지여서 King Crimson과 ELP 이후 80년대에는 솔로 활동(Emerson, Lake & Powell도 있긴 했는데)을 하면서 예전 스타일을 기대한 이들을 뜨악하게 하는 음악을 내놓았다. 나쁘다는 건 아니다. Gary Moore도 참여했던 이 앨범의 기타 연주는 때로는 가장 후끈하던 시절의 Jake E. Lee를 연상케 할 정도로 인상적인 면모가 있다. 커리어는 내리막길에 들어섰을지언정 어쨌든 아직은 뜨거운 마음을 가진 사내들이었던 셈이다.

사실 80년대의 프로그레시브 뮤지션들의 앨범들은 예외도 있지만 내놓고 복잡하지도 않고 완전히 팝도 아니고 해서 애매한 경우가 많은데, Toto 멤버들도 왕창 참여하고 있는 걸 보면 Greg Lake는 자신의 팝 센스에 대해서는 확실히 별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의 아쉬운 솔로 커리어에 비교해 본다면 Greg Lake의 그런 스스로에 대한 냉혹한 평가가 더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그러니까 나도 스스로를 항상 돌아보면서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쩌다 Greg Lake 얘기에서 자아성찰로 이어지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역시 Gary Moore의 에너제틱한 연주가 돋보이는 ‘Nuclear Attack’이 앨범의 백미.

[Chrysalis, 1981]

Oscuro Mito “Mientras las nubes ciegan la luna…”

oscuromito2015.jpg볼리비아 블랙메탈 밴드의 데뷔 데모. 데뷔 데모라는 표현이 좀 이상하긴 한데 데모긴 하지만 레이블이 엄청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지 음원을 CD로 발매하는 기염을 토한 앨범이다. 물론 이 레이블의 발매작 몇 장을 경험한 입장에서는 그 심미안을 믿을 수가 없기는 한데, 유럽이나 아시아가 아닌 남미의 포크 바이브 묻은 블랙메탈을 표방하는 앨범이 쉬이 나타나는 건 아닌지라 나올 때부터 은근 이목을 모았던 기억이 있다. 남미 포크와 메탈의 만남이라면 일찍이 Sepultura가 “Roots”를 내면서 써먹었던 홍보문구이다만, 그 앨범을 재밌다고 생각할지언정 좋아하지는 않는 입장에서는 나름 기대가 된다.

그렇게 접한 음악은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편이다. 사실 블랙메탈이 베이스기는 하지만 헤비메탈의 전형에 가까운 리프를 많이 써먹는데다(특히나 “Hammerheart” 시절의 Bathory), 플루트 등을 이용해서 독특한 분위기를 생각보다 자주 만들어낸다. 사실 홍보문구에 비해서는 그 ‘남미 포크’의 면모는 간혹 등장하는 챈트나 이름모를 ‘전통 악기’ 소리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든데, 그런 점을 생각하면 그냥 남미에서 나온 바이킹메탈 정도로 설명했다면 더 많은 이들이 찾아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레이블이 뭘 믿고 CD로 냈는지는 이해하기 어려울 그럴 앨범… 이지만, ‘Luz Naciente’ 같은 곡의 독특한 분위기는 한번쯤 접해 보심도 좋을지도.

[Catáfila Producciones,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