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ilation Rites “Chasm”

mutilationrites2018.jpgMutilation Rites는 이런저런 장르들이 뒤섞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클래식’ 블랙메탈에 기반한 음악을 하는 밴드이다. 흔해빠진 얘기지만 아마도 블랙게이즈 이후부터는 뉴욕 출신으로 이렇게 ‘전형적인’ 유형의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이 드문지라 개인적으로는 아주 반갑다. 이들이 참고하고 있는 블랙메탈이 90년대 후반 즈음, 좋았던 시절의 노르웨이 블랙메탈에 가까워 보인다는 것도 좋다. “Harbinger”부터 느껴지던 Taake풍의 진한 멜로디의 리프도 여전하고, 가끔 거칠게 밀어붙이는 면모에서는 펑크 물을 들이키기 이전의 Darkthrone의 모습도 느껴진다.

그렇지만 “Chasm”은 밴드의 이전 앨범들에 비해 데스메탈적인 색채 뿐만 아니라, 블랙메탈 이외의 장르들의 모습들이 더욱 강해진 앨범이기도 하다. ‘Omnious Rituals’의 블랙메탈로서는 당혹스러울 정도의 그루브 뿐만 아니라, 펑크 물을 많이 마시고 온 Darkthrone의 모습이 느껴지는 ‘Axiom Destroyer’, 클래식 데스메탈의 기타 톤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Pierced Larynx’ 등이 한 앨범에 실려 있다. 그 또한 그놈의 뉴요커 기질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덕분에 외지에서는 21세기 방식으로 업데이트된 전통적인 스타일, 정도의 평가를 듣고 있는 듯하다. 업데이트를 굳이 할 필요성이 있었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듣기에는 충분히 재미있었고, 어쨌든 데스메탈보다는 블랙메탈 팬들에게 어필할 만한 앨범이다.

[Gilead Media, 2018]

Annihilator “Alice in Hell”

aliceinhell.jpgAnnihilator의 개인적 최애작을 뽑는다면 “Never, Neverland”이겠지만 한 장이 아니라 한 곡만을 뽑는다면 ‘Alison Hell’일 것이다. 솔직히 ‘Alison Hell’을 제외하면 “Alice in Hell’의 다른 수록곡들은 “Never, Neverland”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Alison Hell’이 프로그레시브/테크니컬 스래쉬의 어떤 시금석을 놓았음은 분명하다. 멋진 밴드이지만 ‘우린 Annihilator를 따라서 음악을 했습니다’고 자처하는 밴드들을 찾아보기 쉽지 않음을 생각하면 ‘Alison Hell’은 다른 곡들과는 어쨌든 달라 보인다. 잘 하기는 하지만 거물 밴드들의 프론트맨들과는 차이가 분명해 보였던 Randy Rampage의 보컬도 ‘Alison Hell’에서만큼은 확실히 돋보인다.

어쩌다 보니 이 유명한 앨범에 좋은 얘기를 별로 안 하고 있는데, 사실 이미 많은 밴드들이 별별 빡센 앨범들을 내놓은 이후였던 1989년에 나온 앨범인 걸 생각하면 그리 강력한 앨범은 아니지만, 가끔은 Razor나 Exciter에 가까운 스피드를 보여주는 부분도 있고, 리프를 꼬는 맛에서는 Voivod의 좋았던 시절(Megadeth 얘기를 많이들 하지만, 내 생각에 그건 보컬 빼면 좀 아닌 것 같다)을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다. 풀어나가는 모양새가 조금 맥이 빠질 수 있을지언정 기본 리프만큼은 확실히 뽑아내는 Jeff Waters인지라, 사실 리프 모음집이라고만 생각해도 유용할 것이다. Randy Rampage가 떠나셨다 하여 간만에 들어보긴 하지만 몇 안되는 앨범 열심히 반복재생하며 듣던 시절도 생각나게 하니 조금 감상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잘 들었습니다.

[Roadrunner, 1989]

November Növelet “From Heaven on Earth”

nn1999.jpg11월의 노벨레라고 하면 매우 감상적일 법한 인상을 준다만 Haus Arafna의 그 커플이 만든 앨범이라면 그럴 리가 없을 테니 참 오해의 여지가 많은 밴드명인 셈이다. Haus Arafna는 기본적으로 80년대 초중반, 극히 건조하던 시절의 인더스트리얼-노이즈에 가까운 음악을 들려주던 듀오였는데, 부부가 쌍으로 이런 음악을 하고 있으니 이런 음악을 노벨레로 써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만 작명 센스는 별로인 건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음악만 본다면 어쨌든 November Növelet가 조금 더 ‘이지리스닝’에 가까운 건 맞다. 거친 인더스트리얼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Galakthorrö에서 꾸준히 나오던 미니멀한 분위기의 앰비언트도 있고, 과장 많이 섞으면 인더스트리얼 밴드 스타일의 신스 팝을 연상할 만한 부분도 있다. “Magic” 같은 앨범에서는 심지어 디스코 리듬도 나왔던 걸 생각하면 그래도 이 앨범이 좀 더 얌전한 편인데, 결국은 Haus Arafna는 너무 지저분하고 “Magic”은 또 너무 팝적이라고 생각한 (아마도 소수의)이들에게 가장 좋은 선택일지어다. 그래도 가장 리드미컬한 ‘Misanthropy’가 인더스트리얼 팬들에게는 가장 익숙할 것이다.

[Galakthorrö, 1999]

Lord of Evil “Satan’s Soldiers”

lordofevil2012Lord of Evil은 폴란드 블랙메탈의 꽤 묵직한 이름이다. 묵직하다는 게 뭐 음악을 그만큼 잘해서 그랬다기보다는 폴란드 NSBM의 가장 최초의 이름들 중 하나였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사실 Lord of Evil만 본다면 나치 이미지 외에 사타니즘 이미지도 차용하던 밴드였고, 그런 류의 밴드들이 이미지만의 차용을 주장하며 이데올로기와의 무관함을 주장한 사례들은 이미 꽤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밴드는 1995년 War88로 이름을 바꾸면서 조금은 모호하던 정체성을 분명히 한 만큼(War88은 ‘White Aryan Resistance Heil Hitler’의 약어이다) NSBM이란 분류에는 큰 문제는 없는 법하다. 그렇게 치면 이 밴드는 Graveland보다도 더 오래 된 NSBM 밴드이고, “In the Glare of Burning Churches” 이전의 Graveland가 확실히 좀 덜떨어진 모습을 보여줬던 걸 생각하면 떡잎만큼은 Lord of Evil이 더 나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럼 왜 이들은 Graveland만큼 알려지지 못했을까? 생각하면 사실 이유는 간단한 것이 “Epliogue”까지의 Graveland가 덜떨어졌다 해서 이들이 참 탁월했다 그런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노르웨이의 그림자 드리운 구리구리한 음질이 거친 블랙메탈이 담겨 있는데, 기본적으로 리허설 음원인 만큼 기대할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아무래도 가장 유명한 곡은 ‘Kill the ZOG!’를 외치는 ‘Nazi Killer’이겠지만 사실 들어 보면 Napalm Death의 ‘You Suffer’나 이거나 곡 길이 정도 빼면 딱히…(물론 연주는 이들이 훨씬 못하기는 한다). 1990년대 초반 폴란드 블랙메탈의 맹아의 모습이 어땠는지에 대한 사료의 의미로만 짚고 넘어가면 충분할 것이다. 이 컴필레이션이면 밴드가 발표했던 웬만한 음원은 다 들어 있으니 컬렉션용으로는 확실히 유용하다.

[Under the Sign of Garazel Prod., 2012]

Chaos Moon “Eschaton Mémoire”

chaosmoon2017솔직히 Chaos Moon은 그 전에 딱히 눈여겨 본 밴드는 아니었는데 신뢰의 Blood Music에서 신작이 나와서 아주 의외라고 생각했다. “Transylvanian Hunger” 시절의 Darkthrone을 좀 더 느리게 만들고 적당한 둠과 ‘suicidal’ 스타일을 섞어낸 초기의 음악은 (드럼머신 덕분에 좀 깼던 것도 있는데다)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냥 보통보다는 좀 더 개성에 신경쓴 듯한 아류로 들렸다. 그랬던 밴드는 “Resurrection Extract”부터 좀 더 다양한 구성으로 공간감을 갖춘 곡을 쓰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고, 블랙게이즈 물을 너무 먹었던 시작점을 딛고 나온 신작이 “Eschaton Mémoire”였다.

확실히 종전보다 스케일이 더욱 커지고 두터운 신서사이저를 이용한 분위기의 조성이 두드러지는 앨범인데, 부분부분 느껴지는 모던함이 Wolves in the Throne Room 같은 밴드도 생각나지만 그보다는 노르웨이 블랙메탈 스타일이 더욱 강조된 편이다. 그러면서도 전작들보다 복잡해진 구성이 간혹은 Blut aus Nord 같은 밴드들도 생각나게 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귀에 쉽게 들어오는 편이다(그렇다고 그리 청자에게 친절한 편은 아니기는 하다). Jack Blackburn의 드러밍이 그 모든 구성을 탄력 있게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예전 앨범들의 드럼머신이 꽤 거슬렸었다. 2017년에 들었던 심포닉 블랙의…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고에 가장 근접했던 앨범.

[Blood Music,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