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gelis가 프로듀스했다고 해서 구하게 된 앨범인데, 이 앨범 직전에 구했던 게 Irene Papas의 “Odes”이기 때문에 Vangelis가 손댄 여성 뮤지션의 앨범이니 아마 비슷하겠거니 하는 게 개인적인 기대였다. 그런 의미에서 Irene Papas보다는 확실히 좀 착해 보이는 뮤지션의 외모와(뭐 Irene가 그렇게 세게 생긴 건 또 아니지만서도) Olivia Newton John 뺨치는 목소리는 귀에 잘 박히면서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메탈바보의 경직된 귀때기에는 아무리 웰메이드 팝이라도 들어오는 데 애를 먹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15살 여인네의 목소리가 주가 되는 앨범이겠지만 그 목소리를 받쳐주는 건 적당히 싼티나는 Vangelis의 신서사이저와, 조금은 대조되는 따뜻한 톤의 오케스트레이션이다. 뿅뿅대는 맛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인데, 평소에 소개될 때 신스 팝이라고까지 소개되는 앨범이니만큼 그 정도는 사실 청자가 감수하고 들어와야 할 몫일지도. 프로그레시브를 기대한 이라면 Vangelis가 확실히 힘을 준 듯한 ‘You are the One’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가끔은 잘 나가던 시절 Abba까지도 생각나는(뭐… 물론 Abba는 못 나간 적이 없지만) ‘Rainbow’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CD야 나온 적이 없을 텐데 LP를 구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
[Phillips, 1975]
Deathrune 레코드는 NSBM 레이블로 인상이 박혀 있는 곳인데 이 시카고 양반들이 그 부류에 속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운드만 봐서는 데스메탈의 느낌이 좀 더 강한 war-black 스타일인데, 시절이 시절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요새는 이런 스타일의 밴드들에서도 문득문득 모던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이걸 멋지게 엮어내는 밴드도 있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 장르에서 그루브나 탁월한 리듬감 같은 걸 별로 기대하지 않는 입장에서는 모던한 터치는 사족에 가깝다. Hellfire Deathcult도 이런 식의 아쉬움이 남는 요새 밴드들의 유형에 속하는데, 그루브를 강조하기보다는 Autokrator 류의 드론 사운드를 더 담아내려는 듯하다는 면에서는 내 기준에서는 좀 더 낫다.
사실 Malevolent Creation은 거물인 데 비해서는 국내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다는 개인적인 느낌이 있다. 아무래도 1세대로 쳐주기는 어려운 밴드이니 프론티어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고, 플로리다도 뉴욕도 아닌 뭔가 절충적인 스타일도 별로 안 좋은 영향을 미치잖았나 짐작해 보는데, 그래서야 이 거물이 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설명할 수 없을지니 그냥 이 양반들 팔자로다 결론짓는 편이다. “The Fine Art of Murder”는 나온 시절도 시절이거니와 이들의 전성기가 좀 지나서 나온 앨범으로 평가받는 편이지만, Robb Barrett이 다시 기타를 잡은 앨범이기도 하고 스타일만큼은 “Stillborn” 이후에 나온 앨범들 중 가장 밴드의 초창기에 가깝게 뽑힌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Day of Lamentation’ 같은 둠적인 트랙이 좀 이질적이긴 하지만 ‘The Purge’ 같은 곡은 달려주는 데스메탈이 생각날 때 선택하기 부족함이 없다.
Ex.order의 레어 트랙들을 모은 컴필레이션이라는 게 광고문구지만 어째 미발표곡 두 곡을 빼면 다 정규앨범에 수록되었던 곡이다. 악명 높은 “Juche” 앨범에서 이름을 발견한 때부터 계속 관심을 뒀던지라 하필 이들은 내가 정규작을 모두 갖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라고 말하고 보니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러니 기존에 이들을 접해 왔던 이들이라면 굳이 이 컴필레이션에 신경쓰지 않아도 크게 손해는 아닐지도. 허나 Ex.order를 컬렉팅하는 이들이 얼마나 되려나에 생각이 닿으니 이런 베스트성 컴필레이션도 의미있을 수 있겠거니 싶기도 하다.
일리노이 출신 헤비메탈 밴드의 1986년 유일작 EP. 이 12인치 EP 말고는 데모를 하나 더 냈다고 하는데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으므로 별로 할 말은 없다. 그 시절 자기 주머니 털어 앨범 내던 헤비메탈 밴드들의 음악이 많이들 그랬듯이… 이 앨범도 직선적인(달리 말하면 겁나게 심플한) 스타일의 곡을 연주하고 있다. 1986년답게 적당한 스래쉬 냄새를 풍기는 ‘Obsession’ 같은 곡도 있는데, 어느 것 하나 예상에서 벗어나는 게 없다는 게 장점이면서도 단점이겠다. 4곡밖에 없는데도 듣다 보면 심심할 때가 있다. 주가지수에 버블이 거침없이 끼어가던 시절에도 거품은 커녕 빈티만 났을 양반들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