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계약 때문에 억지로 한 장 더 내놓은 앨범인지도 모르겠다. “No Rest for the Wicked”에서 멀쩡히 베이스 잘 치던 Bob Daisley는 어디다 쫓아내고 Geezer Butler를 꼬셔서 나온 이 라이브 EP는 솔직히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일단 수록곡 절반이 “No Rest for the Wicked”의 곡인데다 그 나머지도 ‘Shot in the Dark’에 ‘Sweet Leaf’, ‘War Pigs’다. 그냥 Geezer Butler를 간만에 만난 김에 땡겼던 어느 밤의 공연 실황,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한데, 그날 Ozzy Osbourne 컨디션이 좋았는지 이 앨범에서의 Ozzy의 퍼포먼스는 다른 라이브앨범에서보다도 더 낫다고 생각한다. 커리어 내내 알코올에 찌들어 있던 양반이니 이렇게 상태 좋은 날이 그리 흔치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별로 사람들이 이제는 얘기하지도 않는 이 EP를 간만에 꺼내들은 계기는 오늘 점심에 대출금 상환 덕분에 은행에 들렀는데 ‘The Miracle Man’의 이 EP 버전이 나오더라. 여기서 돈 꿔가고 있는 당신 복받으신 거라고 틀어주는 bgm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오의 은행에서 Ozzy를 트는 엄청난 센스라니 뭔가 기울어 가는 금융 경기를 대변하는 듯했다. 이런 계기로 꺼내 듣게 되는 앨범이라는 자체가 이 EP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입증하는 듯하여 좀 그렇기는 하다. 따지고 보면 이것보다 퀄리티 좋은 Ozzy의 라이브앨범이 얼마나 됐던가 싶은데도.
[Epic, 1990]
“Yön olevainen puoli”를 꽤 재미있게 들었었는데 신작이 나왔다는 걸 좀 늦게 알았다. 사실 스타일이야 어느 정도의 포크 바이브를 끼얹고 드라마틱한 구성에 신경쓴 기색이 역력한 멜로딕 블랙메탈 정도로 말하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진대, 여기에 곡마다 조금씩 다른 요소들을 추가하여 나름대로는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려 하는 모습이 전작과도 비슷하다. 전작보다 좀 더 긴 러닝타임으로 승부하면서 때로는 소위 포스트 블랙메탈다운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차이일지도. 하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는 ‘전형적인’ 블랙메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니 그걸 크게 경계할 필요는 없겠다.
Vanguard Prod.는 창립 이래 테이프 외길인생을 걷고 있는 미국 레이블인데, 대개 발매작들은 블랙메탈이지만 간혹 파워 일렉트로닉스나 네오포크가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근래의 내 취향을 정확히 파악…했다기보다는, 그냥 어쩌다 보니 가장 잘 들어맞는 레이블인 셈이다. Solarthrone의 이 앨범도 외관상으로는 90년대 초반 노르웨이 블랙메탈 밴드의 숨겨진 데모 같은 인상을 풍기지만 음악은 Death in June이나 Sol Invictus를 바로 떠올릴 수 있는 네오포크를 들려주고 있다. 경력 일천한 이들이 많이들 그렇듯 좀 더 전형적인 포크와 앰비언트 트랙을 반씩 섞어놓은 구성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그래도 분위기 잡는 데 일가견은 있는지라 짧은 와중에도 그리 어색함은 들지 않는다.
Prophecy 레이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원래부터 멜랑콜리한 포크를 심심찮게 내놓는 곳이긴 했지만 본령은 어쨌든 둠-데스에 두고 있던 곳인지라 이런저런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요새의 로스터를 보면 낯선 느낌이 없지 않다(뭐 하긴 이젠 요새만의 얘기도 아니다). 그 중에서도 Auerbach를 통해 내놓고 있는 네오포크들이 근래에는 좀 더 눈에 띄는 편이다. 아무래도 Sol Invictus와 Camerata Mediolanense, Spiritual Front 같은 거물들을 두고 있는 덕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메탈 레이블이 어쩌다가 이렇게 네오포크에 손을 뻗치게 되었을지를 짐작해 보면 결국은 Hekate로 적당히 재미를 봤으니 그러겠지 하는 짐작을 한다. 네오포크로 재미 봤다는 게 말하고 보니 조금 이상하지만 그건 일단 넘어가고.
벌써 2017년에 이제 우리 한동안 쉰다고 얘기했던 Sol Invictus인만큼 “Necropolis”는 아마 Tony Wakeford의 심경의 변화가 없는 한 밴드의 마지막 앨범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앨범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그간 밴드의 일원이었던 Lesley Malone과 Caroline Jago가 자리를 비웠고, 그 자리를 메꾼 건 Don Anderson을 위시한 많은 게스트들이다. 물론 Sol Invictus는 사실 ‘Tony Wakeford 외 이하 생략’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밴드이긴 하지만, 편의점 알바가 바뀌어도 매출에 영향이 있는 판에 이 정도의 대폭적인 인력 변경이 가져올 법한 변화는 충분히 우려될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