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s of Orthanc “Dush Agh Golnauk”

dushaghgolnaukTour de Garde에서 나오는 앨범들을 제외하고 퀘벡 출신 밴드의 앨범을 사 본 게 나름 오랜만인 것 같은데 이들처럼 Tolkien 컨셉트를 전면에 내세웠던 퀘벡 밴드는 정말 드물었지 싶다(일단 바로 떠오르는 밴드 자체가 없다). 퀘벡과 Tolkien 컨셉트 양자 모두에 선입견이 있는지라 음악이 어떨지 조금은 헷갈리지만,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나오는 사운드는 그럼에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비교적 직선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리프에 적당히 싼티나면서도 튀지 않는 키보드를 얹은 류의 블랙메탈인데, 벌써 수많은 이들이 손대고 지나간 스타일인지라 나름대로는 극적인 서사를 만들어 보려는 모습이 역력한 편이다.

문제는 수록곡 전부가 스타일이 결국 대동소이한지라 나름 신경쓴 서사가 앨범 전체를 듣자면 그리 드러나지 않는데다, 거친 트레몰로 리프로 최대한 다양한 구성을 만들고 싶어서였는지 인상적인 부분도 찾기 힘들다. 이렇게 어느 한 곳 돋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도 능력이지 싶은데, 이렇게 말하고 보니 어느 한 곡 버릴 게 없었던 “Dol Guldur” 시절의 Summoning이 얼마나 대단한 밴드였는지 조금 실감이 난다. 물론 Summoning과 비교하다 보니 그렇다는 거고, 좋은 얘기는 별로 한 게 없지만 사실 평범한 데뷔작 정도는 된다. ‘Witchking’이나 ‘Ringwraiths’ 같은 곡은 적어도 잘 나가던 시절의 Ufych Sormeer 정도의 위계는 보여주는 곡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Ufych Sormeer가 잘 나간 적이 있다고 할 수 있던가? 갑자기 헷갈린다.

[Naturmacht, 2018]

Au-Dessus “End of Chapter”

au-dessus2017망자의 눈에 노잣돈인지 동전을 얹는 게 그리스 풍습이라던가로 들었던 기억이 있지만 Au-Dessus는 리투아니아 밴드이다. 보통 리투아니아 포스트-블랙메탈로 광고되고 있는데다 첫 정규반 커버부터 이렇게 깔끔하게 뽑혔으니 모던한 스타일을 기대하는 게 당연할 텐데, 질감 자체는 모던하지만 곡을 풀어내는 방식은 그래도 정통적인 모습을 꽤 간직하고 있는 편이다. 일단 앨범을 듣고 떠오르는 밴드가 Alcest나 Deafheaven이 아니라 Blut aus Nord(물론 그 수준이라는 얘기는 아님)라는 건 근래 새로 등장하는 밴드들 사이에서 흔한 모습은 아닌 것 같다.

덕분에 사실 촌철살인의 멜로디라인이나 감정으로 충만한 분위기는 앨범에서 찾아볼 수 없는데, 대신 빠른 연주와 느린 연주를 적절히 배치해서 극적인 효과를 유도하는지라 듣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인상적이다. 아무래도 그런 면모들이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건 ‘VI’인데, Blut aus Nord풍 리프에서 (아마도 Ved Buens Ende가 생각나는)재즈적인 모습까지 등장하는 복잡한 구성이 그리 억지스럽지 않아서 좋다. 물론 그래도 최고의 매력은 이 앨범이 그러면서도 일관되게 공격적이라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멋진 앨범이지만 Alcest스럽지 않으니 장사는 좀 덜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앞서지만 어쨌건 그건 레이블이 걱정할 문제려니 하고 넘어간다. 하긴 내가 지금 누구 지갑 걱정을 하는 거냐…

[Les Acteurs de l’Ombre Prod., 2017]

Various “Buffy the Vampire Slayer(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buffyost1992뭐 딱히 미드를 즐겨본 적이 없기도 하거니와 뱀파이어라면 영국 Hammer사만한 데가 없다는 케케묵은 취향 덕분에 Buffy the Vampire Slayer 시리즈에 딱히 관심이 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Sarah Michelle Gellar는 그 시절 학생의 눈으로 봐도 예뻐 보였는지 스토리나 설정이나 아는 것 하나 없는 이 미드가 그래도 기억에 남아 있기는 하다. 아마 그 와중에 구해진 CD가 아닐까 싶긴 한데, 메탈 트랙이 없는 OST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앨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Matthew Sweet의 ‘Silent City’다. 무려 Pat Mastelotto가 쳐주는 드럼도 탄탄하거니와, 원래 미국인이 좋아하는 그 시절 그 노래 스타일의 뮤지션이기는 하지만 이만큼 생각없이 건강한 노래는 흔치 않았다.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다.

뭐… 그런데 그렇다고 오늘 이 노래 때문에 앨범을 찾아들은 건 아니고, 결국 메탈바보가 듣기에 가장 인상적인 곡은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Rob Halford의 ‘Light Comes Out of Black’이다.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Painkiller”를 연상케 할 정도로 카랑카랑한 맛이 있는데, Judas Priest의 이름으로 실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눈치챘겠지만 이 곡의 연주는 Judas Priest가 아닌 Pantera가 맡고 있다. 물론 Phillip Anselmo도 백보컬로 참여하고 있는데, 뭐 메탈갓이 껴준다니 기쁘게 참여했던 한 곡이 아니었을까 싶다. Dimebag의 날카로운 기타는 Rob의 그 시절 목소리에 잘 어울렸고, Vinnie의 드럼도 빠르진 않았지만 충분히 묵직했다. 아무래도 Vinnie를 추모하는 데는 Hellyeah보다는 Pantera 얘기가 낫지 않겠나 싶어서 이렇게 적어둔다. 다시금 명복을 빈다.

[Columbia, 1992]

Hellyeah “Unden!able”

hellyeah2016사실 언제부턴가 관심사에서 멀어져 버린 Pantera지만 그 시절 ‘그루브 메탈’ 밴드들 중 이만큼 리듬감을 살리면서 적당히 ‘빡세고 정통적인’ 느낌의 사운드를 냈던 밴드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긴 그러니까 Pantera를 스래쉬메탈에 넣느냐 마느냐 하는 게 소위 음알못들의 주요 논쟁 레퍼토리에 들어갔을 것이다. 물론 아무래도 Pantera의 ‘빡센’ 부분은 Phillip Anselmo에게서 나왔을 것이다. The Ravenous나 Viking Crown의 앨범들은 (꼭 좋았다는 건 물론 아니고)개인적으로 그 해에 구했던 앨범들 중 가장 거칠고 지저분한 축에 꼽았던 기억이 있다.

그럼 나머지는 누구에게서 나왔을까 생각하면 정답이야 없겠지만 적어도 밴드의 활동을 관통하는 그루브는 Vinnie Paul에게 나온 게 아니었을까 싶다. Dimebag 사후 Vinnie가 참여한 모든 앨범은 사실 Pantera의 좋았던 시절 추억팔이에 어느 정도 기대고 있는 스타일이었지만 그루브만큼은 적어도 “Reinventing the Steel”보다도 나아 보이기도 했다는 게 나름의 근거. 아무래도 가장 최근에 나온 이 앨범이 Pantera 냄새가 덜 나는 편이니 그루브를 확인하기에는 더 적절하려나 싶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그루브밖에 건질 게 없는 앨범이란 생각에는 사실 변함은 없고, 굳이 ‘I Don’t Care Anymore’ 같은 커버를 꼭 했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물론 가장 큰 아쉬움은 Vinnie Paul에게 이 삽질을 만회할 만한 시간이 없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명복을 빌고, Hellyeah는 Vinnie에게 사과하는 의미에서 얼른 해체했으면 좋겠다. 추모하려고 쓰기 시작했는데 왜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거지?

[Eleven Seven Music, 2016]

Sophia “Death, Dumb and Blind”

sophia2001.jpg항상 심각해 보이는 얼굴로 여기저기 많이도 얼굴 비추는 Peter Bjärgö이지만 그래도 개중 가장 여유있는 마음으로 굴리는 프로젝트는 Sophia일 거라는 별 근거는 없는 예상을 갖고 있다. 아무래도 본진이야 Arcana이겠지만 Arcana는 자기 브랜드라고 마음대로 하기에는 이젠 너무 큰 이름이 돼 버렸고, 그렇다고 다른 밴드에 가서 하자니 주변에 당췌 밝은 양반을 찾아볼 수 없는지라 뭔가 가볍게 하기도 쉽지 않을진대, Sophia라고 해서 딱히 가벼운 스타일의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그래도 Peter 입장에서는 좀 더 만만해 보였을 것이다. Arcana의 무게있는 네오클래시컬보다는 좀 더 뒷맛 씁쓸한 유머를 곁들인 사운드나, 때로는 Karjalan Sissit에서나 했을 법한 거친 일렉트로닉스는 Arcana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거니와 어울리지도 않을 모습들이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한참 남은 2001년 11월에 왠지는 모르지만 산타 커버로 나온 이 7인치는 유머러스할 것처럼 생겼으면서도 Sophia의 발매작 중 가장 거친 사운드(다 들어본 게 아니므로 장담은 할 수 없음)를 담고 있다. Arcana풍의 멜랑콜리는 싹 치워버리고 ‘밀리땅’한 비트의 노이즈와 일렉트로닉스로 구성된 싱글인데, 과장 섞으면 비트가 Arditi급인지라 추운 겨울철 뜻하지 않게 꽤 후련한 비트를 맛볼 수 있다. 말하자면 팬서비스처럼 생겼으면서 기존 팬들로서는 조금은 황당할 음악을 담고 있는 셈인데, 하긴 2010년에 Cyclic Law에서 재발매됐다는 사실도 이 싱글이 얼마나 판매고에 관심 없이 나온 물건인지를 알려 준다. 그런데 좋다고 듣고 있는 내가 사실은 더 이상한 걸지도 모르겠다. Peter가 만든 가장 재미있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Erebus Odora,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