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gre de Muerdago “Os Segredos da Raposa Vermella”

ossegredos2016Cascadian으로 모자라 이제는 Galician Folk까지 나오는 모양인데 이것저것 섞어내는 것이 이젠 일반적이다보니 지명을 붙이는 만큼 정직한 명명도 별로 없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갈리시아가 어딨는지 모르더라도 밴드명에서 이미 스페인풍은 물씬 풍긴다. 사실 스타일만 본다면 켈틱 포크에 스패니쉬 무드를 좀 곁들인 풍의 네오포크, 정도로 말하면 그리 틀리지 않을진대, 오컬트보다는 차라리 적당히 주머니 두둑한 축에 속하던 중세인들이 모여 듣던 살롱 뮤직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 면에서는 사실 “Sangre de Muerdago”에서 보여줬던 다양한 맛은 좀 덜하다. 꼭 밝기만 한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한 낙관으로 충만하다.

뭐, 그렇지만 레이블이 레이블인지라 마냥 착한 음악은 아니다. 부조끼나 허디거디, 니켈하르파 같이 다양한 악기들이 두루 등장하면서 밴드의 개성을 만들어내는데, 이만큼 다양한 색채의 연주는 라이브에서 거의 묘기대행진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Omnia 정도 아니면 별로 본 적이 없는 듯하다. 리듬감이 좀 더 강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Noite”에서의 뒷골 뻐근한 사운드가 멋들어진 포크로 변용된 ‘An Dro’를 듣자니(그런데 말하고 보니 “Noite”가 훨씬 뒤에 나왔는데) 그래도 밴드가 EP에서 추구한 건 여유였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CD 50장 찍어 파는 양반들이 별로 바쁘게 살 것 같지는 않다.

[Self-financed, 2016]

Millenium “Jericho”

jericho2004한동안 컴퓨터를 켤 여유가 별로 없었는데 그 사이에 Ralph Santolla가 불귀의 객이 되었다니 별로 많은 건 아니지만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렇게까지 좋아한 연주자는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Ralph의 가장 잘 알려진 연주는 Deicide와 Obituary에서의 것이었고, 그의 스타일이 어쨌든 데스메탈과는 그리 어울리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말하자면 테크니션의 손에 깊게 박혀버린 손버릇이 끝내 발목을 잡았던 경우인 셈인데, 그렇게 생각하니 이 독실한 카톨릭 신자가 Deicide에 어떻게 합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Glen Benton이 대체 어떻게 약을 쳤을지 궁금해지지만 그리 중요한 얘기는 아닐테니 이쯤에서 각설하고.

Ralph의 그런 스타일이 데스메탈에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스래쉬메탈이나 파워메탈에는 잘 어울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도 이 커리어 내내 절반은 세션맨이었던 인물이 주도한 몇 안 되는 밴드였던 Millenium이 아무래도 가장 좋은 예시일 법한데, 한 장을 고르라면 아무래도 가장 거친 앨범이었던 “Jericho”가 개인적인 선택. 워낙 손버릇 화려한 양반의 연주인지라 군데군데 프로그레시브 메탈처럼 넘어가려다 주저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멜로디가 확실히 받쳐주는지라 그 정도 아쉬움은 쉬이 가려진다. 커버가 멋대가리 없더라도 ‘My Saving Grace’에서 ‘My War’까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보고 Ralph의 묘비 앞에 꽃 한 송이라도 더 올려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명복을 빈다.

[Metal Heaven, 2004]

Anal Cunt “Fuckin’ A”

analcunt2010Seth Putnam과 Anal Cunt를 불멸의 뮤지션이라고 한다면 갸우뚱할 이들이 많겠지만 솔직히 Anal Cunt가 꼭 길지만은 않은 메탈의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개그감각을 보유했던 밴드의 하나라는 정도는 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이들만큼 활동 내내 모든 것을 조소하면서 뒤트는 방식을 유지했던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게 보여주는 개그가 정말 재미있느냐 하는 게 이런 방식을 선택한 밴드들의 역량의 척도라고 생각하는데, 좀 이상한 기준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런 시각에서 Anal Cunt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선택이다. “Too Fast for Love”를 내놓고 비틀고 있는 이 앨범이 아무래도 비트는 소재가 소재인지라 밴드의 가장 듣기 편하고 유머가 도드라진 한 장이다. 이렇게 공들인 역동적인 리프로 ‘Crankin’ My Bands Demo on a Box at the Beach’ 같은 제목의 곡을 만들 인물들은 흔치 않다. 사실 또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할 일이다.

벌써 나온지 7년도 넘어간 앨범인데 기타를 치던 Josh Martin이 그저께 사망했다고 하여 굳이 찾아서 들어보는데, 부고기사는 언제 봐도 별로지만 이렇게 개그감 넘치는 음악을 하던 양반이어서인지 40대 중반에 에스컬레이터에서 장난하다가 떨어져 죽었다는 부고 내용이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고인의 명복을 빌지만, 왠지 장례식장 분위기가 그리 무겁지만은 않을 것 같다. 하긴 그런 모든 인상들이 결국은 Anal Cunt 음악의 힘이겠지. 재미있다.

[Patac, 2010]

Paul Roland “Strychnine”

strychninePaul Roland를 좋아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럽진 않고 사실 90년대 앨범들부터는 깔끔하게 접고 넘어갔던 인물인데, 정작 Paul을 다룬 많지는 않은 외국 매체들을 보면 마치 초야에 스스로를 가둔 한때의 무림맹주같은 이미지로 Paul을 그려내곤 하더라. 하지만 구글에서 Paul Roland를 찾으면 Paul 말고 롤랜드 키보드 얘기가 한 90%는 돼 보이니 그 눈물나는 인지도를 짐작할 수 있다. 가장 많이 나오는 찬사라면 Frank Zappa가 Paul Roland 좋긴 한데 내겐 너무 어려워 식으로 말했다는 얘기지만, 검색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어째 Paul 혼자 약 팔고 다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도록 한다. 말하고 보니 Frank Zappa가 어렵다고 얘기했다면 그만한 악담도 별로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 약 냄새 물씬 풍기는 포스트펑크풍 연주를 듣자니 사실 나쁘지는 않지만 Paul이 약 팔고 다닌 건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Joy Division과 Mark Bolan을 묘하게 섞어낸 듯한 모습인데, 그 고쓰풍 스타일에 심심찮게 양념을 치는 바이올린 연주 덕분인지 David Tibet를 예견하는 듯한 음악이라는 평가를 하는 이도 있다. 그런 평에 사실 그리 동의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앨범에서 Paul이 주욱 늘어놓는 레퍼런스들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네오포크도 충분히 즐길 수 있잖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긴 생각해 봐도 Paul의 음악은 퀄리티를 떠나서 일단 스펙트럼은 꽤나 넓은 편이었다. 챔버 팝에서 사이키델릭 록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래도 가장 약 냄새 짙은 ‘Venus In Furs’가 앨범의 핵심.

[New Rose, 1992]

Strawberry Path “When the Raven Has Come to the Earth”

strawberrypath1971일본 최초로 영국식 하드록을 도입했다 어쨌다 하는데 Flied Egg를 먼저 접했던 나로서는 왜 밴드 이름을 이렇게 지은 거냐 하는 생각이 앞선다. Strawberry Fields를 들을 때는 그 생각이 안 들었는데 왜 얘네는 그럴까…하는데, Flied Egg를 Fried Egg로 열심히 검색하다가 물건 날아갔던 기억 때문이 아니겠냐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밴드 이름을 지어도 날으는 계란에 딸기밭이라니 그리 세련됐을 거란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앨범에서 처음 접한 곡도 ‘Mary Jane on my Mind’였는데, 약물찬가치고는 꽤 거칠고 촌스럽게 들리는지라 더 그랬을 것이다.

앨범 전체적으로 세련된 맛이 별로 없는 것은 맞는데(하긴 이제 와서 밴드 사진 보니 그런 걸 기대하는 자체가 잘못됐을지도. 왜 둘이 머그샷을 찍고 있는지), 그래도 ‘Mary Jane on my Mind’만큼 촌스러운 곡도 또 없는지라 해먼드 연주가 꽤 가미된 Procol Harum 정도로 생각하면 꽤 정확하다, 라고 말하고 보니… 곡들마다 스타일도 다양하니 과연 일본답다 하는 생각도 든다. 화끈한 리프가 돋보이는 ‘Leave Me Woman’ 같은 곡은 Procol Harum보다는 Deep Purple에 더 가까울 것이다. 솔직히 별로 좋아하는 앨범은 아닌데 저 곡만큼은 Deep Purple의 다른 수많은 아류 밴드들에 비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프로그 히든 젬 식으로 소개하던데 이거 꽤 유명하지 않았나?

[Philips,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