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hem “Live in Marseille 2000”

밴드의 자세 탓이었는지 Season of Mist의 탓이었는지는 모르지만 Mayhem은 “Mediolanum Capta Est”가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2001년에 세 장의 라이브 앨범을 내놓았고, “U.S. Legions”와 “European Legions”가 사실 라이브라기보다는 컴필레이션에 가까웠던 앨범이었으므로 그 세 장 중 그래도 가장 멀쩡한 라이브앨범은 이 마르세유 라이브 앨범이었다(고 생각한다). Mayhem의 라이브앨범을 곡 하나하나를 듣는 외에 현장의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굳이 구해듣는 게 보통이라고 한다면, 일단 공연 하나를 제대로 다 담아내고 있다는 자체가 좋은 일이다. 그러니까 나머지 두 장은 대체 뭐하러 낸 거냐 생각하면 삐딱하게 시선이 가기 마련이지만 일단 넘어가고.

물론 “Mediolanum Capta Est”가 들었던 볼멘소리를 이 앨범도 피해갈 순 없다. Euronymous 시절 밴드의 클래식들은 결국 “Mediolanum Capta Est” 앨범 수준으로만 들어가 있고, 밴드의 기량은 출중하지만 셋리스트가 좀 더 길어서인지 공연 뒤로 갈수록 Maniac이 힘에 부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도 아쉽다. 말하자면 “Mediolanum Capta Est”의 셋리스트에 “Grand Declaration of War”의 몇몇 곡들을 더해서 내놓은 라이브라고 할 수 있겠는데, 뭐 어쨌든 두 번째 풀렝쓰를 냈으니 라이브에서 그 앨범 수록곡들을 연주하는 걸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나. 특히나 Blasphemer의 기량이 돋보이는 건 결국 자기가 리프를 짠 ‘Crystalized Pain in Deconstruction’ 같은 곡들이니 나름의 존재감만큼은 분명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들어본 블랙메탈 라이브 앨범들 중에서 가장 레코딩이 뛰어난 앨범들을 꼽는다면 아마도 들어갈 정도의 음질인 것도 인상적이다. 하긴 원래 DVD로 낼 공연을 음반으로도 냈으니 더욱 신경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DVD를 사서 보면 되지 굳이 뭐하러 CD를 사느냐면 할 말 없지만 좋은 앨범이다.

[Season of Mist, 2001]

Twelfth Night “Fact and Fiction”

Marillion을 제외하면 나는 영국 네오프로그 밴드들 중 가장 될성부른 떡잎이었던 밴드는 Twelfth Night라고 생각한다. Fish도 있긴 했지만 연극적이라는 면에서 Fish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Geoff Mann이 있었고, 이쪽 장르가 대개 그렇지만 Steve Hackett의 좋은 점을 많이 닮아 있었던 Andy Revell의 기타가 있었고, 그러면서도 동시대 펑크나 NWOBHM 물을 은근히 먹은 덕에 다른 네오프로그 밴드들에 비해 확실히 ‘화끈한’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애초에 이 밴드의 별명 중 하나가 ‘Punk Floyd’였기도 하고(물론 Pink Floyd는 전혀 닮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만).

그 중에 한 장을 고른다면 단연 “Fact and Fiction”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Twelfth Night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달리 Geoff Mann은 이 밴드에서 딱 두 장 내고 나가 버렸는데, 아무래도 데뷔작다운 빈티가 좀 강했던 데뷔작을 고르는 이는 많지는 않을테니 그리 어려운 선택은 아닐게다. IQ 생각도 좀 나는 적당히 그림자 드리운 키보드와 괴팍하면서도 연극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보컬, 대처 시대의 영국을 삐딱하게 비꼬는 가사, 특이한 박자를 쓰진 않지만 뜯어보면 꽤나 복잡하게 구성된 리듬(특히 ‘Fact and Fiction’) 등 네오프로그 팬들이 원하는 거의 대부분이 모두 들어 있다. ‘Human Being’의 은근슬쩍 들어오는 신스 팝 연주도 힘있는 기타와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Marillion이 데뷔하기 전에 나온 앨범이다. 후배가 워낙 압도적이라서 묻히는 건 당연하겠지만 장르의 팬이라면 이 앨범은 구해볼 가치가 있다. 최근에 각종 보너스들 까지 바리바리 싸서 3CD 버전으로 재발매됐으므로 관심있는 분은 그쪽을 알아보시는 게 나을 것이다.

[Self-financed, 1982]

Hate Forest “Innermost”

작년의 가장 의외였던 신작 중 하나는 Hate Forest의 이 앨범이었다. 물론 “Hour of the Centaur”로 다시 활동을 재개한 게 2020년이었으니 다시 활동을 접는다면 그것도 아쉬울 일이지만, 전쟁 한복판의 우크라이나에서 사는(그것도 바로 하르키우에서!) 양반이 신작을 내기는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니 이 앨범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하긴 Roman Saenko도 40대 중반을 넘어갔을 테니 직접 총 들고 전선에서 뛰어다닐 나이는 아닐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각설하고.

앨범은 당연히 Hate Forest의 한창 시절보다는 좀 덜 거칠고 ‘매끄러운’ 전개를 보여주지만, 스타일 자체는 이전과 크게 차이가 없다. 오히려 드럼에 있어서는 이전보다 좀 더 단순해진 건가 싶을 정도인데(그만큼 블래스트비트가 많이 나온다는 뜻이다. 프로그래밍인만큼 이건 좀 심각할 때가 있다), 이걸 만회하기 위해서인지 Roman의 보컬은 예의 그 데스메탈풍 그로울링 말고도 의외의 ‘중음역대’ 목소리도 들려주는 편이다. ‘Temple of the Great Eternal Night’ 도입부의 어쿠스틱 연주와 포크 바이브나, 이전의 Hate Forest보다는 오히려 Drudkh에 더 비슷해 보이는 ‘Ice-Cold Bloodless Veins’도 어찌 보면 단조로울 이 앨범을 나름 굴곡 있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여태까지 나온 Hate Forest의 정규작들 중 가장 깔끔한 레코딩을 보여주면서도 예의 그 차가운 분위기를 유지한다는 점도 나름 메리트일 것이다.

Hate Forest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아마도 만족할 수 있을 앨범이다. 하긴 애초에 모르는 이들이라면 이 앨범에 손 자체가 가지 않겠구나 싶긴 하다.

[Osmose, 2022]

Mayhem “Grand Declaration of War”

대대적인 선전포고라는 제목을 달고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큰형님이 6년만에 정규 풀렝쓰를 내놓는다니 기대를 모으지 않을 수 없었던 이 앨범이 어떤 면에서는 팬덤과의 선전포고가 되어 버린 Mayhem 최대의 문제작이 될 거라고 생각한 이들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하긴 Mayhem의 앨범에서 인더스트리얼 물 먹은 음악이 나왔다는 자체가 많은 이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얘기였을 것이다. 타이밍도 별로였던 것이 Gehenna나 Dødheimsgard, Satyricon 같은 거물들이 인더스트리얼을 받아들인 신작을 내놓았다가 실망스러운 성적을 받아든(정도가 아니라 욕을 바가지로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정말 똥반 소리를 들어 마땅할 앨범은 그 중에 “Rebel Extravaganza” 하나뿐이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어쨌든 사람들의 기대와는 꽤 거리가 먼 음악임은 분명했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A Bloodsword and a Colder Sun’ 연작의 당혹스러움만 어떻게 넘어간다면 앨범은 Mayhem이 그때껏 내놓은 어떤 앨범보다도 빡세고 테크니컬한 음악을 담고 있었다. 과장 좀 섞으면 Fates Warning 블랙메탈 버전 마냥 복잡한 연주를 보여주던 Hellhammer나, ‘Crystalized Pain in Deconstruction’ 등에서 훗날의 Akercocke 같은 밴드들을 연상케 하는 리프를 보여주는 Blasphemer의 연주는 ‘Norwegian Elite Black Metal’의 전형을 제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뭔가 미묘하게 Devo를 생각나게 하는(혹자들은 국어책 읽는 듯하다고 하는) Maniac의 나레이션들은… 이게 맞는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그냥 연극적인 시도였다고 생각하고 넘어가자.

말하자면 누구도 Mayhem에게 바라지 않았던 스타일이 담겨 있는 앨범이었지만 이후의 수많은 밴드들의 모습을 예기하는 음악을 담고 있었고, 21세기를 맞아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최고 거물이 장르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한다는 식으로 광고했다면 앨범에 대한 평가는 지금과는 좀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Mayhem의 앨범이었으니 욕먹는 건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거야 Euronymous 사후 이 밴드의 숙명 같은 얘기고 만약에 그랬으면 용두사미 소리만큼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Season of Mist, 2000]

Armored Saint “March of the Saint”

충분히 유명하기도 하고 오래 됐으면서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밴드이지만 나는 꽤나 늦게 접한 편이다. 그냥 음알못이니까 그런 거겠지만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아무래도 John Bush를 Armored Saint의 보컬로서보다는 Anthrax의 암흑기 보컬로 먼저 접한 탓이 아닐까 싶다. 음악잡지들 뒤지면서 음반수집을 시작했기 때문인가? “Attack of the Killer B’s” 이후의 Anthrax의 앨범들이 국내 음악 잡지에서 좋은 평을 받는 건 별로 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John Bush는 왠지 듣기 전부터 B급인 것처럼 이미지가 박힌 보컬리스트였다. 그렇게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 것이다.

Armored Saint의 이 데뷔작은 많이들 알려져 있듯이 꽤 수려한 헤비메탈을 담고 있다. 특이한 점은 1984년 미국 메탈 밴드의 앨범치고는 NWOBHM의 기운이 강한 편인데, 아무래도 그 시절 선셋 스트립의 동료 밴드들보다는 영국 헤비메탈 밴드의 프론트맨으로 더 어울려 보였던 John Bush의 걸출한 보컬에 장단을 맞추자니 그러지 않았을까? 내놓고 Judas Priest를 의식한 듯한 ‘Glory Hunter’나 ‘Madhouse’ 같은 곡이 그런 밴드의 개성을 단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그러면서도 ‘Can U Deliver?’의 쿨하다 못해 슬리지한 분위기까지 풍기는 리프는 이 밴드가 처음부터 80년대 미국 헤비메탈의 토탈 패키지에 가까웠다는 점도 명확히 보여준다. 하긴 프로듀서도 Kiss의 “Creatures of the Night”에 빛나는 Michael James Jackson이구나(물론 지금은 Michael Jackson 짝퉁마냥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말이다). 80년대 헤비메탈 클래식.

[Chrysalis,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