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e Greenslade “Terry Pratchett’s From The Discworld”

Dave Greenslade가 걸출한 건반 연주자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겠지만 그의 빛나는 시절도 결국은 1970년대였으니 이 분이 동시대의 다른 최고의 키보디스트에 비했을 때에는 약간의 식스맨 느낌도 지울 수는 없다..라고 한다면 좀 지나치려나. 하지만 Colloseum을 주도한 것도 결국 Greenslade는 아니었고, 건반을 쏟아붓는다는 점에서는 최고급이었지만 딱히 이야기꾼은 아니었던 탓에(그런 면에서는 조금은 Keith Emerson 장사 덜 된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생긴 인상일 테니 그저 세상 탓만을 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저 정신나간 소설을 소재로 앨범을 만들었다는 건 조금은 의외인데, 하긴 소설이 소재일 뿐 컨셉트 앨범까지는 아니고 “The Pentateuch of the Cosmogony”에서 그랬던 것처럼 개별 곡들에 명확한 이미지들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앨범을 꾸려 나간다. 하긴 애초에 디스크월드가 앨범 한두 장으로 풀어낼 만한 소설도 아닌 만큼 이런 게 현실적인 방향이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저 방대한 소설의 영국식 개그감과 다양하게 흩뿌려진 캐릭터와 분위기들을 잡아내려고 노력한 흔적도 역력하다. ‘Death’의 조금은 방정맞게까지 들리는 트럼펫 연주나 ‘Dryads’의 일견 스푸키하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가 한 장의 앨범에서 함께 나오면서도 이질적이지 않다는 게 그런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Dave Greenslade의 솔로작들 중에서는 첫손가락에 꼽힐 만하지만 이 분의 솔로작이 늘 그랬듯이 명작이라기에는 나사 빠진 구석도 보이는 앨범인데, 그래도 디스크월드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더할나위 없는 한 장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아주 좋게 들었다.

[Virgin, 1994]

Mayhem “Wolf’s Lair Abyss”

Euronymous가 없는 Mayhem의 첫 앨범은 당연히도 그 이전에 밴드가 보여주었던 것과는 많이 다른 음악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Euronymous의 자리를 제외하면 “Deathcrush” 시절의 라인업이 다시 모여 만든 음악인만큼 Euronymous 사후 밴드가 꾸릴 수 있었던 가장 오리지널에 가까운 멤버 구성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어찌 생각하면 Euronymous의 독재 아래 별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잔여 멤버들이 생각했던 블랙메탈의 모습을 구현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애초에 Misanthropy에서 앨범이 나왔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남은 멤버들은 생각보다 Euronymous의 빈자리를 의식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Euronymous 특유의 음습함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확실히 좀 더 테크니컬하면서 타이트해진 연주를 보여주는 Blasphemer의 기타,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는(그리고 그야말로 기량발전이 돋보이는) Hellhammer의 드럼, 전형적인 블랙메탈 보컬 스타일과는 분명 거리가 있지만 광기라는 면에서는 아마도 첫손가락의 유력한 후보일 Maniac의 보컬, 이 틈바구니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꽤 놀라운 Necrobutcher의 베이스. 그러니까 밴드는 이 EP에서 와서 어떤 면에서는 이전보다 확실히 더 높은 경지에 올랐다. 그리고 내 기억에는 이 앨범과 함께 ‘Elite Black Metal’이라는 생소한 표현이 슬슬 해외 블랙메탈 웹진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긴 블랙메탈의 근본을 논한다면 이들만한 밴드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Funeral Fog’와 (그나마)비슷한 구석이 있는 전개나 리프를 보여주는 ‘Ancient Skin’ 같은 곡에서 이 밴드가 바로 그 Mayhem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고, 길지 않지만 적당히 차갑고 건조하면서도 확실하게 밀어붙이는 ‘웰메이드’ 블랙메탈 앨범인만큼 굳이 깎아내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의문의 여지 없이 멋진 앨범이다.

[Misanthropy, 1997]

Lord Valtgryftåke “Buried Under the Carved Runes”

줄창 Mayhem만 들었더니 간만에 다른 밴드의 최근 앨범 한 장. 물론 30년 가량의 차이는 있지만 커버를 보면 알겠듯이 헝그리함에 있어서는 30년 전의 Mayhem과 비교해도 유의미한 차이는 없어 보인다. 그래도 뭐가 됐든 자기 레이블과 판가게가 있었던 Mayhem이 좀 더 상황은 나았을 수도 있겠다. 각설하고.

그래도 이 원맨 밴드를 굴리고 있는 Lord Valtgryftåke도 칠레 블랙메탈 씬에서는 꽤 거물이라고 한다. 아닌게아니라 Pyreficativm이나 Winterstorm, Wampyric Rites처럼 일단 칠레 블랙메탈의 조금은 알려진 이름들(뭐 거기서 거기이긴 하다만)의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고, 진짜 실체가 있긴 한지 모르겠지만 이 일군의 밴드들이 Pure Raw Underground Black Metal Plague라는 서클까지 만들고 있다고 하니 은근히 저 Mayhem과도 닮은 구석들이 있는 셈이다. 서클 이름에서 묻어나오는 시대착오적 작명 센스까지 30년 전을 따라가고 있는 것도 그렇고.

음악은 기대보다 준수한 편이다. 존재감 없는 베이스와 아련하게 느껴지는 드럼과 보컬, 전면에서 거칠게 리프를 긁어대는 기타는 그야말로 장르의 전형에서 전혀 비껴나지 않는 로블랙에 가깝다. 그리 복잡하지 않고 트레몰로는 별로 사용하지 않지만 펑크의 기운 강한 리프들도 그렇고, 특히나 ‘Centuries of Glorious Wisdom’ 같이 노르웨이풍 강한 곡은 블랙메탈의 전형에 가깝다. 하지만 ‘Path of the Damned’의 중반부의 헤비메탈식 전개나 의외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던전 신스 ‘Opferblut I’, ‘Opferblut II’ 같은 곡들을 보면 의외로 다양한 스타일을 ‘의식’해서 만들었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그래봐야 지글거리는 블랙메탈 앨범이라는 설명에는 변함은 없겠지만 말이다.

이런 전형적인 스타일이 생소하지 않다면 무난하게 즐길 만할 그런 앨범.

[Inferna Produndus, 2022]

Mayhem “Ha-Elm Zalag”

워낙에 악명 높은 라인업이어서 그런지 Dead가 노래하던 시절의 Mayhem은 다른 블랙메탈 밴드들보다도 유독 리허설 부틀렉이 많이 보이는 편인데(물론 내 경험일 뿐이니 사실은 그 정도까진 아닐지도), 대개의 이런 리허설 부틀렉들은 미발표곡이 있다거나, 아니면 정규 앨범들이 차마 선택하지 못했던 엄청난 아트워크를 보여준다거나 하는 사례가 아니라면 딱히 메리트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Mayhem의 라이브 부틀렉들의 엄청난 음질을 생각하면 이들의 경우에는 리허설 부틀렉이라고 하더라도 큰 차이는 또 없을지니 어차피 부틀렉까지 사서 쟁여둘 이들이라면 리허설이라고 피할 이유는 또 없어 보이긴 한다. 결국 돈 아까운 줄 모르고 부틀렉까지 사는 이라면 그렇게 비합리적인 소비생활을 이어가곤 한다. 이거 사실 자아비판이다.

그래도 이 부틀렉은 그런 류의 리허설 부틀렉들 중에서는 좀 더 많은 이들의 표적이 되었던 앨범이다. 일단 1989년의 리허설이니 Mayhem의 이 ‘클래식’ 라인업이 첫 공연을 하기도 전인 시점이었고, CD버전은 부틀렉 주제에 OBI까지 껴주는(게다가 일본반인 것처럼 일본말도 나오는) 쓸데없을 정도로 세심한 디자인이 돋보이는데다, 예의 그 무시무시한 음질로 들어주기 어렵게 연주하는 밴드의 클래식들 끄트머리에 미발표곡 ‘Of Sodomy and War’가 붙어 있다. 사실 대단한 곡은 아니고 Emperor의 ‘Ye Entrancemperium’의 크레딧에 왜 Euronymous가 쓰여 있는지를 알려주는 정도의 메리트가 있겠지만… Mayhem의 미발표곡이면 됐지 뭐 그 이상의 의미가 필요할까.

그리고 ‘Freezing Moon’의 무척이나 많은 버전들 중에서도 가장 거칠게 연주해 주는 버전은 이 부틀렉에 수록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하긴 1989년이면 아직 밴드가 갑자기 연주력이 부쩍 늘기 전이니만큼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밴드의 팬이라면 한 장쯤 노려볼 만한 부틀렉인 셈인데, 요새는 어쩌다 보여도 100유로를 훌쩍 넘겨주고 있으므로 생각없이 지르기 전에 한 번쯤은 잘 생각해 보는 게 좋을지도.

[Immigrant Darkness, 1995]

Mayhem “Live in Zeitz”

Peaceville이 낸 Dead 보컬 시절 Mayhem의 라이브 중에서 그래도 가장 앨범다운 앨범을 꼽는다면 단연 이 앨범이지 않을까? 하지만 Sarpsborg나 Jessheim 라이브에 비해서 사람들의 반응은 좀 시들했던 것이… 생각해 보면 “Dawn of the Black Hearts”만큼은 아니더라도 “War and Sodomy” 부틀렉으로 이미 공개됐던 음원이었고, 애초에(부틀렉으로 퍼지기 전에) Dead 본인이 테이프로 만들어 뿌리고 다녔던 라이브기도 했고, Peaceville이 이미 2016년 “Live in Leipzig” 2CD 버전에 보너스로 넣어 내놓았던 앨범이었던 만큼 이미 구할 만한 사람은 다 구한 앨범이었다. 그러니까 돈독이라는 측면에선 이 앨범이 그 즈음 Peaceville이 냈던 Mayhem 라이브앨범 중에서는 제일 심각한 사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자기들이 리마스터해 낸 앨범을 커버만 새로 끼워서 재탕하는 꼴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리마스터 덕분에 음질은 다른 Mayhem 라이브보다 훨씬 낫다. 많이 먹먹해서 그렇지 전반적으로 사실 “Live in Leipzig”보다도 더 나은 수준인데, 전체적으로 “Live in Leipzig”보다 더 빠른 템포로 연주되고 있는지라 달리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저 먹먹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이게 더 낫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 Mayhem이 누구도 따라오기 어려울 엄청난 템포로 승부하던 밴드도 아니고, 이 시절 밴드가 보여주던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라는 면에서는 여전히 “Live in Leipzig”가 좀 더 낫다고 생각하고, 이 앨범의 빠르게 후려치는 스타일은 사실 저 먹먹한 음질보다는 다른 부틀렉들의 ‘지나치게 시끄러운’ 음질이 차라리 더 어울렸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이런 음질 비교가 크게 의미있는 일은 아니긴 하겠지만.

그래도 기존의 부틀렉을 업그레이드한 것만큼은 분명하니 나름의 의미는 있을 것이다. “War and Sodomy”보다는 좀 못해 보이지만 Peaceville판 Mayhem 라이브 중에서는 커버도 제일 나아 보이니 그것도 메리트일 것이다. 적어도 본전 생각은 나지 않는다.

[Peaceville,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