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mdall “The Temple of Theil”

자꾸 이탈리아 헤비메탈에 감도는 빈티 얘기를 하게 되는데, 물론 가장 잘 알려진 예들은 아무래도 Underground Symphony의 발매작들이겠지만 그건 지금 생각해 보면 Skylark이 조금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은 덕에 덩달아 알려진 탓이 커 보인다. 그런 빈티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역시 이탈리아 헤비메탈이 계속해서 배출하는 소박한 기량의 보컬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Death SS 말고도 이탈리아 헤비메탈의 중요한 길을 제시한 Dark Quarterer도 보컬로 따지면 잘 한다고는 절대 못 할 밴드였다. 혹자는 이탈리아에서 해당 장르의 발전을 막았던 양대 억제기였다고도 하는데 그건 각자의 판단에 맡기고.

Heimdall도 그렇게 아쉬운 보컬이 음악의 발목을 잡았던 많은 이탈리아 밴드들 중 하나인데, 일본에서 그 즈음 같이 Italian Metal Invasion 마크 달고 나왔던 앨범들이 보컬이 나쁘지 않았던 탓에 더욱 단점이 부각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보통의 멜로딕 파워메탈보다는 좀 덜 ‘희망찬’ 분위기로 나름 무게잡는 – 말하자면 Blind Guardian 물을 좀 먹었던 – 스타일의 음악이었던 덕분인지 그 시절 비슷한 동네의 많은 밴드들보다 싼티는 확실히 훨씬 덜하다. 뭐 생각해 보면 수준 자체가 다른 밴드이긴 했으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Claudio Gallo의 괴이한 악센트와 납득이 좀 어려운 크루닝을 모두 갖춘 보컬만 빼면 “Of Wars in Osyrhia” 시절의 Fairyland 마냥 서사적인 면모(특히나 ‘The Oath’)도 찾아볼 수 있다.

보컬만 좀 힘있는 분으로 바꿔서 재녹음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 그런 앨범.

[Elevate, 1999]

Death SS “…In Death of Steve Silvester”

Paul Chain 얘기가 나오는데 Death SS 얘기가 한 장도 없어서야 말이 안 된다는 많…지는 않은 이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간만에.

Paul Chain이 Death SS 초창기의 가장 핵심적인 멤버 중 하나였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래도 중요한 사실은 Death SS는 어디까지나 Steve Silvester의 밴드라는 점이다. 일단 밴드명 뒤의 SS가 (SchwarzSturm 같은 게 아니라)Steve Silvester의 약자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보면 이 앨범명과 커버아트가 얼마나 얼척없는 내용인지를 알 수 있다. 난 처음에 무슨 Steve Silvester의 트리뷰트 앨범인 줄 알았다. 뭐 밴드명을 좀 길게 풀어썼을 뿐인지는 잘 모르겠다. 각설하고.

음악은 독특한 건 분명하되 나쁘게 얘기하면 참 잡다하게 다양한 모습들이 조금은 애매하게 섞여 있는 스타일이다. 1집 이전의 조금은 개러지 펑크에 흡사하게 느껴진 리프들은 좀 더 다듬어져 스래쉬메탈 리프에 가까워졌고, 싼티를 어찌어찌 스푸키함으로 승화시킨 키보드는 앨범 전반에 조금은 폐쇄적인 분위기를 가져온다. 특히 둠적인 리프가 돋보이는 ‘The Vampire’에서 이런 면이 더욱 부각되는데, 그러면서도 꽤나 연극적인 Steve의 보컬은 헤비메탈 본연의 매력을 잃지 않는다. 전통적인 헤비메탈에 가까운 ‘Zombie’나, 둔중한 템포가 곧 스피드메탈로 이어지는 ‘Werewolf’는 뭣 때문에 후대의 밴드들이 Death SS의 데뷔작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밴드의 이 ‘어두웠던’ 시기가 기껏해야 다음 앨범까지였음을 생각하면 더욱 인상적일 앨범이다. 사실 저 커버만 아니었다면 이탈리아 언더그라운드 헤비메탈에 감도는 특유의 싼티의 원류로 꼽히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Foto Studio Immagini Di Silvana가 사진을 맡았다고 크레딧에 쓰여 있던데, 밴드 본인들은 저 커버를 정말로 쓰고 싶었을까? 좀 궁금해진다.

[Metalmaster, 1988]

Paul Chain Violet Theatre “In The Darkness”

Death SS를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사실 좀 거짓말이고, 이탈리아 헤비메탈을 들으면서 생각보다 자주 느꼈던 은은한 싼티는 결국 Death SS에 상당한 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밴드가 초창기에 보여준 번뜩이는 부분들이 훗날의 많은 밴드들이 참고했을 거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니까 Mercyful Fate의 길을 걷기에는 프로그 물을 너무 먹었고 King Diamond 같은 보컬을 구할 수 없었던(그리고 말은 안해도 연주력도 좀 딸렸던) 밴드들이 갈 수 있는 길이 어디인가를 저예산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까? 물론 이런 모습은 길게 잡아봐야 “Black Mass” 이후에는 Death SS 스스로도 보여주지 못했지만 말이다.

Paul Chain의 솔로작은 그런 Death SS의 초창기 노선이 Steve Silvester보다는 Paul Chain에게 더 빚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앨범이다. 말이 솔로작이지 Death SS의 스타일과 크게 차이가 없었고, 오히려 사이키함에 있어서는 Death SS보다 더했던지라 좀 더 앞선 시대의 프로그레시브한 하드록을 즐겨들은 이들에게는 Death SS보다 더 낫지 않았을까? 좋게 얘기해도 Alice Cooper 짝퉁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Steve Silvester의 보컬보다 은근히 John Arch 느낌 나는 Paul의 보컬도 나쁘지 않았고, 사이키 물 많이 먹은 NWOBHM풍 리프를 속도감 있게 연주하는 기타도 괜찮았다. Violet Theatre를 이름으로 붙였던 탓에 나름 연극적인 음악을 의도하지 않았을까? ‘Welcome to My Hell’이나 ‘In the Darkness’처럼 Goblin이나 록키 호러 픽처 쇼를 연상케 하는 모습은 이후의 Paul Chain의 앨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점이다.

말하자면 메탈인 건 분명하지만 사실 전형적인 헤비메탈 팬보다는 Uriah Heep(이나 좀 더 싼티나고 스푸키한 하드록 밴드) 류를 좋아하는 이들이 더 즐길 만한 음악일 것이고, 생각해 보면 Paul Chain 커리어에서 가장 개성적이고 두드러진 한 장을 꼽는다면 유력한 후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Paul Chain이 이 시절 스타일에 Black Sabbath식 둠을 더하면서 이후 Pentagram류 둠 메탈의 흐름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는 식의 설명(이견도 꽤 되는 듯 하지만)은 덤이다.

[Minotauro, 1986]

Nox Intempesta “Die Lieder von Tod und Ewigkeit”

Folter Records는 이미지상으로는 장르의 가장 유명한 레이블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두 급은 밑으로 보이는 감이 있고 카탈로그를 봐도 A급이라 말한 만한 밴드들은 딱히 없지만, 적어도 90년대 중후반 독일 멜로딕 블랙메탈에 있어서는 인상적인 퀄리티를 보여준 곳이라고 생각한다. 1991년에 생긴 레이블인만큼 장르의 초창기부터 함께 한 곳이기도 하고(허나 카탈로그상으로는 1994년 이전에 뭘 낸 것 같지는 않다. 그동안 뭐 했을까), Arkona나 Arathorn의 발매작은 국내 중고매장의 단골 악성재고로 많은 이들에게 예상외로 익숙할 만한 앨범이기도 하다. 쓰고 보니 좋은 얘기는 별로 없구나.

Nox Intempesta의 이 데뷔 EP도 그런 레이블의 특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생각보다는 노르웨이풍이 강한 리프(굳이 비교하자면 Immortal풍에 가까운)에 Bethlehem(“S.U.I.Z.I.D” 시절. 하긴 이 앨범과 같은 해에 나왔구나)을 연상케 하는 키보드가 어울려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이들의 개성이잖을까 싶다. 물론 이들이 훨씬 덜 니힐리스틱하다. 영어와 독일어를 왔다갔다하며 나름 극적인 인상을 주려는 모습이 역력한 보컬은 덕분인지 조금은 정신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긴 그 때는 이런 스타일을 ‘Chaotic’하다고 얘기해주곤 하던 시절이었으니 별로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장르의 팬이라면 무난하게 듣기는 충분할 것이다.

[Folter, 1997]

Tormentor “Anno Domini”

Attila Csihar가 마이크를 잡았던 덕에 지금만큼 알려질 수 있었던 밴드라고 하면 맞는 얘기긴 하지만… Tormentor는 이미 80년대부터 완성된 형태의 블랙메탈을 들려주던 밴드였던만큼 그렇게만 말하면 밴드로서는 아마 억울할 것이다. Mayhem 같은 이들의 80년대 데모가 이들이 딜레탕트에서 뮤지션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즉 혹평한다면 Venom의 아류에 가까울 사운드를 들려주는 정도였다면 이들은 이미 동시대에 자신들의 색채를 가지고 있고, 연주 등의 부분에서도 당시의 다른 블랙메탈 밴드들에 많이 앞서 있었다. 당연히 때는 90년대 블랙메탈의 ‘스타일’이 미처 자리잡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밴드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인 이 앨범(사실은 두 번째 데모)은 그런 밴드의 출중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Dissection의 커버 덕분에 밴드의 가장 잘 알려진 곡으로 꼽힐만한 ‘Elisabeth Bathory’의 느슨한 행진곡풍에서 퍼즈 톤의 리프와 함께 거칠게 밀어붙이는 모습은 Darkthrone이 어느 부분을 참고했을지 짐작케 할 만한 부분이 있고, ‘Beyond’의 신서사이저를 이용한 분위기 전개나 개성적인 솔로잉은 장르의 훗날을 내다본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그래도 시절이 시절(이거니와 청자의 취향도 취향)인지라 가장 매력적인 곡들은 스래쉬 기운 잔뜩 머금은 곡들일 것이다. 내놓고 Slayer풍인 ‘Tormentor’나 Andy La Rocque풍 솔로잉까지 등장하는 ‘Lyssa’ 같은 곡들은 굳이 21세기에 왜 이 시절 흘러간 류의 블랙메탈을 찾아 듣는가? 라는 질문의 답으로 내놓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들어볼 만한 사람은 거의 다 들어봤겠지만 혹시나 아니라면 일청을 권한다. 저 잘 알려진 커버는 1995년 Nocturnal Art의 재발매반 버전이니 오리지널을 구하려는 이라면 유의할 것.

[Self-financed, 1989]